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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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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42,252
추천수 :
2,231
글자수 :
220,752

작성
23.05.15 12:13
조회
3,197
추천
61
글자
11쪽

작가의 권한(3)

DUMMY

― 크하하하, 잡았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놈처럼 대장 고블린이 박장대소했다.

의기양양한 손아귀엔 예민아의 목줄기가 콱, 잡혀 있었다.

작달막한 칼끝이 그녀의 복부를 가벼이 찌른 상태였다.

구겨진 상의로 핏물이 살짝 배어 나오는 게 보였다.


― 보았느냐,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위대한 고블린 왕, 골고딘의 피를 이어받은 나, 골골과 맞서다니. 너 같은 하등 동물은 두 발로 걸어 다닐 자격이 없다!


구불거리는 그의 혀끝이 예민아의 뺨을 핥았다.

타액이 뺨을 타고 목덜미까지 뚝뚝 떨어졌고.


“꺅!”


예민아가 몸서리쳤다.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 요고요고, 팔팔하구나. 크핫!


음흉하게 웃던 대장 고블린이 순간 나를 노려봤다.


― 이 여자인간을 살리고 싶나?


내가 딱히 대답하지 않자 그는 다소 당황스런 표정을 내비쳤다.

저질스런 방식으로는 도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구사했다.

예민아의 발목을 거칠게 걷어찼다.

그녈 억지로 무릎 꿇린 그가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 이년을 썰어버리기 전에 무기를 버려라!


예민아의 턱밑에 칼을 들이밀며 대장 고블린이 소리쳤다.

저 음산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예민아가 이리저리 나를 찾았다.


“아, 아, 아저씨. 혹시 앞에 있어요? 지금 앞에 있는 거 맞죠?”

“······어.”

“아저씨! 제가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그런데요, 나, 잡힌 거예요? 수, 숨을 못 쉬겠어. 목이 너무 졸리고요, 배도 아아, 아파요. 뭔가 뭔지, 말 좀 해줘요. 네?”


예민아가 울먹였다.

뭐, 겁먹을 만은 하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데 냄새나는 혓바닥이 막 들락거리고······.


그래도 저만하길 다행이다.

울부짖지는 않으니까.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주면 충분히 알아들을 정도의 정신은 있어 보였다.


“가만있어, 움직이면 피난다.”

“······피? 나, 나한테 피나요?”

“어. 칼에 배를 찔렸으니까.”

“칼이 배를?”

“지금은 네 턱밑에 칼 들어 있다. 섣불리 움직이면 목이 잘리니까 꼼짝 마.”


예민아가 새하얗게 질렸다.

현 상황을 너무 자세히 말해줬나?

대충 말하면 자꾸 물을까봐 귀찮아서 그런 건데······.


“괜찮아, 죽을 정도는 아냐.”

“뭐······라고요?”

“칼에 깊숙이 찔리면 말을 못하거든. 숨도 못 쉬고. 근데 넌 말도 하고 숨도 쉬잖아. 죽진 않는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아저씨!”


예민아가 두 주먹까지 불끈 쥐는 차였다.

그녀의 뒷머리를 움켜쥔 대장 고블린이 칼을 높이 쳐들었다.


― 내 말 안 들려? 무기 버리라고! 셋을 세겠다. 그 전에 버리지 않으면 이년을 고깃덩이로 다져버리겠어!


고블린의 언어를 예민아가 알아들을 리 없건만, 대충 눈치챈 그녀였다.

신경질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얌전하게, 손까지 모으며 빌었다.


“아······저씨.”

“왜?”

“이 괴물새끼가 나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거 맞죠?”

“어.”

“아저씨! 나 좀 살려주세요. 괴물 새끼하고 싸우려고 하지 말고요, 네? 하라는 대로 다 해주면 안 될까요?”


꽤 간절한 말투였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한 탓인지 고분고분한 게 안쓰럽기도 했고.


“······싫은데.”


