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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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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79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11.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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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58

DUMMY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싸운다. 어떤 기록관이 샤엘라를 두고 한 짧은 평가였다. 특히 마나폴로는 그 말 그대로의 남자였다.


“가만히 있었으면 하루 정도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누구보고 하는 말입니까.”

“가만히 있었으면 하루 정도는 더 머리가 붙어 있을 순 있었을 텐데!”

“누구보고 하는 말이냐고요!”

“가만히 있었으면 하루 정도는 날 늦게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마나폴로의 도끼가 붉은 빛을 발하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용광로 속의 무쇠와 같은 빛을 띠고 있었지만 녹아내리지 않는 도끼는 그의 심성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저 운 없는 놈한테 한 소리지!”


큰 몸에서 뿜어지는 힘과 박력으로 타오르는 도끼를 휘둘러 로투의 목을 후려 갈겼다.

무기를 휘두르는 데 충분한 거리를 얻어내는 시간은 눈 한 번 깜빡일 동안이었다. 그리고 한 번 더 감는 동안 목을 쳤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할 시간이었다.

그 동안 로투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끼가 자신의 목을 가르고 그 반대편으로 나올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나폴로의 손에 전해지는 감촉은 살을 가르는 것이 아니었다.


“얕보였나 보군.”


형체가 있는 안개나 그림자 따위를 흩어 내듯이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져 몸을 이루었다. 허깨비를 상대하는 것 같은 아찔함은 한줄기 식은땀이 되어 마나폴로의 등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 아찔함과도 싸우는 것이 샤엘라였다.


“용을 상대한다는 자각은 있다!”


마나폴로의 어깨를 밟고 뛰어오른 마차리가 한 바퀴 돌며 로투의 등을 베었다. 마나폴로와 같은 결과였지만 마차리의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당신을 쓰러트리면 아주 큰 포상이 있을 예정이라서.”

“그거······나도 궁금하군.”


로투의 발치에서 흘러내린 그림자가 가느다란 선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구불구불, 느릿느릿하게 퍼지던 선을 본 마차리가 소릴 질렀다.


“면도칼입니다!”

“알고 있다!”


크게 뛰어 피하자 그 순간 선이 펴지며 바닥을 크게 잘라냈다. 바닥을 자른 그림자는 흩어졌고 그 자리엔 아주 예리한 칼로 잘라낸 것 같은 흔적만이 남았다.


“용을 상대한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것 같은데.”

“윽!”


로투의 손이 검은 안개 덩어리가 되더니 마나폴로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검은 안개는 그의 목을 휘감더니 일부분이 손으로 변하여 뼈를 부술 기세로 힘을 더했고 마나폴로는 목이 부러지기 전 도끼를 휘둘러 팔에 해당하는 부분을 잘라냈다.

팔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르자 목을 조르던 손은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고 그 파편들은 큰 덩어리인 로투에게로 돌아갔다.


“어둠의 용은 밤엔 불사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알고 있다!”

“설마 날이 샐 때까지 이럴 생각은 아니겠지.”


주름진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두 사람에겐 사신의 미소보다도 더 흉악해 보일 뿐이었다.


“용의 능력밖엔 내세울게 없나 로투!”

“그런 것도 아니네.”


지팡이에서 자신의 칼을 뽑아들었다. 자줏빛으로 빛나는 칼날이 둘의 눈을 어지럽혔다.


“아름답지 않나?”


자랑이라도 하는 듯 칼을 휘휘 휘두르던 로투가 순간 발소리도 내지 않고 마나폴로와의 거리를 좁혔다. 마나폴로가 거리를 좁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로투의 움직임에 마나폴로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하지 못한 채 배에 칼날이 박혔다.

마차리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투가 움직이는 순간 그의 등을 베었지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를 멈추게 할 기세도 없었다.

날붙이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 하지만 둘의 연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건 잡히는 군······”


자신의 배를 찌른 칼을 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로투의 뒤통수를 뚫고 지나간 물줄기 하나가 내뱉은 숨결에 닿으며 폭발했다.

그림자를 다 흩어낼 정도의 화력은 잠시나마 로투의 상반신에 해당하는 부분을 흩어놓았고 결과적으로 그가 칼에서 손을 놓게 한 성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후하! 젠장! 빌어먹을! 다시는 안 해!”


