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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성

인형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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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뭉게구름성
작품등록일 :
2019.04.29 14:28
최근연재일 :
2021.05.12 12: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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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추천수 :
59
글자수 :
223,527

작성
21.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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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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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나무의 이야기 - 기억의 잔, 꿈의 상자, 상자의 꿈

[도시전설이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 인형으로 만들어 준다는.]




DUMMY

기억의 잔


노인은 눈을 부볐다.


침침한 눈에서 무엇인지 모를 이물질이 빠져나가자 시원한 듯 눈을 꿈뻑거렸다.


"제페토."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진짜 제페토라도 될 셈인가 보네?"


널부러져 있는 나무 조각들과 제멋대로 나풀거리는 톱밥들 사이로 코가 긴 인형조각이 보였다.


"아. 로이 자네 왔나. 다들 제페토라고 하길래 한번 만들어 봤지."


노인을 찾아 온 또 다른 노인은 그의 오랜 친구였다.


대학 시절 같이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던 사이였다.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번에 제자가 비싼 술을 사왔어. 본인은 얻어왔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노인은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고 멋드러지게 만든 유리잔을 꺼내왔다.


"잔이 참 마음에 들어."


인형을 만들던 노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리잔을 자랑하듯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려댔다.


로이는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옅은 주황빛의 술의 색이 짙어지며 갈색을 띠게 되었다.


"빈센트."


로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빈센트는 로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어떤 인물에 대하여 말을 하려는 것을 알았다.


"벌써 40년도 넘은 일이야. 이젠 잊어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야."


빈센트의 선반에는 수많은 종류의 약이 널브러져 있었다.


기침약, 혈압약, 두통약, 수면 유도제.


그리고 항 우울제.


"내 의지도 아닌데 무얼."


그는 말끝을 흐렸다.


손에 든 술잔의 얼음만이 카랑, 카랑 하며 소리를 내댔다.


로이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이마를 짚었다.


"자네는 학자였지. 그래서 호기심과 탐구심이 왕성해. 묻겠네. 지금은 어떤가?"


빈센트는 로이의 의중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탐구심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인지 예전만은 못하지. 그런건 갑자기 왜 묻는 겐가?"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방법이 있다네. 망각 같은 것은 아니야. 처음부터 없던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지. 때문에 부작용도 있어. 기억과 기억사이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네."


"그래서?"


"자네가 자네의 탐구심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고 하지않는다면 영원히 지울 수 있다는 얘기야. 캐서린을."


빈센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캐서린.


단 하나 뿐이였던 여인.


로이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기억의 잔이라는 물건이라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억을 지운다기보다는 퍼내는 거야. 퍼내서 잔에 보관하는 거지. 편리하지만 문제점이 있어. 자네와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된다면 기억은 주인에게 돌아가려 하게 될거야. 잔에 담긴 내용물을 바닥에 흘리거나, 마셔도 모든 기억이 돌아오게 된다네. 다른 사람이 마신다 해도 기억은 자네에게 돌아가게 돼."


"그런 물건은 언제 얻었나? 뇌 과학 논문이라면 항상 보고 있었는데."


"더 이상 묻지말게.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니니. 자네의 지금 궁금증을 참을 줄 알아야 기억을 다시 찾는 일도 없지 않겠는가."


로이는 브랜디 스티프터 잔을 꺼냈다.


정황상 그것이 기억의 잔이라 불리는 물건일 것이다.


빈센트는 작고 아름다운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잔에 내 기억을 담고, 잘 관리한다면 캐서린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긋지긋한 두통과 불면증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빈센트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캐서린의 아름다운 미소가 다시 생각났다.


나이를 먹고 평생을 공부해온 전공도 잊어가는데 그녀의 얼굴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져만 간다.




그 날 저녁.


로이는 밤새 빈센트와 술잔을 기울였다.


동이 틀 무렵, 빈센트는 양손으로 기억의 잔을 꼭 쥐고 기억을 담아냈다.


마치 고급 술을 담은 듯 영롱한 빛을 내며 향긋한 향 까지 풍겼다.


담겨진 기억이 아름다워서 인지, 본래 기억이라는 것이 그런 형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빈센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술잔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끔찍한 무엇인가라는 기억만 남았다.


그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로이는 그것의 내용물이 흐르지 않게 랩으로 꽁꽁 싸맸고 작은 나무 상자에 넣어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것을 다락에 올려두고 절대 빈센트가 찾을 수 없도록 꽁꽁 숨겨두었다.


혹시라도 빈센트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호기심을 가지지 않도록, 한 메모를 붙여두었다.


