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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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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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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4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8.08.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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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6

DUMMY

“맑은 정신이라는 건 중요해요.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쓰는 사람의 정신이 탁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만 줄 뿐이니까요.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나비가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더더욱 좋은 거죠.”

“하지만 힘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병부를 가져가서 필리오림에게 전달한다고 해도 병사들이 나비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있나요?”

“당연히 보통 사람들이니 이마에 나비 붙이고 헬렐레 할걸요?”

“방책이 있나요?”

“글쎄요. 이런 종류의 전쟁은 처음이라서요.”


어느새 주방 쪽으로 들어간 알리샤가 요리용 술로 보이는 병의 마개를 열어 냄새를 한 번 맡더니 한 모금 마시고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그런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그녀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부상을 입은 린다에게로 술을 가져가 자신의 손과 상처에 술을 뿌려 소독한 다음 상처에 손을 밀어 넣어 내장이 입은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를 불로 지지는 듯 한 고통이 린다의 목소리가 되어 높게 울렸지만 알리샤는 고기를 반죽하듯 상처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휘휘 저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난 뒤 손을 빼낼 뿐이었다.


“잘 치료하고 잘 먹고 잘 쉬기만 하면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네요. 계속 이런 상태면 좀 위험하겠지만요.”

“으······! 지금 당장 치료할 방법은 없나!”


피가 흐르는 상처를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목소리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적들을 쓰러트리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린다의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난자당해 버려지거나 나비가 붙어 헬렐레 거릴 것이 분명해보였다. 이는 알리샤도 예상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게도 딱히 방법은 없는 모양인지 병에 남은 술을 홀짝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치료 술법 쪽은 미숙해서 좋은 촉매가 없으면 못해요. 그냥 좋은 의사한테 가는 게 좋을 걸요?”

“그 촉매라는 건 어떤 거죠?”


린다가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 그라시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고 있었다.


“술법을 증폭시킬 수 있는 힘이니 기능이 있는 도구 같은 거죠. 대개 순도 높은 자줏빛 꽃 같은 아~주 비싼 물건이나 달 꽃 같은 괴상한 거라던가 오래된 유물, 주술도구 같은 것들이라서 구하기가 힘들어요. 뭐, 응급처치 같은 거면 보석가루가 들어간 물약이나 오래된 보석 같은 것도 괜찮고요.”

“보석이라면 좀 있어요!”


그라시아가 움직이기 전에 하녀 한 명이 그녀의 방에 들어가 작은 보석함을 들어 내려왔다.

정교한 세공을 통해 적은 조명 아래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사치품들이었지만 알리샤는 그리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보석들을 살펴본 뒤 그중 제일 작은 것을 하나 골라 손바닥에 놓고서 입김을 살짝 불었다. 입김을 불자 옅은 노을빛의 보석이 달아오르듯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치료 술법에 굉장히 미숙해요. 죽을 만큼 아플 테니까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하세요.”“각오하······! 아아아아악! 으으으! 으······으으······!”


어떤 신호도 주지 않은 채로 빛나는 보석을 상처에 쑤셔 넣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본 적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상처는 옷을 약간 태울 정도의 열기를 내며 아물어들었고 밀어 넣은 보석 역시 상처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하······후······하······하······이걸로 끝인가······”


축하라도 하려는 듯 술병을 건넸지만 받지 않았다. 알리샤는 자신의 작은 호의를 거절한 린다에게 뚱한 표정을 한 번 보이곤 가볍게 술을 들이켜 병을 완전히 비우곤 주의를 줬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불로 지진 것 보다 조금 나은 정도밖엔 안 되니까요.”

“상관없다. 싸울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


지팡이로 삼았던 칼을 칼집에 넣어 허리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두꺼운 가죽 장갑으로 손을 보호했다. 철판을 모아 만든 갑옷은 있었지만 공격 받았을 때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기에 입진 않았다. 대신 창고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가죽 갑옷을 입고 하인 한 명의 도움을 받아 끈을 조정해 몸에 맞추었다.

조금은 성급해 보이는 린다의 결정으로 보이는 행동에 알리샤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몸 상태 모르고 날뛰다가 죽는 사람들 많아요.”

“용병들 말인가? 우습군. 난 그런 족속이 아니다.”

“아니······뭐······”


자신이 그러지 않았기에 뭐라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목 하나에 얼마. 라는 가격 책정이 있는 전장의 수만큼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라는 기억 또한 있었기에 바로 반박하진 못했다. 그 사이 린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군인으로써 의무를 다하는 것이니 괜찮다······”

“네?”

“아니다. 그것보다 무장이다!”


하인 한 명이 내민 다리 보호대와 팔 보호대를 받아 착용한 뒤 투구를 쓰고 벽에 기대 놓은 방패를 집어 왼팔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대략적인 조정이 끝난 뒤 얼추 갖춰 입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몇 번 휘두르며 몸 상태와 무장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근데 제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나비가 붙으면 전부······”

“너는 나와 같이 간다.”

“네? 왜죠?”

“그라시아 아가씨······그라시아 님께서 병부를 필리오림께 넘기겠다고 판단하신 이상 가장 안전한 운반책은 너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난 널 신뢰하지 않는다. 용병.”

“아니······그러니까······”

“나 하나 챙기지 못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


침착하고도 강직한 답에 알리샤는 조금 멍해졌다. 다 집어치우고 그녀가 정상적으로 걸어온 길이 있었던가? 애써 기억에 잘못 된 부분이 있었나 싶어 되짚었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높게 뛰었다가 착지한 기억밖엔 없었다.


“길이 험할 텐데요. 상처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거고요.”

“상관없다.”


단검 몇 개를 챙기는 린다의 상처자리를 검지로 꾹 누르며 경고했지만 아픈 기색 하나 없는 그녀의 모습에 알리샤도 예상 못했다는 듯 당황했다.


“어······음······그럼 주의사항 몇 가지 일러드릴게요.”


주의사항은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았다. 나비를 발견하면 건드리지 말 것, 분홍신은 다리를 자를 것, 나비가 붙은 시민들은 죽을 정도의 상처가 아니면 계속 움직이니 조심할 것,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게 왜 튀어나올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말 것.

간단하게 말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모든 경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준비를 하는 동안 2층으로 올라간 그라시아가 잠시 후 말라붙은 피가 묻은 펜던트 하나를 들고 내려왔다.


“잃어버리시면 안 돼요.”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애써 참고 있는 듯 했지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 린다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기울이며 목을 살짝 빼 그라시아가 걸어주는 펜던트를 받아들었다.

손에 직접 쥐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 같은 간단하면서도 효율이 떨어지는 모습에 알리샤는 재미난 것을 보는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병부를 인수받은 린다가 펜던트의 남은 부분을 가죽갑옷 안으로 밀어 넣고 칼을 뽑았다.


“다녀오겠습니다.”

“몸조심해요.”


그라시아는 다시 활을 잡았고 린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더 본 뒤 알리샤를 앞장 세워 저택을 빠져나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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