가까운 거리였지만 폭발에 어떤 해도 입지 않은 마나폴로가 아직 식지 않은 숨결을 크게 내쉬었다. 배에 박힌 칼을 잡고 있는 손은 없었다. ‘자줏빛 꽃’으로 만든 칼. 용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였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알고 있다!”


흩어진 몸체는 남은 하반신을 중심으로 모여들며 형상을 이루어갔고 마나폴로가 그 덩어리를 향해 남은 숨결을 뿜었지만 형체를 이루는 것을 방해하진 못했다.


“이거 크게 얻어맞았군······”

“이렇게 쉽게 칼을 버릴 줄은 몰랐는데! 샤엘라로써 자격이 없지 않나!”

“뭐······그럴 수도 있겠지.”


완전한 형상을 이룬 로투가 마나폴로의 배에 박힌 칼을 지긋이 한번 쳐다보곤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근데 말이야.”


옆으로 팔을 뻗었다.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그의 손에선 공격의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로나리나 님이 날 보고 칭찬한 게 하나 있지.”


검지에서 나비 한 마리가 자라나며 그 작은 날개를 퍼덕였다.


“술법 쪽으로는 나보단 로투 니가 낫다고 하셨네.”


검지에서 자란 나비가 날아오르자 나비로 만든 피부를 두르고 있기라도 한 듯 그의 몸에서 나비가 자라나 날아올랐다. 수만, 수십만 마리의 나비의 비상에 마나폴로가 분개하며 단검을 던졌지만 단검은 로투의 몸을 관통할 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고 단검에 스친 나비들 역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다행으로 생각하게. 자네들 몫은 없으니.”


수분에 걸쳐 나비를 토해낸 로투의 몸은 전보다 작아졌지만 그 힘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뭐냐! 말도 안 되게 싸움을 걸어놓고 이번엔 또 가겠다고!”


마차리가 소릴 지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로투의 얼굴에서 싸움의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아아······그래······자네 상대는 남겨두지.”


팔 한 쪽을 뜯어내 바닥에 던졌다. 그래봤자 검은 안개 같은 것이라 팔은 다시 자라났고 팔이었던 부분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그 형상을 바꿨다.


“그리 강하진 않아.”


팔이었던 부분이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어갔다. 키는 로투보다 한 뼘 정도 더 컸고 꽤 젊었다. 로투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적당해 보이는 얼굴이 안개 속에서 가장먼저 드러나더니 곧 샤엘라 특유의 복장을 갖춘 몸이 나타났다.


“내 젊은 날의 기억일세. 검술은 형편없고 능력은 쓰지 못하네.”

“너무 하잖냐~”


팔 하나에서 태어난 젊은 로투가 인격이 있다는 양 늙은 로투를 비꼬았다.


“내 과거라고~”

“저땐 버릇도 없었지.”

“늙은 나는 재미가 없구만~”

“내 칼은 저 녀석 배에 있으니까 알아서 해라.”

“엥······칼집치곤 투박한데?”


마나폴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마음에 안든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난 예쁜 칼집이 좋은데. 이왕이면 젊은 여자로~!”


마차리가 늙은 로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 앞을 가로 막은 젊은 로투가 그를 걷어차 원래의 자리로 날려버렸다. 말도 안 되는 다리 힘에 잠시 멈춘 마차리가 늙은 쪽과 젊은 쪽 어느 쪽을 먼저 공격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마나폴로가 젊은 로투 쪽으로 단검을 던졌다.


“오! 고맙다 칼집!”


맨발이었던 젊은 로투의 발가락이 날아오는 단검을 잡아채더니 그걸 손으로 넘겨주었다. 얻은 단검을 공중에 던지고 놀만큼 여유롭고 진지하지 못한 젊은 자신을 보고 있던 늙은 로투는 잠시 미소를 짓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온 도시에서 비명소리가 내질러졌다. 도시 전체가 울부짖는 듯한 이상현상에 마나폴로는 귀를 세우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마차리는 눈 앞의 적을 상대할 방법을 강구하느라 머리가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그럼! 이 칼의 칼집은 누가 되려나~알아맞혀 보세요~”


젊은 로투는 도시의 비명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왼손, 오른손으로 단검을 쥔 손을 바꿔가며 칼끝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며 그 상황을 즐겼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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