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영혼의 맛
천하제일 어쩌구 대회에서 사망한 선수의 부활을 담당했던 늙은 사제는 기분이 좋았다. 시합 중에 죽은 사람이 단 한명밖에 없어서 다른 해에 비해 업무가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금화주머니를 화로에 녹이고 인장을 태운 재를 탄 물을 마시며 채비를 갖춘 그는 신성마법을 통해 영혼만 죽은 자들의 나라로 떠났다.
가장 먼저 사제를 맞이한 건 지옥의 삼두견 케르베로스였다.
“멈춰라 늙은이.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인 게 뭐지?”
“그건 스핑크스잖나.”
“사제라고 그냥 보내면 심심하잖아. 선물같은 거 안 가져왔어?”
“개껌을 가져왔네만.”
“흥미롭군. 지나가도 좋아.”
지옥문을 지나고 나자 이번엔 망각의 강의 뱃사공이 그를 맞이했다.
“노인네 어서오고. 드디어 죽었나?”
“죽긴 뭘 죽어 노망난 깜장로브야. 원래 문 밖이 근무지 아니었나?”
“올해는 시프트가 좀 바뀌었어. 돈은 가져왔지?”
“금화 네 개. 2인 왕복티켓으로 끊어줘.”
돈을 넘겨받고 발권기에서 티켓을 끊은 뒤, 둘은 망각의 강을 건너며 잡담을 나눴다.
“헌데 지금 축제 수습기간 아니었나. 개인의뢰야?”
“축제 뒷수습 맞아. 그런데 이번 축제에선 한명밖에 안 죽었거든.”
“그건 좀 아쉬운데.”
“성수기에 못 벌어서 아쉽겠어.”
“오우. 그건 아냐. 이번 분기엔 동방제국에서 부활의뢰가 많았거든.”
“제국이? 내전이라도 났나?”
“나야 모르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동방제국의 부활술은 인류왕국의 부활마법보다 짭짤하거든.”
“어째서?”
“구시대에 임금협상을 잘못해서 대가가 금화가 아니라 보석이야.”
“오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지옥청사에 도착한 사제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용사제도가 시행된 이후 초보용사들이 형편없이 죽어나간 덕에 지옥에서 업무를 보는 게 지나치게 익숙해진 것이다.
사제는 경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부활과에서 신청서류를 작성한 다음, 그 자리에서 왕국의 2급 인가도장을 찍고 악마 공무원에게 건넸다.
여기까지가 신성마법으로 사신과 인류왕국 사이에서 정한 기본적인 절차다. 사제는 죽은 영혼만 수령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날은 악마 공무원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아니 검술대회에서 죽은 이의 부활이라니······.” 악마 공무원은 받은 서류와 영혼 장부를 대조해보고는 뿔을 긁적였다. “이상하군요. 접수된 혼이 없는데요.”
“그럴 리가. 분명히 한명 죽었네만. 영혼관리과 인류왕국 팀의 세눈박이 악마 팀장에게 연락 해봐주게. 왕궁 고위 부활담당관이 물었다고 하면 잘 대답해줄 걸세.”
악마 공무원이 전화를 넣자 잠시 후, 답변 대신 세눈박이 악마가 카스테라 빵이 담긴 접시를 든 채 부활과를 방문했다.
“아이고 사제님. 이번에 왕궁에서 보내주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연락만 주셔도 되는데 왜 여기까지 내려오셨습니까. 허허허.”
“선물? 무슨 말인가. 올해 번제는 여신님께만 했을 텐데?”
“엥.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렇게 탱글탱글한 카스테라를 보내주셨잖습니까.”
“ ”
“그나저나 불 조절 기막히게 하셨던데요. 제단에 불 피운 거 담당관님이 직접 하셨나요? 신역에 보내는 거면 모를까, 지옥에 들어오는 건 대부분 검댕이가 되던데.”
“그거···설마 다 먹었나?”
“하하하. 지옥은 지상보다 더워서요.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해버립니다. 그래도 묘하게 큼지막해서 제법 오래 먹었지요. 이게 마지막입니다.”
“내가 부활시키려 했던 건 빵타지아라는 세계에서 온 카스테라 기사인데······.”
“ ”
“다 먹었으니···부활은 무리겠지?”
“아무래도 어렵지요. 지금쯤 만드라고라 밭의 거름이 되었을걸요.”
“흠···팀장. 이게 마지막 빵이라고 했지?”
“예. 그렇지요.”
“차라리 완전히 다 먹어치우세나. 증거가 없으면 감사에서도 뭐라 하진 않겠지.”
“과연. 그러면 되겟군요. 이번엔 저희쪽 실책도 있으니 부활과 과장한테 말해서 다음번 부활업무는 무료로 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사제의 시선이 접시로 향했다.
거기엔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터로 코팅한 것 같은 탱글탱글한 표면이 인상적인 카스테라 기사가 앙증맞은 한입크기로 토막나있었다.
“···맛있었나?”
“어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신역까지 승천할 맛이라니까요.”
“지옥의 음식을 먹으면 지옥의 사람이 된다는 제약만 없으면 먹어보고 싶긴 한데.”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징수팀장한테 한 접시 주면서 얘기해봤는데, 빵들의 지옥은 이쪽 지옥하고 업무협약이 안 된데다 애초에 있는지도 미지수라서 지옥의 음식이라 정의하지 못한다네요.”
“그거 악마의 유혹 같은 걸로 들리는데.”
“득이 되면 사실을 적당히 숨겨서 꼬셨겠죠.” 세눈박이 팀장은 쿡쿡 웃으며 덧붙였다. “저희가 악마이지 우수 거래국 사람을 등쳐먹을 만큼 궁핍하진 않아서요.”
“오호라. 잘됐군. 하나 먹어봐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거기 주무관. 자네도 하나 들게나. 남은 걸 나 혼자 먹기엔 좀 많거든.”
“알겠습니다. 마침 저한테 꿈의 세계의 벌꿀술이 있으니 같이 곁들여 먹도록 하죠.”
“꿈의 세계의 벌꿀술? 어장의 양식 물고기하고 맥의 우유와 함께 서큐버스들이 만드는 삼대 진미아닌가! 보통 비싼게 아닐텐데?”
“헤헤헤. 이번에 동방제국에서 사람들 떼거지로 부활했을 때 특근 수당을 받아서요.”
“그거 축하하네. 제국사람들이 좋을 때 죽어줬었군.”
“허허. 어떤 의미에선 사람을 쥐어 짜서 만든 술이로군.”
세눈박이 팀장과 부활 주무관, 인류왕국의 사제는 작은 탁자 위에서 소박한 다과회를 가졌다.
후일 사제의 말에 따르면 카스테라 기사의 맛은 꿈에서나 맛볼 수 있을 영혼의 맛이었다고 한다.
- 작가의말
이거 식인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덧글을 종합한 결과, 식빵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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