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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님의 서재입니다.

인류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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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작품등록일 :
2020.05.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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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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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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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2.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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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2쪽

[60화-드래곤 로드(2)]

DUMMY

[60화-드래곤 로드(2)]


“큭!”


강렬한 기세에 유진은 무심코 허리와 등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이 무기는커녕 알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선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드래곤은 일반적으로 욕망을 절제할 줄을 몰랐다.


타고난 강대한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뭐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자신이 가진 것에 질리는 것도 빨랐다.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면 될수록 충족이 되지 않는 욕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욕망은 더욱 자극적인 것을 쫓도록 숙주를 조종했다.


괜히 드래곤이 무수한 세계에서 악명을 떨치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의 쾌락을 위해 아름다운 처녀를 산제물로 요구하고, 금은보화를 위해 드워프들을 핍박하고, 번영하던 왕국을 불태우고, 인간들을 이간질하며, 신을 참칭한다.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드래곤 로드라도 다를 게 있을까?’


유진은 회의적이었다.


모험가가 되기 전에도, 되고 나서도 유진은 많은 드래곤을 만났다. 그 드래곤은 드래곤즈 네스트의 진룡인 경우도, 혹은 그 세계의 자생 드래곤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드래곤이란 생물은 앞서 설명했듯 욕망의 절제를 모르는 생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리낌 없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족속들이기도 했다.


베일에 쌓인 드래곤 로드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크, 큭큭.”


유진은 흠칫했다. 갑자기 드래곤 로드가 숨죽여 웃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하게 보인다. 내가 어린 것들처럼 굴 것이라 여기고 있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유진의 모습에 드래곤 로드는 더욱 크게 웃었다.


“하긴 얼마나 많은 동족을 네가 만났을지를 생각하면 너의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 나 또한 나의 동족들이 별로 좋지 못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겸허하게 인정하는 바이니 말이다.”


물론 지금 드래곤 로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어린 동족들처럼 굴 것이라고 지레짐작 당하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부터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는 유진을 비롯한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자발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믿음을 주어야겠지.”


드래곤 로드의 손에 작은 보석이 피어났다.


루비처럼 붉었지만, 루비보다는 조금 더 색이 밝았고, 보석이라기에는 묘한 열기를 품고 있어서 살아있는 장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순간 그것의 정체를 떠올리지 못한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지금 드래곤 로드가 내민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경악했다.


“드래곤 하트...?!”


“내 심장의 일부다. 이것을 주도록 하마. 쓰고 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유진은 마른 침을 연신 삼켰다.


드래곤 로드의 드래곤 하트라니, 민간에 팔아치울 수는 없겠지만, 유엔이나 정부 차원의 보상금만으로도 빌딩 한 채는 가볍게 살 수 있을 금액이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드래곤 로드가 단순히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마력 기관을 내민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는 계약의 증거일지니.”


그는 드래곤 하트를 중심으로 마력의 실이 마법을 짜기 시작했다. 강대한 마력이 주변에서 마나를 끌어당기며 하나의 마법을 편찬했다.


-강대한 마력에 어울리지 않는 세심한 마법이로군요.


인듀어런스의 평가대로였다.


드래곤 로드는 고마력자가 흔히 하는 실수 따위는 범하지 않았다. 뛰어난 인간 마법사처럼 적정한 마력을 사용하여 주변의 마나를 통해 마법을 빚어낼 뿐.


‘도대체 무슨 마법을...’


너무 응축되어 유형화되기 시작한 마나를 보며 유진은 전율했다. 그리고 유진이 필사적으로 드래곤 로드의 마법을 분석하는 사이 그가 시전한 마법은 완성되었다.


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처음 가상현실로의 도피를 결정할 때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파종자들의 가상현실 기술은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으며, 따라서 그들은 현실에서 누리던 것 이상을 가상현실 속에서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세대 우주선에서의 생활보다는 가상현실에서의 삶이 더 풍요로울 것은 막 태어난 유생체조차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


육신을 지니고 가상현실에 접속할 때와는 달랐다.


끔찍한 공허감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아름다운 가상현실 속 세계였음에도 그들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쾌락과 고통, 본래라면 완벽하게 재현될 육신의 오감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음식의 미묘한 맛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느끼는 모든 것이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정보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도, 어떤 감미로운 향기도, 어떤 호화로운 만찬도, 그들을 만족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들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그저 주입된 정보에 불과했고, 느껴야만 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괴리는 파종자 모두를 갉아먹었다.


처음 휩쓸린 대재앙에서 태반이 죽은 파종자들은 이후 서서히 줄어들어 이젠 겨우 수십을 헤아리게 되었다.


가상현실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정신이 무너져버린 동족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직감하고 더욱 절망해왔다.


“아아...!”


바다걸음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춥군요...”


마지막으로 차갑다는 감각을 느껴본 것이 언제던가. 가상현실에서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에 스스로를 던졌음에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파종선의 함교에서 느낄 수 있다니!


바다걸음은 부르르 촉수를 떨었다.


“이 정도면 믿음을 살 수 있을까?”


“대가가 너무나도 크군요...”


울부짖으며 서로를 껴안는 파종자들을 바라보며 유진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혀를 내두르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마나가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만능의 에너지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고작 개인이 수십에 달하는 외계인들을 완벽하게 되살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설령 그들의 정신이 가상현실에 보존되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육신은 옛적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처음 보는 생명체를 이토록 완벽하게 복원한다고?


