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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반선(回歸半仙)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국룡
작품등록일 :
2021.01.18 09:52
최근연재일 :
2021.01.30 11: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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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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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44

작성
21.0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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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검은 달(黑月)(2)

DUMMY

-회귀반선(回歸半仙)


4화. 검은 달(黑月)(2)




눈앞을 스치며 서탁에 박힌 그 것은 암기였다.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 유엽비도(柳葉飛刀)


암기가 날아 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창 밖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일부러 창가에서 떨어져 앉았건만 피하지 않았으면 일격에 죽을 수도 있는 천극혈(사혈, 귀 뒤의 아래쪽)을 정확히 노린 수였다.


서태환은 유엽비도를 빼어들고 살펴본 후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


흑월은 대나무 유엽비도를 던지자마자 자리를 떴다. 보름하고도 삼일을 관찰한 녀석은 고작 이 정도 수에 죽을 녀석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맡은 임무였고 마지 못해서 수락을 하긴 했지만 서태환이란 녀석은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암살목표로서도.. 오랜만의 사람 구경거리로서도.. 오년의 공백이 자객으로서의 마음가짐을 흐렸다고 한다면 그저 궁색한 변명일까?


풍문을 듣긴 하였으나 이제 겨우 무예수련을 시작한 녀석은 특별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예의 성취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이 우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녀석은 비록 정성껏 공을 들이지 않았다고는 해도 자신의 살수를 번번히 파(破)해가는 것에 흑월은 녀석을 단번에 죽이는 게 아깝다는 생각마저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의 임무는 실패하더라도 그만이었다. 과거 순간의 변덕으로 한 약조 때문에 내키지 않지만 움직인 것.


이제 와서 다시 자객으로서의 위명을 떨칠 야망도 또 자신이 납득 못할 살인도 지겨워진 흑월이었다.


이 모든 허무감의 근원은 스스로가 당문에서 추방당한 원인과 맞닿아 있었다.


흑월은 보름째 은신처로 삼고 있는 서가 저택 본채의 꼭대기 지붕 밑 처마사이의 공간에 몸을 구겨 넣으며 다시 상념에 잠겼다.


그녀에게 끌린 게 언제부터 인지.. 인생의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그 순간의 시작점이 대체 언제인지 다시 곰씹어 보는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였나?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를 봤을 때?

아니면 그녀의 알몸을 봤을 때부터?

남자는 여자의 무엇에 그토록 끌리는가?


사천당문 문주 일월비도 은심월 당고독은 본디 여색을 즐기는 자는 아니었으나 여인에 대한 자신의 선호는 확실한 자였다.


자신의 선호에 딱 맞는 여인이 다른 남자의 소유가 되는 걸 그는 참지 못하였다.


그렇게 모아진 처첩이 일곱이었으니 흑도도 아닌 백도의 한 정파를 대표하는 자로서는 능히 허물이 될 만한 여성편력이었다.


자식들도 모두 30명이나 되었으니 문주인 아버지의 관심을 사기 위한 자식들 간의 경쟁도 치열한 것이었다.


그 중에 흑월은 뼈를 깍는 노력으로 사천당문에서 일류고수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고 곧 차기 문주의 재목으로 거론되었다.


그 무렵 은심월이 마지막으로 들인 첩 천하미색 월하향은 사천에서 제일 소문난 미인이었다.


영웅은 호색이요 미녀는 해어화(解語花)라 하였나. 당시의 흑월은 능히 사천당문의 내노라 하는 영웅이었고 월하향은 그야말로 말하는 꽃이었으니 둘이 끌리게 된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아버지를 닮은 건 무예 실력만이 아니었다. 그 여성편력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마음을 준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된 흑월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천하의 몹쓸 짓. 족보상 근친상간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흑월은 그녀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꼬리가 길면 밟히듯이 둘의 은밀한 애정행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심월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언제부터냐?”


“...”


“유혹하더냐?”


“....”


“그럴 가치가 있었나?”


“....”


지독한 심문 끝에 은심월의 독문비수가 흑월의 얼굴을 이리저리 그었을 때도 처음의 죄송하단 말 이외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버티어 내었다.


은심월은 차마 아들을 죽이진 못하고 죽을만큼 때린 후에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열흘 밤낮을 사경을 헤매면서도 흑월은 오로지 그녀한테 가해질 위해만을 걱정하였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을 돌보아주던 여인이 월하향의 서신을 가져다 주었을 땐 흑월은 살아서 그녀를 보겠단 의지로 버틸 수 있었다.


