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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연필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선수가 야구궤적을 숨김

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물연필
작품등록일 :
2023.09.12 11:12
최근연재일 :
2023.09.29 11:4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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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2
추천수 :
642
글자수 :
134,930

작성
23.09.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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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확장된 현실

DUMMY

전광판도 없는 강변 둔치 운동장.


잔디가 안 깔린 맨땅이라 흙바람이 일었다.


휘리릭~


황야의 결투를 벌이는 게 아니다.


돌출한 마운드도 없는 맨땅에서, 투수가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에잌!”


슉-


타자 스윙!


딱-


팍!


“젠장!”


포수 앞에 튕겨 굴러가는 공.

배가 나온 38세 타자가 씰룩거리며, 나름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헉, 헉!”


유격수 땅볼 아웃~....이 아니라, 세이프!

폭투된 송구를 잡느라 1루수 발이 떨어지고 말았다. 간신히 잡아서 단타 실책이지, 빠졌으면 2루타다.


세이프를 외치는 심판도 포수 뒤에 주심 1명 뿐.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엘리트 야구가 있는가 하면, 여기처럼 직장인들이 취미로 하는 사회인 야구가 있다.


팀명이 ‘일타쌍피’이고, 깃발엔 똥 쌍피 화투장 그림이 그려져 있다.


취미라지만, 생업보다 더 열정적으로 뛰는 게 사회인 야구단 선수들이다. 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난(강타, 22) 타석에 들어서려고 배트 손잡이에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를 칙~ 뿌렸다.


내 말을 들은 지역 로터리 클럽 부회장인 구단주 겸 감독(45)이 휘둥그런 눈으로 되물었다.


“진실이여? 증말 핵교(학교) 때려치는겨?”

“네.”

“정말 프로 진출하려는겨?”

“넵!”

“흠, 내가 말이여, 조카 같아서 하는 말인디, 남들은 억만금을 줘도 못 가는 그 좋은 대학을 관둔다고? 그건 증말 아닌 거 같은디?”

“...”

“오라는 데도 정해진 바가 없잖여? 엔간하면 핵교 댕기면서 트라이해보지 그랴? 그러다 덜컹 떨어지면 어쩔껴?”

“...”


난 카이스트대학 ‘바이오 및 뇌공학부’ 3학년이다. 부전공은 경영공학.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AI 기기와 연동하는 수업을 받으며, 장차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본래 꿈은 공학도가 아니다. 형을 따라 야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형은 청소년 국가대표 투수 출신으로 프로구단에 0순위로 선발되어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던 국내 최고 선수였다.


내 우상인 형. 그런데 그 형이 내 꿈을 막았다.


“넌 공부해! 운동은 오래 못해. 야구는 나로 충분해. 편하게 살아. 홀어머니도 생각해야지.”


4번 타자인 내 차례다.


우리 팀 선수들이 외쳤다.


“젊은 피, 파이팅!”

“미친 타격감을 보여줘!”

“콘택충 파이팅!”


이 팀의 에이스는 나다.


평균나이 38세인 팀에서 단지 22살의 팔팔한 청년이라서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스탯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타율이 무려 6할 2푼 7리. 치면 안타다. 그래서 별칭이 콘택충.

게다가 투수까지 겸업한다.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 바뀐 상대 투수의 스탯 창이 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 이닝수: 180

> 승률: 0.55

> 평균자책점: 4.30

> K/9: 4.8

> BB/9: 5.1

> HR/9: 1.1

> WHIP: 4.57

> WAR: -

> 내구력: 57%

ㅡㅡㅡㅡㅡㅡㅡㅡ

*K/9: 9이닝당 탈삼진 허용 수. 높을수록 좋다.

*BB/9: 9이닝당 볼넷 허용 수. 낮을수록 좋다.

*HR/9: 9이닝당 홈런 허용 수. 낮을수록 좋다.

*WHIP: 이닝당 출루 허용 수. 낮을수록 좋다.

-------


상대 투수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음, 쫄았네.


직전 타석에서 내가 2루타를 친 걸 목격했으니까.


