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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연필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선수가 야구궤적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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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연필
작품등록일 :
2023.09.12 11:12
최근연재일 :
2023.09.29 11:4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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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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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930

작성
23.09.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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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개막 라인업

DUMMY

투타를 겸업하니, 내가 가장 바쁘다.


동섭과 배터리를 이루어 연습 피칭을 했다.


동섭은 내 너클볼을 잡고, 블로킹하느라 손가락이며, 허벅지,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꼴이 말이 아니다.


블로킹, 폭투로 인한 부상을 줄이려고, 몸통 프로텍터(보호대)는 물론 아이스하키 골키퍼처럼 팔, 무릎, 정강이, 발등을 완전히 감싸는 특급 보호대까지 풀로 장착했다.


슉-


뻑!


”스트라잌!“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정중선 투수 코치가 말했다.


”미트질이 좋아져서, 너클볼 폭투가 30%로 줄었어. 하지만 더 줄여야 하는 데 방법이 없을까?“


동섭이 의견을 제시했다.


”너클은 속도가 무브먼트 폭을 결정하니까, 던질 때 미리 속도 사인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어차피 마지막 방향은 제멋대로니까, 구속을 결정하면 그래도 대처하기 쉽지.“


동섭이 내게 말했다.


”네가 던질 때 사인을 줘. 구속을 미리 알려 달라는 거야.“

”그렇긴 한데, 투수가 사인을 주면 타자가 읽을 거야. 그럼 형이 너클 1,2,3손가락을 펴. 한 개는 저속, 두 개는 중속, 3개는 고속. 그 중에서 내가 고를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러면 되겠네. 연습해보자.“


동섭이 너클2 사인을 냈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엔 너클 1.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치가 외쳤다.


”너클1은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니까, 아예 코스까지 지정하라고!“

”넵!“


동섭이 미트로 상좌를 가리켰다.

내가 너클 구속과 코스 정보를 암산하자 궤적이 떴다.


와인드 업!


슈룩~


왼쪽으로 밋밋하게 날아오던 살짝 높은 공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며 사선으로 뚝 떨어졌다.


내가 던지지만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잔뜩 준비하고 있던 동섭이 화들짝 놀라며 잡아냈다.


빡!


보더라인 중앙을 스치며 떨어지는 코스라, 스트라이크였다.


”좋아! 이런 궤적을 어느 타자가 치겠어!“


이번엔 3번이다.


슈룩~


변화폭이 가장 큰 구속의 너클이라, 동섭은 바짝 긴장하며 미트로 막을 자세를 취했다.


한편, 내 연습을 지켜보던 감독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저 녀석을 타자로 써야 하나? 아니면 투수로? 투수면 보직을 뭐로 하지? 선발? 계투? 마무리?“


*


옥탑방.

개막전 이틀을 남겨 놓고 예능 야구 시즌2 첫 회가 방송되었다.

첫 회는 트라이아웃 에피소드였다.


동섭은 밤에 방영하는 본방을 나와 함께 시청하려고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동섭이 배달온 족발과 음료수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아버지에게 다 말했어.“

”그래? 뭐라셔?“

”뭐라긴? 불같이 화를 내지. 그래서 오늘 본방 보시고 말하자고 했어. 니 말 대로 방송보고 나서 입장이 바뀌길 바랄 뿐이야. 그래도 반대하면 집 나와야지. 그땐 여기서 같이 살자.“

”그래, 이리와.“


동섭이 외쳤다.


”한다!“


드디어 본방이 시작되었다.


”와, 너 나왔다! 난 어디 있지?“


섬네일에서부터 ‘마구 던지는 신인 몬스터’로, 지원자 중에 내가 메인이었다.


나의 타격 장면은 조금만 할애하고, 투구를 부각시켰다.


뻥뻥 터지는 홈런이나 장타가 아니라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방송에서 홈런만 띄우니 관중들은 전부 홈런 타자만 치켜세우고, 타자들도 장타를 치려고 무리하는 것이다.


”강타야, 니 마구를 엄청 띄우는데? 그래픽까지 넣어가며 묘기처럼 편집을 했어! 방송으로 보니까 완전 새롭다!“


우리 눈은 일정한 각도로 남을 향해 관찰하게 되어있어 정작 나를 볼수 없다.


그런데 카메라의 렌즈는 나를 관찰하고, 줌인, 줌아웃, 주변의 시각까지 편집해 더하니 새로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더그아웃에서 선배들의 놀란 반응을 집중 편집하여, 나를 스타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내 학력을 소개하며 비선수출신의 야구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내 눈에 보이는 궤적이나 동체시력은 화면에도 나오지 않고 알지도 못하니, 타고난 재능으로 해석했다.


역시 방송은 요물이다. 우상을 만들 수도, 악마를 만들 수도 있다.

다행인 건 아직 내가 강태산의 동생인걸 모른다는 점.


첫 회의 주인공이 되었느니 모든 야구 관계자들이 주목할 것이다.


