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7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6.15 07:29
조회
227
추천
4
글자
22쪽

네크로맨서 6

DUMMY

“클클. 감히 나를 어쩐다고 했겠다?”


마셸이 가시어미를 유인하며 서로 엎치락 뒷치락하며 주변을 파괴해나갈때, 벤자민은 당당히 네크로맨서와 마주했다.

네크로맨서는 벤자민을 향해 가소롭다는 눈빛을 보낸다.


“입이 얼어붙었느냐? 감히 이 몸을 네깟것이 어찌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그리 생각했어?!”


“이번엔 다를테니 기대해도 좋을거다.”


“어디 네놈의 주둥이만큼 그 검이 매서울지 확인해주마.”


싸늘하게 일갈한 네크로맨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해방된 마력은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전이 태풍이었다면 지금은 돌풍이다. 그 만큼 약해진 기세. 벤자민은 내심 역시 괴물이라 생각했지만 동시에 이 정도라면 어쩌면이라는 마음도 품을 수 있었다.

일어난 돌풍이 벤자민의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매서운 칼바람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대한 산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돌풍의 뒤를 이은것들은 온갖 뼈다귀들의 모습이었다.


“······!”


언데드가 아니라, 그냥 뼈나 해골 그 자체들이었다. 네크로맨서의 주특기인 뼈창도 물론 있었고, 이미 죽은 자들의 시체나 해골이 날아오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뽑힌 이빨도 벤자민을 향해 날아들었다.

‘뼈’로 분류되는 모든것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듯 보인다. 착각이겠지만, 벤자민 자신의 뼈조차 움찔거리는 듯했다.

해골의 비 속에서 벤자민은 묵묵히 그것들을 쳐냈다. 쳐내고, 또 쳐냈지만 끝도 없이 날아온다. 이미 날아간것들은 이번엔 뒤에서부터 벤자민을 덮쳐 더욱 난해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잘게 쪼개버린것들은 더 쳐내기 어려워지고 말았다.

칼이라면 모르되 일반 병사들의 목재창이니만큼 이 창도 오래 쓰기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든 막을 수 밖에 없는데 막으면 막을수록 상황이 어려워진다니 농담같은 일이었다. 벤자민은 막다가 막다가 뼈창 한 두개가 몸에 박힐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넘기고 나서야 옆으로 몸을 굴려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해도 이미 전신은 찰과상 투성이였다. 찰과상이라고는 하나, 그 모두가 시독屍毒이 묻은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치명상이 될 터. 신성을 가지고 있는 마셸도 가시어미와 다투느라 바빴고, 일반 사제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질 못했다.


“으음!”


외통수라면 외통수인 상황이었다. 벤자민은 나오려는 침음성을 애써 삼켰다. 여기서 약한모습을 보인다고 놈이 봐줄리는 없으니까.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격의 차이는 오히려 이전보다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는건 놈도 필사적이란것!’


이전에 놈은 개미를 보는듯한 감각으로 이쪽을 보았을것이다. 언제라도 짓밟을 수 있는 그런 존재말이다. 하지만 격의 차이가 더욱 느껴질만큼 열심히 싸운다는건 자신의 이빨이 놈을 찢어발길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다.

위협을 느꼈으니, 힘을 내는 것이리라.


‘반드시 틈을 드러낼 것이다!’


벤자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네크로맨서를 훑었다.




***




마셸은 가시어미를 상대하며 곤란함을 느꼈다. 빠르고 강하고 거대한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문제인것은 전혀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기가 무덤일지도!’


자신있게 휘두른 검이 가시어미의 강철같은 몸체에 닿는 순간, 튕겨져나갔다. 손아귀가 시큰할정도의 반발력은 놈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힐때처럼 불꽃이 피어올랐으나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조금 흠집이 났을 뿐, 데미지를 입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샤아아악!”


마셸이 할 수 있는건 피하고 또 피하며 가능한 멀리까지 일행에게서 떼어놓는 것 뿐이었다.