열흘 후 이름을 알게 된 포아랑이란 여인이 월하향과 나눈 정표를 들고 왔을 때 흑월은 그녀에게 곧 변고가 생길 것임을 깨닫고 부서진 몸으로 운기조식을 하며 살아서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다.


다시 열흘 후 포아랑이 전한 월하향의 죽음과 그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있었음을 알게 된 흑월은 까무러진 채 닷새를 보냈다.


다시 깨어난 흑월의 눈에서는 이제 삶에 대한 의지 따윈 보이지 않았다.


폐인이 되어 버린 아들을 은심월은 측은지심보단 분노와 시기의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내쫓아 버렸다.


흑월은 은심월을 이해했다. 그도 그랬을 것이므로..


자신을 따라 나선 포아랑이란 여인과 변덕스레 차린 오막살이 살림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흑월은 이별을 고하고 잠적하였다.


언젠가 부탁이 있으면 한번은 들어 줄 터이니 구화산의 자신을 찾으라는 변덕의 약조도 그 때 행한 것이었다.


이 후 소식을 몰랐는데 다시 사천당문으로 돌아간 것이었나.. 씁쓸히 웃으며 옛 생각을 정리한 흑월은 다시 흘러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


다음날 아침 서태환은 유엽비도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독이 발라지지 않은 자객의 암기라...이건 뭘 의미하는가..


흑월.. 흑월이란 이 자는 무엇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으레 자객이야 돈으로 움직이는 족속들이지만 오년의 은거, 사천당문에서 쫓겨난 연유를 추적하여 보니 이 자는 돈에 움직이는 자는 아니었다.


“사형, 얼른 수련하러 가셔야지요?”


뒤늦은 배움에 재미가 들린 동이는 늘 약속된 시간 보다 일찍 태환의 팔을 끌고 수련장으로 사용하는 남궁연의 처소로 가는 것이었다.


“스승님, 제자 태환. 문안인사 올립니다.”

“스승님, 제자 동이. 문안인사 올립니다.”

“그래, 환아. 숙제는 어찌 되어 가고 있느냐?”


남궁연과 서태환에게 자객 문제는 이제 숙제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남궁연은 그동안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서태환의 용력이라면 자객에게 당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고 서태환은 어제 이후 이제 이 싸움에 흥미가 발동하여 재미마저 들리려 하고 있었다.


“조만간 답이 나올 듯 하옵니다.”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결자해지라 하였으니 스스로 한번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도 변함없이 검법부터 시작한다. 동이는 심법부터다.”


흑월은 그늘에 숨어 서태환을 심드렁이 쳐다 보고 있었다.


‘이제는 경계마저 흐릿해 지는구나. 이거 재미 없어지려 하는군.’


김이 샌 흑월은 숨어 있던 나무에서 뛰어내려 오랜만에 청양거리로 나가 주루로 발을 옮겼다.


“여기, 만두랑 황주 하나.”

“예이.”


주문을 접수한 점소이가 한다경(15분) 뒤 음식을 내어 왔다.


어디나 그렇듯 주루에는 이른 아침부터 파락호나 할 일없는 늙은이들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장강수로 놈들이 없어지니 거리도 깨끗하고 좋구만. 돈도 안 뜯기고.”

“왠걸, 지금 흑룡채 놈들이 복수를 하려고 벼르고 있다던데, 외곽 쪽에는 다시 슬슬 기어 나오고 있는 모양이야. 도적떼 본성이 어딜 가는가.”


흑월의 귀가 쫑긋해진다.


‘장강수로 흑룡채라? 분명 날 찾아온 놈도 그 쪽 놈이라고 했지?’


“이건 흑룡채에 고기를 갖다 대는 내 지인이 알려준 얘기인데..”


말을 꺼낸 늙은이는 누가 듣는 걸 경계하는 듯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내공을 운용하여 귀를 민감하게 한 흑월의 귀를 피할 순 없다.


“장강수로에서 자객을 고용해서 서태환을 노린다는 얘기를 들었데.”

“뭐? 자객? 태웅 서태환의 용력이 대단하다는 풍문인데 자객이 공자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실력이 되는 자객이라면 못해도 황금 천 냥은 줘야 할 텐데 광구 그 돈귀신이 설마 그런 돈을 낼라 했을라구.”

“그래서 다른 계책으로 자객을 고용했고 습격준비를 다 해놓고 어서 비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만 흘러가니 약이 올라 죽고 있다는 얘기야. 흑룡채 내부에서는 자객이 벌써 도망갔다는 얘기가 자자하고 암살 계책을 주도한 동패란 놈이 문책당하기 일보직전이라지 뭔가.”


