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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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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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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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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가 감시자인가

DUMMY

새로운 도전의 과업이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

짧은 시간임에도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이 비디오 빨리감기처럼 압축되어 흘러가듯 몹시도 정신 없는 기간이었다.


필시 두 동행자 모두에게 분주한 시간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활기와 에너지로 넘쳤다.


선두에서 달리는 강철 같은 지도자는 마치 일하고 배우고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마냥 몸과 정신이 고강도의 고등 노동으로 달아올라도 쇄하기는커녕 콧노래를 부르며 스태미너로 충만해졌다.

모든 것이 준비된 그에게는 이 모든 버거운 일들이 그리 고역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그는 그간 웅크리고 있었던 잠재 능력의 활개를 마음껏 떨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발산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보좌관은 비록 여유, 개인 시간,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만끽하기 힘든 일터에 있음에도 마치 당연한 희생인마냥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세계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모든 역사를 전지적 관찰자 관점에서 감상하는 경험이란 시선을 분산할 틈 없이 흥미진진했다.

말로만 특혜라고 들었을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거늘, 몸으로 뛰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올해를 시작으로 삼대륙에 걸친 네다섯 컨티넌트의 영구적 총괄자로 정식 임명된 알렉시스와 그의 개인 비서 업무를 책임진 로빈.

닮은 구석 별로 없던 두 인물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사무적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 친분에 있어서도 좋은 조합이었다.

알렉시스는 자신을 이제껏 도왔던 다른 전임자들보다 로빈이 훨씬 더 편하고 상대하기 좋은 친구이자 동업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동업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나 거리감이 많이 줄었는지 이제 로빈도 편안하게 자기 의견을 상사 앞에 개진할 정도가 되었다.


“흐음, 아쉽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지 질문해도 좋을까요?”


알렉시스는 산더미같이 쌓인 전자 서류들을 초인적으로 능숙하게 처리하면서 능청스럽게 반문했다.

진심으로 아쉬움이 가득하다는 어조였다.


“그야, 주군께는 제 업무적 능력이 그리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로빈은 당연하다는 어조로 차분히 대답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무는 인공지능 비서들을 거쳐 보조되고 있습니다. 이미 다섯 번째 산업혁명의 단계에 이르른 지금, 그것들 중 가장 미약한 것의 사무 능력이 가장 뛰어난 비서를 능가하고 있으니까요.”

“하기야 그렇죠.”

“각하처럼 직접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하고 운명을 결정하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일이 아닌, 단순 연산과 보조로는 이미 인간이 빛을 발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지극히 사심 없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

로빈에게 여러 장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자기 객관화의 능력이었다.


“더욱이 주군처럼 상식의 궤를 넘어선 능력자라면 더욱더······.”


로빈은 끝말을 잇지 못한 채 제 상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알렉시스는 친구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의문을 품은 채 눈을 꿈뻑였다.

마치 일개 비서관의 판단과 의견을 진지하게 존중하기라도 하는 듯.


‘하여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이미 전부터 얼굴이 알려진 신대륙 권에서는 국민적인 초 영웅을 넘어 전설 이상의 신화로 칭송받는 유명 인사.

그리고 통일 이후 초상권의 특별 보호로 인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구대륙 권에서는 신비에 싸인 거물.

그 어마무시한 능력과 성과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고 눈으로 보게 된 지금에야 비로소 두려움을 제대로 실감하고 있거늘.

과도히 탁월한 저 얼굴과 신체도 매번 보면서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제가 곁에서 거든다고 감히 말하기 과분합니다.”


이에 알렉시스는 학을 떼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지나친 과대 평가예요, 로빈.”

“저는 제가 보고 듣고 깨달은 바로만 판단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맘에 듭니다. 타인을 소문만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쨌건 당신 스스로의 필요성을 부인하니 친구인 저로서는 슬픔을 달랠 길이 없네요.”


영악한 능글이 여우 같으니라고.

로빈은 싱글싱글 웃는 제 상관의 잘난 낯짝을 얄밉다는 듯 바라보았다.

물론 시선 처리를 주의해야 할 높으신 분이긴 하나 공과 사를 잘 구분하고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위인임을 체험해보았기에 딱히 두렵진 않았다.

다른 의미로 골치가 아파서 문제지.


