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근력 만렙 둔재는 영웅을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5.23 08:20
최근연재일 :
2024.06.24 12:3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638
추천수 :
52
글자수 :
159,165

작성
24.05.23 12:30
조회
159
추천
3
글자
12쪽

1화

DUMMY

사내는 야심한 밤에 들이닥친 방문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 잃은 산에서 풀뿌리를 캐 먹고 살며 지낸 지 어느덧 10년째 되던 날.


오늘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도중, 한 노인이 자신의 오두막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 길잃은 나그네거나 터전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혹은 금품을 노리고 찾아온 강도도 있었다.


‘거지인가.’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노인에게 물었다.


“···금품을 노리러 왔소, 아니면 먹을 게 부족해서 왔소?”

“그건 아닐세.”


노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참으로 나긋했다.


“하면 이 야밤에, 그것도 나이 꽤 잡수신 노인이 홀로 이곳까진 무슨 일이오?”


거지라면 적당히 구슬려서 내보내고, 그도 아니라면 가진 걸 줘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저 쉴 곳을 찾고 있었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사내는 궁금증에 물었다.


“이런 깊은 산골로 말이오?”

“이런 깊은 산골이니 여생을 조용히 보낼 수 있다는 거겠지.”


미묘한 눈빛으로 노인을 응시하던 사내가 나직이 물었다.


“간신히 풀뿌리나 캐 먹고 사는 사람에게 빌붙기라도 할 셈이오?”


그러자 노인이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주인 없는 산을 두고 어찌 그리 야박하게 군단 말인가.”

“엄연히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지 않소.”


사내는 손에 든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고 한껏 짜증을 냈다.


“내 먹을 것도 부족하니, 그만하고 돌아가시오.”

“세상이 이러한데 어찌 돌아간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자 평생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더 놀라운 말이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상이 멸망했네.”


순간 침묵이 흘렀다.


흔들리는 이성을 부여잡고 사내는 나직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외부 신이 이 세상에 강림했네.”


외부 신(Outer God).


세계의 법칙과 개념을 아득히 초월한 인자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어버릴 존재들이 세계를 휘젓고 있었다.


“···오황(五皇)은 어찌 되었소?”

“그들을 이끌던 수장들이 전부 외부 신에 의해 죽었다는 것만 알고 있네.”

“그들을 이끈 수장이 누구요?”


노인이 대꾸했다.


“마이어.”


그리운 이름에 사내는 격정에 휩싸였다.


“마이어는 어찌 되었소?”

“···마지막 항전을 끝으로 가주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네.”

“···그렇소?”


비록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사내는 마이어 가문의 막내로서 어렸을 때부터 검을 쥐고 살아왔었다.


그리고 이십 년 전, 마력도 쌓지 못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야반도주하다시피 가문을 떠났다.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그는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다 이곳에 뿌리내리다시피 해서 살고 있었다.


사내는 복잡한 표정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은 그가 감정을 추스르기만을 기다렸다가 질문을 던졌다.


“마이어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나?”


사내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둔재였소.”


많은 뜻이 함축된 단어였지만, 노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고생이 많았겠군.”

“나 같이 마력을 쌓지 못하는 머저리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쓰레기에 불과하오.”


마이어의 막내로 태어나 처음으로 검을 쥐었던 순간.


어릴 때만 해도 사내는 자신의 미래에 성공과 명예가 눈앞에 다가오는 것처럼 느꼈다.

자신의 아버지 뇌신(雷神) 지그하르트 마이어처럼.


하지만 사내에겐 재능이 없었다.


마이어의 일원은 평균적으로 열 살이면 마나를 쌓을 수 있었다.

수백 년이 넘은 가문의 역사에서, 열 살이 되기 전에 마력을 쌓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마이어에서 마력을 한 톨도 쌓지 못한 사내는 무지렁이나 다름없었으니.


사내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들이 쫓아오지 못할 때까지.


