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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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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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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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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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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천적 (5)

DUMMY

파괴자가 얼마나 강하게 무릎을 꿇은 건지, 무릎이 닿아있는 땅이 움푹 파여 있다.


하지만 완전히 기능이 정지된 것은 아니다. 파괴자가 이내 무릎을 펴고 다시 카를을 공격했다.


“응? 아까보다 더 빠르네?”


속도만이 아니다. 힘도 점점 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에 다시 한번 알밤을 먹인다. 다시금 파괴자의 무릎이 땅을 파고든다. 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다시 달려든다.


“이게···?”


자신을 귀찮게 하는 파괴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카를은 다시 한번 알밤을 먹였다.


“어?”


그리고 알밤을 먹인 카를에게서 당황이 솟구친다. 짜증 때문에 힘 조절에 실패한 것일까? 파괴자의 머리가 움푹 파였다.


카를은 자신이 힘 조절을 실패한 것에 의아해하며 주먹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름 힘 조절에는 자신이 있는 그였다.


하지만 의아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타격을 이기지 못했던 것인지, 파괴자가 축 늘어진다.


“헉?!”


자신이 철의 영물을 죽였다고 생각한 카를이 혼비백산한다. 사람들을 조금 괴롭힌 것 같기는 한데, 사람들을 보아하니 죽은 사람이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 영물이 날 공격할 때, 사람들은 그저 피하기만 하라고 했어. 설마?’


그렇다면 혹시 호수의 주인처럼 잠시 정신을 잃은 놈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착한 영물이었을 수도 있다. 여러 생각이 카를의 머릿속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생각 전에 몸이 움직인다.


“으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온다. 카를의 비명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이다. 카를이 파괴자를 들고 다가오자 깜짝 놀라며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다.


“다들 어디 가는 거야!? 야, 하스트! 이 놈 못 살리냐!?”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멍한 눈으로 카를을 보고 있는 하스트뿐이었다. 휴는 카를이 다가올 때부터 이미 숲으로 도망갔다. 역시 바람의 정령. 누구보다 빠르다.


“너··· 아무렇지 않아?”


“응? 뭐가?”


“몸에 힘이 없다던가, 그러지 않아?”


“뭐? 조금 그렇긴 하지만, 그야 오랫동안 계속 깨어있었으니까 당연히 피곤한 거 아냐? 이런 적이 드물거든. 음··· 잠깐, 이 기분 최근에 느껴본 것도 같고···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놈 좀 어떻게 해봐.”


카를이 파괴자를 흔들며 깨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너무 격하게 흔들어서 오히려 파괴자의 몸이 덜커덕거리고 있다. 이에 다시 놀란다.


“설마···”


카를의 행동은 하스트에게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길뿐이다. 카를의 구조요청은 실패다.


하스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볼 때, 분명히 파괴자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능력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능력은 효과의 한계점이 있다. 파괴자 또한 마찬가지다. 파괴자의 가장 위협적인 능력은 어떤 자연력을 먹어치우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 그리고 기본 상태에서도 오거와 맞먹는 무지막지한 신체능력, 둘 다 아니다. 이 세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게 포함되어 있으며 구조의 한 축을 이루는, 자연력 자체를 빼앗는 흡수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의 한계점은 응집력에 있다. 응집력이 높은 존재일수록 흡수능력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다, 마침내 통하지 않게 된다.


이는 하스트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괴자를 알고 있는 모든 존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저 세계에서 그 정도의 응집력을 가진 존재는 오직 정령밖에 없었을 뿐이고, 그 정령마저 간접적으로 흡수할 수 없을 뿐, 파괴자가 잡아먹을 수 있었다. 파괴자는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무적이다.


하지만 무적의 명성은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정령과 맞먹는 응집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직접 잡아먹을 수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자연력을 먹어치우든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 애초에 먹어치우는 자연력이 주위의 자연력밖에 없다면, 다른 사람이나 영물과는 다르게, 그는 언제든 전력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은 어떠한 힘의 손실도 없이 파괴자를 때려 부술 것이다.


