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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쓴것] '살아있는' 피터 아츠 은퇴…곱씹을수록 위대한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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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 전설 피터 아츠가 20년 격투인생에 종지부를 찍는다. ⓒ 데일리안 DB


20세기 최강 킥복서로 불리는 '벌목꾼' 피터 아츠(43·네덜란드)가 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20여년 입식격투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했던 그는 지난 21일 마음의 고향 일본서 은퇴경기를 치렀고, 고국 네덜란드에서 경기를 끝으로 완전히 링을 떠날 예정이다.

K-1 원년멤버인 그는 앤디 훅, 어네스트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미르코 크로캅, 제롬 르 밴너, 레이 세포 등과 함께 낭만의 시대를 이끌었다. 이후에도 레미 본야스키, 바다 하리 등 젊은 강자들의 득세 속에서 노장으로서 당당히 경쟁했다. 세미 슐트의 독재가 계속되던 때 가장 강력한 반란군의 대장으로 활약한 선수이기도 하다.

앤디훅은 인기나 명성에 비해 최강자로서의 포스가 2% 부족했으며, 후스트-슐트 등은 강했지만 인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아츠는 실력과 업적은 물론 인기 면에서도 톱클래스에 올라 ‘미스터 K-1’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

서울 대회서도 자주 얼굴을 내비쳤던 그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붉은색 체크 문양의 모자와 자켓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착용하고 경기장에 등장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터지곤 했다.

멈추지 않는 전진본능 '돌격 또 돌격'

아츠가 높은 인기를 누린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적이고 화끈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젊은 시절의 아츠는 막무가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공격 또 공격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라는 마인드로 상대가 거칠게 나오면 오히려 더욱 거칠게 자신을 지켰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상대의 주먹이 나오면 일단 막겠다는 생각보다는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본능이 앞선 그야말로 독 오른 맹수였다.

공격하는 상대 입장에서도 이런 아츠의 스타일은 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때리면서도 맞을 것을 염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하기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으며 체력 면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승패를 떠나 그랑프리 같은 무대에서 아츠를 만난다는 것은 '재앙'이었다.

1996년 그랑프리 파이널 8강전에서 아츠를 누르고 결승까지 내달렸지만, 아츠의 로우킥으로 인한 데미지 때문에 앤디 훅에게 힘 한번 못써보고 무너진 마이크 베르나르도가 대표적인 예다.

아츠는 매우 다양한 공격옵션을 자랑했다. 베르나르도-밴너 등 K-1 인파이터 중에는 유독 강펀치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접근전이 많을 수밖에 없는 특성상 '하드펀처'들에게 유리한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 그러나 아츠는 이와 달리 펀치는 물론 킥까지 다양한 공격옵션을 장착하고 있었다.

동급을 초월해 역대 최강이라는 ‘도끼날 하이킥’부터 금방이라도 상대의 다리를 부러뜨릴 것 같은 로우킥, 그리고 긴 리치를 이용해 일순간 호흡을 끊어버리는 죽창 스트레이트까지. 아츠를 상대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대비해야 하는 공격이 너무도 많았다.

더욱이 아츠의 공격 대부분은 타이밍을 포착하기 어려워 기선을 빼앗긴 후에는 방어가 힘들었다. 클린치 상황에서 떨어지는 순간 느닷없이 하이킥이 작렬하는가 하면 발차기를 막으려는 찰나 명치를 향해 정확한 주먹이 꽂혔다. 주춤주춤 백스탭을 밟는 순간에도 ‘어떻게 그 자세에서 저런 공격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큰 타격이 터진다. 더욱이 이 모든 공격이 거리를 불문하고 이어져 그 까다로움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체가 약한 선수는 로우킥으로, 안면가드가 자주 열리는 선수는 펀치로, 맞춤형 공격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아츠는 그야말로 완벽한 인파이터였다.

벌목꾼의 상징 도끼날 하이킥

아츠는 ‘벌목꾼’이라는 닉네임을 10대 시절 얻었다. 18세 때 상대선수를 하이킥에 의한 KO로 쓰러뜨린 적이 있는데, 경기 후 상대선수의 코치가 크게 감탄한 표정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벌목꾼 같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교롭게도 아츠 부친의 직업이 벌목꾼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킥은 아츠의 파이터 인생을 대표하는 공격 기술이다. 발을 높이 들어 올려 상대의 가장 상단부위를 가격하는 하이킥은 구태여 아츠가 아니라고 해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선수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하이킥 파이터를 묻노라면 대다수의 팬들은 전성기 아츠를 첫손에 꼽기를 주저치 않는다.

아츠의 하이킥을 허용한 선수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실신 KO패를 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밴너처럼 하이킥에 맞은 후 힘겹게 일어나 역전승을 일궈낸 케이스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특히 목과 후두부 부위를 강타 당한 상대들은 마치 타이슨(프로복싱 전헤비급 통합챔피언)의 펀치에 당한 복서들처럼 정신을 잃은 채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다리가 풀려 춤을 추듯 주변을 흐느적거리다 무너지는가 하면, 버티고 서있을 듯하면서도 결국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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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가 지난 노장 피터 아츠는 빼어난 경기운영으로 젊은 거구들을 쓰러뜨렸다. ⓒ 데일리안 DB


하이 킥에 맞은 순간 몸이 마네킹처럼 굳어지며 그대로 고목나무처럼 쓰러지는 상대의 모습에서는 극도의 전율까지 느껴졌다. 그야말로 K-1에서 가장 위험하고 날카로운 도끼였던 것이다.

