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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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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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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목사의 아들 (1)

DUMMY

아미타브 카푸르는 목사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바키라는 제법 영향력 있고 명먕 높은 목회자였다.


천재 중의 천재요 엘리트인 아들과는 달리 가난한 집안에서 평범한 두뇌를 갖고 태어나서 재능도 그저 그랬기에 버겁게 인생을 견뎌온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신실하고 깨끗하고 투명했기에 존경할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적이고 선한 비전으로 충만했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신을 신뢰하는 순수한 마음이랄까.

자신은 비록 부족해도 올바른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에 모든 역경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이 늘 강건했다.

그렇다고 앉아서 기도만 하지는 않았고 항상 기도 후에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자기 발로 열심히 행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우직하기 이를 데 없는 순박함과 필요할 때 맹렬히 발산되는 공격적인 의협심 덕분인지 바키라 카푸르 주변으로는 수많은 동역자들이 모였다.

바키라는 늘 자신은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선포했을 뿐이며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도움은 그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아들을 비롯한 주변인들은 그의 특유의 성정과 독특한 카리스마가 적잖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보았다.


어쨌건 아미타브는 그런 아버지를 좋은 롤모델로 생각했다.

분명 아버지의 설교와 가르침은 올바르고 건전한 교리 위에 있었고 비록 신학적으로 우아하거나 변증적으로 탁월하지는 못했지만, 누구든 쉽게 들을 수 있었고 마음을 열기에 적합했다.

아버지는 또한 선교에도, 교인들의 양육과 훈련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구제에도 열정적이었으며 그 모든 일을 명예보다는 마땅한 일로써 행했다.


인도의 많은 목회자들이 방황하던 시절 바키라의 도움으로 역경을 이겼고 큰 부흥의 역사를 이뤄내거나 저마다의 소명을 발견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어느새 바키라는 교계의 한 축을 맡은 지도자처럼 되었고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해 인도 교회 내부의 병폐와 부패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일을 감당했다.

인도의 전통인 힌두교에 아직 머무르던 시민들도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바키라 카푸르가 존경받을 만한 성정의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한 입을 모아 동의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머리의 목사 부부에게서 당대 최고 수준의 영재요 십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인재라는 칭송을 듣는 아미타브가 태어난 것을 보고 어쩌면 정말 평생의 신실함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이 자식의 복을 주신 것이 아닌가 하고 수근거렸다.


다만, 어린 시절의 아미타브는 아버지의 한 가지 면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종종 ‘정치 목사’라는 오해를 들을 법한 발언을 하셨다.

그는 아버지가 정치꾼이 아닌, 정말 복음과 성경과 예수님밖에 모르는 순도 백퍼센트의 전도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가끔 바키라의 발언은 사람들의 생각에 혼동을, 특별히 어린 아들에게도 혼동을 주곤했다.


‘왜 아버지는 황가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시지?’


사실 인도는 북부 신대륙을 제외하면 가장 오랫동안 제국령으로 있어왔던 땅.

하지만 이는 식민지의 역사를 거쳐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제국의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대우를 누리지만, 분명 이등시민처럼 취급 받던 시절도 존재했다.

아울러 민족 고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영구히 빼앗긴 것도 사실이고.

제국이 브리튼 본토의 주민들의 민족성에 특별히 의의를 두지 않고 모든 인종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정책 쪽으로 발전해서 다행이지,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독립 전쟁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인도 내에 반 브리튼 감정이 다양한 형태로 들꿇고 분출되어왔던 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의 감정은 종종 기독교에 대한 반발과도 연결되었다.

보통 힌두교적인 문화를 수호하려는 이들과 그 가치를 찬미하던 이들은 제국과 그 기초인 서구 문명, 곧 유대기독교적 문물과 가치 체계를 일종의 문화 식민주의처럼 여겼다.

여기에 민족주의의 영향력, 혹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유물사관의 부추김이 교묘히 더해지면 증오의 감정은 더욱 부채질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도 지역에는 브리튼 제국의 행보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이 유행하였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여파는 무시하기 힘들었다.

반 브리튼 세력은 집요했으며 교활했고 이간질에 능통했다.

