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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탄지 님의 서재입니다.

만족할 때까지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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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탄지
작품등록일 :
2020.11.10 03:20
최근연재일 :
2020.12.16 14:41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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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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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1,898

작성
20.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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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DUMMY

기억이 났다. 자기는 할 일이 있다며 제발 길을 비켜달라던 그 사람. 내가 빨간 빛을 쏘자 사라져버린 바로 그 사람.


알바생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휴대폰으로 향했다. 정말 나를 미친 사람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뜬금 없이 들어와서 인사하라고 시비를 걸때부터.


‘아니지. 손에 거울을 들고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죽었고 개로 환생했으며 이상한 빨간 빛을 기어코 쓴 다음에 그 빛을 맞은 사람으로 다시 환생했다.


이게 내가 세운 결론이었다.



“일단 먹자.”


맛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서 쫓겨난 후로 겨우겨우 끼니를 채웠다. 배부르게 먹은 적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먹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핫바를 사서 먹었다.


예전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사치였다. 그리고 마무리로 유산균 우유를 들이켰다.


“캬~ 이게 인생이지.”



잠도 잤고 배도 맛있는 걸로 양껏 채우니 콧노래가 나왔고 이게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동안은 스포츠 배팅에 미쳐 끼니도 거르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았기에 이런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예전에 나는 감정이 거세된 채로 살았다.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이고 슬픔 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배고픔과 졸림 같은 기본적인 욕구만 겨우 충족시킬 정도로 동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 배도 채웠고.. 잠도 잤는데.. 이제 뭐 하면서 사냐? 딸? 딸이 있었다고 했었는데. 제발 부탁한다고..”


나는 죽고 새로 태어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어 받았다. 기왕이면 새 선물을 받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만족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중고 선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개이던 시절보다는 훨씬 낫지.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네.”


말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그때를 생각하니 등이 서늘했다. 새 인생 아니 중고인생을 다시 얻었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냥 닮은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으로 환생한 건가?”


그 사람으로 환생한 거라면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아니면 그냥 버려두고 내가 새로 인생을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할까? 우선 확인부터 해볼까? 그래서 살아도 될 만한 인생이면 그 사람인척 살고 아니면 내 인생을 살자.”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이 있었고 휴대폰도 있었다.


“지갑이 있는데 왜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거야?”


지갑에서 신분증을 확인했다.


“이창훈.. 맞아. 자기가 이창훈이라고 그랬어. 딸을 구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개였던 시절의 마지막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맞네, 내가 그 사람으로 환생한 거네. 닮은 사람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맞네.”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우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갑에는 신분증과 약간의 돈 밖에는 없었다.


“돈을 주머니에 넣을 거면 주머니에 넣지 왜 지갑이랑 따로 넣어갖고 다녀?”



지갑에는 단순하게 신분증과 돈 조금이 다였기에 이걸로는 기껏해야 나이 정도만 알 수 있었고, 이창훈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메시지도 휴대폰 요금, 카드 값, 무슨 요금 죄다 돈 내라는 이야기였다.


“아.. 이거 돈이란 돈은 다 끌어다 쓰고 자살한 사람 아니야? 그럼 완전 꽝인데.. 독촉이 아니긴 한데... 다시 산 인생을 또 신용불량자로 살 수는 없지.”


문제가 있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에는 주소지가 적혀있다는 게 떠올랐다. 지갑에서 다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있었다. 주소지가.


“찾았다!!!”


휴대폰도 다시 뒤져봤다. 모든 메시지를 다 뒤져봐도 대화는 없었다. 그냥 광고 메시지와 요금알림 내용이 전부였다.


“삭제를 했나? 아닌데.. 그 사람 이름도 맞는데.. 분명히 빨간 빛을 맞고 내가 그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이상했다. 딸이 있다고 했는데 이럴 수 없었다. 나이도 젊었다. 딸이 있다면 부인도 있을 것이고 문자난 sns로 서로 주고받은 내역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아.. 속였나 보네. 그 뒤를 지나가려고. 그 뒤에 도대체 뭐가 있어서 다들 지나가려고 안달이 난 거야?”



뒤를 지나가기 위해 속였다. 이렇게 쉽게 결론 내렸다. 우선 이창훈 즉 지금의 내가 사는 거주지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했다.


