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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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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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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02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11.22 22:49
조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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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천적 (1)

DUMMY

그 존재의 별명은 무수히 많았다. 정령 살해자, 자연의 파괴자, 절망의 전령. 모든 것이 그 존재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파괴자라고 불린 그 존재는 바로 예전의 전설을 끝낸 존재. 시대의 파괴자였다.


끼기기긱.


파괴자가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인다. 기괴한 철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으아아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눈을 뜨자마자 다시 저 천적을 만나다니. 이럴 수는 없어!”


휴가 공포에 질려있다. 그의 반투명한 몸이 끊임없이 몸을 떤다. 공포 때문에 형태마저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다.


휴가 친구를 구하는 것도 포기하며 힘을 모으려 했던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다. 그럼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던 존재가 바로 저기에 있다. 휴에게 파괴자는 공포의 구현이었다.


하스트 또한 점점 뒷걸음질을 쳤다.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본인도 안다. 파괴자는 자연력 자체를 감지한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저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일 뿐이다.


“하스트. 저 놈은 대체 뭐지? 저게 휴님의 천적이라고?”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촌장이 하스트에게 묻는다. 하스트는 파괴자를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휴에게도 묻고 싶었지만, 휴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기에 우선은 하스트에게 먼저 묻는다.


“... 저 녀석이 바로 재앙입니다.”


“뭐?”


“제가 말씀드렸던 자연력의 소멸은 바로 저 녀석이 원인입니다.”


“탑의 힘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 못 드려 죄송합니다. 파괴자의 정보는 아는 사람이 최대한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걸 이용하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흠···”


확실히 세계의 자연력을 없앨 수 있는 놈이라면, 엄청나게 위험하다. 어떤 미치광이가 그 소리를 듣고 세계와 함께 자살하려 들지도 모르니, 확실히 숨길만하다.


하지만 하스트에 대한 신뢰와는 다르게, 지금만큼은 반신반의였다.


“그리 강해 보이진 않네만?”


촌장의 말대로 파괴자는 10대 초반의 어린이와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보다 두꺼운 몸체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느껴지는 힘도 그다지 없는 것이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모든 자연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조건 그를 믿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불안하게도, 파괴자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도망가게.”


지금의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인에게서 퇴각하라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내 무덤가는 확실히 정해졌구먼. 내가 최대한 막아보겠네. 아무래도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모양이니... 어떻게든 힘을 넘기지 않을 테니 빨리 도망가게.”


“현귀···”


휴는 주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확실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빨리 도망치자!”


휴는 지금 당장 뒤도 안 보고 도망가고 싶다는 듯 얼른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파괴자라 불리는 존재를 이리도 무서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저런 조그만 철 덩어리를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호수의 주인과 세계의 지배자라고 불렸던 정령 중 한 명이, 싸우면 무조건 패배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의 말이 뜻하는 것은 더했다. 자신조차 시간을 버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은 의문을 품을 때가 아닙니다! 저 놈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저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스트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 와중에 어떻게 해서든 파괴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바람을 이용해 소리를 전했다.


“그의 말이 맞네. 도망가게, 지금 당장. 그리고 촌장, 딸을 데려가게.”


휴가 바람으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아직 고통이 남아있었는지 엘르는 통증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이 엘르의 몸을 침식하고 있던 물의 자연력을 빼내고서야 엘르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사태를 일으켰으니...”


주인이 물의 자연력을 사용하는 것을 느낀 것인지, 파괴자가 움직인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마자 사람들은 세 존재가 왜 그렇게도 파괴자를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도저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저마다 다른, 일부분만을 보게 되었다.


“물이?”


파괴자가 지나가자 호수 바닥에 고여있던 물이 사라진다.


“바람이···”


파괴자의 몸이 주변의 바람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미친···? 저게 뭐야!?”


파괴자가 발을 내딛자 땅이 힘을 잃는다.


“추워지고 있어!”


주변의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 열조차 파괴자에게 흡수된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를 못 본 것은 아니다. 침입자였던 오거 영물도 바람을 빨아들였고, 호수의 주인도 물을 흡수하였다. 사람들은 오거와 주인이 힘을 흡수하고 강해지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것은 아니다. 정말 명백하게 다르다. 힘을 흡수하고 있지만,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왜 호수에서 어둠이 느껴졌는지. 저것이 바로 어둠이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저것이 바로 어둠이었다.


“파괴자는 모든 자연력을 흡수합니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아요!”


하스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아까도 말했다. 언제라도 답을 찾으려 했던 하스트가 했던 말은, 저것만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제 슬픔은 사라졌다. 느껴지는 것은 정말 근원적인 공포.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저 존재에 대한 공포뿐이었다.


“젠장! 자연력을 못 사용한다고 공격 수단이 없을 줄 알아!?”


적어도 겉모습은 작은 파괴자이기에 누군가 그렇게 악을 쓰며 활로 파괴자를 공격한다.


정령과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돌발적으로 한 행동에 모두가 그를 어리석다고 속으로 욕했지만, 내심 기대도 했다. 이 공포가 제발 허상이기를. 저 화살이 파괴자를 파괴하기를.


“... 소용없어.”


하스트의 말은 그 공격 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적어도 파괴자가 화살 정도는 무난히 피하거나 쳐낼 정도의 운동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말도 맞다. 파괴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더욱 믿지 못할 것이었다.


파스스스.


“맙소사...”


화살은 파괴자의 근처로 가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마치 무언가에 분해된 듯이 가루가 되더니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자연력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력이 희박하다는 남부조차도 모든 것에 자연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력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육체조차 스러진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자연력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자연이, 세상이 사라진다.


파괴자는 정령의 천적이 아니다. 세계의 천적이었다.


끄기기기긱!


파괴자가 다가오는 것을 본 주인이 다시금 소리친다.


“휴! 날 내려주게! 그리고 도망가게! 어서!”


언제나 느긋했던 주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휴의 바람이 풀리고, 주인이 제정신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냈다. 엄청난 힘이 세상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 어떤 존재라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지지만, 하스트와 휴는 사람들을 후퇴시켰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조차 깨달았다. 저 힘으로도 파괴자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최강의 생물인 호수의 주인조차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파괴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괴물이 풀려난 것이 아니다. 하스트의 말처럼, 재앙이 풀려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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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끝나지 않은 위기 (8) 18.11.20 265 1 13쪽
72 끝나지 않은 위기 (7) 18.11.19 270 1 11쪽
71 끝나지 않은 위기 (6) 18.11.17 260 1 15쪽
70 끝나지 않은 위기 (5) 18.11.16 255 1 13쪽
69 끝나지 않은 위기 (4) 18.11.15 237 1 18쪽
68 끝나지 않은 위기 (3) 18.11.14 276 1 16쪽
67 끝나지 않은 위기 (2) 18.11.13 289 0 12쪽
66 끝나지 않은 위기 (1) 18.11.12 293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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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전사들의 안식 (1) 18.11.10 275 1 14쪽
63 최강의 오거 (5) 18.11.09 268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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