오거와 맞먹는 신체능력? 그는 오거 우두머리조차 어린아이 취급할 정도의 강자다. 신체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호수의 주인에게 얻어맞고도 몸이 성할 정도면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천적이 존재할 줄이야···”


세계의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괴자. 그리고 카를은 세계에서 유일한, 파괴자의 천적이었다.


생각도 잠시, 하스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카를 덕분에 파괴자가 쓰러졌지만, 그저 잠시 동안 정지한 것에 불과하다. 완전히 파괴된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기동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조차 없어서 정지상태에 빠져있지만, 흡수력까지 정지한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씩, 기동에 필요한 힘을 모으고 있다. 물론 흡수력 또한 굉장히 약해졌다. 그래도 이대로 놔두면 아마 내일이 오기 전에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야.’


다가오는 하스트를 보고 카를이 반색한다.


“오. 살릴 방법 있어?”


“뭘 착각하고 있는 건지 알겠으니까, 잠시 비켜줘. 설명은 나중에 할게.”


카를을 물린 하스트가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지금의 술법은 천재라고 칭송받는 그에게도 어마어마한 부담을 안겨준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야?”


“안 되네.”


카를이 하스트를 부르며 건드리려고 하자, 다시 다가온 촌장이 카를을 말린다.


“네?”


“지금 하스트를 건드리면 안 되네.”


느껴진다. 하스트의 자연력이. 그리고 그 자연력이 엄청나게 세밀한 조작을 통해 움직이는 것을 촌장은 적게나마 느꼈다. 저 정도로 세밀한 조작을 할 정도로 고위 술법이라면, 자칫 건드려 집중력을 깨트리다가는 술법이 실패할 수도 있다.


촌장은 바람의 자연력을 다루는 사람. 그렇기에 명확히 느껴지는 자연력은 한 가지밖에 없지만, 그가 술법을 완성할수록 밖으로 표출되는 자연력이 보인다. 자연력은 모두 네 가지였다.


“네 가지 속성을 한 번에?”


물론 하스트가 다양한 속성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촌장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실제로 하스트는 지금까지 두 가지 자연력을 동시에 펼치는 것도 거의 보여준 적이 없다. 같은 속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부에서 서로 충돌하다가는 그 반발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오거 침입자, 호수의 주인. 두 강대한 영물을 상대할 때도 하스트는 결코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따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하스트의 술법에 사용되는 자연력은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자연력이라는 네 가지 전부다. 난도를 생각한다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자연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술법을 봤다고 한다면 어딜 가나 미친놈 취급받을 정도다.


사람들은 진지하고, 엄숙하게 하스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행동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스트의 전신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 땀이, 하스트도 지금의 술법을 완성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라고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술법은 완성되었다. 하스트는 술법의 크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몸과 자연력을 혹사한 것은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하스트의 앞에 동그란 회색의 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력에 예민한 마을 사람들은 그 구가 어떤 술법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자연력들이 모조리 배척당하고 있어···’


회색구 안에 이제 자연력은 없다. 파괴자가 나타났을 때 처음 느꼈던 것처럼,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연력의 부재가 만들어낸, 어둠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군. 저것이···’


촌장은 하스트의 술법이 파괴자를 봉인하기 위해 필요한 술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까 전에는 미처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해서 의구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파괴자 주위의 자연력을 없앨 것인지. 그리고 그 답이 저 술법이었다.


“카를. 놈을 해체해줘. 걱정할 것은 없어. 놈은 생물이 아닌 기계일뿐더러, 착한 놈도 아니니까.”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해체할 수는 없다. 하스트의 눈빛에는 약간의 광기가 흐르는 느낌이었으니까. 카를이 잠시 주춤거리는 것을 본, 숲 근처에 있는 반투명한 어린아이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빨리 하스트의 말을 따르라고 카를에게 윽박까지 지르고 있다.


