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LIVE A LIFE
천하제일 어쩌구 대회가 열리기 얼마 전.
집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드래곤은 그날 수해를 입은 마을 위를 지나고 있었다.
장마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에 습기가 들어찬지라 심복인 고블린 삼형제에게 뒷수습을 맡기고 나들이란 명목으로 도망쳐 나온 것이다.
드래곤은 그 선택이 썩 나쁘지 않았노라고 자화자찬했다.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오락가락하던 지적인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행운을 누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나오지 않았다면 수해를 입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문자 그대로의 락 페스티벌도 놓쳤으리라.
“호오, 인간 주제에 기획력이 좋은걸.”
본래 현장은 세 명의 마법사들이 마을을 도울 겸 마법사들끼리 우열을 가리는 중이었다. 첫 번째 마법사가 마을의 온기를 되살리고 두 번째 마법사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베풀었을 때, 세 번째 마법사가 돌 골렘을 부려 일으킨 음악회가 그대로 페스티벌로 이어졌던 것이다.
드래곤은 연륜에서 비롯된 지혜로 상황을 꿰뚫어보고는 이를 아니꼽게 바라봤다.
락 페스티벌에 악감정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본인이 참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간부터 본데다가, 지상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싫어서 한참 떨어진 공중에서 봐야 했으니까. 이왕 라이브를 본다면 좀 더 가까이에서, 처음부터 보고 싶었다.
거기서 드래곤은 생각했다.
‘그래, 밴드를 하자.’
없으면 만들자는 방침을 세웠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보컬을 하자니 포효 한번에 고블린 삼형제가 게거품을 무는 걸 보고 관둬야 했고, 악기를 다루자니 드래곤의 몸으로 악기를 다루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전용 악기가 없어서 인간에 맞춘 물건을 써야 했는데, 그건 그거대로 크기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고블린 삼형제에게 악기제작을 맡겨봤지만 음악적 소양이 아예 없던 그들이 뭔가를 해낼 수는 없었다.
사족이지만 삼형제의 급료는 그 후 두 달 동안 감봉되었다. 원하는 걸 쉽게 얻지 못한 고용주의 티끌 한 점 없는 순수한 악의였다.
그렇다면 드래곤은 밴드를 포기했을까?
정확히 반대다. 드래곤은 탐욕적인 생물. 뭔가 실패하면 거기에 더 집착하는 게 그들의 습성이다.
‘그래, 밴드를 만들자.’
드래곤은 밴드 관련 지식을 얻기 위해 곧장 무한도서관으로 향했다. 무한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물었던 고등학생이 알았다면 기가 차다 못해 드래곤의 비늘을 쥐고 거꾸로 비틀어버릴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드래곤은 드래곤의 법도를 따를 뿐이고, 그 법도엔 무한도서관에 대한 제약 같은 건 없었다.
여기까지가 대지마법사가 드래곤에게 들을 자초지정이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건······.”
“그야 널 프로듀스 하기 위해서지. 너는 공연해본 적도 있고, 드러머가 어울릴 거 같은데. 그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보컬만 있으면 되겠지.”
“어째서 제가 하는 게 전제가 된 것인지······.”
대지마법사가 떨떠름해하며 주저하자 드래곤은 가까이 있던 돌 골렘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눌렀다. 바위처럼 탄탄했던 골렘은 푸딩처럼 뭉개졌다.
“안 해줄 거야······?”
“그것이, 그건 내기였을 뿐이고······.”
드래곤의 손 끝이 이번엔 강철 골렘 위에 올려졌다. 철처럼 탄탄했던 골렘은 쿠키처럼 바스라졌다.
“안 해줄 거야······?”
거부할 수 없는 프로듀스.
한번만 더 말을 돌렸다간 이번에 손가락에 깔리는 건 가장 아끼는 미스릴 골렘이나 자기 머리일 거라고 여긴 대지마법사는 눈을 질끈 감고 항의했다.
“아니 한다고 칩시다. 나머지 넷을 어디서 구한다는 거요? 그것도 드래곤 귀에 찰만한 사람들을! 당장 나만해도 연습하다 한세월 가겠는데!”
“아 그건 걱정 없어. 1시간만 기다려봐.”
비늘 안에 넣어둔 지갑에서 피자 쿠폰을 꺼낸 드래곤은 이를 주저 없이 찢었다.
29분 59초 뒤.
대지마법사와 드래곤 앞에 붉은 모자의 피자배달부가 도착했다. 늘 그렇듯 한쪽 손에는 따끈한 피자가 들려있었다.
“오랜만이군. 드래곤. 배달은 확실히 마쳤다.”
“늘 정확한 시간이군. 온 김에 서비스로 일 하나만 더 해줄 수 있을까?”
“그쪽이 배달을 시켰다 해서 내 고용주인건 또 아니다만.”
“그러지 말고. 옛날에 마왕도 같이 때려잡은 사이잖아?”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냐. 지금은 마왕이 시골 촌장보다 많은 시대다만.”
“유행타서 늘어난 애들 말고, 오리지널 얘기하는 건데······. 어쨌든, 안 해줄 거야······?”
이 순간, 대지마법사는 어미에서 오싹한 낌새를 읽어냈지만 현실은 그의 걱정보다 약간 더 잔인했다. 드래곤의 손가락은 마침 테이블에 갓 데운 녹차를 놓고 돌아가는 아다만티움 골렘을 젤리처럼 눌렀다. 소재가 워낙 탄탄한 광물이었던지라 완전히 파괴되진 않았지만 안짱다리가 된 외형은 영원히 고치지 못하리라.
울먹이는 대지마법사를 흘끔 본 피자배달부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며 말했다.
“안 된다고 하면 또 사흘 밤낮을 울어대겠지. 용이 우는 건 여러모로 민폐다. 뭘 가져와줬으면 하는데?”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야.”
“···나그네인가. 확실히 드래곤이 찾아내기엔 무리가 있겠군.”
피자배달부가 드래곤의 의뢰를 수락하고 다시 29분 59초 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슬라임 대수해에 대한 내 견해는 말이지······. 어? 뭐야. 여기 어디야?”
슬라임 대수해에서 따끈한 커피 슬라임을 든 채 민속연구가의 연구물에 대해 토론 중이던 고무나무 지팡이의 나그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놀란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고무나무 지팡이의 인도에 따라 포탈을 열고 무수한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이런 트러블은 흔했던 것이다.
피자배달부가 떠난 뒤, 드래곤에게 밴드 이야기를 들은 나그네는 빙긋 웃었다.
“과연. 밴드멤버를 프로듀스하기 위해 포탈을 빌려줬으면 한다는 거네. 좋아. 협력할게.”
나그네의 등 뒤로 나타난 무수한 포탈은 드래곤의 계획이 어떻게든 진전이 있으리란 징조였다.
“잠시만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협조적이신 거 아닙니까?”
‘일이 잘 진행되면 내가 곤란하다고요’라는 말을 간신히 뒤로 숨겼을 때, 나그네는 느긋하게 답했다.
“싫어하지 않거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어떻게든 하려고 매달리는 사람.”
대지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그네의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옆에 있는 드래곤이 손가락으로 골렘을 뭉갤지, 자신을 한끼 식사로 해버릴지를 진지하게 고려할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차원을 넘나드는 드래곤의 밴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