뭉뚝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예민아의 입매가 콱 다물어졌다.

재갈을 물린 것처럼 일그러지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다 천천히 대장 고블린과 시선을 맞췄다.


“너, 골고딘의 후예인가?”


작가의 권한 Lv.1이 내 말을 고블린의 언어로 바꾸었다.

대장 고블린이 깜짝 놀랐다.


― 뭐, 뭐냐, 인간 새끼가 우리말을 해?

“대답이나 해. 골고딘의 후예가 맞나?”


내 물음에 대장 고블린의 고개가 와리가리 했다.

버그 걸린 프로그램 같은 표정을 지으며 놈이 되물었다.


― 닥쳐라. 너 따위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 그래! 나, 골골! 서쪽 고블린 종족의 위대한 왕, 골고딘의 15대손! 그분께서 세운 왕국을 다시 세울 자이며 옛 영광을 재현할 자이며······.

“진짜냐?”

― 이놈! 감히 인간 주제에 위대한 혈통을 욕보이는 것인가! 보아라, 이 단단한 이마를!


대장 고블린이 투구까지 젖히며 툭, 튀어나온 이마를 자랑스레 드러냈다.


“오.”


확실히 뿔 비스무리 한 게 달려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선 골고딘의 외뿔에 비하면 볼품없었으나 저만하면 후예의 징표가 될 만 했다.


“하나만 더 묻자. 혹시 네가 아까 사용했던 아이템 말이야. 그거 골고딘이 남긴 거냐? 그런 게 더 있어?”


그렇다면 당장 죽이기엔 아까웠다.

아무리 큰 보물이라도 고블린이 숨겨버리면 절대로 찾지 못한다는 게 이 세계의 정설.

혹시라도 골고딘의 유물이 남아있다면 최대한 살려두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대장 고블린은 대답을 거부했다.


― 이 인간 새끼가!


녀석이 예민아의 목을 슥, 그어버렸다.

때 아닌 칼날의 감촉에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 아래 실금보다 얕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대장 고블린이 다시금 칼을 높이 쳐들었다.


― 셋을 센다. 그 전에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진짜 베어버릴 것이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둘이니 셋이니 하는 말을 녀석이 나불거리기도 전에 나는 뼈창을 냅다 던졌다.


퍽!


뼈창이 정확히 대장 고블린의 이마에 꽂혔다.

놈의 고개가 콱, 젖혀졌고 이내 몸뚱이가 뿌리 뽑힌 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하, 말이 많아.”


대장 고블린이 쓰러진 후 몇 초 남짓 시스템 메시지를 기다렸다.

죽었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이마가 유달리 단단하니 뼈창을 던져도 뚫리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적중했다.


“1분 쯤 뒤에 깨어나겠지?”


상점에 접속했다.


“섬광탄.”


개당 1코인짜리 섬광탄을 몇 개 구입했다.

나야 어두워도 볼 수 있지만 예민아는 아니니까.


<상점에서 구입한 섬광탄이 개인 인벤토리에 저장되었습니다.>

<30칸 한정 인벤토리의 빈 공간이 20칸 남았습니다.>


폭죽같이 생긴 섬광탄 하나를 소환했다.

길쭉하게 뻗은 심지를 잡아당기자 푸쉬, 불꽃이 피었다.

사방의 어둠이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났다.


“괜찮냐?”


하지만 예민아한테서 돌아온 답은 북받친 설움이었다.

철푸덕 주저앉아서는 7살짜리 여자애가 생떼 쓰듯 우는 꼴이라니.

······어리다, 아직은.


전투 경험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그녀는 살려 달라, 구걸하지 않았을 거다.

사로잡혔다 해도 대장 고블린이 곧장 죽이려들지 않았으니 마법을 쓸 타이밍은 충분히 있었다.

마나 5짜리 뇌전 격류만으로도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켰을 텐데.


“너, 바보냐? 마법사가 왜 마법을 안 써? 아끼면 똥 된다?”

