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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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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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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퓨리파이어 (2)

DUMMY

*


마인드 퓨리파이어 공개 출시 후 약 열흘 째.

알렉시스는 커버넌트 그룹 본사의 네트워크 커맨드 센터와 아이언 로드의 사령탑을 연동한 상태로 틈틈이 상황을 모니터링하였다.

워낙 중대한 프로젝트인만큼 눈을 완전히 떼고 쉬기가 어려웠다.

정치부터 경영까지 가뜩이나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쉬어가는 타이밍마다 한 번씩은 큰 흐름을 살폈다.


‘당장은 예상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군.’


이미 나스루딘의 실험 데이터는 모두 인계받았고 그가 인도 지역에서 거둔 성과들도 낱낱이 보았다.

심지어 직접 실전에서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장면도 확인했었다.

지금의 프로젝트는 그저 그 작은 실험을 세계라는 거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확대한 것에 불과했다.


황태자이기에, 그리고 극초거대기업의 수장이기에 가능한 기행.

나스루딘이 자신의 오랜 성과를 아무런 미련 없이 내어준 이유도 이러한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알렉시스의 이해력과 행동력, 그리고 방대한 권력과 재력과 인프라가 아니었다면 지구라는 체스판 위에서 자신의 비전이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하기란 지극히 어려웠을 테니까.

아울러 연구자로서 끝없이 솟구치는 지적 호기심을 뿌리치기도 힘들었겠지.


‘슬슬 사람들도 변화의 무게가 어떠한지 눈치챌 것이 분명하다.’


감히 예상컨대 스마트폰을 비롯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발명품들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나타난 여파를 능가할 풍파가 불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기계들이 사람들의 뇌 구조를 비가역적으로 바꿔버렸듯, 이제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그 역방향으로의 뇌 수선을 능동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만약에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현대화된 사회에서 위기가 대두된 생활습관 질병들을 근본적으로 개량할 수 있는 약이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와 나약한 인간 사이의 육체적 부익부빈익빈은 상당 부분 옅어질 것이다.

그것이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해 육신이 쇠폐해가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의의는 이런 꿈 같은 성인병 완치약에 필적하는 수준.

더는 엘리트나 천재가 아닌 보통의 인간도 사회경제적 낙오자로 머무르지 않아도 되도록 이끌어줄 보편적 차원의 시혜였다.

이제 소수의 잘난 사람들이 대중을 깔보며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면서 ‘성공하는 사람들만의 비결과 특징’ 따위의 이야기를 만들어 연약한 이를 달콤한 유혹으로 희망고문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리라.


‘그 어떤 유익한 습관이든 영구적으로 고착화하는 게 가능해.’


단순히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을 몸에 각인하게끔 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깊은 사고를 스스로 수행하는 습관을, 올바른 방식으로 탐구하는 훈련을, 그리고 배우기를 원치 않았던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배우기를 바라도록 마음을 바꾸는 의지력을 심는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재능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인간에게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


타락으로 고장난 이후 인간은 창조주가 준 선물인 뇌의 극히 일부만을 활용하는 수준으로 퇴보하고 말았고 그 잠재력은 망각과 무의식의 늪 속에 침몰되고 말았다.

그 타락의 여파는 이성이라는 기능에 있어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나태함, 사고하지 않으려는 태도, 집단적 사고에 동조하려는 관성.

또는 선입견과 섣부른 일반화, 확증 편향의 늪.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자기 성향이나 재주에 맞지 않은 것은 일절 배우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와 배우고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려는 고집.


만일 이 같은 걸림돌들을 부분적이나마 걷어낼 수 있는 치료제가 나타난다면 인간은 조금 더 자신 속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하는 데 다가갈 수 있으리라.

모두가 세상을 개혁할 수준의 천재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천재들이 전보다 훨씬 더 빈발할 텃밭은 닦아놓을 수 있다.


‘설령 제국의 시대가 황혼을 맞이한다고 해도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인재의 토양이 만들어진다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도 인류는 다시 재기할 수 있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요 장래 세대를 위한 안배였다.


나아가 먼 미래만을 바라보는 불투명한 사업도 아니었으니,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벌써 단기적인 차원에서도 극적인 성과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러한 징후는 몇 가지 뚜렷한 변화의 바람으로 발현되는 중이었다.


첫째, 미디어, 네트워크, 사이버 플랫폼, 디지털 데이터에 중독된 현 세대가 근래 들어 급격히 중독과 인스턴트화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를 나타냈다.