이 투수의 능력치는 이랬다.

ㅡㅡㅡㅡㅡㅡㅡ

> 제구: 86

> 구위: 89

> 체력: 92

> 직구: 95

> 변화구: 78

> 스킬: 강철 멘탈

ㅡㅡㅡㅡㅡㅡㅡ


아무래도 사회인 야구 선수들의 능력치는 기준인 100을 넘기 어렵다.

타자를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멘탈이니, 내겐 고마울 뿐.


약속한 듯, 외야수들까지 내려와 압박 밀집 전진 수비 시프트 모드.


난 수비수 사이의 빈 곳을 쓱 확인했다.


아무리 밀집해봐라. 사람보다 타구가 빠를 순 없지.


투수가 포수와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저어가며 부산스럽게 사인을 주고받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다.


야구를 보는 내 시각은 다른 선수들과 한참 다르다.


야구가 ‘운동’이지만, 공학도에겐 ‘물리 법칙’이다.


공학도가 보는 야구의 정의는 이렇다.


투수의 투구 궤적과  타자의 회전 궤적이 충돌하는 타이밍의 예술.

궤적을 가진 두 혜성이 한 점에서 충돌하는 거다.


둥근 방망이로 둥근 공을 치는 고난도 스킬 스포츠에서 타자는 타이밍을 맞추려 하고, 투수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으려 한다.


공과 방망이의 접점은 단 하나의 점. 면적이 아니라 한 점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얼마나 타점에 전달하느냐에 타구의 질이 달려있다.


타격의 물리학은 이렇다.


(프로야구 기준으로) 타자의 플레이트에서 포수의 홈플레이트까지 18.44m에서 144㎞/h(90마일)으로 날아오는, 약 0.42초 동안의 공을, 타자가 10m(0.25초 안팎)지점에서 궤적을 판단하고 0.2초의 스윙 속도로 타격하는 운동이다.


눈썰미 있는 독자는 이미 계산을 끝냈겠지만, 투구시간이 0.42초이니 구질을 눈팅하고 스윙하는데 0.45초가 걸려, 0.03초가 늦다.


물리적 계산으론, 헛스윙이 정상이다.

구속 160km/h가 넘어가면 0.4초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투구 속도와 안타 맞을 확률이 반비례하는 거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게도 타자가 투수의 공을 때려 맞추는 게 현실이다.

이 기이한 현상은 투수의 투구 패턴을 분석하고 훈련을 통해 예측 스윙을 하기 때문이다.


예측 스윙! 여기에 답이 있다는 사실.


눈으로 타격(히팅)하지 말고, 배트의 스윙 궤적에 공이 와서 맞는 원심력 스윙, 인-아웃 스윙을 해야 하는 이유다.


물리학의 한계를 확장하는 게 바로 인간의 스포츠다.


투수, 와인드 업!


내게 0.42초는 구질을 판단하고 스윙까지 하는데 넉넉한 시간이다.


XR의 궤적 시뮬레이션과 동체시력 때문이다.


검사결과 내 동체시력(=반응속도)은 상위 0.001%이다.


3m 거리에서 쏜 모형총기 비비탄알을 원더우먼처럼 다 막아낸다.


형보다 신장이 8cm 작은 178cm이지만, 범접불가의 동체시력을 갖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동체 시력은 야구를 하지 않고, 공부했기 때문에 장착된 능력이란 사실.


나의 우상인 형을 따라서 야구하겠다고 떼를 쓰자, 어머니와 형은 날 공부시키겠다며 속독 학원, 암산 학원에 보냈다. 전국 속독 대회, 암산 대회에서 1등 하면 야구 시켜주겠다고 꼬시면서 말이다.


불가능한 미션이었지만, 야구를 하겠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미친 노력에 능력이 발휘되었다.


1분에 2000자를 넘게 읽었고, 마침내 200페이지 소설을 3분 30초 만에 독파하게 되었다.


남들 커피 한 잔 마실 때, 난 책 한 권을 휘리릭 뚝딱 통독했다.


