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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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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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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97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11.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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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끝나지 않은 위기 (2)

DUMMY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그게 뭔데?”


다른 일행들도 그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다. 하스트는 무심코 입을 열었지만,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회피한다.


“우선 이 흔적을 따라가 보자. 정말로 주인이 북쪽 호수로 향하고 있다면···”


“있다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엘르가 답답한지 하스트를 닦달한다.


“무조건 막아야지. 그를 죽여서라도.”


“뭐? 아무리 그래도-”


“확실히 위험한 의견이군. 하지만 지금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지.”


촌장은 여기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이 흔적 끝에 있는 것이다.”


촌장이 순찰대장에게 고개를 돌려 명령을 내린다.



“자네는 지금 이 시간부로 마을로 돌아가 전투준비를 마쳐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원은?”


“... 전투가 가능한 이들은 전부.”


“네? 마을을 방어할 사람까지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 만약 호수의 주인을 막아야 하는 것이면, 확실히 그 정도 인원이 필요해. 다시 우리 마을에 큰 피해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


촌장이 하스트를 보며 말을 끝맺는다.


“하스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길을 확인하고 마을로 돌아가겠네. 그때까지 단단히 준비하길 부탁하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행은 두 무리로 나뉘어서, 각자의 방향으로 달린다. 한쪽은 마을로, 한쪽은 북쪽의 호수로. 하지만 생각은 같다. 하스트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제발 그 상황만 아니길 바란다.




순찰대장과 대원들이 떠난 지금, 카를과 하스트 그리고 촌장 가족은 지금 북쪽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 흔적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근데 그 호수의 주인이란 영물, 도대체 무슨 동물이야? 흔적이 영 이상한데?”


카를 자신도 나름 동물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가 알기로 지금 같은 흔적을 남기는 동물은 없었다. 바닥에 계속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배를 깔고 기어 다니는 것 같은데, 호숫가에서 조금 벗어나고 보니 발바닥 같은 흔적도 추가되어 있다.


“넌 본 적 없을 거야. 애초에 그 종족은 주인의 가족 말고는 모두 멸종했었거든. 그래서 전 세계를 뒤져도 그 호수에서만 볼 수 있었지.”


하스트의 말에 카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그렇다고 하니, 정말로 없을 것 같다. 애초에 바닥에 있는 흔적들로는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다. 이 정도면 적어도 남부에서는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이제 확실하군. 이 흔적은 그의 종족이 맞아.”


촌장의 말에 카를을 제외한 모두가 끄덕인다.


“그렇지만 이 흔적들은 이상하네요. 그는 분명히 네발로 똑바로 걸을 수 있을 텐데, 왜 배를 깔고 기어갔을까요? 게다가 그의 보폭을 생각한다면, 발자국이 너무 많아요.”


촌장 부인도 카를의 말을 듣고 흔적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주인은 이런 식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


참으로 단순한 생각이지만, 하스트는 엘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흔적이 깊어지는 부분이 꽤 많다. 흔적만으로 본다면 굉장히 휴식을 많이 취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지금 정상이 아니라면 그럴 수-”


하스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길고 긴 길 중간에 널따란 공터가 있다.


“이건 뭐야? 여기서 발작이라도 한 건가?”


카를은 반쯤 농담 삼아한 말이지만, 촌장이 무엇을 목격하고, 그것을 긍정한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일행의 고개가 촌장의 시선으로 향한다.


카를은 자신의 시야에 잡힌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이 아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평소와 너무도 다른 광경이라 현실감이 떨어진다.


“저게 뭐야? 붉은 물?”


“너 바보야? 당연히 피잖아.”


“저렇게 많이 흘렸다고?”


공터의 끝부분. 숲과 맞닿아있는 그곳에 거대한 피 웅덩이가 있다. 촌장 부인이 그 광경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아무래도 각혈한 모양이에요. 그인지 그녀인지 모르겠지만, 상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해요.”


카를은 자기가 생각한 것과 너무도 다른 일행들의 의견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저게 피를 토한 거라고? 나무 꼭대기에도 피가 묻어있는데? 난 여기서 배라도 갈라진 건 줄 알았는데.”


일행은 계속해서 달린다. 피를 조사할 시간도, 필요도 없다. 주변에 어떤 광경이 펼쳐지던지, 그가 있는 곳은 확실하다.


“촌장님. 혹시 그가 어디까지 갔는지 공중에서 확인해 주실 수-”


하스트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이 목표가 드디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맙소사.”


카를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 멀리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알게 되었다. 멀리 산맥의 그림자인 줄 알았던 검은 풍경이 사실 그 영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고 있는 것은 영물의 머리라는 것을 말이다.


“흑색의 거북... 역시 생존한 쪽은 호수의 주인이군요. 하스트 군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가··· 아주 고통스러워 보여요.”


모두가 머리를 끄덕인다. 촌장 부인의 말처럼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주인은 지금 사방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몸을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거대한 숲의 일부분이 사라진다.


일행은 그의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더 가까이 접근했다.




“너무 크다···”


주인이 다시 진정되기를 기다린 일행은 마침내 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상태다. 그리고 카를은 주인의 크기에 기가 질렸다. 자신의 덩치가 이렇게 초라해 보인 적은 처음이다. 눈 크기가 어지간한 사람 크기다.


