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뭉게구름성

인형의 숲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뭉게구름성
작품등록일 :
2019.04.29 14:28
최근연재일 :
2021.05.12 12: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454
추천수 :
59
글자수 :
223,527

작성
21.05.04 12:00
조회
21
추천
1
글자
7쪽

인형의 숲 - 산행, 노랫소리

[도시전설이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 인형으로 만들어 준다는.]




DUMMY

산행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나무였다.


나는 죽었구나.


가장 먼저 한 생각이였다.


그랬다.


인형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그의 사념이였다.


그러니까 인형은 살아있던 인간이 아니다.


인형은 몸을 일으켜 걸었다.


눈부실 만큼 아름답지만 마치 다른 세계 같은 숲속을 홀로 가로 질렀다.


문이 보였다.


전에 설명했던 문이 저것이겠지.


문을 열고 나서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인형사라고 소개했었다.


인형의 원본이 죽기전에 그를 찾아갔었다.


할 일이 있으니 내가 죽고나거든 인형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인형은 주변 사념에 약해. 대충 코팅은 했지만 지금 가려는 곳도 사념이 많은 곳이잖아? 그러니 서두르는 게 좋을거야. 자신을 잃기전에."


이상하다.


그는 내가 죽기전까지만 하더라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었는데.


아, 이젠 인형이라서 그런 건가.


나는 바로 움직였다.


목적지는 네팔.


수 많은 사람들이 여신을 만나고자 몸을 내던지는 곳.


수 많은 사람들이 산이 된 곳.


히말라야.


별 다른 장비는 필요없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데 필요한 장비만 있으면 된다.


텐트라던지, 식량이라던지 불필요한 장비는 없어도 된다.


그런 몸이 되었으니까.


이곳에는 대원 5명이 잠들어 있다.


30년이 지났다.


3명의 위치는 위성사진으로 파악을 해두었다.


일단 그들부터 데리고 오자.


나머지 두명은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야 한다.


험난한 산세에 가려져 사진 파악도 힘든 곳이다.


더욱이 그때 나는, 아니 내 원본은 제정신이 아니였으니 그 둘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3명을 모두 데리고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산병의 위험도, 추위의 위협도 상관 없기에.


낮이고 밤이고 계속 할 수 있는 산행, 지치지 않는 체력.


한가지 힘든 점이 있다면 끊임없이 다른 이의 기억이 흘러 들어온다.


인형사가 말한 사념이라는 것이겠지.


그들이 죽기전 마지막으로 느꼈던 감정과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가족, 친구, 애인.


"이제 산에서 내려갈 시간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도 30년이면 충분히 보셨겠지요. 설마 아직도 성에 안 찬것은 아니지요?"


시신을 좋은 관에 넣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30년만에 집으로 가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두명.




10년이 걸렸다.


눈을 파내려가기도 하고 깊은 구멍에 빠져 수년을 허비하기도 했다.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따뜻해져 눈이 녹은 날, 눈사태가 일어나기전 운 좋게 나머지 두명을 발견했다.


인형의 본래의 목적을 잊고 그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산을 올라가려 했다.


사념의 오염이 너무 많이 진행된 탓이다.


원본의 기억이 아닌 다른 기억이 자꾸 방해를 한다.


그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두명의 시신은 40년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자식도 죽고 없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것이다.


그들의 손자가 시신을 맞이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래도 감사한다고.




"산에 올라, 아니 내려와서. 일이 끝났네. 끝입니다. 정상을 정복했으니 내려가야지. 곧 구조대가. 이제 할 일은 다 했네, 습니다."


타인의 기억이 자꾸 말문을 막는다.


다행스럽게도 핀을 찾아가는 것은 성공했다.


이제 원본의 혼도 편히 쉴 수 있겠지.

------------------------------------


노랫소리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길가를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커다란 저택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한 눈에 경제력을 가늠하기 힘든 집에는 노인 한명이 혼자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사를 돕는 도우미가 둘, 그의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하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일찍 퇴근한다.


집 주인의 지시 였다.


모두가 퇴근을 하면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노인은 커다란 거실에도, 서재에도, 침실에도 없다.


노인은 불면증과 싸우다 새벽 선잠이 들기 전 까지 어떤 방에 틀어박혀 있다.




은은하게 햇볕이 들고 공기가 잘 통하는 저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쾌적한 방.


그곳에는 인형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인이 저택에 홀로 남아 그 방에 들어갔다.


