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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나혼자 네크로맨서로 리메이크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글방개
그림/삽화
아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4
최근연재일 :
2023.06.13 22:0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42,247
추천수 :
2,231
글자수 :
220,752

작성
23.05.13 21:10
조회
3,748
추천
70
글자
12쪽

나 혼자 네크로맨서(4)

DUMMY

크아!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무릎 꿇은 골고딘이 우레와 같이 울부짖었다.

기운이 사방으로 뻗쳤다.

그의 육체를 휘감은 외줄 쇠사슬이 일시에 끊어지며 가시처럼 돋았다가 저절로 붙어 가라앉았다.


최대한 키를 낮춰 조아린 그의 머리를 가벼이 쓸어줬다.

그러자 골고딘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검지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겁에 질려 푸대자루마냥 쓰러진 여자애를 어쩔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흠.”


깨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관뒀다

지금 정신을 차려봐야 발버둥이나 쳐대겠지, 싶어서.


“네가 들어.”


크어?


“왜?”


크어어어.


“짜부라지면 어떡할 거냐고? 괜찮아, 안 죽어.”


다소 냉소적인 말투로 대답하며 나는 어서 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저기 포탈 보이지? 거기서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포탈까지 뛸 준비를 하며 몸을 풀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포탈지기가 나타날 터.

지난 생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걸 해볼 작정이었다.


“가자, 골고.”


그러자 골고딘이 여자애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혼절한 그녀의 머리칼이 마구 흩날렸다.






그 시각.

이강한은 몰랐으나 골고딘 때문에 기절한 여자 마법사만큼이나 충격먹은 자가 또 있었다.


― 어어, 어!


골고딘의 원래 주인, 망량이.

턱이 빠지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서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죽었던 골고딘이 되살아난 걸로도 모자라 이강한, 저 빌어먹을 놈을 따라?


― 야, 골고! 어디 가? 어딜 가는 거냐고! 네 주인은 나잖아, 나한테 와야지! 골고!


목이 터져라 불러보았으나 골고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당황스런 배신감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망량이는 두 눈만 끔뻑였다.


팔공산 갓바위에서 돌갓으로 태어나 숱한 세월을 얼마나 힘겹게 살아냈는가?

지독한 흙먼지에, 장맛비에, 태풍에, 그칠 줄 모르는 눈발까지.

하여튼 별별 일을 다 당해봤지만 이런 엿 같은 감정은 처음이었다.


―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너희들, 아주 씹어 먹어버릴 거라고!


악에 받친 망량이가 목청껏 소리치는데 포탈을 향해 뛰어가는 이강한이 뜻밖의 화답을 보내왔다.


“어이, 망량이! 나, 약속 지켰다. 나중에 딴말 하지 마라.”

― 네가 무슨 약속을 지켜, 네가 뭘 지켰냐고!

“안 보여? 골고딘, 내가 살렸잖아!”

― ······어?


그의 말에 망량이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골고딘을 죽이지 않겠다는 게 저런 뜻일 줄이야.

앙다문 입술을 비틀며 한탄이 새어나왔다.


― 씨.


눈 밑살이 바들바들 떨리도록 망량이는 이강한을 노려봤다.

인간 주제에 날 놀려먹어?


― 웃기지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현재 포탈 이용 가능 인원은 2명입니다.>

<플레이어가 안전하게 포탈을 탈 수 있는 시간은 27초 남았습니다.>

<27초 후에는 포탈지기가 나타나 포탈 이용을 방해할 것입니다.>


― 크핫.


망량이한테서 억지웃음 같은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약 20초 후 등장할 포탈지기는 A급 마물.

골고딘조차 한 방에 으스러트릴 놈이니, 제 아무리 이강한인들 살아남지 못한다.


― 병신,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존나 뛰네?


비아냥거리긴 하였으나 솔직히 이강한의 속도는 정말 빨랐다.

그새 1080단 계단의 끄트머리까지 올라간 그였다.

물풀 같은 여자애를 거머쥔 골고딘도 그의 뒤를 간신히 뒤쫓을 정도였다.


