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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로고로 님의 서재입니다.

실패한 구원자의 후계 양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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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로고로
그림/삽화
광개토대왕
작품등록일 :
2023.05.17 19:19
최근연재일 :
2023.06.02 21:06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370
추천수 :
25
글자수 :
48,537

작성
23.05.25 11:05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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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기사의 기억(1)

DUMMY

정신을 잃은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온몸에 느껴지던 극심한 고통은 어느새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육신이 전부 타버려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서서히 두 눈을 떴을 때, 알 수 있었다. 내 몸이 어딘가에 있지만, 동시에 의식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쳐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런 내 눈앞에는 아름다운 성의 모습이 펼쳐졌다.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중앙 광장, 새로운 국왕을 기리며 환호하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


그 기사의 얼굴은 내게 매우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오늘 꾸었던 꿈속에 나왔던 기사의 얼굴과 똑같았다. 기사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내 의식이 그 기사의 주변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령이 된 듯, 내 의식은 그 기사의 몸을 따라가며 그의 생애를 관찰했다.


그 기사는 용감하고 강했으며, 그의 손은 언제나 정의를 위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따뜻하고 굳건했으며, 그의 심장은 항상 사람들을 위해 뛰고 있었다. 나는 그 기사가 겪는 모든 순간, 모든 전투, 모든 승리와 패배를 함께 겪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가 무기력하게 꺾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 하늘에서 수많은 빛의 궤적이 떨어진 날. 그는 무력했다. 그간 그가 노력해온 기술들은 소용없었으며, 지키고자 했던 인연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갔다. 바로 놈들에 의해서···. 새하얀 비늘을 가진 괴물들. 놈들은 강력했다.


기사와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시체 중 온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성과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끝으로 그 기사의 시점이 바뀌었다.


기사는 전장 위에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나이를 먹은 듯, 중후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 기사가 서 있는 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면 이러할까.


내 시야에는 괴성과 비명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옆에선 절규와 함께 동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기를 손에 쥔 인간들은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중, 찬란한 황금색 빛무리를 뿜어내며 검을 휘두르는 사내가 있었다.


그의 검이 황금빛 궤적을 그릴 때마다 적의 시체도 하나씩 늘어갔다.


사내의 주변에는 중무장한 사람들이 수없이 정렬해있었다. 그들 모두 같은 상징을 갑옷에 각인한 채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그래서일까? 다른 방어선이 죄다 밀리는 와중에도 그가 위치한 방어선만이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황은 점점 불리해졌다. 시작은 좌측면이었다. 비교적 취약했던 좌측은 적의 공세에 방어선을 유지하지 못하며 무너졌다.


그때부터는 난전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적들은 아군 진형을 종횡무진하며 학살해가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기사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선을 유지해라!"


나는 전장 위에 선 그의 주변을 마치 유령처럼 떠돌며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그를 응원했다. 그의 생애를 지켜봐서일까? 왠지 그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굳어져 갔다.


그런 내 시야에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기사 한 명이 말 위에 올라탄 채로 병사들을 독려하는 것이 들어왔다.


“연합군이여, 모두 방어선을 사수하라!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사내가 위치한 방어선도 점차 포위되듯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자신이 포위되어 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적을 베어냈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놈들의 목에 검을 찔러 넣으며 계속해서 수를 줄여나갔지만, 언덕 너머로 보이는 적의 수는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마치 개미와 같이 바글바글 무리 지어 있는 놈들의 모습에 사내는 인상을 찌푸려졌다.


그가 보기에 이미 방어선을 사수하는 연합군들은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며칠간 연속으로 이어진 전투는 아군의 피로를 누적시켰다.


사내는 착잡한 심정으로 전장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인가···.”


연합군의 수는 하나, 둘 줄어드는 가운데 놈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입술을 깨물며 놈들을 쳐다봤다.


‘제기랄!’


나는 사내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전황을 바라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뭐라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의식만 있는 나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육신이 있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저놈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를 깡도 없었다···.


그때였다.


머릿속으로 그의 기억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정보들이 갑작스레 들어왔다.


밤하늘을 수놓은 빛무리들이 궤적을 그리며 세상에 떨어진 날에 있었던 더욱 선명하고 자세한 기억들이 말이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놈들은 운석 파편들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의 등장에 500년간 유지되던 일곱 국가 체제는 무너졌으며, 압도적인 힘 앞에 놓인 인류는 그저 한없이 무력해 보였다.


현시대 최강의 전투집단인 기사단조차 놈들에게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사기는 땅에 떨어졌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점차 희망을 잃어갈 때 이변이 발생했다.



바로 이능력자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이능의 힘을 사용하며 처음으로 인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검으로 바위를 가르고, 자연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으며, 육체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능력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들을 별빛 기사라 부르며 찬양했다. 그런 별빛 기사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놈들과 같이 떨어진 운석의 조각들.