“흡!”


무식하리만치 돌격밖에 안하는 상대였다. 다른 대상이었다면 이미 피범벅으로 숨통을 끊어놓았을테지만, 무기가 들지 않는 이상 어쩔 도리도 없었다.

되려 마셸의 검 쪽이 부숴질 것 같았다.


“무슨 이런 무식한 생물이 다 있는··· 큭!”


끼기기기. 끼기긱!

연신 부딪히며 마셸의 검은 불안한 소음을 내었다. 기분탓이 아니라 칼은 금이 가 있었고 조금이지만 휘어있단걸 알 수 있었다. 몇번만 더 부딪힌다면 정말 부러질거다. 아무래도 여기가 자신의 무덤인가 싶었다.


“알 듀란델!”


시큼한 손아귀에 대고 반댓손으로 신성을 일으켰다. 뼈가 부러진건지 금이갔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처의 통증이 확실히 완화됐다. 에르네스 메르실정도의 신성력이라면 단숨에 회복시켰을수도 있겠지만 이 격렬한 싸움에서 그런짓을 한다는건 마셸에겐 불가능했다.


“캬아아악!”


가시어미가 지면을 파고들었다. 마치 물속에 다이빙이라도 하는것처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지만, 물이 아니라 흙과 모래 그리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지면이었다. 그걸 파고든다는게 말이 된단말인가!

마셸은 불안감을 느끼고 재빨리 도망치던 방향으로 내달렸지만, 쿠구구구! 지면이 갈라지는 소리는 마셸보다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면속에서도 가시어미는 직선이라면 마셸이 달리는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물이 있다니!”


오우거같은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몬스터가 있는데 왜 소문이 나지 않은걸까? 아, 알겠다. 마셸은 즉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퍼억! 하고 튀어나온 가시어미와 부딪히며 공중을 부유하며 말이다.


‘놈과 만난 사람은 모조리 죽었던거군!’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최강의 몬스터라고 소문이 자자한 바실리스크나 혼 타우루스조차 놈에겐 비교할 수 없으리라.


“키이이――!”


낼름거리며 놈은 유유히 마셸에게로 다가왔다. 급하지도 않게 여유로이 다가오는걸 보니 마셸이 끝장났다는걸 확신하는듯한 태도였다.


“크흐!”


마셸은 어떻게든 움직여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움직일수가 없었다. 체력은 진즉에 바닥나있었고 검으로 막지 않았다면 방금 부딪힌것만으로 목숨을 잃었을 터.

실제로 검은 산산조각으로 부숴져 검신은 온데간데없고 쥐고있는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흠! 아무래도 제대로 온 모양이군.”


그 순간, 들리는 목소리는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리라. 이 가시어미를 도대체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아 정말! 빠르다니까요!”


“이 정도도 못 따라오는거냐? 애송이 놈. 쯔쯔. 네놈은 아직 멀었다. 멀었어.”


“제길! 내가 느린게 아니라 댁이 빠른거라고요!”


투덜거리는 두 노소老小.

노인의 목소리와 얼굴은 기억에 없지만, 소년의 목소리와 얼굴은 마셸의 뇌리에 화인처럼 각인된 것이었다.


“리···드!”


“마셸 형!”


서로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담겼지만 마셸은 표정을 굳혔다.


“도망쳐! 이 놈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진짜 괴물이라고!”


마셸의 외침에 따라 가시어미의 시선이 살짝 돌아갔다.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마셸보다는 새로 나타난 적을 경계하는 것이리라.


‘적을?’


그러다 이상한걸 깨달았다.

저 노인의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리드는 이미 자신을 뛰어넘은 고수중의 고수. 나이는 어리지만 그 실력은 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것일 터. 하물며 속도에서는 리드보다 빠른 사람을 마셸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리드보다 빠르다고?’


그리고 가시어미가 적을 경계한다고? 자신은 먹이로만 생각했을 뿐인데? 적을?


