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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함 님의 서재입니다.

거물들이 찾는 천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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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함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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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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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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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나를 찾는 사람들 (1)

DUMMY

“음?”


대학로라고 부르는 큰 줄기에서 잔가지처럼 뻗어 나와 혜화동 어느 구석까지 이어진 골목.

허름한 건물로 다가서는 여자가 있었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를 가득 채우는 큼지막한 눈이 당혹스러운 듯 건물 주변을 훑는다.

때마침 건물에서 나오던 관리인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인형극 보러 왔는데요. 오늘 안 하나요?”

“아아, 아가씨도 그것 때문에 왔구나. 이제 공연 없어요. 문 닫았어.”

“아니, 왜요?”

“왜인지는 나도 모르지.”


빗자루로 떨어진 낙엽을 두어 번 쓸던 관리인이 덧붙여 말했다.


“라고 하기엔 너무 잘 알지.”

“······?”

“이 구석탱이도 나름 대학로라고, 땅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어. 그러니 대관료라고 안 오르고 배겨? 근데 여기서 푯값 올리면 누가 보러 와주나. 방법이 없지 뭐.”

“아······.”

“근데 감기 걸렸어요? 뭐 그렇게 큰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아, 네. 조금······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녀가 인사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젊어도 건강 관리해야 한다며 오지랖을 부리던 관리인도 빗자루질을 몇 번 더 하다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가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니, 왜 말도 없이······.”


뭐라 말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그게 당연해서였다.

아는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말하나.


화려한 케이스가 집어삼킨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혜화 인형극’을 검색하자 어린이용 인형극들이 먼저 올라온다.

문 닫은 이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그녀가 화면을 슥슥 내렸다.

한참 내리자 찾던 게 나왔다.


<죄송합니다. 오늘부로 지하인형극장은 운영을 종료합니다.>


며칠 전 올라온 카페 게시글.

내용을 쭉 읽어내려간 여자가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는 그녀.

양옆에서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저기, 이거 보실래요?”

“괜찮습니다.”

“연극 보고 가세요.”

“죄송합니다아.”


재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온 그녀에게 때마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빤히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자, 숨넘어가기 직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왜 이제 받아. 어디야?

“왜요?”

—왜긴 왜야. 촬영장에서 한바탕했다며.

“소식이 아주 빠르셔.”

—네 매니저로 살아남으려면 빨라야지 어쩌겠어. 아무튼, 이번엔 또 왜 그랬어?

“뭘 왜 그래요. 후배가 좀 떴다고 선배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게 꼴같잖아서 그랬지.”

—성질 좀 죽이라니까.

“그거 죽으면 나도 같이 죽는데?”


헙, 하고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진짜 어딘데.

“유일한 내 영혼의 안식처.”

—······?

“였던 곳.”

—······?

“몰라. 얌전히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끊어요.”

—진짜지? 진짜 집으로 가야 된다?


뚝.

전화를 끊은 여자가 고개를 돌려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탄 그녀가 혜화동을 떠났다.




#




“······동생아.”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개인 카페.

커피색 앞치마를 한 누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렸지만, 일단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알바생을 구하는데, 왜 네가 나왔을까?”

“그야, 내가 지원을 해서?”

“난 김철진씨와 면접을 볼 예정이었거든. 근데 내가 우리 부모님께 속은 게 아니라면 네 이름은 분명 유지하란 말이지?”

“그 이름을 쓰면 면접에 안 부를 테니까.”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던 누나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나도 내 앞에 놓인 커피잔으로 손을 뻗으려는데, 누나가 채갔다.


“면접 보러 오시는 분 주려고 내린 거야.”


그게 난데?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뭐 하나 날라올 것 같아서.


“아니, 너 하던 인형극은 어쩌고?”

“그만하기로 했어. 대관료가 너무 비싸져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

“그러게, 내가 그거 그만하라고 몇 년 전부터······ 어휴, 내 죄다. 내 죄야.”

“뭘 또 누나 죄야.”

“부모님 IMF로 집에도 못 들어오실 때, 동생이랑 놀기 싫다고 대충 인형이나 던져줘서 이 사달을 냈네.”

“난 좋았어.”

“뭐가.”

“인형 던져준 거. 누난 연기력이 형편없어서 영 몰입이 안 됐었거든.”

“아, 그랬어?”


누나가 테이블 위에 펼쳐둔 노트를 탁 덮었다.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탈락!”

“아, 왜.”

“너 커피 내려봤어?”

“아니.”

“스콘은 구워봤어?”

“아니.”

“쿠키는?”

“아뇨. 근데 바느질은 기똥차게 함.”

“······.”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은 누나가 핸드폰 어플을 켜서 내게 보여주었다.


“동생아 여기 잘 보렴. 우리 동네 경력직을 원한다고 빨간 글씨로 큼직하게 써놨잖아, 네 매형이.”

“다들 그렇게 경력직만 원하면 난 어디 가서 일하나.”

“인형극 경력직 뽑는 대로 가세요, 그럼.”

“그런 게 없으니까 그러죠.”

“왜 없어. 팽수도 있고······.”

“그건 인형 탈이잖습니까.”

“풉.”


결국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입을 가리고 끅끅거리던 누나가 심호흡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휴······ 그래. 알겠어. 솔직히 이 카페 차릴 때 네 돈도 어느 정도 들어간 건 사실이니까, 주주에 대한 배려로 잠깐 다니게는 해줄게. 대신 딱 3개월 만이야. 그 안엔 너도 네 길 찾아야지.”