모든 별빛 기사는 운석 조각에서 발생한 힘을 얻어 탄생했다.


찬란한 황금색 빛을 몸에 두른 채, 놈들의 육신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은 인류였지만, 안타깝게도 놈들과 대적하기에는 이미 균형의 추가 한쪽으로 많이 기운 상태였다.


주요 거점은 무너진 상태였으며, 놈들의 무분별한 능력자 사냥은 인류 전력의 엄청난 약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놈들 아니 인류가 아스트라 명명한 녀석들은 매우 영리했으며 지능적이었다.


나는 별빛 기사라 불리는 자들의 이능에 절로 감탄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사자 같았다.


내가 변두리 마을에 살며 기사를 딱 한 번 본적이 있었다. 그도 인간이 내기 힘든 괴력을 쓰며 일격에 나무를 베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 있었다. 하지만 별빛 기사라 불리는 이들은 천외천이었다.


하지만 아스트 앞에서 이들 또한 무적은 아니었다.


별빛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함께 싸우고 있었지만, 아스트의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에 하나, 둘 쓰러져 갔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의 육신은 능력을 뒷받쳐 주지 못했다.


게다가 사내의 기억에 따르면 현재 대륙의 남부를 제외한 북부, 서부, 동부는 사실상 놈들의 수중에 넘어간 상태였다. 심지어 가장 강력했던 중부는 운석이 세상에 떨어진 날, 아스트의 첫 타겟이 됐다. 그리고 이곳은 사내의 고향이기도 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해 막대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제국은 별다른 저항을 해보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 여러 국가가 차례차례 무너졌으며 제국의 뒤를 따라갔다.


이런 상태 속, 남부까지 무너진다면 내가 봤을 땐 인류에게 희망은 없었다.


사내의 기억에 따르면 테메즈 강은 사실상 인류 최후의 방어선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곳은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던 연합군의 배수진인 셈이었다,


게다가 중부와 남부를 경계 짓는 테메즈 강을 건너야만 아스트들이 남부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적들은 반드시 이곳을 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인류는 남부에 거대하고 긴 장벽을 건설 중이었다. 장벽 너머에는 아스트의 공격을 피해 남부, 중부, 동부, 서부 가릴 것 없이 전 대륙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테메즈에서 놈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사실상 끝이지 않을까···.'


나는 사내를 보며 그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내가 봤을 때 이곳에서 버텨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아스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장벽의 완공을 눈앞에 둔 지금, 놈들이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기다렸다듯.


사내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며 의식이 동화돼 있어서 그런지, 원래라면 내가 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작금의 상황이나 전술 같은 것 말이다.


그때 사내가 검을 높게 든채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한놈도 이곳 테메즈 강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크롸라락


사내는 달려드는 적의 아가리에 검을 쑤셔 넣었다.


푸확.


검붉은색 피가 사내의 얼굴에 튀었다.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검을 뽑아내며 지면을 향해 사선으로 검을 털었다.


촤아악


아스트의 피가 부채꼴 모양으로 대지에 튀었다.


사내는 잠시 흩뿌려진 피를 잠시 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점점 밀리는 방어선이 두 눈에 들어왔다. 하나, 둘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방어선은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역시 그 수를 써야만 하는 것인가.”


사내는 입술을 짓이기며 놈들의 중심부를 노려봤다. 그런 사내의 시선 끝에는 칠흙빛을 띄는 긴 첨탑이 있었다.


사내의 기억에 따르면 현재 대륙에는 아스트가 세운 수백 개에 달하는 첨탑이 있다. 이 불길하고 음산한 느낌의 첨탑은 아스트들이 이동할 때마다 이끌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첨탑의 근처에서 놈들의 힘은 배는 강력해졌다.


“작금의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첨탑을 부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전쟁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연합군에게 승산은 거의 없어 보였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려면 저 첨탑을 부수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어보였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합군은 오늘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사내는 마음의 결심을 했는지 방어선을 향해 소리쳤다.


“란서스, 네빌, 자마트, 케이트 작전대로 간다!”


그러자 방어선에서 약간의 소란과 동시에 네 명의 인물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사내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각자 입을 열었다.


"후우! 정말 이 방법밖에 없나 보구려···."


2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가 피 칠갑을 한 채, 거대한 해머를 땅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란서스 푸념할 시간은 없다!"


사내는 란서스라 불린 사내에게 일침을 가하며 주변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부수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승산은 없다.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승산은 제로다."


새하얀 장발을 질끈 묶은 채, 창을 등 뒤에 맨 사내, 네빌이 란서스의 어깨를 툭 치고는 먼저 나아가며 말했다.


“란서스, 사실상 우리의 마지막 전투가 될 수도 있다. 그럼 난 먼저 가지.”


네빌이란 사내는 아스트를 향해 창을 유려하게 휘두르며 첨탑 주변의 아스트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러자 촘촘하게 형성되어 있던 놈들의 방어선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잘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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