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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님의 서재입니다.

인류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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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작품등록일 :
2020.05.17 12:40
최근연재일 :
2021.09.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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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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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1화-문명 가속(5)]

DUMMY

[61화-문명 가속(5)]


진화의 조건은 고립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정 인류집단이 특정 환경에 고립되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인류의 진화는 멈추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학으로써 멈춰버린 인류의 진화를 다시금 이어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단상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열띤 연설을 이어나가는 여성의 모습은 학자의 발표회라기보다는 선동가의 연설과 닮아있었다.


“하나,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인류의 진화가 멈췄다는 부분입니다.”


여성의 연설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고, 동시에 평가받는 자리였다. 작은 꼬투리도 용납되지 않았다.


“인류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진화가 멈췄다는 말은 곧 인류의 멸종과 같은 의미이지요. 그런 점에서 당신의 말은 틀렸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질문자의 말에 단상 위의 여성은 빙긋 웃었다. 저런 지적은 처음부터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인류의 진화가 정말 멈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멈췄다고 여겨질 정도로 느려졌다. 그런 의미입니다.”


“정말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게이트 전쟁 이후 인류는 새로운 진화를 맞이했습니다. 초능력 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가 느려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너무 빨라졌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다릅니다. 초상능력자의 출현은 진화가 아닌 각성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지요. 이능력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내재된 힘이었습니다. 이계와의 조우는 인류가 그 힘을 자각하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탕!


여인은 단상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다시금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인류의 진화는 멈췄습니다. 이 표현에 불만이 있으신 분들이 있는 것 같으니 정정하도록 하죠. 느려졌습니다. 최초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 우리의 피부색과 체형은 환경에 맞춰 극단적으로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그녀는 물병에 담긴 물을 모조리 들이켰다. 그럼에도 갈증이 그녀의 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우리가 얼마나 변했죠? 고작해야 턱이 갸름해졌죠. 그리고 또 뭐가 있나요? 손가락이 조금 길어진 거? 뇌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상향된 거?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진화지요.”


좌중을 둘러보며, 그녀는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홀로그램 발표 자료를 가리켰다.


“우리에겐 길이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다음을 우리의 손으로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진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 발표 자료는 한 갓난아기의 사진과 그 아이의 게놈지도가 나열되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다음 종, 호모 슈페리어를 소개합니다! 여기 인류의 미래를 향해 박수를!”


그날 생명 공학 학회의 발표회장에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다.



●●●



“자리에서 일어나실 수 있겠나요?”


“네.”


소년은 태어나면서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두 발로 땅을 거닐고, 자신의 두 팔로 물건을 집을 때, 소년은 언제나 그 모습을 부럽게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소년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악!”


휘청이며 몇 걸음 나아가던 소년은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소년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손을 뻗어서 바닥을 짚었다.


“아들아!”


“무리할 필요는 없단다. 시간은 많아.”


소년의 부모가 넘어진 아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들은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소년을 안으려고 했다. 소년을 옮기던 언제나처럼.


하지만 소년은 그런 부모를 제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다리로, 다시금 일어섰다.


나아갔다.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그러나 확실히.


부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몸조차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 자책감이 헤집었던 마음의 상처, 그 흉터를 씻어내리는 눈물이었다.


“아아...!”


소년은 팔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던 벽을 짚었다.


소년이 이동한 거리는 겨우 5미터, 소년의 보폭으로도 8걸음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위대한 발자국이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잔뜩 울면서 소년은 조금씩 뒤돌아섰다. 그리고 펑펑 울고 있는 부모님을 향해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부모는 소년을 향해 달려왔다.


소년은 이번에는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꼭 껴안는 부모를 자신도 마찬가지로 꼭 껴안았다.


기쁨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



“대성공이네요.”


“그렇죠. 특히 그 아이는 선천적인 장애라서 치유 마법으로도 불가능했으니까요.”


인류의 치유 마법으로 잘린 팔을 재생시킬 수는 있어도, 선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팔을 자라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소년은 마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힘들었다고요. 의수를 사용하면 신경 교란이 일어나니 신경 연결 의수는 논외고, 구형 의수도 살이 쉽게 짓물러서 쓸 수 없었고...”


팔이 없으면 기계 팔을 달면 된다. 다리가 없으면 기계 다리를 달면 된다. 인간의 미묘한 감각을 재현할 수는 없어도, 움직이는 팔다리라면 얼마든지 달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은 그게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특이 면역 반응까지..., 그것만 아니었어도 기증받은 팔다리를 붙이면 되었을 텐데.”


“뭐,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했잖아.”


“음..., 이걸 해결했다고 봐도 괜찮을 걸까요?”


두 사람은 병원 지하층에 도달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명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설치된 각종 보안 설비들도.


“모두가 해피하지. 그러니 잘 해결된 것 아닌가?”


“글쎄요. 저는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는데요.”


지하층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방에 들어선 그들을 반긴 것은 미동도 하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위에서 기쁨의 눈물을 터트리고 있는 소년과 꼭 닮은 소년을.