하지만 그의 크기와는 다르게 몸 상태가 너무나도 나빠 보인다. 몸 곳곳에 묻어있는 피. 그리고 힘이 없어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해 다리에게 억지로 질질 끌려가는 몸통. 무엇 하나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주인이 걷기만 해도 지진이 난 것처럼 주변에 진동이 퍼진다. 땅은 비명을 지르며 파괴되고 있고, 뿌리를 약하게 내린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옆으로 쓰러지고 있다.


“촌장님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어. 이런 생물이 마을로 쳐들어오면 어떻게 막아?”


“그를 너무 무섭게 보지 마세요. 카를 군.”


“그래. 저 거북 할아범은 엄청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카를의 감상에 모녀가 그의 생각을 고쳐주려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카를에 대한 감정이 아니었다.


‘근처에 사는 존경받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인 건가?’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사고로 가족을 잃고 미쳐서 돌아다니고 있다. 모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과 안타까움이었다.


땅에서 세 사람이 달리고 있을 때, 촌장과 하스트는 하늘을 날아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땅에서 불러봤자 들리지도 않을 것 같으니, 그의 시선으로 직접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호수의 주인이여! 정신을 차리십시오!”


촌장이 주인에게 애달프게 외치지만 아무 소용없다. 멍한 눈동자는 눈 앞의 그들이 보이지 않는 듯 오직 앞을 향해 죽어가는 육체를 인도하고 있다.


“정신 차리세요! 지혜롭던 당신은 어디 갔습니까!?”


하스트는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며 시야를 방해하면서 끈질기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역시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망할!”


어떤 말을 해도 묵묵부답인 주인에게 화가 난 하스트는, 시선을 끌기 위해 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옆머리로 이동한다.


“이렇게 크게 말해도 안 들리나 보자!”


하스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바람의 술법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 최대한 소리를 크게 해서 주인의 주의를 끌어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술법은 사용되지 못했다.


후우웅!


자신을 향한 자연력을 느낀 걸까? 갑자기 주인의 고개가 돌아간다. 엄청난 크기의 머리가 요동치자 하스트에게 광풍이 몰아친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탓에 광풍에 휩쓸려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자연력에 반응하는 건가?’


정신을 차리고, 바람을 움직여 육체를 공중에 고정한 하스트가 이번에야말로 대화에 성공하기 위해 다시 주인을 직시했다. 그리고 경악한다.


하스트에게 향해있는 주인의 입이 벌어져있다. 언뜻 보면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보내려고 벌린 입이다. 주인의 입에서 막대한 자연력이 응집하고 있다.


“위험해!”


촌장이 죽음을 무릅쓰고 하스트를 잡고 빠르게 낙하한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주인이 물의 숨결을 쏘아 보낸다.


“꺄악!”


“모두 엎드려요!”


“이런 미친!”


땅에 있는 세 사람이 혼비백산한다. 어쩔 수 없다. 누구라도 눈 앞의 일격을 눈으로 본다면 절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으리라.


쿠콰콰콰콰!!


그 공격은 마치 세상을 둘로 갈라버릴 것 같았다. 공격 경로에 놓여있던 나무들은 사람의 손가락 크기의 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산산이 분해되고 있고, 정통으로 맞은 땅은 산사태를 재현하며,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진흙을 배출하고 있다. 또한 공격으로 인한 충격파가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낸다. 나무와 공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공격의 영향권에서 대피하고 있다.


하늘에 있던 하스트와 촌장은 공격을 맞지 않았지만, 물의 숨결이 만들어낸 폭풍에 휘말려, 하늘을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


땅이라고 좋은 상황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진흙이 충격파 때문에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높이가 주변의 나무들보다 위에 있다.


“꽉 잡아요!”


카를은 모녀를 양 팔에 끼우고 진흙을 피해 도망간다. 그 장소에 있다가 엄청난 무게의 진흙에 깔린다면 모녀는 즉사할 것이 뻔했다.


몇백 미터를 이동한 후에야 진흙이 힘을 잃고 땅에 스러져간다. 이에 카를이 안심하고, 모녀를 내려놓는다. 모녀는 카를의 행동에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고마워요.”


“흥. 그러지 않았어도 알아서 도망갈 수 있었어. 방해되게 왜 붙잡고 난리야?”


“얘는···”


‘모녀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이 며칠 사이 엘르의 말투에도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입 밖에 낸다면 무슨 욕을 먹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엘르가 아니다.


“... 정말 미치겠군.”


공격 지점을 중심으로 카를이 있는 곳까지 모든 나무가 쓰러져있다. 지금 여기가 숲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다. 모든 것이 진흙에 덮여 있는 것이, 살아 움직이는 진흙이 모든 나무를 잡아먹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모두가 말했듯이 확실히 이 거북은 저번의 오거보다 명확히 강했다.


그때는 오거를 감히 재앙에 비교했다. 하지만 눈 앞의 광경은 무엇이 진짜 재앙인지를 일깨워준다.


오거가 재앙에 가까웠다면, 이 거북은 가히 종말의 사자였다.


“이걸 어떻게 막아?”


절망할 기력조차 앗아갈 규격 외의 힘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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