예능야구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딜릴리~


휴대폰 화면을 보니, 일타쌍피 감독님이다.


”네, 감독님!“

- TV보고 있지?

"그럼요."

- 완전 스타야, 스타! 성공해도 우리 잊으면 안뎌.

"물론이죠. 전 일타쌍피가 키운 선수잖아요."

- 그렇지! 바로 그거여! 돔 구장에서 보드라고!


다음날은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 어머니께서 상심이 크다. 내가 잘 설득은 했지만, 야구 자체가 아니라 니 형이 떠올라서 그래. 이런 건 시간이 약이다. 니가 하고 싶은 거 해.


*


돔구장.

유료지만 1만 6천 관중석의 절반이 들어찼다. 열기는 프로야구 개막식을 방불케 했다.


쿵짝, 쿵짝!


오늘 상대할 남천고에서는 총동문회 집합으로 500명이 응원석에 자리했다.


예능야구 블루몬즈를 응원하는 자발적 응원단이 눈길을 끌었다.


정말 랜선 야구와는 분위기부터 차원이 다르네! 뽁작뽁작 살아있는 느낌이야.


일타쌍피 야구단 깃발도 보였다.


20여 명의 선수가 모두 상경한 것이다.


”강타, 파이팅!“


쑥스럽게 현수막도 준비해 흔들었다.


- 강타는 일당 백!

- 일타쌍피의 38광땡, 강타!

- 타격도 강타, 투구도 강타!


사회인 야구 때는 몰랐는데, 돔 구장에서 보니 화투장 깃발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


난 몸을 풀기 전에 일타쌍피 선수들에게 가서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했다.

이 광경을 본 왕태호 선배가 충고했다.


”벌써 팬을 달고 다니네.“

”예전에 같이 뛰던 사회인 야구단입니다.“

”열성 팬이 있다는 건 말이야, 잠재된 안티 팬도 그만큼 있다는 뜻이야. 내가 지기를 바라는 상대편 팬들이 있으니까.“

”아!“

”골수팬이 변심하면 최악의 안티가 되는 거야. 팬과의 거리는 적당히 유지하라고. 니 페이스와 리듬을 유지해야 해. 신인들은 멘탈 싸움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가진 운동부 선후배의 까칠한 관계와는 많이 달랐다.


이미 화려한 전성기를 지난 레전드들이라, 선배라기 보다 삼촌들 같아서 연륜이 묻어나고 여유가 넘쳤다.


충고도 신경질적이 아니라 인생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들의 경쟁자가 아니란 사실도 한 몫 했는지 모른다.


내가 PD에게 물었다.


“치어리더도 보이는데, 섭외한 건가요?”

“웬 걸. 프로 구단에서 소속 치어들 몇 명이 자발적으로 나온 거야. 팬클럽도 생겨서 블루몬즈는 전국구야.”

“전부 자비를 들여 온 찐팬이군요?”

“그래. 트라이아웃 영상을 본 팬들은 강타 선수에게 기대가 크다고. 오늘 선발은 아니더라도 계투로라도 등판해야, 시청률 뽑는데....”

“...”


방송국 놈들은 자나 깨나 시청률 타령이다.


이때 코치가 외쳤다.


“라커룸으로 집합!”


*


선수들이 둘러앉고 감독이 오늘의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선수들은 자신들의 포지션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증이 폭발했다.


신인으로서 과연 첫 경기에 선발 라인업에 올라갈까? 올라간다면, 투수? 타자?


감독이 말했다.


“일찍 발표하면 좋았겠지만, 라인업을 오늘 만큼 고민한 적도 없다. 상대는 작년 시즌1 때, 우리에게 콜드패의 치욕을 안겨준 남천고다. 스몰볼에 치고 달리는 전형적인 고교 작전 야구야.”


작년에 이 팀에게 콜드패를 당하고, 이 프로그램은 폐기 위기에 몰렸었다.

왕년의 전설들이 고삐리에게 발렸다고, 방송국 댓글이 폭주하여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 개막전 첫 경기를 남천고로 잡은 의도는 잘 알 것이다. 통쾌한 설욕전을 해보라는 거다. 고교팀이라고 얕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넵!”


과연 내 첫 포지션이 어디일까 조바심이 났다.


“선발 투수 김대은!”


역시 예상대로 에이스 투수를 선발로 내세워 마운드 안정에 무게를 두었다.


“포수 이흥구, 1루 왕태호, 2루 정은우, 3루 장성훈, 유격수 강타....”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타자로서 선발 라인업에 든 것이다.

하지만 끝내 마동섭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타순은 1번 강타, 2번 정은우, 3번 장성운, 4번 왕태호....”


내 귀에는 1번 강타만 들렸다.


선배 선수들은 내가 리드 오프 포지션에 배정되자 움찔했다.


오늘 라인업을 보니, 내야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나에게 어떻게든 진루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작년에 당했다시피, 남천고는 이번에도 번트를 앞세워 발야구 할 거다. 내야진은 당황하지 말고, 무리해서 실책하지 마라. 줄 건 주고 아웃 카운트 하나씩 늘려 가면 된다!”