그는 신중하게 인형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 중 하나의 앞에 멈춰섰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가 듣고 싶군."


보니 테일러를 꼭 닮은 인형이 노래를 시작했다.


노인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노래를 들었다.




"밴드를 했었지요."


노인이 핀을 처음 만났을 때 였다.


"세계적인 밴드가 되자고 열심히 연습만 할 때였지."


그의 첫 의뢰는 존 바에즈였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반전을 노래하던.


"운도 없었거니와 우리는 재능이 없었어. 하나 둘 제 살길 찾아가기 시작했지."


노인은 잠시 옛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아내가 베이스였어. 지금은 이혼하고 소식도 모르지만. 가끔 옛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럴 때 마다 그 시절 연습하던 곡, 듣던 곡 들을 다시 꺼내 듣곤 하는데 옛날 노래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단 말이지."


마일즈가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차를 내어왔다.


"오. 이런 것인가?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영업 비밀입니다."


핀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나도 사업가니까 이해한다네. 나도 음악적 재능보다는 사업적 재능이 뛰어난 모양이였지요. 음악을 할 때와는 달리 사업은 승승장구였어. 시대를 잘 만난 탓도 있긴 했지."


노인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차를 마셨다.


"이게 무슨 차죠? 향이 특이한데? 한번도 못 먹어본 차군. 색도 그렇고. 에메랄드 빛이군!"


그는 찻잔을 들여다보며 놀라워 했다.


"이 세계의 물건은 아닙니다. 달맞이 연청차 입니다. 맛이 괜찮죠?"


"그렇네요. 아, 언제 다시 오면 될까요?"


"일주일 뒤에 오시면 됩니다."




그 후로 노인은 종종 핀을 찾아갔다.


그렇게 만든 인형이 어느새 열두개였다.


그는 그날 그날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 들었다.


수십년씩 지난 노래들이 대부분이였다.


노인은 옛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날.


처음 아내를 만난 날.


처음 사랑한다고 말한 날.


처음 자식이 생긴 날.


처음 자식을 떠나 보낸 날.


"그만."


노랫소리가 멈추었다.


"오늘은 못견디겠군."


그날따라 노인은 향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느껴졌다.


그리워서 노래를 들은 것인데, 노래를 들을 수록 더욱 그리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노랫소리가 들리던 방은, 한 노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쉰 목소리로 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혼 했던 아내가 오늘 죽었다고 한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마다 추억이 함께 쏟아져 찬 바닥에 툭툭 떨어져간다.


어디선가 존재 한다는 것 만으로도 그리워 하며 살아갈 수 있던 고마운 사람.


이제는 영원한 그리움이 되어버린 사랑한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형의 숲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새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Cave 21.08.22 12 0 -
공지 인형의 숲은 여기까지 입니다. 21.05.12 56 0 -
54 황혼 Outro - 여명 21.05.12 23 2 4쪽
53 나무의 이야기 - 기억의 잔, 꿈의 상자, 상자의 꿈 21.05.11 23 1 13쪽
52 인형의 숲 - 다툼, 나무의 이야기 - 흰둥개 21.05.10 22 1 9쪽
51 황혼 - 7번째, 황혼 21.05.10 26 1 8쪽
50 인형의 숲 - 그들의 세계, 가지고 싶은 사람 21.05.06 15 1 8쪽
49 황혼 - 충돌, 거흉 21.05.05 20 1 7쪽
» 인형의 숲 - 산행, 노랫소리 21.05.04 22 1 7쪽
47 황혼 : 전면전 21.05.03 18 0 8쪽
46 인형의 숲 - 극야, 서커스 21.05.02 19 1 6쪽
45 황혼 : 신들의 대화, 돌입 21.05.01 17 1 8쪽
44 인형의 숲 - 풍랑소리, 500년이 넘도록 21.04.30 20 1 7쪽
43 5부 메인 스토리 황혼 : 여행자 롬, 마일즈의 새 몸 21.04.29 20 1 7쪽
42 5부 시작 - 인형의 숲 : 행방불명 21.04.28 31 1 7쪽
41 기사 - 무덤가의 기사, 공방의 기사 : 못다한 이야기들 21.04.27 22 1 10쪽
40 기사 - 마왕(2) 21.04.26 30 1 8쪽
39 나무의 이야기 - 기억상자, 자기애 21.04.25 28 1 6쪽
38 기사 - 마왕(1) 21.04.24 21 1 8쪽
37 기사 - 이도술 21.04.23 22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