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천의 얼굴
“아니, 이게 대체 몇 개예요?”
내 차 트렁크를 본 보육원 교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좁은 공간 안에 한가득 실린 상자들.
내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름 잘 만든 거로 추려서 온 거라 몇 개 안 돼요. 한 오십 개 되려나.”
“오, 오십 개요?”
보육원 교사가 다가와 상자를 열어젖혔다.
안에는 내가 그동안 만든 인형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언젠가, 내 분신이었던 이들.
“세상에, 이걸 정말 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인형극을 짤 때마다 제가 직접 각본까지 쓰다 보니까, 매번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져서요. 시중에서 구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둘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엄선해서 가져오신 게 50개면 대체 그동안 몇 개나 만드신 거예요?”
전부 합치면······?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진짜 나 엄청 만들었구나.
인형도, 이야기도.
“만든 거로만 치면 솔직히 천 개는 될걸요.”
“처, 천 개요? 와아······ 아니, 유작가님 공연 혼자 하셨잖아요.”
“거의 그랬죠?”
“그러면 천 개의 캐릭터를 다 작가님이 연기하셨던 거네요?”
“하하, 그렇게 되나요.”
“그쵸. 와, 말도 안 돼. 그걸 전부 혼자서! 진짜, 유작가님이야말로 그거네요. 천의 얼굴!”
“에이, 저야 뭐 인형 뒤에 숨어서 연기하니 편했죠.”
괜스레 멋쩍어 얼른 카트부터 펼쳤다.
그 위에 인형 담긴 상자를 차곡차곡 올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건 어디에 두면 될까요?”
“어어, 그거 건물 입구에 내려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할게요.”
“넵. 알겠습니다.”
드드드, 카트를 끌고 보육원 건물로 향했다.
보육원 교사가 뒤따라오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제 인형극은 더 이상 안 하시는 거예요?”
“네. 일로는 그만하려고요. 취미로만 할 것 같아요.”
“애들이 엄청 좋아했었는데······ 가끔 부탁드려도 되죠? 예산 넉넉하게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아뇨. 예산 넉넉하게 나오면 아이들 다른 것도 다양하게 보여주세요.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저는 더는 일로 안 하니까, 앞으론 취미로 올게요.”
“예? 아니, 그래도······.”
“솔직히 그동안 공연비 받은 것도 마음에 걸렸어요. 대관료 내는 게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랬지만, 이제는 봉사로 와야죠.”
카트를 멈췄다.
상자를 척척 쌓아놓고서 보육원 교사의 인사를 받았다.
“진짜 감사해요, 유지하 작가님. 복 받으실 거예요!”
“저도 감사했어요. 또 올게요!”
양손을 펄럭거리며 인사하고서, 다시 내 차로 향했다.
그동안 내 발이 되어준 모닝.
뻑뻑한 문짝을 열고 몸을 밀어 넣었다.
잠시 한숨 돌리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당장 가야 하는 목적지는 이렇게 명확한데······.
“내 앞날은 아주 깜깜하구만.”
쓴웃음을 지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보육원을 나서면서부터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내 나이 서른.
근 10년간의 인형 놀이를 끝내고,
마침내 나는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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