“호오! 그 재밌는 놈도 다 있군. 네놈도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렸다?”


“언데드가 아니라 생물인것 같은데요. 사기死氣는 느껴지지 않아요.”


“흠흠. 뭘 그런걸 따지고 있더냐?”


“아닌건 아닌거죠. 것보다 어쩌려고요?”


노인은 턱을 양쪽으로 꺾었다. 노인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육체에서 삐그덕대는 뼈소리가 들렸다.


“삼십초면 충분하겠다. 먼저 가 있을테냐?”


“그게 낫겠네요.”


삼십초? 삼십초로 충분하단건 무슨소릴까? 마셸은 이 상황속에서 그걸 생각했다. 그러다가 리드가 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빨리 처리하고 따라와야된다구요!”


“허, 어린놈이 잔소리하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노인은 이번엔 손목을 둑둑 꺾으며 허리춤에서 자신의 검을 뽑았다.


“어디 날뛰어봐라. 뼈다귀 뱀놈아!”


노인은 다름 아닌 모렉 공작. 대륙 최고의 검사이며 이견없는 대륙의 최강자. 그런 모렉 공작이 검을 뽑아들자 일순간에 주변을 장악해버렸다.

장악했다는건 다른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것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운없이 정신만 차리고 있는 마셸조차도 알 수 있었다.


‘괴물!’


움직이는 순간 죽을거란걸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것이 아닌데 이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전신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샤아아···”


가시어미는 뱀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처럼 몸을 지그재그로 흔들었다. 뱀중에서도 코브라와 흡사한 움직임이다.


“갈!”


먼저 움직인것은 모렉 공작이었다. 시간 끌 것 없다는듯이 달려든 모렉 공작. 언뜻보기에는 정말 무모해보였다. 그와 가시어미의 사이에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체급의 차이가 있었다. 가시어미는 샤악거리며 달려드는 모렉 공작을 향해 입을 벌렸다.

뱀 특유의 180도로 쩍 벌어진 입속으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 마셸의 머릿속으로 당장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모렉 공작은 되려 속도를 올렸다.


‘미친! 죽어버릴거야!’


무모하다! 그리고 곧 모렉 공작이 가시어미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끝이었다. 저 단단한 가시어미의 표면은 무슨짓을 해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저 노인도 죽어버리는가.

마셸이 암담한 기분을 느낀건 약 3초였다.


“샤아?”


가시어미는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것처럼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마찬가지로 그 소리에 마셸이 의아해지고 말았다.


“샤아. 샤아. 캬, 캬아아. 캬아아악! 크에에. 그에에엑!”


그리곤 곧 고통에 가득찬 비명소리를 내지른다. 구토라도 하는것처럼 연신 머리를 숙이고 칵칵거리고 있었다.


‘설마?’


쿵! 쿵! 쿵!

가시어미의 몸 속으로 격렬한 부딪힘 소리가 들려왔다. 몇번이고 부딪힌 끝에 가시어미의 머리 한 쪽이 터져나간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그렇게 시도했음에도 흠집밖에 나지 않았던 괴물같은 강도를 가진 가시어미의 머리를 모렉 공작은 너무나 간단하게 부숴버렸다.


“호오! 튼튼한 놈이로군! 강철보다도 훨씬 낫다. 이 몸의 검격을 일곱번이나 견뎌냈음이야!”


마셸은 아연하고 말았다. 머리가 터져나간 가시 어미가 괴로워하며 몸부림치고 있을때, 모렉 공작은 마치 로데오라도 하는것처럼 그 위에 올라타 연신 칼질을 해댔다.


“어디까지 견디나 한번 볼까!”


콰앙!

한번의 검격에 폭음이 들려왔다. 가시어미의 몸속에서 들리던것과 몸 밖에서 직접 소리를 듣는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있어 저 가시어미를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어떠냐!”


내리찍은 검격이 가시 어미의 목을 찍었다. 동시에 가시어미의 갑주와 같은 몸체가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아끼는 옷인데 더러워지고 말았구먼.”