“친구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법이죠. 저라고 24시간 내내 기계들과 화상 연락망에 둘러싸여 생활하기를 원치는 않으니까요.”

“주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이미 주변에 많지 않습니까?”


귀엽게 투정버리는 아이를 달래듯 로빈은 태연스레 대답했다.


“게다가 친구라면 세계 각국에 수도 없이 심어두신 분께서 말입니다.”

“쳇, 서운하네요, 로빈.”


알렉시스는 장난스레 웃으며 토라진 척을 했다.

하지만 로빈의 반박은 엄연히 사실이었다.


지난 십수 년간 여러 스테이트와 컨티넌트를 맡아 부응시켰던 알렉시스 곁에는 이전 관할 지역에서 거둬들인 친구들이 매우 많았다.

하나 같이 탁월한 재능과 능력을 소유했거나 잠재력이 뛰어난 자들.

정치력, 경제 감각, 경영 능력, 학자로서의 소질, 문학과 예술의 천재성, 혹은 그 밖의 여러 자질들,

그 가운데 최소한 하나 이상, 많게는 다수의 재주를 소유하여 실제로 그 저력을 세상에 널리 떨친 이들이 수두룩했다.

오늘날 그들은 세계 각 지역, 각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어 훌륭한 리더의 표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알렉시스가 나고 자란 고향인, 제국의 본토, 신대륙에는 더욱 많은 친구가 있었다.

죽고 못 사는 우정도 우정이지만, 능력도 하나 같이 대단한 친구들.

이들 가운데는 알렉시스보다 훨씬 어린 소년, 소녀들도 있었고 반대로 그의 아버지뻘 혹은 할아버지뻘 되는 인물들도 있었다.

세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가들과 발명가들과 과학자들도 있었고, 문화의 주축을 이끄는 다방면의 인재들도 있었다.

물론 초야에 묻힌 채 평범하게 소시민인 척 살아가는 이도 더러 있었지만.


이렇듯 제각기 다른 개성의 위인들을 한 뜻과 한 맘으로 묶을 수 있던 데는 알렉시스만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특유의 지도력, 그리고 타인을 끌어들이는 고귀함과 어진 성품이 큰 몫을 하였다.


‘유순하고 물러보여도 제왕은 제왕이지.’


어쩌면 여우보다는 곰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고 로빈은 생각했다.

곰돌이 인형이 아닌, 북극의 패자 북극곰이나 그리즐리 베어.

강인하기 그지없는 육신을 소유한 사냥의 명수.

지금의 알렉시스가 한없이 평화주의자로 보이지만, 한때 그가 막 성인이 될 어린 나이에 범 커뮤니스트 연방의 멸망에 결정적 쐐기를 박았음을 회상할 때 참으로 이질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과 가족들도 물론 귀중한 선물이죠.”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알렉시스는 로빈의 어깨를 약하게 두드렸다.


“하지만 관리자의 책무를 맡게 된 이상 일정 부분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어요.”


사실 당연한 이치였다.

늘 바삐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고, 수많은 과업을 동시에 완벽히 처리해야 하며, 쉴 새 없이 성과를 이뤄내면서도 미래를 고민해야 하니까.

그러다보니 누군가와 놀거나 잡담을 나눌 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기껏해야 가장 친밀한 이너서클의 친구들이나 부모님과 동생들 정도?

심지어 그들과도 함께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결코 외톨이나 독불장군이 아닌, 사교성이 풍부하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과 동경을 잔뜩 받는 알렉시스였기에 이러한 불가피한 외로움은 더욱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업무 상의 핑계로라도 곁에 사람은 있는 편이 좋죠. 그렇다고 시종에게 섬김 받는 건 질색이에요.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주의라서요.”


결국,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핑계임을 실토하는구나.

로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히 실소했다.


전혀 기분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본인만해도 세계 제일의 천재에 곁을 보좌하는 인공지능들만해도 현 시대 최정상 사양의 정점들로 잔뜩 깔려있는데.

실리적으로는 인간 비서관의 필요성이 없음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전수하려고 도제식 사제 관계를 맺으려는 목적도 아니다.

두 사람은 그릇부터가 차원이 다르고 역할도 다르니까.