“그 아이는 이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뭐가?”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었고, 그 복제인간에게서 잘라낸 팔과 다리를 이식했다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문득 궁금해지네요.”


“별로 좋은 말을 하지는 않겠지. 그러니 우리도 이 사실을 숨기는 거고.”


작게 웃은 그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무인 로봇들이 나타나 소년의 복제를 데리고 사라졌다. 화장터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곧 소년의 복제품은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타리라. 그리고 증거는 영원히 사라지리라.


“옛날 고전 영화 중에 이런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나도 봤어. 자..., 저 소년 덕에 마지막 준비도 끝냈으니..., 시작해볼까?”


잠시 두 사람은 말을 멈추었다.


“준비는 되셨나요?”


“응, 하지만 긴장이 되네.”


샴페인이 준비되었다.


실험의 성공을 기원하는 샴페인이었고, 실패한다면 두 사람의 마지막을 기리는 술잔이 되리라.


“영생의”


“성공을.”


샴페인이 두 사람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죽음으로 빠져들었다.



●●●



“아이고, 일이 너무 많아.”


“자업자득이다. 세아여.”


다이나의 핀잔에 세아는 한숨으로 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일복이 터진 것은 자업자득이었기 때문이었다.


힐데 납치 사건 이후, 힐데는 집 밖으로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대문에 발을 걸치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리고 그런 힐데를 안심시키고, 서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유진의 부인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나 아이데는 괜찮지만, 세아여, 그대는 일이 바쁘지 않나. 집에만 있어도 괜찮은 건가?”


“대부분의 일은 원격으로 해결할 수 있어. 의식을 나누어 담을 수 있는 최고급 로봇들을 여럿 준비했거든.”


실제 제대로 된 실험은 로봇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세아도 굳이 밖으로 나돌 필요는 없었다.


“조금 답답한 것도 있지만, 솔직히 요즘 적이 많아져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최신 논문들을 살피던 세아는 흥미가 가는 주제를 발견했는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거 봐!”


“뭔데 그러나.”


다이나는 세아가 보던 논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전생의 비술은 전설에서나 존재하던 마법이었는데, 지구는 성공했다는 말인가!?”


“영혼과 육신의 괴리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말이야.”


영혼과 육신에 미세한 차이라도 발생한다면 전생은 실패한다. 그래서 이 미친 작자들은 자신들의 육신의 복제를 준비한 후, 전생 마법과 그에 따른 설비를 준비, 그러고 나서 음독자살했다.


그리고 전생을 통해 되살아난 뒤에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실로 광기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이런 미친 짓은 못하겠는데.”


혀를 내두르며 세아는 경악했고, 인류의 광기를 본 다이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저나 비용이 엄청나네. 복제인간을 만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싸네. 그런데 전생 마법 촉매가..., 어후, 국가 단위 예산인데? 이 인간들 돈은 어떻게 모았데?”


세아는 이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이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장기 매매?”


장기 이식은 여전히 유용한 치료 수단이었다. 하지만 마법과 신성력의 등장으로 그 중요성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체 장기들의 가격은 과거보다 더욱 올랐다.


“과연..., 비밀주의 마법 결사나 흑마법 의식을 벌이는 곳에 대량으로 팔아치웠네.”


인간의 장기는 비윤리적이라 금기시되는 마법들에 있어서 최고의 촉매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일단 평범한 연구자로써 인생은 종쳤네. 미친 것들. 할 거면 안 들키게 해야지. 연구 과정도 잘 위장하고. 나처럼 말이야! 하하하!”


세아는 웃었고, 그런 세아를 바라보며 다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



“차폐 결계는 정상적으로 기능..., 얌마! 뭐 하는 짓이야!!!”


동료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든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리고 우주복의 헬멧을 벗었다.


툭.


붉은 대지에 떨어진 헬멧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는 푸르게 떠오르는 태양에만 시선을 주었다.


“숨 쉴 수 있네...”


“...그야 당연하지. 고작해야 반경 1km 안에서만이긴 하지만.”


“방사능 수치도, 그 외 모든 것이 안정적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당장 헬멧 써!”


“아니. 조금만 더...”


아직 저 드넓은 화성의 대지를 인간이 지구에서처럼 거닐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끄응~! 할 일이 엄청 많네. 멘틀 대류도 되살려야 하고, 공기도 더 만들어내야 하고, 방사능 차폐에, 생태계 조성..., 하하하!”


뒤돌아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자! 첫 번째 화성인으로서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밤이고 낮이고 뛰어야 해. 준비됐어?”


장난스럽게 웃는 동료의 말에 남자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로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화성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유엔 총회에서 정식으로 승인, 동시에 인류의 새로운 요람을 위한 개척단이 지구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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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63화-제3차 세계대전(1)] +3 21.01.23 399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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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62화-불씨(2)] +3 21.01.16 331 16 12쪽
160 [62화-불씨(1)] +2 21.01.03 37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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