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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님의 서재입니다.

인류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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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작품등록일 :
2020.05.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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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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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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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4화-별의 정의(2)]

DUMMY

[54화-별의 정의(2)]


-저에게 간섭해오는 미지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적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간섭은 마치..., 그렇군요. 통신을 시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통신 연결을 요청하면 될 텐데...? 이해할 수가 없군요.


“미지의 프로그램? 그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눈앞에 있는 이 희멀건 타조 알뿐인데?”


경계심을 끌어올린 유진은 천천히 타원의 물체에서 거리를 벌렸다. 유진을 따라 벨트라도 조금씩 뒤로 걸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구체가 발광했다.


“뭐야?!”


유진은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반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격이라기보다는 마치 당황한 것 같은 모습이야.’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오해를 산 사람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면서 오해를 풀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여하튼 적대적인 인상을 풍기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유진은 반격을 하지 않았다. 괜히 방아쇠를 당겼다가 수습 불가 사태에 빠지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유진 님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눈앞의 구체에서 언어 정보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허락할까요?


“허가해. 다만 직접 연결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네가 간섭당할 여지를 차단한 상태로.”


-알겠습니다.


인듀어런스는 상호 통신 연결이 아닌 일방적으로 정보를 송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동은 곧 목소리가 되었다.


“나는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왔다.”


한국어였다. 구체는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살아오며 별의별 것을 다 본 유진이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바위인 줄 알고 오줌을 갈겼던 고대 골렘이 화를 내며 몸을 일으켰을 때가 어째서인지 떠올랐다.


그리고 구체는 무미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다급함이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나는 나의 창조주 종족이 남긴 최후의 유산이다. 어둠에 몰락한 문명의 잔해다. 나는 보고, 듣고, 기록한다. 그리고 전달한다. 나는 그대들의 종족에게 전달한다. 유산을. 그리고 기록한다. 그대들의 모든 것을. 그리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나의 기능을 복구해야만 한다.”


유진과 벨트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결론은 빨랐다.


그리고 며칠 뒤, 대규모 조사단이 구체를 발굴하여 엄중히 봉인한 후, 지구로 귀환하였다.



●●●



몸의 실루엣이 다 비치는 네글리제를 입은 세아가 침대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침대가 부드럽게 그녀를 받아들였다.


옆에 누워있던 유진은 그런 세아의 머리카락을 희롱했다. 세아의 신체 상당수는 의체였고, 머리카락도 의체의 일부였지만, 실제보다 더욱 실제처럼 느껴졌다.


“후후후, 비싼 값을 하는 거지.”


세아는 자랑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들인 돈은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덕분에 인공의 신체와 본래의 육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았던가.


잠시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던 세아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네가 발견했던 구체, 뭔지 밝혀졌거든.”


“그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슬슬 밑으로 내리고 있던 유진은 잠시 손을 멈추고 세아의 말에 집중했다.


지구보다 우월한 문명의 피조물로 보이던 구체의 정체는 유진도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던 점이었다.


“우주선이었어. 인공지능 우주선. 그것도 외계인이 만든.”


“뭔선?”


“우주선.”


말문이 막혔다.


게이트 전쟁은 인류에게 판타지는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하지만 SF는 여전히 SF에 불과했다. 마법과 몬스터는 익숙해도, 우주와 외계인의 존재는 여전히 상상의 영역인 것이다.


“정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하지만 이젠 아닐 모양이었다.


“참..., 놀라운 일이네.”


외계인의 무인 우주선, 이 사실이 발표된다면 전 세계가 경악하리라. 어쩌면 이계와의 첫 조우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당장 세아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과 흥미가 그녀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천성 연구자인 그녀에게 구체는 보물처럼 보였다.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세아의 모습을 보니 당분간 그녀가 얼마나 바쁘게 연구에 매진할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세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놀라운 기술력의 덩어리야. 아직 분석은 덜 끝났고, 심지어 그 망할 구체가 제공해주는 영역에서만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다고 해도 말이야.”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구체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를 통해 초광속 이동을 구현하였으며, 이는 어떠한 이능의 힘도 빌리지 않은 순수한 과학 기술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체의 창조자들은 인류보다 훨씬 앞선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말이지.”


세아는 분한 듯 말했다.


“흠흠..., 우리가 전혀 따라할 수 없을 정도야?”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정말..., 우주는 넓다는 게 사실이었어. 새삼 실감하게 됐다고.”


구체의 말에 따르면 구체의 창조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구체에 담아 우주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구체는 창조자들의 유산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자신 안에 방대한 데이터가 잠들어 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몸값을 올리겠단 속셈이지.”