― 대단하긴 해. 인정할게, 근데 늦었어. 뭔 말인지 아니?


<이제 곧 포탈지기가 나타납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5, 4, 3, 2······.>


포탈의 표면이 저물녘의 하늘처럼 점점이 물들었다.

우우웅, 1080단의 계단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제 막 태어난 듯이 흠뻑 젖은 거인의 얼굴이 포탈을 찢으며 튀어나왔다.

대가리 크기가 집채만 했다.


― 좋았어!


망량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데도 포탈지기의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두개골 절반이 으깨진 상태라 사실상 아가리가 얼굴의 전부라고 해도 될 녀석이 콧김을 뿜었다.


푸쉬.


사방으로 튀는 콧물을 닦으려고 3미터나 되는 혀를 휘두르는 저 거인 앞에서 누군들 겁먹지 않으랴.

제정신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날 터.


― 어때, 이강한! 완전 쫄았······.


이번만은 승리를 확신하던 망량이의 낯짝이 콱, 짜부라졌다.

꽁지 빠져라 튀어야 할 이강한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1078번째 계단에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공포에 질렸나 싶었으나 전혀 아니었다.


― 저······거, 왜 저래? 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포탈지기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포효하는 그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골고, 지금이다!”


이강한이 골고딘에게 신호했다.

그의 명령에 골고딘은 즉각 반응했다.

이강한보다 더 아래 계단에 서 있던 녀석이 8미터를 뛰어올라 포탈지기의 아가리에 착지했다.


크아아아.


때아닌 이물감에 놀란 포탈지기가 입을 다물려 하였으나 골고딘이 팔을 뻗어 막았다.

거대한 송곳니가 그의 어깨에 박히자 이강한이 거인의 아가리로 뛰어들었다.


― 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망량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억억, 숨넘어가는 소릴 내는 게 전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나 살려라, 하면서 달아나도 모자랄 판에.

무작정 달아나다 포탈지기한테 사지가 찢겨도 시원찮을 판에.

저 거인의 목구멍으로 뛰어든다고?

그것도 제 발로?


― 미친!


저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저러는 거냐고!






빠득, 빡! 빡!


거인의 어금니에 짓눌려 골고딘이 우그러졌다.

어깨는 박살난 지 오래였고 허리뼈는 언제든 부러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휘었다.

툭툭, 척추의 관절이 터져나갔다.

포탈지기의 턱 힘에 아작나기 전에 골고딘은 여자애를 다급히 내밀었다.


크어어.


<제1의 해골기사 골고딘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손상율 73%>

<해골기사의 경우, 타력에 의해 소멸될 시 72시간 동안 소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골고딘을 치유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골고딘을 치유할 것인지 물어왔다.

그가 내민 여자애를 받아들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치유한다고 해서 거인의 치악력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니니······.


세 개의 목숨 중 하나를 이렇게 소모해버리는 건 솔직히 아까웠으나 아직 두 개의 목숨이 더 남았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포기.”


이 말을 알아들은 건지 골고딘이 서운한 낯빛을 내비쳤다.

그것도 잠시.


콰직!


거인의 어금니가 끝내 골고딘을 뭉갰다.

하체는 잘려서 떨어져 나가고 상체만 덩그러니 남은 그가 별안간 다 탄 재처럼 폭삭 내려앉았다.


새까만 잿더미 속에서 몇 점의 불씨가 날렸으나 그마저도 사라져 온통 캄캄해졌을 즈음.

특유의 알람 소리를 내면서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떴다.

제일 먼저 뜬 것은 히든 퀘스트였다.


+++


<탈출>


분류: 히든

난이도: 미정

내용: 당신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완전히 소화되기 전에 출구를 찾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어쩌면 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 밖으로 밀려나올 수 있습니다.

클리어 조건: 포탈지기의 뱃속에서 ‘이름 모를 안개 지역’으로 통하는 포탈을 찾으시오.

제한시간: 없음

보상: 정체불명의 보물지도


<주의: 이곳에서의 1시간은 바깥세상의 하루에 해당합니다.>


+++


퀘스트를 딱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뭘 해야 하는지 다 아니까.


“흠.”