“마나가 없는데, 어떻게 써요! 아저씨가 뭘 모르나본데요, 마법사는요. 마나가 있어야 하거든요!”

“마나 꽉 찼다.”

“······예?”


그때였다.

섬광탄 불꽃과는 전혀 다른 광채의 빛이 어른거렸다.

이마에 뼈창이 박힌 채 죽은 척하고 있던 대장 고블린의 손바닥에서 빛의 입자가 원을 그렸다.


슬슬 이동할 때가 되었다.

예민아한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얼떨결에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놀라지 마라.”


나는 재빨리 대장 고블린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소용돌이치는 빛 속으로 녀석이 빨려 들어갔고 뒤이어 예민아와 나도 흡수되었다.


“꺄아!”






예민아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름도 몰라서, 아저씨라 부르는 그가 손을 내밀어서 그냥 살포시 쥐었을 뿐이었다.

세계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뱅글뱅글 돌았다.

믹서기에 갈리는 것 마냥 온몸이 짜부라졌고 급기야 흐물흐물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속이 다 뒤집혔다.


“우엑!”


한바탕 시원하게 토하고 나서야 시야가 트였다.

초점은 여전히 맞지 않았지만 흐릿하게나마 사물의 윤곽이 보였다.


“······아저씨.”


그를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한테 뭔 짓을 한 건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사람 목소리라도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아, 아저씨.”


희뿌연 사방을 더듬으며 그를 간절히 찾았으나 돌아온 건 거친 손길이었다.


“머리 숙여!”


주변을 살피던 이강한이 예민아의 머릴 다급히 짓눌렀다.

쉭, 화살이 그녀의 정수리를 스쳐갔다.


예민아는 깜짝 놀랐다.

자칫하면 이마를 돌쩌귀에 처박을 뻔해서.


“아저씨!”


확, 고함을 질러버렸는데 이내 후회했다.

자신을 감싼 그의 팔에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화살에 관통당한 팔뚝에선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예민아는 바로 깨달았다.

다소 흔들리던 초점 때문에 겹쳐보이던 실루엣이 순식간에 뚜렷해질 만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빼꼼히 고갤 들어 상황을 살폈다.


“헉.”


탄식이 절로 나왔다.

수십 개 횃불이 부채꼴로 펼쳐진 가운데 녹색의 이종 괴물들이 눈깔을 희번덕거렸다.

단단한 나무 방패 뒤에는 창검이 번뜩였고, 더 뒤에는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어어.”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혀가 굳어버렸다.

저들을 본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는다.’였다.

대충 봐도 괴물의 수가 백 마리는 넘어 보였고 적과 맞서는 그는 고작 뼈창을 쥐었을 뿐이니.


이상한 건, 이 끔찍한 열세 속에서도 그가 실실 웃고 있다는 것.

미친 건가?

패배를 앞두고 웃음이 나와? 이게 여유로울 상황이냐고!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익숙한 괴물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이때였다.

이마에 뼈창이 박혀 있는 놈이었다.

다른 괴물보다 몸집이 1.5배는 더 컸는데 괴성을 질러대는 게 정말 무섭기 그지없었다.


― 나, 골골! 서쪽 고블린의 위대한 왕, 골고딘께 맹세하건대 네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감히 내 이마에 창을 박아! 골고딘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이 성스런 이마에!


예민아한테는 까깍깍까라라라깍깍, 이렇게만 들려서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저 괴물이 분노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살을 갈아 마셔주마. 네놈들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고 뼈는 화살촉으로 쓰겠다.


쩌렁쩌렁 울리는 대장 고블린의 공갈에 예민아는 움찔했다.

이강한의 등 뒤로 재빨리 숨어버린 그녀는 덜덜 떨면서 그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어, 어떻게 해요. 아저씨.”


그러자 눈앞의 적을 노려보던 이강한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한테로 옮겨왔다.


“······예민아.”


예상외의 말이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한테 의지하려 들지 마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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