세아는 마뜩하지 않은 것인지 짜증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구체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멸망의 시기에 자신들이 이룩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구체의 창조자들은 구체를 만들었다. 그것도 수십의 동일한 구체를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구체는 이야기했다.


“멸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뭔가 비밀이 있어.”


구체는 인류에게 많은 정보를 약속했고, 실제로도 넘기고 있었다.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자처하는 구체가 지닌 정보는 막대했고, 연구자들도, 정치인들도 상당히 고무되었다. 하지만 구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이 일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사실이 있었다.


구체는 그것이 가진 가치가 어떠하건 간에 너무나도 수상하다는 것. 그리고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류와 공유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


“놈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전부 밝혀낼 거야. 두고 봐!”


“그래. 우리 세아라면 할 수 있겠지.”


한바탕 말을 쏟아낸 세아는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유진은 이제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가슴을 지나쳐 세아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간 유진은 놀라면서도 자신에게 신체를 밀착시키는 세아의 달뜬 신음을 들으며,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오늘은 온전히 세아만을 사랑하는 날이었고, 유진도 세아도 서로를 독점하는 즐거움을 기쁘게 누렸다.



●●●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지닌 무수한 데이터를 넘겨줄 것을 약속했다. 그 대가는 나의 수리를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구체, 여행자는 불만스러운 어조로 계속해서 연구진들에게 요구를 토해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그런 여행자의 말을 무시하고 여행자의 소체 분석, 그것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해석에만 몰두했다.


보통 성간 여행 기술을 확립하지 못한 종족의 경우 여행자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거나 심지어 종교적 대상으로 삼고는 했다. 하지만 지구의 인간이란 종족들은 달랐다. 저들은 철저하게 연구 대상으로만 여행자를 대하고 있었다.


“우선 한 가지 정정할 것이 있어.”


세아가 앞으로 나섰다. 여행자는 자신을 도발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보그를 보며 사고회로를 가속했다.


“우리 인류가 너에게 호의를 베푸는 거야. 그래서 너는 우리에게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네가 지닌 정보들을 선물하는 거고. 그러니까 네가 무슨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하는 건 그만해주었으면 하는데?”


여행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패턴과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는 이들 종족을 유심히 관찰할 뿐이었다. 아직 이들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 대응이 앞으로의 여정에 치명적인 실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좋아. 묵비권이라.”


구체는 아직 안심하고 있었다.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착각은 지금 놈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였다.


‘그 바보 같은 착각이 얼마나 갈까?’


과거 이능에 대해 까막눈이던 인류를 보고 이계의 세력들이 품었던 오만과 꼭 닮아 있었다. 지금 구체의 모습은.


세아는 짙은 비웃음을 숨기며, 마법을 발동했다.


아무리 둔감하고, 마법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기계라고는 하지만 이상 에너지가 다량으로 발생하면 눈치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마법을 발동했을 때의 이야기.


‘10가지 은폐 마법으로 감춘 마법들이라면 충분히 네 내부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거다. 들키지 않고.’


그리고 세아의 예상대로 여행자는 마법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여행자 자체에 대한 정보가, 여행자가 감추던 정보가, 무수한 기록들이 인류의 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밝혀져 버렸다는 것을 네가 깨달았을 때, 과연 어떤 말을 해올까?’


근질거리는 입가를 실룩이며, 세아는 돌아섰다.



●●●



별이란 빛이며, 빛은 포식의 대상이다.


아득한 과거 태어난 어둠을 누군가는 별흡혈귀라고 불렀고, 어떤 종족은 세계포식자라고 불렀으며, 또 다른 어느 종족은 파멸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둠을 무어라고 명명하던 어둠과 조우한 어떤 종족도 어둠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그들이 피어 올린 연약한 빛은 어둠 앞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꺼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둠은 나아갔다.


별을 먹어치우며, 빛을 꺼트리며.


그리고 놈은 보았다.


드높이 타오르는 재와 화염, 빛의 거인의 마지막 흔적을.



●●●



“저번 시간, 스스로 빛나는 항성이야말로 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천문학자는 유쾌하게 웃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구는 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왜 아닌가요?”


“어..., 그야 별은 태양처럼 혼자서 타오르는 항성들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지구는 혼자서는 빛을 내지 못하잖아요.”


천문학자는 태양계 홀로그램을 띄웠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과 위성들이 펼쳐졌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태양 앞에선 어떤 천체도 어두컴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천문학자는 손가락을 튕겨 태양의 존재를 감추었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별이라면, 우리 지구도 이미 훌륭한 별입니다.”


홀로그램 속 지구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인류가 건설한 문명의 힘으로. 밤을 극복하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열을 내뿜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류 자신의 손으로 인류의 요람 행성을 별로써 빚어낸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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