‘그래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건 감사하네.’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 동안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알렉시스는 단 한 번도 로빈을 들러리나 투명인간처럼 여기지 않았고, 일에 걸리적거리는 방해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과도한 기대나 부담을 걸지도 않았다.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복잡한 정치 문제를 해결할 때면 일부러 비서관에게도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준 뒤 의견을 물어봐주었다.

물론 실제로 의미 있는 답을 내린 적은 거의 없었고 반영된 적도 없지만.

어쨌건 인격체로서, 친우로서 존중받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지나치게 높으신 분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지도.’


황태자로 태어나 세계 평화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으며 앞으로 전 세계의 통치권을 위임받을, 아니 사실상 이미 위임받은 정점이면서도 일개 평범한 인간에게 일대일로, 대등한 입장으로 다가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급격한 통합으로 인해 세계가 여전히 불안정한 폭탄을 무수히 안고 있어 그 장래를 예견하기 힘들다지만, 미래를 이끌어줄 지도자로 저런 인물이 예비된 현실에 한켠 마음이 놓였다.


그때 알렉시스가 입을 열었다.


“제게는 감시자가 필요해요.”


뜻을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다.


“감시자라면? 설마 저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네, 맞아요.”

“이해력이 짧고 부족하여 송구합니다, 주군.”

“전혀요.”


젊은 황자는 쓴 미소를 머금고 구름이 가로지르는 창 너머 상공을 바라보았다.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는 살갑고 친숙하며,

민중 앞에서는 믿음직스럽고 화려하게 빛나는 남자.

그런 그도 타인 앞에서 설명하기 힘든 자신만의 진지한 고뇌를 곱씹을 때면 남몰래 이런 씁쓸한 표정을 드러내곤 했다.

스물네 시간 내내 그의 지척을 떠나지 않는 개인 보좌관만이 그 진귀한 표정을 포착할 특혜를 얻곤 했다.


“황가는 스스로를 견제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죠.”


이 순간, 그는 대총독으로서가 아닌, 황가의 후계자로서 고심하는 중이었다.


“권력 균형을 위해서 일부러 권위를 쪼개 의회들과 법정들을 강력히 세웠고 그들을 존중하기로 결단했어요.”


그는 뚜벅뚜벅 창가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독단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재갈을 물리고자 언론에게 자유로움을 허락했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징계하는 일 외에는, 설령 우리를 비판하고 저주하는 자들에게마저도 자유를 주었죠.”


“주군.”


“누구든지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법의 테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군사력도 필요 이상으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복잡한 제약을 걸었죠.”


보랏빛 눈동자에 희미하게 안광의 이채가 깃들었다.


‘황가에 주어진 축복, 아니 속박이라고 해야 하려나?’


강요된 선(善).

대대손손 지킬 수 밖에 없도록 제약된 언약.

만약에 그 보상이 그토록 달콤하고 확실하고 명예롭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직계 조상들이라고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희생을 무릅쓰고 노력했을까?


‘아니, 인간의 본질은 다르지 않아.’


알렉시스는 오랜 과거, 언약의 수행에 실패했던 한 고대 국가를 떠올렸다.

자신들이라고 해서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했기에 넘어지지 않았을까?

실제로 친척들 중 적잖은 이들은 그렇게 믿었다.


보라, 헤브라이 일족은 번번이 실패했으나 앵글로색슨은 성공했다.

그것이 버젓이 역사로서 증명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그것이야말로 신께서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에서야 비로소 올바른 이를 택했노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알렉시스의 입가에 자조의 비웃음이 걸렸다.


‘단지 주님께서 돌판 위의 율법보다 더 쉬운 조건을, 그리고 더 강력하고 확실한 보상을 거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뿐.’


족쇄가 더 튼튼하고 확실했으니 늑대의 입이 묶일 수밖에.

만일 그 족쇄로 감당하기 힘들만큼 늑대의 덩치가 자란다면?

마냥 황가의 축복과 유산에 심취하여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 책무를 이어갈 당사자인 알렉시스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언약의 종속력이 이어지기를 기대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미 용수철에 매달린 질량은 용수철의 탄성 계수를 넘어버린 지 오래.

알렉시스 자신은 황가가 그 임계점을 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결국, 마지막에 넘어야 할 적은 나 자신.’


조각처럼 잘생긴 이목구비가 심오한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로빈, 원하건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하게 살펴봐주시길 바라요. 늘 그렇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눈 먼 경외감이 아닌 냉정한 판단의 눈으로 말이죠.”