둘째, 온라인 상에서 각종 사상적 대립으로 인해 극도로 양극화되고 분절화되었던 진영들이 무조건적인 비방과 다툼을 일삼기에 앞서 상호 이해를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 정보의 양만을 중시하고 지적 혹은 정신적 쾌락만을 탐닉하던 세대가 보다 더 근본적인 방법으로 지혜를 함양하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였다.

넷째, 자신이 평생 믿고 바라던 바가 틀렸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자들이 간간이 나타났다. 이러한 이를 발견하기가 모래 사장 속의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던 오늘날의 세태를 돌아볼 때 대단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불과 열흘 만에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될 정도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낳을 황금알의 총량은 감히 예측이나 예견을 불허하리라.



*


알렉시스는 신대륙에 자리한 커버넌트 그룹 본사의 이사진과 연구진 및 특수 프로젝트 팀에 감사와 손수 칭찬하였다.

그들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던 자신의 무리한 요청을 묵묵히 며칠 만에 완성해낸 주역이었다.

수지타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리 큰 이윤을 남기지 못할 프로젝트.

기업의 이윤보다는 오로지 장기적인 차원의 인류 유익에만 치중된 계획.

만일 자신이 단순한 CEO의 직위를 넘어 세계 전체의 향방을 좌우할 권력과 역사에 기반한 합당한 정당성까지 겸하여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본디 이익 추구가 존재 목적인 기업이라는 도구를 이런 식으로 휘두르지는 못했겠지.


이런 경우를 보면 다중의 역할을 겸하여 취한다는 것이 많은 면에서 편리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직위만으로는 제약 때문에 감당하지 못했던 일이 다른 역할의 손을 빌리면 의외로 물 흐르듯 순탄히 처리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으니까.

물론 한 우물만을 진득하게 파지 못하고 몸을 수십 개로 나누듯이 분주히 여러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불편함이 뒤따르긴 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라지크나 그의 두 친구처럼 한 분야에 평생을 열중했더라면 역사 위에 큰 족적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는 미련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자신도 분명 지금 걷는 이 길의 이점과 기회비용을 알고서 택한 것이니까.


“당장의 큰 유익도 없을 텐데 기꺼이 참여해줘서 고맙다.”


그는 이사진 중 자신이 가장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서른여섯 중 하나인 아우에게 화상 통신을 통해 모두를 향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회장님께서는 분명한 목적 의식과 비전 없이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낭비하실 분이 절대 아니니까요.”

“아무도 안 볼 때는 편하게 부르라니까.”


알렉시스는 서운함을 조금 머금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로빈 비서관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시는 중이잖습니까?”

“아, 이 친구는 그저 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붉은 머리의 청년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내가 잘못하는 지 아닌지를 감시하는 분이니까 동생하고 편안히 담소를 나누는 일까지 책잡지는 않겠지. 그렇죠, 로빈?”

“처음부터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전하.”


허락을 받은 알렉시스는 자세를 편히 고쳐앉은 뒤 3D 화면 너머의 동생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유타 나탈리프 브라이틀란드.

현 황제의 동생이 죽기 직전에 재혼하면서 거둬들인 양아들.

적국의 음모 공작으로 알렉시스의 숙부가 살해당한 뒤 아버지 알폰스는 두 조카를 모두를 입양하여 자기 호적에 올렸다.

친조카인 엘리어트는 물론 황가의 피가 섞이지 않은 유타까지도.

사실상 외부인이나 다름 없는 유타에게 황가는 충분히 낯선 터가 될 수 있었으나 다행히도 형제들은 그를 기꺼이 황가의 일원으로 인정해주었다.

여기에는 형제들 중 최고이자 리더인 알렉시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는 유타가 제 맏형을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여기며 모든 일에서 그를 위해 헌신하며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유타는 포스트 국가 시대의 안정적인 재구축을 맡은 커버넌트 그룹의 오백여 개의 메이저 규모 자회사 중 하나인 퀀텀일렉트로닉스의 대표로 역임 중이었다.

그룹의 총 회장이자 창립자인 알렉시스의 가족 중 이사 및 자회사 대표직을 맡은 이는 유타와 현 황후의 장남인 세르빈, 단 둘뿐.

그만큼 유능하고 출중하다는 증거이기도 했고 황실은 물론 대중과 전문가 모두에게 확실하게 인정받는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의 최대 라이벌인 의붓형제 세르빈과는 달리 기성세대 최고 현인인 황제의 유전자를 전혀 받지 않고도 그러했으니 더욱 대단하다 볼 수 있었다.


이번 마인드 퓨리파이어 프로젝트의 발빠른 완성에 밑거름을 제공한 이들도 유타의 퀀텀일렉트로닉스 소속 다섯 특수 연구팀이었다.