그들은 브리튼과 관련된 것, 특별히 그들의 가치와 관련된 모든 것들 위해 주홍글씨를 덮어씌웠고 모조리 악마화했으며 비난의 화살을 교활히 던져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왕 없는 인민들의 나라를 자칭하며 자랑하는 유라시아의 범 커뮤니스트 연방 같았으면 이 같은 선동은 곧 인민재판소나 강제수용소 혹은 고문과 총살을 의미했겠지만, 정작 황제가 여전히 통치하는 브리튼 제국에서는 그러한 비난이 버젓이 벌어지는데도 어느 누구도 벌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로부터 단물만을 절묘히 빨아먹고 그 근원지는 도끼로 베어버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나라의 절반 가까이가 반 브리튼 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운 반 유대기독교 정서에 물들어 있고 교회들마저도 그 여파에 휘둘리는 마딩이었다.

그런 때에 맹렬한 비난자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담대히 소신적 발언을 꺼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시험이었다.

특별히 매국노 프레임이라는 올무에 묶이기 쉬운 이슈라면 더욱 그러했다.

교계 역시 소위 ‘정치 발언’을 쓴소리와 냉정한 눈초리로 대응하며 외면했고 소위 정의의 편이라는 자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자에게는 사회적 매장이라는 철퇴를 날렸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정치 발언의 금지’라는 규율은 진정으로 공정한 룰 가운데서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독 한 쪽의 목소리에 대해서만 매정함의 칼날이 돌아왔으니까.

특이하게도 어떤 목사가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그 암묵적 정죄의 대상을 어떤 집단으로 규정하며 암시하면 사람들은 ‘참으로 시원한 발언이오’ 혹은 ‘진정 사회 이슈에 깨어있는 분이군요’ 라고 추켜세워주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동료 압박과 사회적 압박을 받으며 자라다보니 자연히 아미타브 역시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려나.

그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적인 가르침과 복음만 잘 전하시면 될 것이지.

왜 굳이 그 위에다 구태여 정치 발언을 첨가한단 말인가.


그러나 냉철하게 돌아보면 아버지는 본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종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성경의 교리와 가르침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루거나 빠트린 적은 없었다.

더욱이 그는 정당을 만들지도 않았고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정말로 자신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과학적, 수학적 재능은 천재적이었으나 아직 아버지가 알던 그 무언가를 깨닫지 못했던 아미타브로서는 당최 그 이유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물론 세상 모든 정치 체제와 지도자는 불완전해. 아니, 모든 인간이 그렇지. 그러므로 브리튼의 황실 또한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잠시 유효한 차선책에 불과하지.”


바키라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퉁명스레 질문한 아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제국주의자라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요?”

“아들아,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선입견의 안경을 내려놓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한 시각에서, 더 정확히는 역사를 운영하시는 분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단다.”


아미타브는 아버지에게 근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배웠다.

그 가운데는 교과서에서 보고 들은 것과 은연 중 다른 부분이 많았다.

편견에 젖어 놓쳤던 부분들, 공정하게 바라보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더 중요한 요점을 짚어내지 못했던 사안들.

분명 겸손한 태도로 다시 회고했다면 더 많은 깨달음들을 얻었으리라.

어른이 된 아미타브는 종종 그 시절에 더 빨리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한계를 아쉬워했다.


요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브리튼은 세간의 시선, 그리고 인도의 절반 이상이 바라보는 색안경의 시선과는 달리 사실상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집단.

물론 무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세계 1차 대전 이전의 다른 열강들과 비교하면 그들이 피지배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그들이 현재 얻은 광활한 세계 영토도 사실은 세계 대전 때 유럽에서 파생된 다른 제국들과 이슬람 제국, 일본 제국의 침략을 막고 그들과의 데스 매치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연스레 얻은 수확일 뿐.

분명 왜곡된 역사관들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진실은 명확했다.

브리튼은 언제든 선제공격을 감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신대륙을 차지한 건 사실이잖아요.”

“물론 충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 그러나 네가 들은 이야기는 다수는 과장되거나 만들어진 것들이란다. 실질적으로 다수의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이 되었고 그들은 백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누렸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문점이 가득했다.

인간들은 본질 상 탐욕적이다.

개인 단위에서도 그러하거늘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되면 그 탐욕의 지독함과 비열함은 더욱 짙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그 불편한 진실은 여지없이 증명해왔다.


그런데 큰 전쟁이나 침략도 없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이질적 민족을 자신의 품으로 포용하여 한 시민 공동체로 녹여낸다고?

