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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73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8.04.2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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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62

DUMMY

달빛을 받은 우파나히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추켜세우자 동작인형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칼날과 손끝을 떨면서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물론 와이어와 태엽으로 이루어진 그들이 떨리는 없었다. 동작인형들의 떨림은 조종자인 인형술사가가 느끼는 공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에 닿는 것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힘과 끝을 알 수 없는 강인한 신체, 아무리 공격해도 쓰러지기는커녕 공격한 자를 갉아 먹는 그의 싸움 방식에 인형술사는 자신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분홍신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멀쩡하거나 아직 본체가 동체에 붙어 있는 분홍신들은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듯 우파나히에게 달려들어 엉겨 붙으면서 그의 자유를 잠시나마 빼앗았고 대기하고 있던 분홍신 중 하나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우파나히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도끼가 머리에 닿았지만 뼈에 날이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고개가 조금 젖혀지고 피부가 찢어졌을 뿐 두개골이 박살나는 일은 없었다.

분홍신은 당황하지 않았지만 팔과 다리가 으스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분홍신들을 죄다 으스러트린 우파나히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남은 적의 수를 헤아렸다. 처음에 비해 반이나 줄어버린 분홍신들은 조금씩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인형술사가 동요하고 있는 상태인 동작인형들은 신중한 척 움직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고요함이 함께하는 짧은 대치 순간을 끝낸 것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였다.

도시 전체에서 울리는 듯한 각양각색의 비명소리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악몽의 표현이었다. 검은 나비가 잠들어 있는 사람들,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 비명소리에 잠이 깬 사람들의 이마에 앉을 때마다 비명소리가 높게 퍼져갔다. 개중에는 악몽 속 괴물을 죽이기 위해 날뛰며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자들도 있었고 꿈에서 깨기 위해 자해하다가 영원히 잠드는 이들도 있었다.


도시를 삼킨 검은 나비 떼는 로투가 내린 명령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악몽으로, 공포로 도시를 집어삼킨다. 악몽에 사로잡힌 자들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스스로를 제압하게 된다. 도시 하나를 손쉽게 괴멸시키는 로투의 방법, 어둠의 힘을 가진 용의 능력이었다.

우파나히는 귀의 방향을 사방으로 퍼트려 상황을 주시하려 했지만 들어오는 정보가 지나치게 난잡했다. 움직임에 일관성이 없었고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상황을 주시하며 그 난잡한 정보가 분홍신이나 인형술사가 계획한 연극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우파나히는 우선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것으로 자신의 방향을 정한 모양이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식칼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아주머니 한 명의 목을 꺾고 식칼을 들었다. 식칼을 주워들 때 달려든 분홍신 하나의 목을 잡고 습관처럼 심장에 식칼을 쑤셔 넣었지만 목에 도끼가 날아들 뿐이었다.

습관의 무서움을 인식한 우파나히는 분홍신의 다리를 걷어차 부러트린 뒤 팔의 관절을 박살내 분홍신의 움직임을 멈췄다. 제대로 된 절단 도구가 없는 그에겐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달빛을 조명삼은 우파나히는 자신의 이마에 앉으려는 검은 나비 하나를 낚아채 으스러트렸다. 나비는 검은 가루가 되었고 곧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과연 상처 난 얼굴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인형술사가 동작인형의 입을 빌어 한탄하듯 감정을 내뱉었다. 우파나히는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는 그의 경험을 간과하지 않았다.


“누구냐.”

“디온에서 신세를 좀 졌던 자다.”

“모른다.”


발치에 있던 돌조각을 걷어차 입을 열었던 인형의 머리를 박살냈다. 믿을 수 없는 힘에 놀랄 법도 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감추는 것인지 다른 인형이 인형술사의 입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방어전의 영웅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군······영웅 대접을 잘 받았을 텐데.”


그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는 인형술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파나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디온은 우리를 시난으로 분류했다.”

“정치적인 장난인가.”

“모른다.”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장작 패는 도끼를 든 아저씨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우파나히의 머리를 내리찍었지만 머리카락 하나 상하게 하지 못한 채 도끼를 잡혔다. 우파나히는 그의 무릎을 걷어차 부러트린 뒤 도끼를 빼앗아 그대로 목을 쳐 그를 영원히 잠재웠다.

인형의 눈으로 그걸 보고 있던 인형술사는 혀를 찼다.


“하, 아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일반 시민일 뿐인데 가차 없군.”

“적으로 간주한다.”


그나마 구색을 갖춘 무기가 손에 들어오자 몇 번 휘두르며 감을 잡던 우파나히는 거칠 것 없이 분홍신과 동작인형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분홍신들은 반격을 시작했고 동작인형들은 미끼를 몇 개 던지고서 퇴각했다. 우파나히의 도끼는 분홍신의 다리를 찍어 내렸고 파쇄추 같은 주먹으로는 동작인형의 외피와 태엽을 박살냈다. 그가 한 번 손을 놀릴 때 마다 피와 살점, 목재와 강철이 난잡하게 흩어져갔다.

그 동안 나비의 장난에 이끌린 일반 시민들이 각각 손에 날카롭거나, 단단하거나, 부드럽거나, 강한 물건들을 들고 우파나히에게 달려들었다.

우파나히는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지만 죽이는 것이 달갑지는 않은 것인지 최대한 고통 받지 않는 방법으로 그들을 잠재웠다.

심장을 관통하거나 머리를 박살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이마에 붙은 나비들이 검은 연기로 변해 어디론가 날아갔다.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술사인 로투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여드는 시민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무게로 짓누르는 것만으로도 압사할 수 있을 숫자의 시민들은 나비의 장난으로 우파나히를 물리쳐야할 악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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