“어쩌면 나는 겁쟁이였을지도 모르오. 마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거나 노력이라도 했었으면···.”


사내는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과거의 편린을 지우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패배자의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시오.”

“왜 스스로 패배자라고 자책하는 건가?”


노인은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자네 뒤에 저거, 외부 신의 권속이 아닌가?”


노인은 손으로 사내의 등 뒤에 내걸린 거대한 인간의 두개골을 가리켰다.


“군대에 필적하는 외부신의 권속을 단신으로 상대하는 자는 내가 알기론 거의 없었네. 그마저도 최소 마스터급 강자나 되어야지만 녀석들을 죽일 수나 있지.”

“······.”

“자네는 거인의 핏줄을 타고난 건가?”


거인(巨人).


신화시대에 용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종족이자, 태곳적부터 살아왔던 토착 민족.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신화 속의 기록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멸망한 종족이었다.


“거인의 육체를 가진 자라면 녀석들을 쉬이 상대할 수 있겠지.”


사내는 질문의 의도를 헤아리다가 대꾸했다.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거인인지는 모르오. 그저 내 밭을 망치고 있었던 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뿐이었지.”


가문을 나온 사내는, 놀랍게도 자신의 재능이 검과 마법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거력(巨力).


정처 없이 떠돌다 마주친 외부 신의 권속을 상대한 후, 마스터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얻게 되었다.


마력을 쌓을 수 없는 몸이지만, 그와 맞먹는 신체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산속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사내가 죽인 외부 신의 권속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설마 명가의 후손이 거인의 혈통까지 지녔다니.”


노인은 의혹에 찬 표정으로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내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거인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소?”

“자세한 기록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뛰어난 고등(高等)의 종족이라는 것만 알고 있네.”


노인의 입에서 나온 거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노인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모종의 사건으로 거인들이 용과 함께 멸종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네. 그리고 거인의 혈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 가령 트롤이라던가, 아니면 자네와 같은 돌연변이거나.”


가만히 듣고 있었던 사내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거인의 혈통이라서 마력을 쌓을 수 없는 것이오?”

“모르겠네.”

“그렇소?”

“내가 학자도 아니고, 그걸 알겠는가? 그보다 자네는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데 뭘 할 건가? 사과나무라도 심을 건가? 아니면 여기서 조용히 삶을 보내다 쓸쓸하게 죽을 건가?”


사내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


검게 썩어 문드러지고, 땅이 바스러져 갔다.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이, 외부 신의 침공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싸워야지.”


내내, 아무도 꺼내지 않던 말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써 내려간 여정을 되짚어 보았다.


“속죄일지, 아니면 발버둥에 지날지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무력하게 있고 싶진 않소.”

“어째서 그런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바위에 적어도 흔적이라도 남지 않겠소.”


사내가 말을 덧붙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길이오.”


사내는 후회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고자,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선택했다.


“···미련한 선택이로군.”


노인의 힐난 섞인 대답에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갈 텐가?”

“내게 무슨 선택이 있겠소.”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꾸했다.


“오두막 안에 만들어 둔 육포가 있소. 시장하면 알아서 꺼내서 드시오.”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떠났다.


노인은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사내가 멀어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렇게 떠난 사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항상 바깥을 주시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노인도 점점 임종을 앞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도 멍하게 흔들의자에 앉아서 항상 사내가 서 있던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노인이 눈앞에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사내였다.


외부 신의 권속을 처리하기 위해 홀로 사지로 뛰어든 사내가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사내는 끔찍하리만큼 뭉개져 있었다.

얼굴의 절반이 사라지고, 오른쪽 팔과 양 눈은 잃은 상태였다.

몸은 이미 걸레짝이라고 표현할 만큼 피와 상흔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노인은 할 말을 잃었다.


돌아온 사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네···등 뒤에 저건 무엇인가?”

“······조금 쉬고 말하겠소.”


숨이 점점 끊어지고 있는 사내였다.