본래 시력이 1.5로 좋았지만, 속독으로 2.0이 훌쩍 넘어가 측정 불가.


전국 독후감 대회를 휩쓸고, 성적도 전국 상위 0.1%에 들었다. 국내 어느 대학이든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다. 한마디로 공부 천재다.


형이 야구로 받은 상패, 트로피보다 내가 더 많아졌다.

형이 칭찬해주니 난 춤을 췄다.


마침내 암산 대회 전국 1등. 속독만 1등 하면 야구한다!


하지만 속독 대회 결승에서 덤벙대는 바람에 중요 단어를 잘못 써서 1등을 놓치고 2등.


난 울분을 삼켰지만, 어머니와 형은 만세를 불렀다. 이 자식이 정말 1등 하면 어쩌지, 하며 마음 졸였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 숙명이었나 보다.


난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바이오 및 뇌공학부’를 전공으로 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서는 못 하지만 확장현실(XR)에서는 얼마든지 야구를 즐길 수 있으니까.


난 입학하자마자, 교수님과 선배들과 토론하며 XR에서 실현되는 야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투수가 와인드업하며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으로 공의 솔기(실밥)를 쥔 그립이 내 엄청난 동체시력에 살짝 노출되었다.


커브 그립!


어떤 투수는 그립이 드러날까 봐 글러브로 손 그립을 가리기도 하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동작이다.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에서 순간적으로 실밥을 쥔 손가락의 모양을 포착할 수 있는 동체시력의 보유자니까.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에서 구종, 투구의 높이와 각도 파악을 완전히 끝낸다.


그러니 구종을 파악하는 0.25초를 이미 벌고 들어간 것이다.


내가 만든 XR의 궤도 방정식에 릴리스 포인트의 정보를 대입하면, 동기화된 XR에서 다음과 같은 오렌지색의 투구 궤적의 뮬레이션이 눈 앞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촤라랑~

ㅡㅡㅡㅡㅡㅡㅡㅡ

> 구종: 밋밋한 커브

> 구속: 135km/h

> 궤적: 하우(下右)

ㅡㅡㅡㅡㅡㅡㅡㅡ


9칸으로 분할된 보더라인 하단 오른쪽으로 쭉 뻗은 오렌지색 궤적.


야구 어플 게임에서도 이런 투구 궤적이 나타나지 않는데, 현실에서 투구할 길이 선명하게 나타나니, 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의 범접불가의 동체시력과 암산능력이 없다면 이 XR시뮬레이션은 작동할 수 없다.


가상현실 게임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지금 상대하는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상대 타자가 어떤 스윙을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현실은 프로그래밍 되어있어 있지 않은 까닭이다.


현재 던질 투구의 정보를 입력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궤적 시뮬레이션을 작동할 수 없다.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에서 포수 미트에 꽂히는 0.42초 동안, 내 동체시력으로 릴리스 포인트에서 정보를 파악해 궤적 방정식에 대입해야 XR의 궤적 시뮬레이션이 실현되는 메커니즘이다.


궤적이 실현된다고 끝이 아니다. 그 궤적대로 치고,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아닌가.


XR 게임에서는 유저가 터치 한번에 계산된 프로그램이 투구나 타격을 자동 실행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이 직접 던지고, 쳐야 한다.

현실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니까.


시뮬레이션 궤적을 공략하려고, 난 현실 경기에서 통하는 가장 효율적인 투수의 투구 폼과 타자의 타격 폼을 연구했다.


물론 머리 팽팽 돌아가는 공학도답게 처음부터 물리학적 메커니즘으로 접근했다.


메이저리그 수위 타자, 투수의 영상을 분석해, 하체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상체를 회전시켜 손끝과 배트로 가속 이동시켜 발산하는 메커니즘을 상세하게 연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타자로서는 콘택트 컨트롤 배팅이고, 투수로서는 범접불가의 흑마구다.


지금 내 눈에 펼쳐진 시뮬레이션 궤적의 오차는 미트에 꽂힐 때 공 1개 미만.