‘뭐야? 저 놈은?’


휴의 정체를 모르는 카를 입장에서는 건방진 꼬마 하나가 시끄럽게 구는 것으로 보였다. 왜 반투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휴를 무시하고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다. 그리고 확인받았다. 하스트의 말은 옳은 말이다.


“알았어.”


하스트의 조언을 들으며 파괴자를 해체한다.


‘신기하네···’


해체를 하니, 그제야 파괴자가 제대로 보인다. 정말 생물이 아니다. 그저 고철덩어리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다.


해체를 진행하다 보니, 상반신의 중심에서 동그란 주먹 크기의 구가 발견된다. 사람으로 치자면 폐와 폐 사이, 심장보다 살짝 오른쪽에 위치한 그 구는 파괴자가 정지한 지금도 찬란히 빛을 내고 있다. 그것은 파괴자의 핵이었다.


‘아슬아슬하군.’


하스트는 자신의 술법으로 파괴자의 핵을 감쌌다. 정말 조금의 틈만이 남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크기다.


술법이 핵을 감싼 것을 확인한 하스트는 그 조그마한 틈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핵을 만지지는 않는다. 그저 그 앞에, 하스트 본인의 술법 안에 손가락 끝을 두었다.


‘큭···!’


그러자 손가락 안의 자연력도 모조리 배척당한다. 손가락이 붕괴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얼른 밖으로 빼낸다.


‘반은 성공이군···’


최선은 이 술법으로 핵 안의 자연력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이었지만, 그것까지는 되지 않는다. 술법의 힘이 핵의 흡수력보다 못하다는 증거다. 대신 핵은 빛을 잃고 있다. 세상 모든 자연력을 없애는 것이 목적인 파괴자가 지금 임무를 완수했다고 판단하고 휴면 상태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스트는 잠시 동안 기다렸다. 술법을 유지하는 것 때문에 어마어마한 탈력감과 피로를 느끼고 있지만, 굴하지 않는다. 지금 그는 거대한 희망을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핵은 빛을 꺼뜨렸다. 물론 정지도, 고장도 아니다. 휴면이다. 만약 주위에 자연력이 감지된다면 다시 천천히 가동되기 시작할 것이다.


하스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자연력을 응집시켰다. 이미 회색구는 없어졌다. 다시 자연력을 감지한 파괴자의 핵이 가동을 시작한다. 물론 신체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기에 일정량 이상의 자연력을 흡수하기 전에는 세상에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아직 완벽히 가동하지 못해, 흡수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핵을 향해 하스트의 주먹이 내려 꽂힌다. 핵은 쩌적 소리와 함께 금이 가더니 마침내 산산이 부서진다.


그 모습을 본 하스트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스트가 실성한 것처럼 정신없이 웃는다. 그의 눈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하스트가 카를을 응시한다.


“고맙다, 카를. 네 덕분에-”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잠시, 상황이 끝나자 그동안 막아뒀던 피로가 육체를 지배한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하스트가 무너진다.


“어? 야?”


카를이 깜짝 놀라 하스트를 부축한다. 그리고 이내 안심한다. 안정적으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보니, 그저 잠이 든 것 같다.


하스트를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사람들의 위에서는 반투명한 꼬마가 언어가 되지 못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드디어···”


마을을 침입한 강력한 영물에 의해 많은 것이 파괴되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럼에도 마을의 명예를 지키고, 호수의 주인이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막으려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힘들었던 작전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세계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그 종말조차 지금, 쓰러졌다.


“끝났다~!!”


누군가 지른 소리에 사람들은 휘청거리는 무릎을 주체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드러눕는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드디어, 드디어 위기는, 끝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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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끝나지 않은 위기 (9) 18.11.21 259 1 15쪽
73 끝나지 않은 위기 (8) 18.11.20 264 1 13쪽
72 끝나지 않은 위기 (7) 18.11.19 270 1 11쪽
71 끝나지 않은 위기 (6) 18.11.17 260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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