모렉 공작은 소매를 털어대며 혀를 찼다.


“삼십초라고 했는데 삼 분이나 걸렸으니··· 그 애송이가 건수잡았다며 또 좋다고 놀리겠구만. 뭐 이런 단단한 놈이 다 있는고?”


마음에 안 든다는듯이 인상까지 찌푸린다. 방금까지 있었던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것처럼 평화로운 태도였다.

마셸은 그런 그의 여유자적한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가시어미를 쓰러뜨려놓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 거기 성기사! 이 몸은 먼저 가야하겠으니 뒷처리는 자네가 해야할거다. 수고하게. 성기사 제군.”


노인은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셸에게 뒷처리감을 잔뜩 맡겨놓고.


“전 움직일 수 없습니다만···.”


휑휑히 바람만 불었다. 마셸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




“다크 울프는 모두 처치했소!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성기사와 병사들의 합작으로 언데드 다크 울프를 모두 처리했지만, 뒤에서 쫒아오듯 따라오는 언데드들에 다시 발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큭!”


병사들은 창을 내밀며 언데드들을 막았고, 주민의 장정들도 쓰러지거나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창을 주워들어 싸웠다. 아이들과 여인들은 돌맹이라도 주워 그들에게 던져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했다.


“여기다! 이놈들아!”


주민 하나가 놈들의 시선을 끌어 도움을 줘 보려했으나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언데드들은 물밀듯이 밀려들었지만, 점차 그 수는 줄어드는 형세였다. 병사들이 일자진을 세워 밀려오는 놈들을 막았고 그 사이사이서 성기사들은 양 떼속의 늑대들처럼 날뛰었다. 과연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 스폐셜리스트라 할 만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모던은 크게 외치며 마력을 쥐어짜냈다. 혈관이 비틀리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손이 멈춘다면 사람들이 다칠 위험이 있었다. 마력을 쥐어짜내 주문과 영창으로 마법을 빚어내자 마치 밤을 샌 것처럼 띵한 피로가 모던을 덮쳤다.


‘큭!’


그게 이미 몇번째나 반복되었는가.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렇고 모던은 계속해서 무리를 쌓아가고 있었다.


“언데드의 무리를 막고, 다치고 지친 자는 뒤로 가라! 뒷열의 사람들이 무기를 받아 싸우시오!”


“쉽지 않소이다!”


하지만 저번 습격으로 인해 부상자들도 많았고, 역병은 치료했으나 체력이 채 회복되지 않은 자들이 많았다. 병사들 상당수가 죽었고 주민들이 어찌어찌 힘을 내고 있다고는 하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언데드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분투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산중에서 시체가 되었을 터. 모던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유심히 고민했다.


“조금 물러나!”


언데드들이 밀려오면 자연스레 물러난다. 다행히도 뒤가 절벽이라거나 길이 없는건 아니었기에 물러날 자리는 있었다.


“옆으로 퍼지는걸 막아! 둘러쌓이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숫자로는 그들도 언데드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지만, 진짜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현저히 적었다.

밀면 물러나고, 밀면 물러나고를 반복하자 그들은 어느새 네크로맨서와 벤자민으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버린 상황이었다.

멀리 떨어졌다고는하나, 뛰어서 십초도 안 걸릴 거리기는 했지만 그 싸움의 영향권으로부터는 어느정도 벗어났다 할 수 있겠다.


“제길!”


허나 그것도 이제 끝. 깎아지른듯한 내리막길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경사가 엄청나서 그냥 내려가는것도 어려울법한데 언데드를 막으라고? 그것들이 위에서 우르르 떨어지기만해도 참사가 일어날게 뻔했다.


“물러나지마요! 물러날 곳이 없다구요!”


“우리도 좋아서 물러나는게 아니요!”