'촉수 엄금. 취급시 반드시 위험물 관리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동행할 것.'


-----------------------------------------

꿈의 상자, 상자의 꿈


몇 해전, 잃어버린 물건이 있었다.




분명 집안에 있는 것이 분명할 터인 그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틈만 나면 대청소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한톨 없을 지경으로 온 집을 헤집어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와 내가 처음 사랑을 약속한 날짜가 새겨진 머리핀이였다.


그녀가 떠나던 날, 함께 보내지 않았으니 이 집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작년이였던가, 혹시 착각인가 싶어 그녀가 살던 집에도 가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까지도 그런 머리핀은 본적이 없다 말했다.


기왕 온 김에 식사를 하자고 했다.


거부했지만, 그녀와 비슷한 향기가 나는 그 집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저렴한 맥주를 따라 둔 채 밤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부터 찍은 사진 앨범을 보며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유치원 시절 부터 초등학교 학예회까지도 특유의 맑은 고음으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고 했다.


중학교 이후 크게 몸이 아픈 이후로, 바쁜 학업과 맞물려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나를 만난 후에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갑자기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거야. 15년 가까이 안그러던 애가. 기분 좋은 일 있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네 얘기를 하더라."


그녀의 언니와 나는 동갑내기였다.


때문에 만나면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었다.


"집에서 천방지축 제멋대로 하던 애가 부끄러워 하며 요조숙녀 흉내를 내더라고. 어이가 없더라."


알지 못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더 그녀와 가까워 진 느낌이였다.


"키스가 능숙해서 조금 언짢았었죠. 굳이 손으로 리드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어머니가 몰랐다는 표정을 짓자 언니가 크게 웃었다.


"엄마, 걔 그래도 남자 좀 사겨 봤었어. 나한테 들킨 거 말고도 더 있을걸? 우리 엄마가 그래. 너가 처음인줄 알아."


"드라마 같은 거에서 배웠을 수도 있죠."


어느 덧 맥주 한 잔을 모두 비우게 됐다.


"가을이가 가져간거라고 생각해."


홍조를 띈 얼굴로 그녀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가 너무 좋아서. 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 저승길로 가져갔다고 생각해. 너무 애쓰지 마. 자기 물건 잃어버리는 적 없던 애니까. 잘 챙겨갔겠지."


어머니는 떨어지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고, 언니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예. 혹시라도 찾게 되면, 언제가 됐던 꼭 한번만 보여주세요."


찾지 못한 머리핀의 무게 만큼 눈물을 흘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게 됐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이성에게 인기도 없는 내가 그녀에게는 무엇이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것일까.


그녀 같은 눈빛으로 날 보는 이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시절, 누군가 우리에게 말했다.


서로를 같은 눈빛으로 보고있다고.


아마도 나 또한, 그때 같은 눈빛으로 누군가를 본 적이 없었겠지.


오늘따라 유난히, 그 눈빛이 그리웠다.


그녀의 이름과 같은 계절이 지나가고 내 미지근한 입김이 눈에 보이는 계절이 오면 마치 그녀를 한번, 두번 더 보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리듯 아파온다.


가을아, 잘 지내고 있지?


어김없이 너가 떠났던 계절이, 그 날이 돌아왔어.


나는 거짓말 조금, 아니 많이 보태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내가 준 머리핀은 꼭꼭 잘 하고 다니고 있니?


내가 미련하게 너 보고싶어하지 말라고 가져갔던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냐.


아무 소용 없더라.




그녀의 묘에는 작은 꽃이 한 다발 있었다.


어머니나 언니가 다녀간 것이겠지.


생전 그녀가 쓰던 작은 물건을 모아둔 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문득 어떤 물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상자의 꿈'이라고 부르며 내게 물려주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상자안은 비어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자의 용도는 따로 있었으니.


아버지는 그 상자를 머리 맡에 두고 꿈을 꾸면, 꿈 속에서 본 물건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잠에서 깬 후 상자를 열어보면 꿈에서 본 모양 그 물건이 있다고 했다.


작은 패물함 정도의 크기라서 큰 물건을 가져오지는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 상자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잃어버리긴 했어도 세상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머리핀과 똑같은 물건을 새로 만드는 것 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녀가 쓰던 물건도 아닌데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몇날 며칠을 상자를 보며 고민을 하던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아니, 그냥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저, 그녀의 물건이 보고싶다고.




그 후로 그녀의 꿈을 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같은 머리핀을 찾아 보고, 그 머리핀을 하고 다니던 모습을 계속해서 되뇌였다.


괴로운 시간들이였다.


