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 언제나 지금이 가장 저렴한 남자.
14.
“오빠! 오빠!”
곡을 작업하던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가락을 멈춘다. 이건 류아 목소리인데. 어디서 들리는 거지? 문은 분명히 닫혀 있는데.
혹시, 방음 처리가 된 문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인가 싶어서 문을 열어보니. 훨씬 선명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잠깐, 진짜로!”
와, 목소리 보소?
그 커다란 목소리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진짜 저 방음 처리가 된 문을 뚫고 들려오는 거였어? 세상에, 목소리가 얼마나 큰 거야.
“목 상한다.”
“괜찮아. 관리하고 있으니까!”
호들갑을 떨면서 큰 소리를 내는 류아에게 말했지만. 류아는 호들갑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지켜 본 바로는 이런 호들갑을 떠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있었지. 아니, 실시간으로 있는 중이야. 이것 봐!”
그리 말한 류아는 내게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갑자기 눈앞에 들이밀어진 핸드폰 화면에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거 류아잖아?
“아, 그 유튜브 콘텐츠 시작했어?”
“응, 그렇기는 한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조회수야. 조회수 봐!”
“조회수?”
류아의 말에 영상 조회수를 확인한다.
[류아(키치(Kitsch)) - ‘필요 없어, your self는. / AiKis x ELRIS (Cover)’]
1일 전 . 조회수 17만.
17만?
“오,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
영상을 업로드 한 지 하루 밖에 안 됐는데 17만이라. 1년 전에 업로드 한 키치의 공식 뮤직 비디오의ㅣ 조회수가 아직도 3만을 넘지 못한 걸 생각하면 굉장히 잘 나온 편이다.
“그렇지? 하루 만에 17만이라니! 그거 알아? 17만이면 지금까지 유튜브에 업로드 된 우리 그룹 영상들의 조회수를 다 합친 것보다 높은 조회수인 거?”
“어, 음.”
축하를 해줘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야기에 쓴웃음을 짓는데 류아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다 오빠 덕분이야. 고마워, 오빠.”
“그렇기는 하지.”
“그러면 난 연습하러 갈게! 우리 노래도 잘 부탁해!”
손을 흔들며 뛰어가는 류아의 모습을 보다가 뒷머리를 긁는다.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흐뭇하다고 해야 하나?
처음 겪는 기분에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작업실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다시 작업을 하려다가, 손을 멈추고 유튜브 앱을 켜서 류아의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네가 했던 말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거든.
저번에도 했던 생각인데. 류아는 노래를 부를 때, 정말 행복해 보인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보고 있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노래 실력이 떨어지냐면 그것도 아니다. 메인 보컬인 한겨울하고 비교하면 음색이 많이 평범한 편이기는 하지만.
순수 가창력만 두고 보면 류아가 조금 더 위다.
기본기 자체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탄탄하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 유튜브에 올린 노래만 하더라도 서로 다른 두 곡을 하나로 합친 말도 안 되는 노래인데.
노래를 부르는 류아의 얼굴에선 그 어떠한 어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저 어려운 걸 저렇게 쉽게 부르다니. 저런 실력을 가졌으면서 왜 이런 회사에서 데뷔한 거지?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다른 좋은 회사에서 데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내려 댓글창의 반응을 살펴본다.
-와, 노래 리믹스 뭐죠? 이거?? 엄청 좋은데요?? 찾아보니 아이돌인 거 같은데 직접 한 건가요? 노래 리믹스도 엄청 잘하고 노래도 좋고 장난 아니네요.
-진짜 노래 쉽게 부른다······. 이 노래 원곡도 엄청 높고 힘든 노래인데 ㅠ 이렇게 실력 좋고 예쁜데 왜 못 떴지?
-언니 진짜 너무 예쁜 거 아니에요? 하여튼 한국에 노래 잘 부르고 예쁜 사람들 너무 많아..
-와 근데 리믹스 진짜 깔끔하게 잘했다. 설명란 보니까 임아현이라는 사람이 한 거 같은데 뭐 여기 프로듀서인가?
-키치라는 아이돌 처음 알게 된 아이돌인데 멤버들 실력도 좋고 예쁘네요!
보통, 이런 커버 영상에는 가수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인데. 류아의 영상에는 신기할 정도로 곡에 대한 칭찬이 많이 달려 있었다.
어디서 좌표라도 찍혔나?
[유튜브에서 본 영상인데 이거 리믹스 죽이네요.]
보니까 키치라는 신인 아이돌 같은데 리믹스가 너무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에이키스 노래하고 엘리스 노래를 리믹스 했는데 진짜 엄청 잘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찾아보니 류아의 영상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음악 커뮤니티에 올라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인기 게시글로.
-그러게요. 리믹스 진짜 좋네요.
-저 두 곡이 저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놀랐습니다.
-리믹스도 잘했는데 노래 부르는 아이돌도 장난 아닌데요? 저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르다니. 들어보니까 후보정도 거의 안 한 거 같은데.
ㄴ후보정은 못한 거 아닐까요? 영상 찍은 장소나 뮤직 비디오 보면 회사가 돈이 없는 거 같은데.
-리믹스도 잘하고 실력도 있는데 못 뜨다니.
ㄴ찾아보니 프로듀서가 새로 들어온 거 같습니다. 예전 뮤직 비디오 보면 프로듀서 이름도 다르고 실력도 달라요.