아츠 하이킥의 또 다른 위력은 타이밍을 읽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미르코 크로캅처럼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지도, 레미 본야스키처럼 흑인 특유의 탄력이 실린 부드러운 킥도 아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쾅'하고 폭발하기 때문에 상대 선수는 경기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데다 로우킥-스트레이트 등 다른 위력적인 기술들 역시 자연스레 섞여서 나왔던 만큼 그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츠의 하이 킥은 무척이나 다양한 상황에서 나왔다. 코너에 갇힌 상대를 향해 원투 콤비네이션과 섞어서 마무리 짓는 다소 정석적인 스타일은 물론, 데미지를 받고 물러나는 상대를 향해 긴 걸음으로 성큼성큼 쫓아가 맞추기도 한다. 자신이 공격을 당하며 백 스텝을 밟는 와중에서도 벼락같이 뻗어냈다. 물론 적중률은 대단히 높았다.

아츠와의 클린치 상황에서는 극도로 조심성이 요구된다. 떨어지는 순간 기습적인 하이킥이 불을 뿜기 때문, 도저히 킥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근거리에서도 어느새 하이킥 거리를 만들어냈다. '크로캅의 킥은 알고도 못 막지만 아츠의 킥은 보지 못해 당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타이밍은 끝내 변변한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아츠를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하이킥 아티스트'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이 됐다.

강속구 없으면 제구력과 경기운영으로

격투기 선수도 사람이다. 아무리 대단한 기량과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위력이 감퇴되고 결국 젊은 강자들에겐 힘에서 밀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아츠 역시 그랬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예전의 파워와 스피드를 잃어갔고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변칙 킥복서 시릴 아비디와의 경기에서 치명적인 허리부상까지 당했다. 하이킥의 원천이 허리임을 감안했을 때 다른 누구보다도 데미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아츠는 몇 년 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모든 이들은 “아츠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강속구를 잃어버린 파워피처는 더 이상 리그를 호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강속구 일변도에서 제구력을 가다듬고 변화구의 비중을 늘리며 기교파 인파이터로 변화를 준 것.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기운영 능력은 자연스레 따라붙은 옵션이었다.

나이를 먹고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된 능숙한 벌목꾼은 큰 도끼를 버리고 작은 도끼를 잡았다. 예전처럼 큰 공격을 휘둘러대며 거침없이 돌격하는 파이팅스타일은 쓰기 어려워졌지만, 대신 로우킥과 각종 콤비네이션의 사용 폭을 대폭 늘렸다.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아 흐름을 자신 쪽으로 가져오는 노련함은 후스트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때의 아츠 스타일이 더욱 까다롭고 어렵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젊은 시절의 아츠는 파괴력도 강했지만 힘만 믿고 지나치게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가다 의외의 카운터를 맞고 넉아웃으로 무너질 때도 종종 있었다. 반면 변신에 성공한 노장 아츠는 수비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천천히 상대를 허물어뜨렸다.

열정과 의리로 똘똘 뭉친 '미스터 K-1'

'미스터 K-1'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나이답게 아츠는 K-1을 여러 번 살려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밥 샙 도주사건'이다. 밥 샙은 2006년 5월 K-1 월드그랑프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와 3차전을 예약한 상태였다.

K-1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후스트였지만 밥 샙과는 상대성 및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해 이전까지 2패를 당한 상태였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오점이 남는 기록 중 하나였던 만큼 후스트는 어떻게든 밥 샙에게 리벤지를 성공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기서 밥 샙이 사고를 치고 만다. 대전료 인상 등 여러 가지 문제에서 의견충돌을 보이던 그가 난데없이 출전을 거부하고 경기장을 나가 버린 것이다. 입식-종합을 통틀어 좀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 당시 대회 자체가 완전히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K-1측은 중계석에서 해설을 준비하고 있던 아츠에게 대타를 부탁하는 무리수를 뒀는데, 놀랍게도 아츠는 이를 받아들인 채 양복을 벗고 링으로 올라갔다. 아무런 준비도 없던 상태에서 후스트 같은 강적과 겨룬다는 것은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K-1을 위해 흔쾌히 자신을 희생했다.

아츠는 ‘격투로봇’ 세미 슐트(40·네덜란드)의 유일한 견제세력 역할도 해냈다. 212cm의 엄청난 신장에 거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스피드와 테크닉 그리고 체력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슐트는 K-1을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이른바 '공공의 적'이었다.

슐트가 본격적으로 K-1에 집중한 이후 그의 독재는 계속됐는데 전력이 너무 강해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당연히 월드그랑프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슐트의 독주를 그나마 제지한 유일한 인물이 아츠였다. 아츠는 2008년과 2010년 연거푸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아무도 막지 못했던 슐트를 상대로 아츠가 들고 나온 필살의 카드는 다름 아닌 근접전, 장신인 슐트를 상대로 최대한 거리를 허용하지 않은 채 같이 치고받는 둔탁한 싸움을 통해 승리를 가져갔다.

그 과정에서 아츠는 힘을 너무 많이 뺀 나머지 최후의 영광은 엉뚱한 인물들에게 어부지리로 가져갔다. 하지만 우승자를 계속 바꿨다는 점에서 K-1주최 측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어찌 보면 아츠의 희생이 있었기에 슐트의 무조건적인 우승공식이 그나마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다.

흔히 K-1의 정신은 앤디 훅, 테크닉은 어네스트 후스트, 강함은 세미 슐트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츠는 어떤 면에서 이 모든 것은 모두 갖췄던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피아 독자 =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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