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책 수호자
저주받은 서재에서 책이 자라나는 세상 끝의 무한도서관.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긴 시간동안 책 수호자라 불리는 자들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
책갈피처럼 앙상한 팔다리를 가운으로 가리고, 머리에는 이목구비 대신 책이 달렸다. 판타지 세계에 여러 종족이 있지만 그들은 거기서도 유독 특이한 형태였다.
한편 책 수호자의 아침은 보통 사람들보다 대단히 늦게 시작된다. 게으르단 것은 아니다. 책 수호자가 움직이는 데는 그만큼 준비시간이 필요했다.
“건조시간. 건조시간!”
날씨 책은 습기가 가라앉고 일출이 시작된 이른 아침에 종을 울리며 무한도서관을 배회했다.
다른 책 수호자들은 그 소리에 맞춰 하나 둘 책장이나 도서관 바닥, 또는 책장과 천장 틈새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봐, 날씨! 오늘 어때?”
“글쎄. 아직 아침을 안 먹어서 모르겠는걸.”
“그렇구만. 먹고 오면 알려달라고! 항해는 바람 부는 맑은 날에 나가야 하니!”
넉살 좋게 말하는 항해 책(책이 물에 젖을까 무서워 단 한 번도 항해에 나선 적은 없지만)에게 적당히 호응한 날씨 책은 도서관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갔다.
등대와 함께 무한도서관 일대에서 가장 큰 도서관 탑에는 무한도서관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서재가 있었다.
탑의 서재에 있는 책장은 다른 곳과는 조금 형태가 틀렸다. 탑의 옥상에 구성된 서재에는 수탉을 본뜬 풍향계나 온도계 등이 달려있었고, 책들은 풍화를 견디기 위해 표지가 철로 둘러싸여 있었다.
날씨 책은 그중에서도 유독 두꺼운 책을 펼쳤다. 책 안은 한창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검은 잉크들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페이지를 넘나들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비집고 들어가 글자가 되었다.
이렇게 채워져 가는 페이지 속에서 자신이 원하던 정보를 찾아낸 책 수호자는 온도계와 풍향계를 살피고는 가운 안에서 잉크와 펜, 메모지를 꺼내 오늘의 날씨에 관한 부분을 옮겨 적었다.
이것으로 ‘조리’가 끝났다. 책 수호자는 머리 책을 펼치고, 가름끈을 길게 늘어뜨려 그 끝을 메모지 위에 살며시 얹었다.
메모지의 잉크는 가름끈을 타고 올라가 그의 머리 책으로 들어갔다. 책 수호자의 ‘식사’는 잉크가 알맞은 자리를 찾고 글자로 변하는 순간 완료된다.
날씨 책은 다시 한 번 온도계와 풍향계를 살피고는 손끝으로 가름끈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늘도 정확한 맛이군.”
날씨 책은 탑을 내려가 도서관의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다른 책 수호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따사로운 햇볕에 자신들의 머리를 건조시키고 있을 터였다.
그는 서둘렀다. 높은 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은 만큼, 날씨 책의 머리엔 보다 섬세한 트리트먼트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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