인간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지역적 뿌리가 같은 인도 대륙 안에서도 수천 년간 성취되지 못했던 일이?


더욱이 큰 전쟁들 속에서 항상 ‘결백하고 완벽한 승자’의 역을 담당한다는 사실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이했다.

아무리 일방적 공격의 책임이 일측에 있다고 해도 전쟁의 특성상 양쪽 모두에게 부도덕함의 흑역사와 어리석은 패착이 드러나는 것은 인지 상정이다.

세계 대전 같은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의 소용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브리튼 제국은 항상 먼저 침략당하는 측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지막에 웃는 자였다.


‘누군가 작정하고 배후에서 시나리오를 짠 게 아닌 이상······.’


아들의 생각을 읽은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역사는 그분께서 계획하고 경영하시는 이야기란다. 그분의 이야기가 곧 역사지. 그리고 고대에는 이스라엘이, 오늘날에는 비록 불완전한 차선책이라지만 브리튼 제국과 그 지도자들이 그분의 연필이란다.”


그것은 편견에서 흘러나온 강압적 고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뚜렷한 신념 같았다.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시기심과 질투심을 품은 채 삐딱하게 여기며 반발할 수도 있겠지. 믿지 않는 것도 우리의 자유의지다. 하지만 비록 불편하더라도 고분고분 받아들일 수도 있지.”


바키라 목사는 아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인간들이 여태껏 시도했던 모든 혁명, 왕 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려 시도했던 그 모든 노력이 인세지옥이라는 결말로 귀결되었는지, 그 이유를.


“간단하단다. 진리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프랑스 혁명이 괴뢰 독재자를 만든 이유이며, 공산 혁명이 세계의 절반을 피로 물들인 이유란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왕정과 황정이 부패하고 패망한 동안 유일하게 브리튼의 황가만 명예로운 자들로 남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지.”


진리 위에 자신의 뿌리를 둔 자들.

그리고 그들이 맺은 언약이라는 실체.

바키라는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현실 정치를 바라볼 줄 아는 목사였고 역사의 본질 뒤에 무엇이 작동하는 지를 알았다.

의외로 많은 목회자들이 브리튼 황가와 주님이 오래 전 맺은 언약의 존재를 알지 못했거나 믿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역사와 리포머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그들을 수호하겠노라고 맹세하였던 브리튼 왕실의 신실한 우정을 배웠던 이들은 이 언약이란 것이 허풍이나 전설이 아닌 실존하는 권능임을 알았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그들이 그나마 가장 훌륭한 차선책이다. 다른 대안은 없어. 이슬람도, 공산주의도, 중세 시대부터 세상을 지배해온 교황청도, 그리고 지금 너희 세대를 서서히 꼬드기고 있는 신 혁명주의도 마찬가지야. 다른 방법으로는 인류를 좀먹는 영적 해악을 억제하지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아미타브는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할 가치가 일개 지도자 무리에게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정말로 언약이란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그치들이 자신들을 높이고 고귀하게 포장하려고 만든 프로파간다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버지는 사회의 타락을 억제하는 안전 장치가 가정(家庭)과 교회(敎會)라고 말씀하시고는 왜 브리튼 황가가 인류의 차선책이라고 주장하실까? 정부는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기관 아닌가?’


그때는 올바로 알지 못했다.

바로 그 가정이라는 가치와 교회라는 유기체를 현실 속에서 지키는 장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만약에 율리시아 여왕과 크리스토프 대제가 체결한 약속의 내용을 조금만 엿볼 수 있었더라면 영리한 아미타브는 금세 모든 퍼즐의 연결고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미타브가 비로소 무언가를 제대로 깨닫는 기회는 스물다섯살을 넘은 늦은 청년기가 이르러서야 찾아왔다.

대륙 너머에서 맹활약 중인, 자신보다 세 살 어린 한 유망한 청년의 활약을 목도하게 된 것이 그 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증거물인 그 청년을 탐구하면서 아미타브는 브리튼 황가의 언약이 정말로 신적 기원에 뿌리를 둔 실체였음을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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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마인드 퓨리파이어 (1) 23.10.16 3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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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도의 아들들 (3) 23.09.30 46 2 15쪽
13 인도의 아들들 (2) 23.09.29 43 2 12쪽
12 인도의 아들들 (1) 23.09.24 5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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