잊으려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떠올리려 애쓴 적은 없기에.


가볍게 생각했던 것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였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비벼 닦으며 참고 견뎌야했다.


눈가가 거칠거칠하게 헐었을 때 쯤, 나는 마침내 그녀를 꿈속에서 보게 되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였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눈빛이였다.


너무도 따뜻한 사랑이였다.


하찮더라도 내 목숨을 줄 테니,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이니 그녀를 돌려달라고 신에게 빌고 싶었다.


한번만 그녀를 안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5년전, 별것도 아닌 머리핀을 손에 쥐고 흔들며 행복해하던 그 모습을 다시 보는 심장은 마치 생애 마지막 고동을 하듯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때의 감촉 그대로였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을 잡아보았다.


꼭 끌어안아 보았다.


입맞춤을 해보았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그때 그대로였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던 머리핀을 달라며 손을 펴보았다.


"안돼, 이제 내꺼야!"


나는 웃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 머리핀을 부드럽게 쥐어 가져왔다.


"한번만 보고 돌려줘야돼. 오빠. 미안해."




눈을 떴을 때, 내 베개는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던 나는, 부리나케 상자의 기억을 열어보았다.


이것은 무슨 기적인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녀의 머리핀이 들어있었다.


나는 가슴을 치며 울다, 머리핀을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울다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샜다.


그리고 며칠 동안 머리핀을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그녀의 집을 찾았다.


"찾았어요. 장농 깊숙한 곳에 있더라구요. 아마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떨어져서 깊이 들어간게 아닐까 싶어요. 묘비 앞에 두려구요. 가을이랑 약속 했었거든요."


------------------------------------------


'상자의 꿈은 꿈에서 본 내용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물리 법칙을 벗어나 기적을 만드는 마나 생명체, 즉 나무의 아이다. 같은 나무의 아이인 꿈의 상자는 원하는 꿈을 꾸게 해주는 생명으로서, 상자의 꿈과 같이 쓴다면 세계수의 균형을 위협할 물건이 될수 있다. 꿈의 상자(혹은 꿈 맴돌이라고도 부른다.)는 개체수가 많기 때문에 완벽한 격리가 어려워 세계 단위로 격리 했지만 상자의 꿈은 개체수가 적어 격리가 수월하다. 현재 현자의 도서관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함에 넣어 보관중이다. -기록자 북 포레스트'


"영감님, 그럼 저 친구가 가지고 있는 건 뭡니까?"


핀이 망원경으로 보고있던 상자의 꿈을 가리켰다.


"저것도 상자의 꿈으로 만들어진 물건인데, 만들 수 있는 물건도 한정적이고 그리 위협적인 물건이 아니라서 강제로 격리하지 않았지. 강제 격리가 필요한 물건이 아니고서야 신들도 억지로 빼앗으려 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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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인형의 숲은 여기까지 입니다. 21.05.12 56 0 -
54 황혼 Outro - 여명 21.05.12 23 2 4쪽
» 나무의 이야기 - 기억의 잔, 꿈의 상자, 상자의 꿈 21.05.11 23 1 13쪽
52 인형의 숲 - 다툼, 나무의 이야기 - 흰둥개 21.05.10 22 1 9쪽
51 황혼 - 7번째, 황혼 21.05.10 26 1 8쪽
50 인형의 숲 - 그들의 세계, 가지고 싶은 사람 21.05.06 15 1 8쪽
49 황혼 - 충돌, 거흉 21.05.05 20 1 7쪽
48 인형의 숲 - 산행, 노랫소리 21.05.04 21 1 7쪽
47 황혼 : 전면전 21.05.03 18 0 8쪽
46 인형의 숲 - 극야, 서커스 21.05.02 19 1 6쪽
45 황혼 : 신들의 대화, 돌입 21.05.01 17 1 8쪽
44 인형의 숲 - 풍랑소리, 500년이 넘도록 21.04.30 20 1 7쪽
43 5부 메인 스토리 황혼 : 여행자 롬, 마일즈의 새 몸 21.04.29 20 1 7쪽
42 5부 시작 - 인형의 숲 : 행방불명 21.04.28 31 1 7쪽
41 기사 - 무덤가의 기사, 공방의 기사 : 못다한 이야기들 21.04.27 22 1 10쪽
40 기사 - 마왕(2) 21.04.26 30 1 8쪽
39 나무의 이야기 - 기억상자, 자기애 21.04.25 28 1 6쪽
38 기사 - 마왕(1) 21.04.24 21 1 8쪽
37 기사 - 이도술 21.04.23 22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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