“넵!”

“콜드패 수모를 갚아주자!”

"파이팅!"


고교 선수들에게 당한 콜드패가 꽤 치욕이었는지, 스프링 캠프에서 갈고 닦은 블루몬즈 선수들은 전의에 불탔다.


감독이 나가자 주장이 미팅을 주도했다.


“오늘은 설욕전이다. 웃음끼 싹 빼고 경기 하자!”

“넵!”

“강타는 1번 타자가 무슨 뜻인 지 잘 알지?”

“넵!”

“콘택충인 걸 보여줘. 죽어도 살아나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신병에게 적의 고지에서 작렬하는 기관총을 부수라는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졌다.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투수 코치가 나를 불렀다.


“선발 투수 명단에는 없지만, 불시에 계투할 수도 있어. 마음의 준비는 해 둬.”

“알겠습니다!”


보통 프로팀은 50여 명의 선수로 운용되지만, 예능야구팀은 고작 20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은퇴 선수들이라 예능야구가 전업이 아니고, 외부 코치나 개인 사업을 하는 선수가 있어 늘 서너 명은 결장이라 선수층이 두텁지 않았다.


특히 투수조는 나를 포함한 신입 3명을 제외하고, 고작 6명으로 운용했다.


작년 완투가 1번 있을 정도로 노쇠하여 완투 능력이 없기에, 2연전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전원 출전하는 벌떼 마운드였다. 말 그대로 짭밥으로 밀어붙이는 야구였다.


동섭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선발 축하해! 멋지게 보여줘!”


왠지 나만 출전하니 미안했다. 정보를 흘렸다.


“형, 투수 코치가 그러는데, 여긴 투수진이 얇아서 나도 언제든 계투로 나갈 수 있데. 형도 준비해.”

“그래? 그럼 준비해야지. 사실, 아까 보니까, 아버지가 와 계시더라고. 그런데 경기장에도 못 나가면 무슨 망신이냐.”

“...”


타격 코치가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번트 연습을 시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저쪽 투수들 제구가 좋아서 장타 어렵다. 첫 째도 팀배팅, 둘째도 팀배팅이다!”

"넵!"


남천고 박 감독이 이 감독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제가 먼저 인사드렸어야 하는 건데.”

“트라이 아웃으로 블루몬즈 전력이 많이 보강되었더군요. 이상한 마구를 던지는 신인도 있고.”

“아직 아마추어들이라 전력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거 잘 아시잖아요.”


존대 형식을 갖췄지만, 이미 기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허허, 왕태호가 가장 무서워요. 은퇴 반년도 안되니 현역이잖아요. 이런 경기에 조선의 4번 타자가 타석에 선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되죠.”


작년에 왕태호가 투입되기 전에 벌어진 콜드패였다.


“과찬이십니다. 이번 만은 콜드패는 면하게 해주십쇼!”

“하하하, 1승 1패씩 나눠 가집시다.”


하지만 상대 감독의 속내는 이랬다.


‘후후, 작년 콜드패 던진 투수가 이제는 3학년이라고. 구속에 놀랄 걸. 두 경기 중 하나는 콜드로 잡는다. 짓밟아주마!’


“1승 1패! 좋은 생각입니다.”


남천고는 작년 봉황기에서 우승한 고교 최강팀 중 한 팀이다.


작년의 주력 투수가 올해 졸업했지만, 1, 2학년 투수들이 성장하여 오히려 마운드는 더 막강해졌다.


반면, 예능야구팀은 한 해가 갈수록 더 노쇠해지니, 세월은 일방적으로 상대편이다.


꿍짝! 쿵짝!


응원석에서는 직접 만든 응원 문구와 응원 문구를 흔들며 환호했고, 남천고 동문들은 조직적으로 카드 섹션까지 선보였다.


남천고 더그아웃에서는 파이팅이 넘쳤다.

한 선수가 선창하자, 다른 선수들이 손뼉을 치며, 목청으로 합세했다.


“남천, 남천!”

“가자, 가자, 무적 남천! 어이! 어이! 어이!”


블루몬즈 더그아웃에서는 인상이 찌그러졌다.


“아따 그놈아들 정말 시끄럽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야구를 입으로 하냐!”

“누가 홈런 한 방 때려서 재들 숨 좀 죽여라.”


심판이 외쳤다.


“플레이 볼!”


드디어 내 첫 커리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추천 꾹~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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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소년 가장 +8 23.09.21 1,023 28 12쪽
14 멘탈 지우개 +4 23.09.20 1,091 26 13쪽
13 위기는 기회 +3 23.09.19 1,111 22 12쪽
12 발에는 발 +8 23.09.18 1,167 28 12쪽
» 개막 라인업 +8 23.09.17 1,241 28 13쪽
10 땅을 꼬집어! +5 23.09.16 1,255 29 13쪽
9 전담 포수 +2 23.09.15 1,320 24 12쪽
8 첫 날부터 민폐 +3 23.09.15 1,366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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