모던은 무슨 수를 강구해야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뭘 어쩌란말인가? 지금의 모던은 수천명 중에서 한명일 뿐이며 마력도 남지 않아 일반인··· 아니 체력도 떨어졌으니 일반인보다도 못할 뿐이었다.

남은건 머리뿐이다.

마치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모던의 머리가 팽팽 회전한다. 여러가지 방법이 떠올랐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력이라도 남았으면 벽을 세운다던가 뭐라도 하겠는데 지금 모던에게 남은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쥐어짤대로 쥐어짜버려서 마력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다. 이미 마법으로 만들어둔 마력은 있지만, 이 마법은 지금 상황에선 적절하지 못했다. 사용하지 못한다는건 아니지만 별 효과는 없으리라. 애초에 일사불란히 움직일 수도 없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이 언데드들을 상대로 맞설 수 있단말인가?

암담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때 빛이 오는 것처럼 구원이 내리쬤다.


“······!”


갑작스레 언데드 사이로 유성이라도 낙하한것 같았다. 쾅! 하며 떨어진 그것은 너무나 가볍게 언데드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성기사들은 어찌 칼을 들어 언데드들을 쳐내고 막아내며 그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소년이 있었다.


“저 소년은 대체···”


일방적으로 언데드들은 학살당하며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소년은 그 중심에서 오연하게 언데드들을 노려보았다.

포위하고 있는건 언데드들일 터다. 감정 없는 언데드들일 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년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리드!”


모던은 소년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크게 외쳤다. 그러자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리드··· 옛날에 그 하쉬 경의 제자, 그 어린 꼬마말이야?”


“하지만 그 애는 강체력을 배우지도 않았었잖아?”


“이름만 같은 사람인거 아냐?”


“하지만 실제로 어리잖나. 머리색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아이가 맞는 모양인데···”


신전의 인물이니만큼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조차도 지금의 리드와 당시의 어린 소년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데 리드라는 이름을 전혀 모르는 주민들과 병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이보시오. 저 소년이 도대체 누군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저 소년이 우릴 구해주고 있잖소!”


마치 축제라도 일어난듯 분위기가 일변했다. 막기에 급급했던것이 뒷열의 언데드가 구멍처럼 없어지자 앞열의 언데드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파도나 쓰나미처럼 물밀듯 밀려오던게 중간에 끊겨버렸으니 놈들의 힘이 그만큼 적어진것이다.


“지금 밀어붙여야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오!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오!”


모던이 목청껏 외쳤고, 병사들과 장정들, 그리고 성기사와 사제들이 이를 악물고 언데드들에게 달려들었다. 언데드들은 가래 끓는듯한 괴성을 내며 되려 달려들었지만 악으로 깡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겠소! 다들 물러나시오!”


모던이 마력을 쥐어짜내 마법으로 빚어냈던 것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쿠구구――

굉음과 함께 지반이 조금 붕괴했다. 모던은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괴로운듯이 가슴을 부여잡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지반이 조금 붕괴했다고는 하지만 지진같은 거창한것은 아니었다. 장정 서넛이 십분만 삽질을 해도 가능할만큼 땅이 조금 패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 뿌리 깊게 박혀있던 나무 서넛이 우르르 쓰러진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뒤로! 뒤로!”


서넛 쓰러진 나무는 그들과 언데드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재빠르게 병사들과 성기사들이 발을 빼냈기에 망정이지 하필이면 깔릴뻔한 것이다.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가 그들을 뒤덮었다.


“모두 나무를 미시오! 밀어야하오!”


산에서 제대로된 평지라는건 존재하기 어렵다. 뒤가 내리막이라면 당연 지금까지의 길은 작든 크든 오르막이었단 소리다. 지금 오르막에 서 있는건 주민들이었고, 내리막쪽에 있는건 언데드들이었다. 미약한 내리막이라고는 하나 힘껏 나무들을 굴리자 이윽고 가속을 받아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소년! 조심해! 나무가 굴러간다!”


