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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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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76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6.18 18:53
조회
776
추천
1
글자
7쪽

3

DUMMY

그러곤 꽤 걸었다. 마차가 쏜살같이 지나가지도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소매치기나 시비꾼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산책길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지만 여자는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의 샤크티랑 가벼운 대화를 하며 즐거워했다.

샤크티는 내심 걷고 싶어 하는 것 같아보였지만 안아드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관찰하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긴 날씨가 좋아서 좋네~그치~?”

“응. 안 추워.”

“어쩌면 이렇게 귀여울까 우리 샤크티~”

“더워.”

“자~엄마한테 뽀뽀~”


가볍게 밀어낼 요량으로 더울 정도로 딱 붙어서 입술을 쭉 내미는 그녀의 뺨에 손을 댄 것 같았지만 애어른마냥 시큰둥한 얼굴로 콧김을 한번 내뿜고는 살짝 입술을 맞혀주는 모양새가 어른과 아이의 입장이 반대가 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샤크티의 이마와 뺨, 코와 입술에 연신 입을 맞춰댔고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 샤크티의 얼굴 이곳저곳에 과자부스러기가 달라붙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턱 아래에 입술을 붙이고 “부부부부~”하고 불어대며 놀기 시작했다. “부부부부~” 라며 노는 그녀의 시선엔 들어오지 않았지만 샤크티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엄마, 더워.”


“부부부부~”라며 혼자 놀고 있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가볍게 밀어냈다. 그러자 여자의 얼굴에 그늘이 지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엄마가 싫어······?”

“싫은 건 아닌데······더워······”

“엄마는 샤크티가 좋은데······샤크티는······”


큰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는 것 같이 보였다. 과자라도 남았으면 입에 물려줄텐데. 라고 먼저 생각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엄마를 끌어안은 샤크티였다.


“엄마 좋아.”

“그래그래~엄마도 샤크티가 좋아~”


그제야 울음을 터트릴 것 같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유치한 대화였지만 그녀에겐 모녀간의 아름다운 대화였고 샤크티는 거짓말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짐 꾸러미 사이에 들어가 있거나 피부가 닿을 정도로 딱 붙어 있다면 더울 정도로 햇살은 강했지만 바람이 가볍게 불어 이마에 붙은 땀을 식혀 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것들이 맛있고 대부분의 것들이 아름답다. 잘게 자른 나무를 엮고 안에 가죽을 대어 꿰맨 신은 무겁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다. 좋은 옷감은 아니지만 하늘거리는 옷에서는 가벼운 꽃향기가 나고 찢어진 부분이나 피 얼룩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사람들이 가벼운 농담을 하며 다니는 거리는 법과 양심으로써 정돈되어 있다. 그 누가 오더라도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환경이다.

더 이상 진창에 앉아 서로의 등을 맞대고 선잠을 자고 벌레 먹은 음식들을 먹는 날은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한 여자가 집에 도착하면 창문부터 열어둬야겠다고 계획하는 동안 남자가 종이에 그려져 있는 것과 거의 흡사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기르는 게 좋다.”


별 말 없이 걷는 동안 그가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던 것이 말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였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통에 어깨에 가볍게 닿을 정도로 잘라놓은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는데 아직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 긴 쪽이 취향이었어요? 몰랐는데~”

“땋아서 몸에 감아두면 목을 공격당했을 때 약간의 방어가 된다.”

“뭐······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여자의 스타일에 남자의 손이 더해지면 별로 안 좋다고요!”

“짐승의 공격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당신이 내 곁에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잖아요?”

“만약이라는 건 항상 있다.”


믿음 이상의 감정을 남자에게 드러냈지만 그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바위 같이 우직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행한다.

매시각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그녀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뭐, 상관없겠죠. 난 언제나 예쁘니까.”


머리카락 끝을 살짝 잡고 손가락 사이에서 비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살짝 삐걱거리는 쇠창살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종이에 그려진 것과 거의 흡사한 형태의 집이 담장 안에 있었다.

마당엔 큰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너머로 이층집이 한 채, 집 옆엔 창고 겸 사육시설이 붙어 있었다. 위아래에 창문들이 여럿 붙어 있었지만 틈새가 많은 나무로 되어 있어 채광도 좋지 않아보였고 추운 겨울엔 바람이 숭숭 들어올 것 같아보였다.

좋은 것이라면 담쟁이 넝쿨이 붉은 벽면을 타고 올라 무성히 자라 낡은 자국을 가려주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창문을 어떻게 하긴 해야겠네요.”


상당히 비싸긴 하겠지만 유리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말로 표현했다. 남자의 계획에도 유리창문이 들어 있었던 것인지 별 말 하지 않았다.


나무로 된 문을 열려고 하자 손잡이가 부서졌다. 둥근 손잡이를 떼어 내고 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겨우 문을 열었더니 이번엔 경칩이 바스러지면서 문이 떨어져 나왔다.

여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짜증을 내고 있었고 남자는 조심스레 문짝을 들어 문이었던 구멍 옆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쪽은 상황이 조금 나았다. 가구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쓸고 닦는 것은 되어있었다.

사람의 온기는 없었지만 만들면 되는 일. 새집에 대한 기대는 샤크티도 품고 있었는지 가장 먼저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나무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창문을 열었다. 빛이 들어오자 거실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밝아졌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붕이 있었고 축축한 흙바닥이 아니었다. 거기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샤크티는 만족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주방쪽으로 가 창문을 열었고 남자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덩치가 큰 만큼 무거워 그런 것인지 계단을 이루고 있던 나무판자 하나가 부서졌다. 그가 잠시 멈춰 섰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계단을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꽤 낡았지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 그곳이 그들의 집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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