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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쓴것] '빛나지 못한 별' 루슬란... 확실한 색깔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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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1은 한때 해마다 서울대회를 개최할만큼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 윈드윙


지금으로부터 7~8년전 한창 국내에 격투기 열풍이 불던 당시 인지도 양대 산맥은 단연 K-1과 프라이드 FC였다. 이웃나라 일본을 무대로 하고 있던 이들 단체는 탄탄한 자본력과 세계적 슈퍼스타들을 앞세워 단숨에 국제격투시장을 장악했다.

물론 이전에도 격투스포츠가 인기를 끌던 시절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레슬링이다. 일제강점기, 6.25 등 시련을 많이 겪어온 우리 국민들에게 숙적 일본을 비롯 서양 거구들을 때려눕히는 프로 레슬러들은 영웅이었다. 딱히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대상황 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오락채널이자 민족스포츠로까지 추앙되었다.

'투혼의 레슬러' 장영철, '당수 달인' 천규덕, '타이거' 안명길, '고릴라' 이석윤 그리고 '박치기 황제' 김일에 이르기까지 이들 프로레슬러들은 그 어떤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프로야구, 프로축구, 농구대잔치 등의 체계화된 스포츠가 본격적인 기지개를 펴고 "프로레스링은 쇼다"라는 이른바 '쇼파동'이 겹치면서 그 인기는 급추락하게 된다.

80년대 이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후에도 해외 프로복싱, 프로레슬링이 한때의 붐을 타고 인기를 끌기도 했다. '디트로이트 코브라' 토마스 헌즈, '슈거' 레이 찰스 레너드, '링의 도살자' 마빈 해글러, '파나마 돌주먹' 로베르토 듀란 등이 펼치는 라이벌전은 많은 복싱팬들을 다시 브라운관으로 끌어들였다.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마초킹 랜디 새비지, 안드레 더 자이언트, 빅보스맨, 캐리 본 에릭, 티토 산타나, 밀리언 달러맨, 릭 마텔, 어스퀘이커 등 WWF 프로레슬러들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적도 있었다.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입식룰 K-1과 종합룰 프라이드 FC는 많은 팬들의 잊혀졌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특히 K-1은 격투기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이들도 처음부터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K-1을 국내에서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러 차례 문제가 터지며 '잠정휴업'상태로 들어간 이후 사실상 전설의 정상에서 내려왔기 때문. FEG에 이어 K-1 글로벌이 새로이 재창단을 선언하며 부활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외려 라이벌 단체 '글로리(Glory)'가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쨌거나 국내 팬들로서는 아쉬운 상황이다. 종합격투기의 경우 프라이드만큼은 아니지만 UFC를 통해 일정 부분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반해 K-1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많은 입식 팬들은 다시금 K-1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전 세계 수많은 입식고수들을 한자리로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K-1이 조금씩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많은 팬들을 울리고 웃겼던 예전 '낭만의 시대'를 추억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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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슬란 카라에프는 링에서는 공격적이었지만 밖에서는 항상 웃음 띈 얼굴로 팬들을 대하는 이른바 '친절한 남자'였다.
ⓒ 윈드윙


'피지 못한 꽃' 루슬란 카라에프

K-1서울대회가 한창이던 7~8년전 루슬란 카라에프(31·러시아)는 '신성(新星)'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FEG측이 세대교체에 목말라하던 2005년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K-1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높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잠시 라이벌로 불렸던 바다 하리(30·모로코)보다도 먼저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바로 카라에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라에프는 K-1에서 스타가 될만한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선수였다. 일단 그는 단체 내에서 손꼽히는 미남이었다. 외모가 파이터의 필수조건은 아니겠지만 대중들의 시선이 몰리는 프로파이터에게 잘생겼다는 사항은 큰 플러스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그는 굉장히 공격적인 파이팅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는 K-1에서 추구하고 있던 기본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피터 아츠, 제롬 르 밴너 등 전설적인 인파이터들의 후계자감을 찾고 있던 주최 측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나온 쓸만한 재목감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카라에프는 항상 웃음 띈 얼굴로 팬들을 대하는 이른바 '친절한 남자'였다. 이는 이후 그와 잠시 라이벌 관계를 이루게되는 '악동' 바다 하리와는 완전히 극과 극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카라에프와 하리중 누가 먼저 거물로 성장할까?'하는 점이 한동안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후의 행보는 누구나 알다시피 서로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심하게 갈리고 말았다.