나무들이 구르자 뒤늦게 소년이 위험할 수 있단걸 깨달았는지, 병사인지 성기사인지 아니면 주민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들 속의 소년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자 모던은 살짝 웃어보였다.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던은 이 중에서 유일하게 벤터스 아르쿠잔과 리드의 싸움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이었다.

당연 리드의 실력이 이곳의 누구보다도 뛰어남을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언데드 사이에 있는 리드가 위험할지도 모를 이런 방법을 망설임없이 취한것이다.

실제로 리드는 힐끗 뒤를 돌아보는듯 하더니 언데드들을 학살하다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위로 뛰어올랐다. 그때마다 나무 한 그루씩이 소년을 지나쳐 언데드들을 밀쳐냈다.

데구르르··· 쿵!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는 것 같았다. 깔려버린 언데드는 내리막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무의 무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어버렸고, 그게 눈덩이처럼 부풀려졌다.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견뎌야지라는 생각을 했을테고 나무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춰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데드에겐 그런 생각이 없다. 그저 되는대로 움직일 뿐. 생자에 대한 증오는 있지만, 굴러오는 나무를 피하거나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잠시 후, 저 멀리 납작하게 찌그러져버린 언데드들의 몰골은 끔찍했을게 분명하지만, 다행히 거리가 멀어서 보이진 않았다.


“저 소년이 진짜 사람이란 말이야?”


놀라워하는 반응. 언데드들 대부분이 나무들에 밀려 저 아래로 떨어지거나 깔려서 흙으로 되돌아갔을것이다.

남아있는건 그야말로 한줌의 잔당.

이렇게 분위기를 일변시킨건 바로 저 소년이었다. 주민들의 가슴 속으로 무언가 뜨거운것이 조금 타오르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모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달려들어!”


모던이 외치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따라 외친다. 일변한 분위기를 타고 주민들에게 닥쳤던 위기라는 이름의 저울추가 언데드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작가의말

추천,선작,조회,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리드리스 일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6 영웅의 시련 4 18.07.10 168 4 13쪽
145 영웅의 시련 3 18.07.09 361 5 14쪽
144 영웅의 시련 2 18.07.06 195 4 12쪽
143 영웅의 시련 18.07.05 191 4 12쪽
142 전쟁의 조짐 3 18.07.04 196 5 11쪽
141 전쟁의 조짐 2 18.07.03 206 6 12쪽
140 전쟁의 조짐 18.07.02 211 3 12쪽
139 네크로맨서 15 18.06.29 234 5 12쪽
138 네크로맨서 14 18.06.28 218 6 12쪽
137 네크로맨서 13 18.06.26 376 5 14쪽
136 네크로맨서 12 18.06.26 225 5 12쪽
135 네크로맨서 11 18.06.25 220 4 12쪽
134 네크로맨서 10 18.06.22 231 4 24쪽
133 네크로맨서 9 18.06.21 244 4 12쪽
132 네크로맨서 8 18.06.20 226 4 16쪽
131 네크로맨서 8 18.06.19 233 4 14쪽
130 네크로맨서 7 18.06.18 228 4 14쪽
» 네크로맨서 6 18.06.15 228 4 22쪽
128 네크로맨서 5 18.06.14 391 4 12쪽
127 네크로맨서 4 18.06.13 353 7 12쪽
126 네크로맨서 3 18.06.12 233 6 13쪽
125 네크로맨서 2 +1 18.06.11 217 7 13쪽
124 네크로맨서 18.06.08 239 5 13쪽
123 움직여야 할 시간 11 18.06.07 246 4 14쪽
122 움직여야 할 시간 10 18.06.06 208 4 13쪽
121 움직여야 할 시간 9 18.06.05 214 4 16쪽
120 움직여야 할 시간 8 18.06.04 205 4 12쪽
119 움직여야 할 시간 7 18.06.01 225 4 14쪽
118 움직여야 할 시간 6 18.05.31 218 4 13쪽
117 움직여야 할 시간 5 18.05.30 217 4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