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빵타지아 3 ~Ringed doughnut~
“그래, 사실이야.”
계피사탕 할멈은 오랜만의 손님 앞에서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은 오래된 빵타지아. 제빵사의 불이 반죽에 생명을 불어넣던, 빵과 과자들의 고향.”
충치균에 감염되어 반쯤 썩은 계란과자가 석탄을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이방인의 눈에 들어왔다. 이를 묻자 계피 할멈은 친절하고 느리게 답했다.
“순례자들은 제빵사의 불로 향하고, 첫 빵의 탐구자가 했던 예언을 실천하지.”
말은 이어지는 만큼 계피 할멈의 몸은 천천히 부서져 내렸다. 지금까지는 계피 특유의 항균작용이 충치균의 침식을 막아왔으나, 순례자들이 운반한 석탄에 의해 고온 건조한 세계가 된 빵타지아에서 오래된 과자의 표면은 풍화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말을 멈추면 조금은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계피 할멈은 멈추지 않았다. 사명을 완수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불은 꺼져가고, 화덕에는 빵이 없나니. 바스러진 가루 위에 하얀 질병이 일어난다. 과자들의 마지막 낙원인 ‘고리의 도넛’은 화덕의 시대가 끝날 때 일어나리니.”
말을 마친 순간 표면의 금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지금까지와 확연히 다른 속도. 계피할멈은 사명을 달성했다는 만족감을 얼굴에 드러낸 채 이방인의 이름을 물었다.
계피할멈에겐 불행히도 대답을 들을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늙은 과자가 한 줌 부스러기가 된 그곳엔 그 옛날 빵타지아에 쳐들어온 공포와 폭식의 화신, 이름만 들어도 모든 과자들이 겁에 질리는 ‘여고생’의 이를 찔렀다는 전설의 검, 시나몬 블레이드가 제빵사의 불이 내뿜는 빛을 받아 은은한 적갈색으로 빛났다.
이방인은 이를 들고 빵타지아의 중심에서 솟구치는 영원한 불기둥, 제빵사의 불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그 여정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멸망해가는 세계조차 포기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려던 자들이 이방인과 시나몬 블레이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머랭의 수호자, 마카롱 결사대.
잊혀진 캔디성벽의 고독한 군주, ‘긴 빵’ 바게트.
그리고 오븐과 고리의 도넛의 비밀을 아는 자, 블랙푸딩.
마카롱 결사대와 바게트를 쓰러트리고 제빵사의 불로 이어지는 지하 갱도 ‘단맛의 깊은 곳’에서 시나몬 블레이드로 블랙푸딩의 탱글한 육신을 반으로 갈랐을 때, 블랙푸딩은 높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를 조롱했다.
“그대를 알고 있다······. 때문에 우습구나! 빵도 과자도 되지 못한 주제에 우리들의 구원자라도 되겠다는 건가? 네가 그곳에 도달하면 우리 모두가 죽을 텐데? 그대는 파괴자다. 우리 모두를 파멸시키겠지!”
“먹을 수 없는 빵에 의미는 없다.” 그는 담담한 어투로 이어 말했다. “세상은 늘 새로운 빵을 원할 뿐.”
“위선자 녀석. 잘도 성자 같은 말을 늘어놓는 구나. 그대여, 부스러기 속에서 지켜보마, 새 빵들의 미래가 얼마나 대단할지 말야! 그리고 기다리마. 결국 그대들도 썩어 문드러질 테니!”
“그렇겠지.”
그는 남은 힘을 모아 비웃어대는 블랙푸딩을 뒤로한 채,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는 또 새 빵이 구워질 거야. 오븐은 그러기 위해 존재하니까.”
길고 깊게 파인 굴을 지나 이방인이 도착한 곳은 지면에 거대한 해치가 자리한 공동. 조금 위에선 제빵사의 불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을 내며 밝게 불타고 있었다. 충치균이 창궐한 이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석탄을 공급하고 스스로를 불태운 덕에 제빵사의 불은 역대 최고 수준의 화력에 도달해 있었다.
타버린 빵의 재가 검은 눈이 되어 휘날리는 공동. 해치를 조사하던 이방인은 눌러붙은 민트초코 아래에서 석탄과 다른 돌을 발견했다.
고열에 녹아내린 듯, 붉은 색에 가까운 분홍색이 일렁이는 돌.
이방인이 무심코 그 돌을 쥐고 뽑아내자 해치는 지진을 연상시키는 흔들림과 소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제빵사의 불을 통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빵타지아의 주민들의 몸을 구성하는 원료. 방대한 반죽의 바다.
시나몬 블레이드를 내려놓은 이방인은 주저 없이 반죽의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후세에 의해 알려진 그의 이름은 이스트. 빵을 발효시키는 핵심 효모.
이스트를 집어 삼키고 제빵사의 불을 받은 반죽은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잊혀진 재료창고의 해치를 뚫고, 오븐의 언덕을 부수며, 빵타지아의 병들고 오래된 땅을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늘로 밀어 올렸다.
지하에서 밀려오는 새 빵의 압력을 버티지 못한 구시대의 케이크 단층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단어로 표현하지 못할 굉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블랙푸딩의 시각은 정확했다. 지상의, 특히 석탄을 들고 침식당한 몸과 함께 충치균을 불사르던 순례자들은 파열하는 과자파편에 휘말렸다. 이런 재난 속에서 얼마나 많은 빵이 죽고 살아남았는지는 의미가 없으리라.
이윽고 뜨거운 증기에 의해 떠받들어진 고리 모양의 섬이 빵타지아에 자리했다. 구시대의 땅에서 새 섬으로 옮겨가려 했던 충치균은 농밀한 증기에 의해 감히 접근하지 못했고, 구시대의 지각을 구성하던 초콜릿이며 카라멜, 캔디와 젤리 따위가 봄에 만개한 꽃잎처럼 흩날리며 섬 위에 차분히 안착했다.
전승에 따라, 충치균이 도달할 수 없는 과자들의 낙원에는 ‘고리의 도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훗날,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고리의 도넛 주민들에게 치약과 올바른 식습관 등을 전달한 나그네는 고리의 도넛을 조금 찢어서 입에 머금었다.
민트초코가 지켜내고 초코소라가 탐구하였으며, 이스트가 도달한 농밀한 결과물을 충분히 즐긴 그는 행복한 얼굴을 한 채 감상을 말했다.
“음, 끝내주는 맛이야!”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