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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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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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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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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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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88)

DUMMY

Episode 87 - 선고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에 의해 지워졌다면 조하나 양의 기억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형호의 말이 비수가 되어 진명의 심장에 박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형호는 의관임과 동시에 지휘대장인 하진명의 하급자.


여기에서 마음이 약해져 거짓 브리핑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진실된 말을 뱉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마음이 아프더라도 사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했다.


진명은 고개를 떨군 채로 말했다.

"아예 없는 것인가?"

그의 되물음 속에 엄청난 감정이 뒤섞여 있다.

형호는 눈을 감으며 경건한 목소리를 냈다.


"예, 이런 말씀 드리기는 상당히 죄송하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군."

진명이 일어섰다.

그는 하급자인 형호에게 90도 인사를 건네며 감사를 표했다.


형호는 당황한 듯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진명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이곳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네."

'......, 많이 변하셨네요, 진명 대장님.'


가만히 인사만 받고 있기 뭐했는지 그 역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두 사람은 동시에 상체를 폈다.


"그나저나, 어떻게 대화는 해보셨습니까?"

"누구, 하나랑?"

"예."

진명은 한숨을 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대화는 계속 나눠보고 싶네만......"


그는 등을 돌려 눈을 감고 있는 하나를 바라보았다.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니 대화에 진전이 있어야지. 일단 수면 마법을 걸어놓았으니 나도 좀 쉬다 올 예정일세."

형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요 근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잖아요? 가끔은 일을 내려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쉬지는 못할 걸세, 예상으로는 세 시간 뒤에 깨어나게 되거든."


형호는 하나의 머리 위에서 흐르고 있는 계수 결정들을 목격했다.

"수면 마법 말씀이신가요?"

"그래, 알람을 맞춰 놓고 세 시간 뒤에 일어나야지."

그 말을 들은 형호가 경악하며 진명의 팔을 이끌고 문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진명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뭔가?"

형호는 생활관의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진명이 강제로 내보내졌다.

형호는 차고 있던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현재 시각 17시 18분, 지금부터 지휘대장님은 자신의 생활관으로 돌아가 오전 9시까지 휴식을 취한 후 이곳으로 돌아오세요."

진명은 동공을 키우며 소리쳤다.


"잠깐 그게 무슨.....!"

형호는 음흉한 얼굴로 안경을 어루만지며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하나 양이 깨어나면 이야기는 제가 대신 해줄 테니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나!"


그런 진명의 외침에도 형호는 목례 후 문을 닫았다.

쾅-!

몇 초 동안 진명은 벙찐 표정으로 아까까지 자신이 있던 생활관을 응시했다.

"허,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뭐, 몸이 피로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진명은 자신의 생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너만 믿고 있겠다, 최형호."


------


"후."

형호는 하얀 가운을 옷걸이에 걸어 놓고 하나의 앞에 앉았다.

그는 아무런 말과 행동 없이 빤히 그녀를 응시했다.

순수하고도 맑은 눈과 또렷한 코.

전대의 그 누가 보더라도 조하나였다.


"어쩌다가....."

형호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하나를 향해 말했다.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춰 손을 잡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였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미동 없이 숨만 내뱉는 하나.

형호는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기도했다.

"제발, 신이 있다면 이 사람의 기억을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굉장히 원시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이 시전된 이상 원상태로 돌아가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지금처럼 신에게 빌어보는 수 밖에.


형호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오게 해달라고....."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생활관을 어둡게 만들었다.


------


"으윽, 으아아아아!!"

정혁이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그는 슬리퍼를 신고 윤 설에게로 다가갔다.

"누나, 이제 일어나셔야 해요."

이불을 꽁꽁 감싸고 있던 윤 설이 눈을 떴다.

"으, 으음....., 왜, 왜 깨우는 건데....."


비몽사몽 상태로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정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깨운 거야?"

정혁이 벽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시간이 17시 30분이니까요."

"17시 30분? 그러니까 그게 왜 하아아아암!!"


세상 크게 하품을 마친 후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관물대 위에 놓인 물을 마셨다.

"푸하, 밥 먹으러 갈 시간인가?"

정혁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니요, 오늘 18시까지 전대의 건물 앞으로 모두 모이라고 지휘관님이 명령하셨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참?!"

그녀는 시계를 들여보며 동공을 키웠다.

이미 시곗 바늘은 32분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우와앗!!!"

윤 설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난 후, 샤워 바구니를 챙겼다.


"저, 정혁아, 나 씻고 올게!! 늦었다, 늦었어!"

쾅-!