일반인이라면 스윙 반응 시간이 충분치 않지만, 릴리스 포인트에서 궤적이 보이고, 스윙 속도가 0.15초 미만인 내 특유의 콘택트 스윙 비법으로 대처하면, 인 존에서 콘택트율이 95%로 쑥 올라갔다. 이중 안타 비율이 66%.


이제 구종과 각도 정보를 파악했으니, 나머지 변수는 실제 공의 속도(회전수)와 공 끝의 변화다.

이게 오차범위가 된다.



투수가 손목 스냅으로 공을 넘겨 뿌렸다.


슉~


잠시 언급했지만, 내 스윙의 특징은 간결한 콘택트 스윙이며, 컨트롤 배팅이라는 것.


콘택트 스윙은, 풀 스윙과 체크 스윙의 절반 정도의 궤적으로 배트를 돌리며, 배트의 히팅 포인트 확률 최대로 넓어지도록 부챗살처럼 수평으로 휩쓰는 타격이다(레벨 인-아웃 스윙).


투수의 공이 포수까지 도달하는 충분한 시간에, 난 풀스윙으로 장타를 노리는 대신, 공의 타격 방향을 컨트롤 배팅해서, 조금 전 봐둔 밀집 수비수들의 빈틈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타를 치면 뭐하나? 잡히면 아웃인걸. 타격은 결국 타자는 안타가 목적 아닌가.


간결한 수평 스윙으로,


붕~


따악-


배트 중심에 맞은 공이 강하고 낮게 날아가 1루수와 베이스 사이를 뚫고 튕기며 라인 밖으로 벗어났다.


“훼야!”


우익수가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담장을 맞고서야 멈추는 공.


수비수의 공간을 찌르는 얄미운 타격으로 장타가 되었다.


우리 팀 더그아웃에선 환호가 터졌다. 그들은 동료 선수가 아니라 내 팬클럽이나 다름없다.


“우아~ 폼 미쳤다!!”

“배팅 컨트롤 쥑인다!”

“히야~ 공이 정확히 빈 곳으로 찾아가네. 배팅 제구력도 되는 거야?”

“저 놈이 바로 배팅 제구력의 창시자야!”

“홈런만 치면 대끼린데.”

“그러게. 투구까지 마구를 던지니까 홈런만 잘 치면 오타니를 능가할 거야.”

“세상 참 불공평한 거야. 공부 천재에 야구 천재가 말이 돼? 조물주가 실수로 재능을 몰빵한 거야.”

“오늘도 그 흑마구 재능을 보고 싶다!”

7.jpg




추천 꾹~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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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객사파공 +3 23.09.25 763 22 12쪽
20 젠장, 시프트 +4 23.09.24 813 22 11쪽
19 스카우터 +3 23.09.24 827 24 12쪽
18 육성 선수 1호 +4 23.09.23 917 18 12쪽
17 스카이 박스와 에이전트 +6 23.09.22 997 26 12쪽
16 면도날 제구 +6 23.09.21 1,035 25 12쪽
15 소년 가장 +8 23.09.21 1,019 28 12쪽
14 멘탈 지우개 +4 23.09.20 1,088 26 13쪽
13 위기는 기회 +3 23.09.19 1,108 22 12쪽
12 발에는 발 +8 23.09.18 1,164 28 12쪽
11 개막 라인업 +8 23.09.17 1,237 28 13쪽
10 땅을 꼬집어! +5 23.09.16 1,252 29 13쪽
9 전담 포수 +2 23.09.15 1,316 24 12쪽
8 첫 날부터 민폐 +3 23.09.15 1,363 23 13쪽
7 타격말고 스윙! +4 23.09.14 1,424 26 12쪽
6 흑마구의 영업비밀 +4 23.09.14 1,490 28 13쪽
5 올드 폼인데? 23.09.13 1,537 30 13쪽
4 컨트롤 콘택 배팅 +4 23.09.13 1,640 27 14쪽
3 타이밍 아닌가? +6 23.09.12 2,035 26 13쪽
» 확장된 현실 +7 23.09.12 2,747 35 13쪽
1 프롤로그 +4 23.09.12 2,843 4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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