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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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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81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8.19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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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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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5

DUMMY

모두의 식사가 끝나고 우파나히는 평소 같이 설거지를 했고 마차리는 마당에서 밀린 빨래를 물을 채워 넣은 통에 담고 세재로 쓰는 잎사귀 몇 장과 함께 밟아대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궁리했다.

알리샤는 말했던 것처럼 샤크티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 당연히 샤크티는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용없었다.


“사람들이랑 같이 살려면 읽고 쓰는 것 정도는 알아야해.”

“응······”


관심 없어보였지만 알리샤의 태도는 단호했다. 기초적인 자모음부터 아빠나 엄마 같은 간단한 것을 가르쳤지만 몇 번 쓰다가 관심을 잃었다.

우파나히가 코코아 두 잔을 타서 그녀들 앞에 내려놓았지만 아직 공부중이라는 명목으로 샤크티의 것은 알리샤에게 압수당했다.


“코코아라고 써봐. 못 쓰면 안 줄 거야.”


교육열이 높은 것을 떠나서 가르치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자모음을 몇 번 써보지도 않은 아이에게 어려운 것을 바라고 있었다. 우파나히가 글 쓰는 것을 배울 때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알리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가만히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샤크티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감정표현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는 우파나히조차 한숨이 절로 쉴 판이었다.

자리에 앉아 샤크티를 품에 앉히고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을 가볍게 감싸 쥐고 코코아라는 형태로 움직였다.


“코코아.”

“응.”

“가게에서 주문할 때 메뉴판을 읽을 줄 모르면 코코아를 파는 곳인지 알 수 없다.”

“응······”

“일단 자모음이란 것의 형태를 외우는 거다.”

“응.”

“자모음마다 고유의 형태와 소리가 있다.”

“응.”

“잘 봐라.”


목소리를 내지 않은 걸로 한 번,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한 번 자모음으로 변하는 입과 혀의 모양을 보여줬다. 자모음의 형태로 입과 혀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손을 입속으로 쑤셔 넣고 혀를 붙잡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등을 토닥이며 살살 달래 혀를 잡고 있던 손을 뺀 뒤 입 모양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몇 번 반복했다. 샤크티를 뺏긴 알리샤는 잔뜩 뺨을 잔뜩 부풀린 채 트집 잡을 것이 없는지 주시하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딸을 가르치는 것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몇 번 그런 걸 반복하다보니 이상한 말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 대화를 하는 것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엄마, 얼굴 빨개. 으깨진 멍청한 토마토 같아.”

“뭐, 뭐?! 멍청하다니······!”


물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것도 몇 마디 있었지만 환경이 환경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히히. 멍청해.”

“멍청하다는 건 나쁜 말이다. 쓰지 마라.”

“응. 알았어.”


그제야 샤크티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파나히는 알리샤가 압수한 코코아를 뺏어 식혀가며 먹였다.

생각보다 어린 아이의 학습력은 높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보고 듣다보면 그걸 그대로 답습해 행동한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온전히 물려받는다. 그리고 선악에 구분 없이 그대로 따라한다. 샤크티도 그런 단계였다.


“화기애애하네요.”


마당에서 빨래를 밟으며 열린 창문을 통해 그걸 보고 있던 마차리가 옅은 웃음을 띠며 중얼거렸다. 알리샤가 말없이 쏘아보자 패기 없이 눈을 내리깔았지만 배운 것은 있는 모양이었다.


“기초인가······”


빈손으로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어릴 적 배웠던 검술의 기초를 상기했다.

베기와 찌르기. 모든 검술의 기초이며 기본. 언어의 자모음과도 같은 것. 그리고 마차리는 베기를 집중적으로 익혔고 로투는 쇠약해지는 가운데 자신의 남은 재능을 찌르기라는 분야에 쏟아 부었다. 서로 간에 기본은 충실하다. 기술의 화려함이나 빈틈을 노리는 전법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할 터였지만 마차리의 시점은 조금 낮은 곳에 있었다.

빈손에 칼을 떠올리며 칼자루를 잡는 법부터 다시 시작했다. 자루 상단을 단단히 잡거나 중단을 가볍게 잡는 것, 혹은 하단을 반쯤 잡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소한 부분이었고 신경쓰는 사람이 적은 부분이었지만 마차리에게 있어선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무기를 잡는 것을 익힌 채 태어나는 터라 이런 작은 부분까지 연습하는 샤엘라는 없다. 태생적인 장점이다. 다른 종은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잠이 든 상태에서도 자세를 잡을 정도로 연습한다지만 샤엘라는 이럴 이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잡는 법부터 쓰는 법까지 익힌다. 재능은 아니다. 그냥 싸우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울 뿐이다. 로투 역시 같은 핏줄이니 무기를 쥐는 법 따위를 연습하는 건 마차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음······”


빨래를 밟으며 이제까지 익혔던 검술을 상기 시켰다. 다른 종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규격이라는 것을 만들어 생활에 편리를 더했듯 샤엘라의 검술에도 규격이 있다. 안정적으로 손발을 움직이는 방법에 한계가 있듯 샤엘라의 힘과 능력에 맞는 기술 규격을 형성함으로써 종의 생존률을 높였다.


“기본······기본······기본······”


마차리와 로투가 자란 곳이자 일반적인 고아원 역할을 하는 곳인 라달소렌의 경우 기본만 가르치고 나면 나머지는 알아서 익혀라. 라는 식이었지만 그 기본만큼은 확실히 가르쳤기에 같은 출신인 로투 역시 그 기본을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천 년의 역사로 만들어낸 기본은 두껍고 단단하지만 샤엘라조차 잘 모르는 약점은 있다. 그걸 로투가 인지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수를 걸어볼 가치는 있었다.


“맛있는 냄새나.”

“응?”


어느새 창가로 다가온 샤크티가 배시시 웃으며 마차리를 보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라는 말에 코를 킁킁 거려봤지만 아침 공기를 제외한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공기가?”

“아니야.”

“그럼 뭐가?”

“몰라. 처음 맡아봤어.”

“근데 맛있는 냄새야?”

“응.”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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