“축하해, 형.”


흑발과 흰 얼굴의 단정한 젊은이는 상대의 청대로 긴장의 끈을 놓았다.

곧장 알렉시스의 입가에 은은한 즐거움이 스며들었다.


“이제 목표에 조금 더 가까이 근접하셨네, 우리 형님.”

“덕분에.”

“글쎄. 우리가 해낸 일이라고는 연구팀 닦달해서 양산품 라인을 구축한 것뿐인걸. 사실상 닥터 나스루딘 마하리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성하셨지.”

“그래, 그분의 역할이야 두말 할 것도 없지. 어차피 이번 제품으로 얻은 수익은 최소한의 개발 투자 비용과 고용인 보상을 제외하고는 그에게로 돌아가도록 해뒀어. 특허권도 기꺼이 포기하시고 기술을 넘겨주셨으니 그에 합당한 보답과 예우는 갖춰야지.”

“어차피 형도 닥터도 이윤을 남길 생각은 없었잖아. 닥터는 보나마나 자기 지역 사회에 전부 기부할 테고, 형한테는 있으나마나한 푼돈이겠지. 수고한 사람들한테 보상이나 잘 부탁해.”


마인드 퓨리파이어는 단 기간에 전 세계에 배포하기 위해 생산 비용에 비해 판매 가격의 장벽이 지극히 낮은 편이었다.

오직 최소 순이익만을 남기도록 설정된 제품.

또한 균형과 내구도는 극대화하여 안정적으로 수십 년 이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두었다.

수명이 유한하여 거듭 낡는 제품을 거듭 팔아 이익을 남기는 식의 통상의 전자제품 시장 전략과는 달리, 단 한 번의 안배를 통해 한 세기를 바라보는 대국적 설계를 이뤄나가려는 의도였다.


그러다보니 막상 생산 비용을 제하고 직원들에게 상급을 뿌리고 나면 회사 자체에 떨어지는 콩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인드 퓨리파이어 프로젝트의 추가 보완 및 업데이터를 위한 최소한의 연구, 생산 비용 정도를 충당할 정도였다.

그 남는 것도 특허 소유자나 마찬가지인 나스루딘에게 돌아갈 테니 알렉시스나 유타에게는 그리 재미볼 일이 많지 않았다.


아마 보통의 대기업이었더라면 이해타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그런 전략을 취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세계 유일의 극초거대기업인 커버넌트 그룹인지라 그런 돈 장난 정도는 태연히 수행할 수 있었다.

어차피 세계 자본을 블랙홀처럼 모조리 흡수한 뒤 화이트홀처럼 그 모두를 사회 곳곳으로 흘려보내는 경제의 심장인지라 약간의 손실은 순식간에, 문자 그대로 몇 초만에 무마되고도 남는다.


알렉시스가 받을 진정한 유익은 기업의 수장으로서가 아닌 통치자로서 얻을 이익, 곧 다음 세대 인류의 변화였다.

유타는 그런 형의 숙원 사업이 성취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기에 그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5년, 아니 10년 안에 어떤 형태의 나비 효과가 발생할까?”

“흠, 유타 네 의견은 어떤데?”

“나야 자본가에 불과하니 잘 모르지. 정치 전문가인 형이 알겠지.”

“솔직히 나로서도 예견이 잘 서지 않아. 과연 이 몸이 쏘아올린 작은 불씨가 어떤 방향의 바람을 가져올지. 그저 비극만이 아니기를 소원할 뿐이지.”


나스루딘이라는 작은 판도라의 상자를 기꺼이 열어젖힌 알렉시스.

그는 그 속에 담긴 찻잔 속의 태풍을 취해 진짜 태풍으로 바꾸기를 택했다.

그 여파로 인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나름 열심히 탐구했었다.

하지만 신이 아닌 한 내일 일도 확답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10년 뒤는 나도 몰라. 적어도 오늘의 승리만은 놓치지 않을 생각이지.”


사람들의 사고력을 억누르던 인위적 족쇄가 풀리고, 겉으로 드러난 재능 이상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훈련이 보편화된다면?

분명 이전과 다른 파격적인 규모로 유능한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천재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위대한 이들이 늘어나지는 않겠지.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특색을 충분하게 잘 다룰 이들, 그리고 창조성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이들은 보편화된다.

예전 같았으면 수백만의 범재가 머리를 모아도 한 명의 천재의 가치를 대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보편형 인재가 열 이상 모이면 능히 천재를 대체하고도 남을 의미를 창출하리라.


그렇게 족쇄에서 풀려난 이들이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바꿀지, 그 반대일지는 불확실하지만.