카라에프가 데뷔 당시부터 단숨에 주최 측과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체할 수 없는 '공격본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펀치와 발차기를 끊임없이 내며 시종일관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인파이터 타입인 그는 일단 공이 울리면 좀처럼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로우킥, 미들킥, 펀치연타, 난데없는 백스핀 블로우에 빙글 돌아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러시안 스핀킥까지, 돌진은 한결같지만 공격패턴은 굉장히 다양했다. 아츠나 밴너같은 인기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격본능이 과하다 못해 끓어 넘치는 파이터였다.

때문에 상당수 팬들과 관계자들은 점차 인파이터 스타일이 사라지고 있던 K-1무대에서 그러한 희소성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거기에 그러한 완전연소형 스타일을 구사함에도 잦은 출장횟수를 기록하며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잘생기고 화끈한 파이터가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라에프는 엄청난 공격횟수에 비해 결정력이 떨어진다는 혹평도 받았다. 리카르드 노드스트란드(38·스웨덴)와의 경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라에프는 그렇게 많이 손발을 뻗어대면서도 정작 이긴 경기의 대부분은 판정까지 가는 접전 양상이 많았다. 특히 노드스트란드같은 경우는 어네스트 후스트의 보결선수로 투입되었던 케이스로 불과 며칠 전에 출전통보를 받았던 선수임에도 카라에프는 그를 끝내 때려눕히지 못했다.

반면 패한 경기에서는 넉 아웃 패가 많아 대조를 이뤘다. 부실한 가드는 계속해서 지적 받았던 요소이며 거기에 잦은 러시를 감행하는 탓에 수시로 빈틈을 드러내 상대선수에게 카운터 타이밍을 노출하기 일쑤였다.

특히 동체시력이 좋고 카운터 타이밍에 능한 일류 파이터들에게는 유독 약했는데 부메랑 훅으로 유명한 레이 세포를 비롯해 글라우베 페이토자, 바다 하리 등에게 넉다운 당한 경기 등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카라에프는 디펜스를 무시하고 공격에만 집중하다가 상대의 받아치는 공격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맷집과 내구성이 좋은 것도 아닌지라 수비만을 놓고 볼 때는 낙제점이었다. 이길 때는 어렵게 이기고, 질 때는 허무하게 지는 파이터. 카라에프에게 가장 불명예스럽게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물론 카라에프는 거기서 주저앉지는 않았다. 강력한 화력의 중요성을 느낀 그는 이후 이른바 '육체개조'를 통해 명예회복에 힘을 썼다. 체격을 키워 파워를 높인 것인데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난타전을 거듭하는 것이 아닌 칠 때는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만 위험하다 싶은 상황에서는 클린치도 하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달라진 패턴을 구사했다.

이러한 변신은 지역대회에서는 맹위를 떨쳤다. 2008년 7월 있었던 'K-1 월드그랑프리 2008 타이페이' 토너먼트가 대표적으로, 카라에프는 당시 대회에서 토미히라 타츠후미(38·일본)-김영현(38·217cm)-알렉산더 피츠크노프(35·러시아)를 연파하며 대회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과 라이벌구도를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김영현은 당시 카라에프에게 펀치를 얻어맞고 코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은 바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라에프의 약진은 거기까지였다. 카라에프는 파워업을 통해 화력을 높였지만 파이널무대에서 통할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거기에 수비는 여전히 빈틈이 많아 결국 자신이 넘어서야할 강자들에게는 여전히 무너졌고 이후 신성이라는 수식어는 사라지고 말았다. 어중간한 화력에 취약한 디펜스가 발목을 잡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문피아 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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