“고마워, 누나.”

“그려.”


드르륵, 의자가 밀려나며 누나가 일어났다.

돌아서려는 누나를 붙잡았다.


“잠깐.”

“왜. 뭐.”

“아직 시급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요, 사장님?”


누나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최저시급이다, 최저시급 새꺄.”




#




근로계약을 마치고 곧장 또 움직였다.

목적지는 내가 매일같이 출근하던 소극장.

건물 뒤편에 차를 대고서 빙 둘러 나오자, 건물 관리하는 아저씨가 나를 보고 반색했다.


“어, 자네 왔어?”


그가 빗자루질을 멈추고서 손을 흔든다.

나도 꾸벅 인사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네. 어후, 단풍 엄청 떨어지네요.”

“그러니까. 이제 고생 시작이다. 이거 다 떨어지잖아? 그럼 이제 눈이 내려. 그건 뭐 이렇게 쓸리지도 않아. 꽝꽝 얼어버리지. 그래도 자네가 자주 도와줬었는데.”

“어떻게, 여기로 출근 더 할까요? 관리실이 너무 좁나.”

“흐흐흐, 됐어. 자넨 이런 거 말고 더 멋진 거 해야지. 인물도 좋고, 착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젊잖아. 남은 짐 가지러 왔지?”

“네.”

“어여 내려가. 아 참.”

“······?”

“사람들이 꽤 와서 물어보더라고. 인형극 이제 안 하는 거냐고.”

“아 그래요?”


끄덕거린 아저씨가 손가락을 하나, 둘 접더니 못해도 열댓 명은 온 것 같다며 웃었다.

진짜 꽤 많았네.


“여기 차로 안 오면 꽤 걸어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니까. 아니, 뭐냐 그 인수타나 위튜브에 안 올렸어?”

“제가 그런 걸 안 해서. 카페엔 올려놨는데.”

“에이, 우리 손자가 그러더라고. 요즘엔 뭘 하든 위튜브를 해야 한다고.”


나라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인형극을 거기에 올린다고 누가 볼까, 싶어서 관뒀다.

아저씨가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하며 내게 말했다.


“암튼, 그래도 다들 아쉬운 눈빛이라 내가 다 뿌듯하더라. 적어도 그 사람들한테만큼은 자네 공연이 이 구석탱이까지 찾아올 만큼 소중했다는 거잖아.”




······계단을 내려와 두꺼운 철제문을 열어젖혔다.

서늘하고 습한 기운이 몸에 쩍, 하고 달라붙는다.

다른 이들에겐 기분 나쁜 느낌일지 몰라도, 내겐 아니었다.


지하인형극장.

내 모든 상상이 구현되는 공간.

나의 친구들이 살아 숨 쉬는 세상.

무엇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불을 켜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디오 믹서를 지나 관객석을 가로질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스윽, 관객석 쪽을 둘러보고서 커튼을 들추며 백스테이지로 넘어갔다.

그곳엔 나만의 작업실이 있었다.


각기 다른 디자인의 책장에 잔뜩 쌓여있는 대본.

책상을 가장한 선반 위에 올려진 인형 제작용 스펀지와 관절용 구슬들.

그리고 그것들로 탄생한 수많은 인형들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늘 이곳에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며 설렜고, 캐릭터를 만들며 흥분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습은 늘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마침내 무대에 올라서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땐 전율했다.


한때는 단원들을 뽑아야 할 만큼 공연이 나름 흥행하던 시기도 있었지.

하지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

사람들은 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것을 원했고,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는 나무 프레임은 너무 비좁은 무대였다.

그렇게 나와 인형들은 천천히, 시류를 따라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우두커니 서서, 더는 무대 위에 설 일 없는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불쑥 보육원 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쵸. 와, 말도 안 돼. 그걸 전부 혼자서! 진짜, 작가님이야말로 그거네요. 천의 얼굴!’


그치. 말도 안 되지.

혼자서가 아니라 가능했지.


그러니 사실 천의 얼굴이라는 칭찬은 이 친구들이 받아야 했다.

나는 그저 이 천 가지 얼굴 뒤에 숨어 목소리만 연기했을 뿐이니까.

이 인형들이 나의 가면, 나의 페르소나였으니까.


“평생 너희들이랑 그렇게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어, 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정리를 시작했다.

상태를 보니 하루 이틀로는 안 되겠네.

건물주가 최대한 빨리 빼달라고 했는데······.

상자에 하나둘 담으며 내가 나직하게 덧붙였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다들.”




#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펼쳤다.

인형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버리고 싶지도 않았고.


창고임대를 검색해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어느새 내가 만든 ‘지하인형극장’ 카페로 흘러들었다.

예전엔 위튜브나 SNS대신 여기가 관객들과의 소통창구였다.

새로운 인형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릴 때마다 여기에 알렸었지.

어차피 공연도 매번 오는 사람들만 오는 터라 운영종료 소식도 여기에 올렸는데······.


‘다른데 올렸어야 했나?’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폐업 소식을 알리려고 위튜브를 개설할 수는 없잖아.

이 무슨 이별하려고 여자친구를 만든다는 논리야.


고개를 흔들며 마우스를 휠을 굴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운영종료를 알리는 게시물을 쭉 내리고 있었는데, 댓글이 하나 달려있었다.


[카페를 안 들어와 봐서 못 봤어요.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힐링하러 갔는데······ 이제 인형극 아예 안 하시는 거예요?]


작가의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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