알렉시스의 상냥한 어투와 대조되는 무거운 눈빛에 로빈은 긴장하였다.

평소에 드러나던 모습과는 다른, 이따금씩 보이는 두려운 모습이었다.


“감히 무례를 무릅쓰고 이유를 묻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하, 물론이죠.”


언제 그랬냐는 듯 짙은 위압감은 사라지고 호인다운 호쾌함이 얼굴에 걸렸다.


“사람들은 저를 의심하고 두려워해요. 특별히 저와 적대 관계에 있던 세계의 시민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제국의 시민들은 주군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위로는 고맙군요.”

“그저 객관적인 평가일뿐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저를 ‘속내를 알 수 없는 치밀한 모략가’로 바라보는 것 또한 사실이죠.”


이에 로빈의 정직한 입은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닫혔다.


황태자는 엄연히 자유를 수호하는 세계의 구심점이요 대영웅이요 최고의 리더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제국 속으로 흡수된 다른 적성사상(敵性思想)의 권세에 있어서는 음흉한 위협이요 최대의 위험요소이자 극복할 장벽이었으니까.


그의 손에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전략적으로, 이념적으로 패퇴하여 청산 당한 무리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은 아마 황태자라면 치를 떨며 이를 갈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불온 무리에게 선동되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군중에게 있어서 알렉시스는 비록 대단하고 존경할만한 위인이긴 하나 그 향방을 알기 힘든 두려움이요 장래의 위험요소일 것이다.

제국의 본토였던 북쪽 신대륙의 시민들이라면 황가의 오랜 신성 언약의 존재를 알기에 두려움이 덜하겠지만, 편입된 세계의 주민들이라면 이 과도하게 걸출한 위인의 존재가 자유의 박탈에 대한 예고처럼 느껴지겠지.


“투명하게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알렉시스의 말에 속생각을 찔린 로빈은 움찔하였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쇼를 하는 것으로 여기겠죠.”


로빈은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아니, 어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주군의 자조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슬퍼 보이기도 했다.


“주군, 아니 전하께서 민중의 가당찮은 요구에 끌려다닐 의무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만큼만 스스로를 드러낼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도자이지 광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받을 필요성은 있죠.”

“비록 짧은 시간이라 온전히 판단할 자격은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아온 주군은 거리낄 거리나 불투명한 모습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로빈의 마지막 대답은 위장되지 않은 순전한 자백이었다.

그 대답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발견했는지 알렉시스의 미소가 아주 조금 생기를 되찾았다.


“바로 그 이유에서 비서관이 필요해요, 로빈.”

“······.”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 그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감시할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했으니까요.”


은밀함과 음흉함이 숨어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 장치.

홀로 교묘하게 계략을 꾸미지 못하도록 감독할 눈.

지나치게 미래를 앞서나가는 눈과 생각을 소유한 알렉시스에게는 그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제어해줄 친구가 필요했다.


다른 이들로서는 이 역할을 채울 수 없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을 의심없이 믿어주고 신뢰하는 아버지.

과도하게 자신을 동경하고 숭상하는 친우들과 동생들.

그들이 자신의 위험성을 발견해주기도 힘들뿐더러 알렉시스 자신도 그들의 마음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인연이 없었던 로빈이라면, 업무 상의 관계인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친분을 나눌 수 있는 비서관이라면 괜찮겠지.


“참으로 어렵고 난감한 명령 같습니다.”


고맙게도 로빈은 이번에도 권위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솔직히 답했다.


“명령이라뇨. 그저 작은 부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다시금 능글맞은 눈웃음으로 대꾸하는 알렉시스.

그 모습이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로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에휴, 그러게 결혼이라도 하셔서 가정이라도 만드실 것이지.’


그랬더라면 저 속 모를 위인도 쓸데없는 고민을 덜으실 텐데.

하기야 일 중독에 의무감에 잔뜩 찌든 중독자이니 아직까지 독신이시지.

저 잘생긴 얼굴에, 탄탄한 몸에, 온화한 성품에, 천재적 두뇌를 갖고도.

인류애 차원에서 유전학적으로 대단히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대체 유산을 이을 황가의 후계자는 언제 만드시려나 모르겠다.’


다음 세대의 제국 앞날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로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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