‘도망이라...’

씁쓸한 기분을 애써 삼키듯이 흑월은 황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잠깐, 방금 동패라고 하였나?’


“이보게, 노인장. 흑룡채에 동패란 녀석이 있다고 하였나?”


흠칫 놀란 늙은이는 갑자기 말을 건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연륜에 어울리게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다.


그의 얼굴에 난 흉터는 여간 흉악해 보이는게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대협. 흑룡채 채주 광구 개운방의 오른팔입죠. 철두공 동패라고 대머리에 얼굴이 시커멓고 짧딱막한 놈이 하나 있습니다.”

“고맙네..”


‘나를 찾아 온 놈과 용모도 정확히 일치한다..그런데 동가라.. 포아랑이 누이동생이라고 하였는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


동이는 얼굴을 찌푸리고 가부좌를 튼 채 자리에 앉아 있다. 이를 쳐다보고 있던 남궁연이 말한다.


“동이는 영 단전이 형성되지가 않는구나. 양이지체도 아닌 듯 한데.. 이건 무슨 연고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감은 눈을 뜬 동이가 반문한다.


“스승님, 저는 재능이 없는 것입니까?”

“아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또 무예에 흥미를 가지는 것 또한 재능의 한가지다. 넌 그 면에선 출중하다. 실망하지 말고 정진하도록 해라.”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동이가 대답한다.


“하지만 태환사형은 이미 익숙하게 검법을 운용하는데 전 둔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를 만발한 꽃과 비교하여 미추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성취만 생각 하거라.”


남궁연의 부드러운 타이름에 동이는 곧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의식을 집중한다.


‘동이의 말이 맞다. 태환은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다. 검법이 권법이 보법이 움직이는 방향과 나아가는 순서와 강약조절 거기에 따른 내공의 신묘한 운용을 정확하게 바른 길만 골라서 가고 있다.’


청명검의 푸르른 광채가 눈부시게 천풍뇌벽검의 초식을 차례로 시전 해 나가는 태환은 이미 고수가 보기에도 완벽한 것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용을 쓰던 동이는 이내 한숨을 몰아쉬며 일어나 이제 삼재검법을 연습하려 목검을 들고 공터로 들어선다.


태환의 검초를 관찰하기 위해 눈에 내기를 돌리던 남궁연이 우연히 동이를 쳐다보았을 때 목검에 서린 실낱같은 기운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동아, 잠깐 이리와 보거라.”


혹시 자신의 검초에 잘못된 것이 있어 지적을 받나 싶어 동이는 쭈뼜쭈뼛 남궁연의 앞으로 왔다.


“여기 내 앞에서 다시 1초식 ‘태산압정’을 시연해 보거라.”

“네, 스승님.”


동이는 자세를 잡고 목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여전히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치고는 제법 자세가 잡힌 일합이었다.


“다시 내 앞에 뒤돌아 앉아 보거라.”


목검을 내려놓은 동이가 남궁연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남궁연은 이전에 서태환에게 했듯이 내기를 불어 넣어 그 흐름을 확인한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순간 남궁연의 눈이 크게 떠진다.


‘이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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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화. 흑룡채(黑龍寨)(5) 21.01.30 766 9 12쪽
14 5화. 흑룡채(黑龍寨)(4) 21.01.29 821 11 11쪽
13 5화. 흑룡채(黑龍寨)(3) 21.01.28 871 11 11쪽
12 5화. 흑룡채(黑龍寨)(2) 21.01.27 898 13 12쪽
11 5화. 흑룡채(黑龍寨)(1) 21.01.26 956 14 12쪽
10 4화. 검은 달(黑月)(5) 21.01.25 1,032 16 12쪽
9 4화. 검은 달(黑月)(4) 21.01.24 1,032 17 11쪽
8 4화. 검은 달(黑月)(3) 21.01.23 1,087 19 12쪽
» 4화. 검은 달(黑月)(2) 21.01.22 1,185 19 12쪽
6 4화. 검은 달(黑月)(1) 21.01.21 1,332 18 12쪽
5 3화. 개사냥(3) 21.01.20 1,356 24 12쪽
4 3화. 개사냥(2) 21.01.19 1,411 22 12쪽
3 3화. 개사냥(1) 21.01.18 1,540 25 12쪽
2 2화. 다시 태어나다. +2 21.01.18 1,758 28 12쪽
1 1화. 다시 죽다. +3 21.01.18 2,095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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