이런 힘은 절대 개인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마른침을 연신 삼키며 유진은 드래곤 로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유진의 앞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드래곤 하트가 내려왔다.


“그건 그대의 몫이다. 쓰고 남은 것이니 그대가 알아서 처분하도록.”


유진은 드래곤 하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떨리는 안면 근육을 어떻게든 움직여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게 받도록 하죠.”



●●●



“너희가 말하는 유전자..., 육체의 정보가 이 배에 있더군. 그것도 개개인 전부가 기록되어 있었지. 이 정도 정보가 있는데, 고작해야 고깃덩이 하나 빚어내지 못할까.”


‘그러니까 지금 이 거대 늙은 도마뱀은 파종선의 데이터를 해킹하여 파종자 개개인의 유전적 정보를 훔쳐낸 다음 마법으로 그들의 육신을 재생시켰다..., 이 말이야?’


유진은 드래곤 로드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해!’


속으로 유진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드래곤 로드는 파종선을 자신의 둥지처럼 쏘다니며 누볐다.


들뜬 모습이 드래곤 로드를 노회한 드래곤이 아닌 젊은 소년처럼 보이게 했다.


“즐겁군. 내 평생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 있었던가!”


“없었습니까?”


본의 아니게 드래곤 로드의 시중을 들게 된 유진은 그에게서 받은 드래곤 하트 조각을 주머니에 갈무리했다.


마찬가지로 드래곤 로드에게 선물 받은 옷은 아라크네 비단 내의에 아룡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구제 명품과 대등한 수준의 가격대를 자랑하는 옷들이었는데 솔직히 옷을 막 입는 편인 유진에게는 부담스러운 선물이었다.


“어릴 적에..., 내가 막 태어나 우리의 고향을 날아다닐 때..., 그때가 떠오르는 흥분이네.”


“당신에게도 어릴 적이 있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솔직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렇겠지. 나에게도 아득한 시절인 것을.”


“드래곤의 수명은 만년에 육박하니까요. 둥지의 진룡들 말입니다. 당신도 그렇고요.”


드래곤 로드는 말이 없었다. 그는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인지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판데모니움, 천상, 엘븐하임, 그리고 드래곤즈 네스트..., 이 4 세상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공통점이 있습니까?”


너무 다른 세상들이었다.


환경도, 문화도, 종족도 전혀 같은 점이 없었다. 유진은 드래곤 로드가 무슨 의미로 말을 꺼낸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지.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유진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얼굴로 드래곤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4 세상의 공통점은..., 거대한 하나의 자아가 명백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위를 거닐 종족을 만들어냈다는 거지.”


“하아?”



●●●



세계 판데모니움은 자신의 욕구를 채울 첨병으로서 악마를 창조했다. 자유의지를 지닌 것 같지만, 그 본질은 판데모니움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생물, 악마를 말이다.


세계 천상은 자신을 지키고, 동시에 판데모니움에 대항하고자 천사를 만들었다. 세상들을 구원하고, 파멸하는 종족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선한 이들을 말이다.


세계 엘븐하임은 스스로에게 명확한 육신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엘븐하임은 아주 명확한 자아를 지니게 된 대신 세계라는 정체성을 잃었다. 그리고 세계 엘븐하임이 아닌 피조물 세계수가 된 자아는 숲을 꾸미고, 숲에서 살아가는 종족 엘프를 맺었다.


“그리고 세계 드래곤즈 네스트는 스스로를 쪼갰다. 그리하여 산산이 부서진 세계의 파편들은 하나의 종족으로서 거듭났지.”


그것이 드래곤.


세계 그 자체에서 태어난 종족.


“그리고 난 둥지의 조각 중에서 두 번째로 큰 조각이었다.”


“......가장 큰 조각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세계 그 자체이지. 더 이상 둥지에게 자아는 없으나 그 육신은 남아버린 우리의 어머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린..., 아주 무책임한 세계.”


한쪽 눈을 찡긋 감은 드래곤 로드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루함은 드래곤을 죽이지. 우리가 왜 항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목을 매는 것인지 이제는 이해하겠나?”


“세계 그 자체에서부터 내려져 온 저주라고 말할 참입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비슷은 하지.”


드래곤 로드가 시전한 마법이 완성되며, 파종선의 모든 구조를 재현한 모형이 드래곤 로드 손에 떠올랐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파종선의 모형은 파종선의 모든 부품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심지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미세한 미시적 세계의 부품마저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흥미로운 것에는 사족을 쓰지 못하지. 우린 그런 족속들일세.”


“전 당신들이 사람들이나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악행은 말초적인 쾌감을 제공하지. 순간적으로 지루함을 쫓아내기엔 그만한 게 없어. 게다가 언제나 성공하지. 하지만 선행은 그렇지 못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심지어 실패도 하지.”


조금 더 힘을 끌어내기 위함인지 드래곤 로드는 용인의 형태를 취했다.


“젊은 것들은 언제나 성급하지. 지루함 뒤에 더 큰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야.”


소년의 설렘과 노인의 현명함을 동시에 담은 드래곤 로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말

오늘 집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목욕탕을 안 갔는데, 오늘 몸을 좀 담그니 제가 얼마나 탕을 그리워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종종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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