사실 <멸‧개‧법>에는 포탈지기의 뱃속에서 탈출하는 지금의 에피소드가 없다.

쓰긴 썼는데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삭제했다.

이른바 작가의 직업병 중 하나인 ‘내글구려병’에 시달리다 보면 초고를 지우다가 볼짱 다 본다.

삭제한 에피소드가 본 내용만큼이나 많아지기 마련이고, <탈출>이라는 히든 퀘스트도 그중 하나였다.


“······.”


헌데 이상하지 않은가?

소설 <멸‧개‧법>에서는 삭제된 에피소드가 이 멸망한 세계에선, 그러니까 묵시록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퀘스트로 나타난다.


머릿속으로만 잠시 떠올렸다 포기했던, 그래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마저 퀘스트로구현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예상치 못한 특이점을 만들고 기존의 스토리를 비틀어 소설 <멸‧개‧법>이 스스로 묵시록 <멸‧개‧법>으로 나아간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풀리지 않는 진짜 수수께끼이자 미스테리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지난 생에서도 저 물음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됐어, 지금은 그딴 걸 고민할 때가 아냐.”


히든 퀘스트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혹시나 퀘스트 내용은 동일한데 보상이 바뀌었을까봐 그랬는데 다행히 그대로였다.

저 정체불명의 지도를 확보하면 골고딘의 보물을 보다 빨리 찾을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해. 그래야 네크로맨서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어.”


강령술사라는 직업이 가진 태생적 한계.

제 생명력을 소모하여 스킬을 사용한다는 설정 때문에 네크로맨서는, 아무 상처도 없이 별안간 죽음과 마주할 수 있는 자였다.

늘 치명상을 입은 상태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그러니 누구보다 동료의 도움이 필요한 직업이지만 안타깝게도 네크로맨서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

속된 말로 독고다이를 운명으로 타고났다.

사악한 기운의 신봉자답게 성기사와 사제의 치유 계열 마법이 통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저주와 독에 면역인 대신 성스러운 기운이 도리어 네크로맨서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니.


“······허나.”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들었다.

이걸 피워도 생명력이 회복되는지 궁금했다.

불을 붙였다.


“후.”


매캐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다소 약하기는 하였으나 지친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하급 독이 스며듭니다. 생명력이 미미하게나마 회복됩니다.>

<현재 생명력 11/57>


“역시.”


태생적인 약점보다 더한 강점이 있다면, 그걸 이용하면 그뿐.

이제 더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다.

<멸‧개‧법>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마물들의 저주와 독이 강해진다.

다른 직업의 각성자들이 저 지독한 독과 저주에 쓰러져갈 때 나는 도리어 그것을 발판 삼아 우뚝 설 것이니.


“지난번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을 거다.”


어금니를 악물며 다음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크릿 메시지: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시크릿 메시지: 정체모를 존재가 당신에게 비밀스런 보상을 제시합니다.>

<시크릿 메시지: 메일함을 열어보시겠습니까?> (Y/N)


유료화 계약을 할 때 이세계 대표가 튜토리얼이 끝나면 보내주겠다고 했던 선물이 도착해있었다.


“메일 개봉.”


그러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떠올랐다.


― ???: 이강한 작가님. 덕분에 유료화를 잘 시작하였습니다. 어때요? 작가님의 소설이 현실화된 걸 보니 감회가 새로우시나요? 각설하고 유료화 계약 때 약속드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메일을 확인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경고음을 울렸다.


<이 메일에는 정체불명의 파일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첨부 파일명: 작가의 권한>

<어떤 파일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파일을 다운로드 할 시 자칫 심각한 오류나 버그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권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Y/N)


시스템의 저 협박 어린 물음 앞에서 나는 실소했다.


“그래도 작가의 권한을 다운로드 할 거냐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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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회차 시작(3) +1 23.05.10 4,893 90 9쪽
3 2회차 시작(2) +6 23.05.10 5,363 98 9쪽
2 2회차 시작(1) +3 23.05.10 6,054 107 11쪽
1 운석 엔딩(추신: 프롤로그 아님) +7 23.05.10 7,948 1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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