노인은 그를 부축하고서 흔들의자에 앉혀놓았다.


“삼악(三惡)의 수장들이오.”

“···그 광신도들 말인가?”

“놈들을 죽이느라 제법···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내장 조각을 쏟아내는 사내.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서둘러 대처하려 했지만···.


“···관두시오. 당신이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소.”

“······.”

“당신 말대로 미련한 짓거리인 거 같더군. 삼악을 쓰러뜨려도 정작 놈들은 세상을 유린하고 있는데.”


노인이 흔들의자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사내의 숨은 점점 옅어져만 갔다.


노인이 나직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


새액, 새액.


사내는 옅은 숨을 내쉬며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삶이 너무 후회스러웠소. 누군가로부터 떠밀렸던 삶이 아닌 스스로 주도하는 살고 싶었소.”

“뭐가 그리 후회스러웠나?”

“전부 다요. 스스로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행동. 가문의 등쌀에 떠밀려 갈팡질팡했던 삶. 가문에서 도망치고, 개처럼 살다가 이렇게 산적 노릇이나 하는 내가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럽소.”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가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나?”

“들개가 어찌 늑대의 무리에 낄 수 있겠소. 그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미련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소. 그런 인간이 가문으로 돌아가려는 건 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나 다름없소.”

“······.”

“하지만···적어도, 이렇게 죽어서라도 증명한다면···그리 나쁘진···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오

······.”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사내가 완전히 숨을 거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세상이 멈추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산속.


노인은 죽은 사내를 오금과 등을 받쳐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만 움직인 자네에게 경의의 표시를 하겠네.”


노인이 그 앞에 서서 품에서 작은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 뒤집었다.


그러자 노인을 중심으로 모래시계가 밝게 빛나며 주위에 온갖 문자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모래시계를 죽은 사내의 명치 부근에 갖다 올려놓았다.


황금빛으로 물든 문자의 배열들이 사내를 완전히 감싸기 시작했다.

모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모래를 가둔 유리가 점점 균열이 일었다.


문자의 향연이 극에 달한 순간, 황금빛 문자의 배열들이 사내와 합쳐지며 하나가 되더니 빠르게 점멸했다.


사아아아-.


그를 품고 찬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한 황금빛 문자들의 배열은 이내 사내를 완전히 집어삼켜 사라지게 만들었다.


“···부디 이 세계를 구원해 주게. 마지막 거인의 후손이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근력 만렙 둔재는 영웅을 꿈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 ~ 금 오후 12시 30분에 뵙겠습니다. 24.06.13 26 0 -
28 28화 NEW 10시간 전 11 0 12쪽
27 27화 24.06.21 24 1 13쪽
26 26화 24.06.20 28 1 13쪽
25 25화 24.06.19 27 1 13쪽
24 24화 24.06.18 33 1 12쪽
23 23화 24.06.17 38 2 12쪽
22 22화 24.06.14 50 2 12쪽
21 21화 24.06.13 53 2 13쪽
20 20화 24.06.12 46 2 13쪽
19 19화 24.06.12 42 2 14쪽
18 18화 24.06.11 49 2 13쪽
17 17화 24.06.10 51 2 12쪽
16 16화 24.06.10 49 2 13쪽
15 15화 24.06.07 58 1 12쪽
14 14화 24.06.06 60 2 13쪽
13 13화 24.06.05 60 2 12쪽
12 12화 24.06.04 59 2 13쪽
11 11화 24.06.03 61 2 12쪽
10 10화 24.05.31 61 2 13쪽
9 9화 24.05.30 64 2 13쪽
8 8화 24.05.29 61 2 13쪽
7 7화 24.05.29 66 2 13쪽
6 6화 +1 24.05.28 73 2 13쪽
5 5화 24.05.28 75 2 12쪽
4 4화 24.05.27 86 3 13쪽
3 3화 24.05.27 93 2 13쪽
2 2화 24.05.24 101 3 13쪽
» 1화 24.05.23 16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