“렉시드 형.”


미래의 전망을 두런두런 논하던 와중 유타는 조심히 주변을 살폈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라 하는 말인데 말이지.”

“비서관님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자유롭게 발설해도 돼. 이미 처음부터 마하리쉬 선생과도 다 합의한 전략이고.”


알렉시스는 여유롭게 대꾸했다.

동생이 무엇을 거론하고 싶은지 뻔히 다 아는 바였기에.


“그······, 마인드 퓨리파이어에 이식된 소프트웨어 모듈 말이야.”

“응.”


유타는 여전히 마음에 뭔가 찔리는 바가 있는지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어째서 닥터가 처음 제공한 모듈 외에 별도의 소프트웨어 모듈을 제작해서 이식한 거야?”


현재 세계 전역에 배포된 그 완제품은 하드웨어의 원리 자체로는 나스루딘이 발명한 프로토타입과 동일했다.

보다 높은 안정성, 내구성, 유지도, 호환성을 위해 신소재를 통한 개량과 보강을 거쳤을뿐, 회로의 물리적 원리는 같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사정이 달랐다.

현재 마인드 퓨리파이어 속에는 두 개의 쌍둥이 프로그램이 숨어 있었다.

나스루딘의 프로그램을 일반화한 버전.

그리고 알렉시스가 별도로 기술자들에게 부탁하여 만든 히든 모듈.

유타 휘하의 팀원들이 바로 그 모듈을 제작한 장본인이었다.

정작 설계를 지휘한 유타 자신도 그 의미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흐음, 너라면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텐데.”


알렉시스는 아쉬움을 머금은 슬픈 곡조로 휘파람을 읊조렸다.

회한과 슬픔이 옅게 양념처럼 밴, 쓰디쓴 역설적인 흥얼거림.

그는 침묵의 고배를 목구멍 뒤로 넘기며 독백하였다.


“우리는 같은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였으니까. 그래. 나도, 너도, 그리고 엘리어트도. 모두 옛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이에 유타는 동년배의 형제 엘리어트 생각이 떠올라 수심에 잠겼다.


열두 형제 가운데 원래부터 유타와 호적상으로 형제였던 이는 엘리어트뿐.

지금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황제 폐하는 원래 유타와 엘리어트의 큰아버지.

두 형제는 본래 알렉시스의 숙부 레미온 카르타크 브라이틀란드의 소생이었다.


엄밀히는 엘리어트만이 레미온의 친자식이었고 유타는 아니었다.

유타의 친어머니인 소피아는 레미온과 재혼하기 이전에 이미 남편과 사별한 뒤 외아들 유타와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레미온과 소피아 모두 사별로 일찍이 홀몸이 된 이들이었고 둘은 열렬한 연애를 거쳐 재혼한 뒤 유타, 엘리어트와 더불어 한 가족이 되었다.


유타는 그 시절의 연합을 행복의 추억으로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엘리어트는 자신을 썩 달갑게 반기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도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하셨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셨지.


그러나 그들의 어린 시절은 냉전, 분쟁, 불행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언약으로 보호받는 황가라고 해서 안전 지대는 아니었다.

가족을 만나는 소박한 기쁨조차도 오래 누리지 못할 사치였을까.


레미온과 소피아는 재혼한 지 몇 달만에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형은 황가와 브리튼의 모든 원수들에게 복수할 생각이야.’


큰형님은 어린 엘리어트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기꺼이 품에 안았고 그 맹렬한 분노를 포용하였다.

그는 가족들의 적들을 향한 증오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그리고 사적 복수심이 아닌, 순수한 공의의 분노로 그것을 변환하였다.


‘아직 원수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형도 멈추지 않겠지.’


알렉시스의 그 심정이야 너무도 잘 이해되었다.

유타 자신도,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근본적 원수인 그 망령들이 파멸되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어째서란 말인가.

왜 하필 이런 원리로 공략해야 한단 말인가?


“굴종의 종교, 무함마드의 유산을 소멸하는 작업은 일종의 연습 게임이야.”


알렉시스의 흥얼거림은 이제 서서히 통쾌함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물을 상대로 효과가 입증되면 그 다음 사냥감은 유물사관(唯物史觀)이야, 유타. 기대해도 좋아.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겠지?”

“렉시드······.”


유타는 뭔가를 말하고 싶었으나 미련을 더 내뱉지 못한채 목구멍 속의 메아리를 삼켰다.


“내가 너희를 쓰라림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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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치 목사의 아들 (2) 23.11.25 2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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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AI 공방, 팀 아르다 (3) 23.11.14 28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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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도의 아들들 (2) 23.09.29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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