벙찐 표정의 정혁은 윤 설이 나간 자리를 쳐다보았다.

"진짜 피곤한 여자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7시 55분.

전대의 모든 이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혁과 윤 설도 준비를 마치고 생활관에서 나왔다.

그들은 제복을 단정하게 정돈한 후 비장한 표정으로 모두의 뒤를 따라 나섰다.


"아이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봐도 정혁에게 보내는 감탄사.

그가 고개를 돌리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건들건들 걸어오는 재승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최정혁씨. 최근에 잘 보이지 않던데 어디 다녀오시기라도 했나요?"


재승은 정혁에게 어깨 동무를 하며 말했다.

친근한 척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에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정혁은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하하, 아닙니다. 꽤나 생활관 안에서 지박령처럼 살았나보네요, 제가."


재승은 실실 웃으며 윤 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윤 설씨."

그의 인사에 윤 설이 손을 살짝 들었다.

재승은 당황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하,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가 낯을 가리시나 보네요."


"그런데 지금 왜 모이시는지 알고 계시나요?"

정혁이 물었다.

재승은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는 신호를 보냈다.

"뭐, 어차피 가게 되면 다 알게 될텐데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죠."


맞는 말이었다.

"아, 그런데 재승씨."

정혁이 재승의 어깨 동무를 강제로 풀었다.

재승은 그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정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어보였다.

"저 어깨동무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재승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 역시 겉으로 티내지 않았다.

"아,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하게도....."

곧바로 사과를 건네자 정혁이 손을 휘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실 필요는. 그럼 저 먼저 설이 누나랑 같이 내려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뵐게요."

정혁은 재승의 마지막 인사도 듣지 않고 윤 설의 팔을 잡아 계단을 내려갔다.


재승은 가만히 서서 정혁을 응시했다.

이미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최정혁....., 최정혁......"


재승은 일그러진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터업.

옆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강병태......"

병태는 계단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싸가지 참 없지? 저 새끼 말이야. 근데 뭐, 조태훈 그 자식이 언질을 안해줬다면 최정혁도 저런 반응을 내지 않았을 테지만."

"둘 다....."

병태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재승을 향해 눈을 돌렸다.


완전히 분노에 쩔어있는 눈빛이었다.

"둘 다 없애버리면 돼."

병태는 그런 재승을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야지."


------


모든 인원들이 모였다.

지휘대장을 제외한 모든 전대의 간부들과 대원들.

하지만 아직까지도 2지휘관 자리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18시가 되었다.

1지휘관인 도민호가 전대 건물 밖으로 등장했다.


"음? 누나 저기 봐요."

정혁이 검지로 민호를 가리켰다.

"지휘관님, 이제 다 나았나 본데요?"

윤 설이 민호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 그러네, 잘됐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녀는 흐뭇해하는 정혁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윤 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혁아."

"음, 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정혁을 바라본다.


"너, 재승씨랑 싸웠어?"

그녀의 말을 예상하지 못한 듯 정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동요하지 않고 웃어보였다.

"에이, 아니에요. 싸우긴 뭘. 그냥 요즘 하도 일이 많아서 못 보느라 어색해진거죠."


"그래?"

아련한 표정이 잠깐 드러났다.

윤 설은 곧 단상 위에 올라간 민호를 보며 정혁의 팔을 툭툭 쳤다.

"이제 시작하나보다."


민호는 모인 이들을 천천히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정시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주어서 매우 고맙다. 본 지휘관이 이곳에 자네들을 불러모은 건 다름이 아니라 전달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달사항?"

"어떤 거지?"

"보통 이렇게 대규모 인원을 모아놓고 말하는 사항이면 안좋은 일 아닌가?"


이곳저곳에서 중얼거림이 들려오자 지휘관인 천가민이 기백을 내뿜었다.

콰아아앙!!

결정들이 허공에서 비산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모든 지휘대원들의 시선이 가민에게로 향했다.


"정숙해라."

짧고 간결했지만 무게감 있는 말이었다.

가민의 말에 모든 지휘대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민호는 대원들을 한 차례 훑어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근래 있었던 백마전대의 전멸 사건, 모두가 알고 있겠지? 이번에 그 사건의 배후가 처단되었다."

원래라면 웅성거림이 들려올 때였지만 가민의 기백으로 모두가 분위기를 지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러분에게 좋지 못할 소식을 들려주게 될 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사실이니 새겨듣길 바란다. 또한, 설령 그 말이 납득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아라. 알겠나?"

민호의 말에 전원이 대답했다.


""예!!!""

정적 속에서 민호가 선고를 내렸다.

"전대장님이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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