호평일색인 댓글들을 보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 커뮤니티에서 나를 칭찬하는 날이 오다니. 호라이즌의 음악을 만들던 시절에는 상업적인 음악만 만들 줄 아는 놈, 대한민국의 가요계의 질을 낮춘 쓰레기라는 욕만 먹었는데.
만약, 내가 주하인이란 사실을 알면 얘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을 생각하며 커뮤니티를 바라보고 있는데 작업실의 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인터넷을 종료시키고는 작업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지금 바빠요?”
나를 찾아온 건 사장님이었다.
“아뇨, 마침 쉬고 있었어요.”
“잘 됐네요. 그러면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네.”
작업실에 들어 온 사장님이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는 걸 보아하니, 이야기가 제법 긴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류아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현씨가 다 만들어줬다면서요?”
“그냥 취미로 만든 거였는데요, 뭐.”
“그래도 아현씨 덕분에 시작이 좋아요.”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죠. 앞으로는 이거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걸요?”
만약에, 류아가 개인 유튜버였다면 이번 조회수에 만족을 해도 된다. 하지만 류아는 개인 유튜버가 아니라 아이돌이다.
그것도 나, 임아현이 맡은 아이돌. 그렇다면 고작, 17만이란 조회수로 만족을 하면 안 된다. 최소 그 10배는 넘게 나와야지.
“아현씨는 자신이 굉장히 넘치네요.”
“실력도 넘쳐요.”
“킥, 그렇죠. 인정할게요. 아현씨의 실력은 대단해요. 아현씨가 만드는 노래를 들으면, 아현씨의 나이가 고작 19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에요.”
그거야, 19살이 아니니까.
“제가 좀 대단하기는 하죠.”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기에 나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내 뻔뻔한 대답에 사장님은 후훗-, 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저는 아현씨라면 호라이즌을 키운 그 프로듀서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그, 노력은 해봐야죠. 그 분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서. 하하.”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내 이야기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고개를 저으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전 아현씨의 재능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은 맞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 음악을 했잖아요.”
“아니, 그건······.”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을 하고 다녀도 세상은 이미 주하인을 약쟁이로 취급하고 있다. 억울해서 피를 토할 것 같은 걸 참기 위해서 사탕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그거 아세요? 임지호가 곧 컴백한다는 사실.”
“······네. 알고 있어요.”
임지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였어? 빌드업 한 번 길기도 해라.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장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아요. 아현씨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임지호 정도의 인기 가수가 활동을 시작하면 다른 대형 엔터 회사에선 소속 아이돌들의 활동 날짜를 조절해요. 프로모션도 전부 뺏기는데다가 차트나 브랜드 가치가 그 가수한테만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거든요.”
“그런가요?”
“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대형 엔터 기준이고. 저희 같은 회사들은 아니에요.”
사장님의 말에 눈을 깜빡인다.
저희 같은 회사들은 아니라니? 보통, 이런 회사들도 활동 날찌를 조율하지 않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장님을 바라보니 사장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대형 엔터 회사들이 싹 다 빠지니, 이때를 노리는 거죠. 비록, 쏠림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파이 자체는 커지니 예전보다 관심을 더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활동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저희 회사만이 아니라는 거죠.”
“아.”
사장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다.
흔히, 우리가 아는 대형 엔터. 4대 엔터들부터 시작해서, 4대 엔터급은 아니지만 아이돌 명가라 불리는 엔터 회사들이 활동을 미루는 이 틈을 노리고 중소 엔터 회사에선 컴백을 시킨다는 이야기지?
“그러면 중소 엔터들끼리 되게 치열하겠네요?”
“네, 맞아요. 굉장히 치열해요.”
이른 바, 그들만의 리그. 마이너 리그가 치열해진다는 이야기다. 내가 GR 엔터에만 있다 보니 이쪽 생태계를 잘 몰랐구나.
애초에, 중소 회사들은 GR 엔터를 상대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자본 자체가 다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중소 회사들 중에 대형 엔터에서 나온 아이돌들을 이기고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중소의 기적’이라 불리는 아이돌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적이 왜 기적이겠는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기적이다. 그런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중소 회사들의 라이벌은 다른 중소 회사들이다.
“이때를 피하려면 피하지 못할 것도 없어요. 문제는 곧 여름이고, 그렇다면 다른 대형 엔터 회사들은 임지호의 활동이 끝날 때 쯤 활동을 시작할 거라는 거죠.”
“피해봤자 더 큰 산이 있다는 이야기네요.”
“네.”
그러면.
“피하지 말죠?”
내 말에 사장님은 나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사장님의 결의가 보였다. 단호한 결의가.
거짓말쟁이.
고민이 많기는 뭐가 많아.
“자신 있으신가요?”
“사장님. 혹시, 계약을 맺을 때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키치를 빌보드 차트로 보내준다는 이야기요?”
“아뇨, 그거 말고요.”
내 말에 사장님은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더듬는 것 같은 사장님의 모습에 나는 새로운 초콜렛 하나를 꺼내 먹으면서 사장님에게 말했다.
“제 몸값은 지금이 제일 저렴하다는 이야기요.”
“아, 그랬죠. 지금 계약하면 제일 싸게 계약하는 거라고.”
“네. 보여드릴게요. 저라는 코인의 고점이 얼마인지.”
비트 코인은 비교도 안 되는 떡상,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작가의말
선작이 1000을 돌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그리고 댓글은 늘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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