오늘만 살고 땡이라면 당연히 택시를 탔겠지만 앞으로 이창훈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무슨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만약 이 사람이 부잣집 아들이라면 더 없이 좋겠지만, 환생하기 전의 나처럼 신용불량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결국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내심 설렜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살고 있는 집은 어떨까? 전세일까? 자가일까?


“전세나 자가였으면 좋겠다. 월세면 계속 돈을 내야 되잖아.”


자가면 더더욱 좋겠지만 전세만 되도 만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람의 직업이 무엇일지 기대가 됐다.


‘의사? 변호사? 그런 전문직이었으면 좋겠는데...’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었다.


‘아니지 부잣집 외동아들이 짱이려나? 재벌집 아들 큭큭’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이씨 성을 가진 재벌들이 누가 있지?’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을 검색했다. 생각 보다 꽤 많이 나왔다.


“아.. 이 사람은 아니고.”


우선 검색해서 얼굴이 나오는 사람들은 제거 하다 보니 몇 명이 남았다. 재벌의 아들이라는 게 확정이 된 것도 아닌데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사회적 시선이 있으니까 별로 안 유명한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이 짱이려나?”


별 망상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역에 도착했다. 휴대폰을 키고 지도를 검색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도착했다.


“좋아. 합격.”


내가 살던 집보다는 좋았다. 아예 지하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그 집보다 안 좋은 데가 있는 게 이상하지.”


빌라였다. 그리 허름하지는 않았다. 혹시 지하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지하는 아니었다. 드디어 지하방에서 탈출했다. 기분이 좋았다.


문에는 비밀번호를 치는 도어락이 달려 있었다.


“와.. 큰일 났다.”


휴대폰을 뒤져 봤지만 휴대폰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저장하고 다닐 사람은 없었다.


내가 지금 이창훈이 됐으니 기억을 되살려보면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문 앞에서 한 참을 생각했다.



한 개의 몸통을 공유했던 개였던 시절과 환생 전 지하방에서 살던 내 모습들은 생각이 났지만 이창훈이었던 시절의 기억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부여잡았다.


-똑똑


앞집의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어.. 안녕하세요..”


“됐습니다.”


“어.. 저..”


인터폰 음이 끊어졌다.


다시 문을 두들겼다.



“됐다구요!”


“저기.. 저..”


“아! 앞집 사람인데요!”


“예?”


문이 열렸다.


그 아줌마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기.. 죄송한데.. 혹시 이 집. 그러니까 저희 집 비밀번호 아세요?”


“예?”


“아 제가 지금 갑자기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나서.”


“모르죠. 남에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요? 아니 젊은 총각이 벌써부터 그렇게 기억이 안 나면 어떻게 해?”


“아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네..”


아줌마는 말을 마무리 짓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잠시만요.”


“예?”


“혹시 저희 집이 전세인가요 자가인가요?”


“예?”



“제가 지금 사는 집이 전세에요? 자가에요? 아니면 월세인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줌마는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더 할 말 없으시죠?”


“아.. 예..”


아줌마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난감했다. 집이 있는데 들어가지 못한다니. 뭘 해야 될지 몰랐다. 휴대폰을 키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아무리 검색해도 도어락 비밀번호 푸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덜컥 하고 앞집 문이 열렸다.


“아직도 이러고 계세요? 정 기억이 안 나시면 열쇠 집을 부르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키맨을 부르지 않은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돈이다. 인터넷 검색결과 적어도 20만 원 정도는 줘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20만원이면 선 넘은 거지.”


주민등록증을 꺼내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삐삐삐삐삐


주민등록번호를 조합해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삐삐삐삐삐


몇 차례 더 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삐삐삐삐삐


“000000부터 999999까지 해보는 수밖에. 내가 지금 여유롭게 가진 건 시간뿐이니까.”


늘 그랬다. 내가 남들과 똑같이 가진 건 시간 하나 뿐이었다.


-삐삐삐삐삐


-덜컥


몇 번을 실패하자 앞집의 문이 열렸다.


“아니 열쇠 집을 불러요.”


“생각이 날 것 같아서요.”


“열쇠 집 부르면 금방인데.”


“예. 생각이 날 것 같아서요.”



-삐삐삐삐삐

-삐삐삐삐삐


000000번 대에서 맞을 거라고는 나도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 틀리자 999999부터 할까 고민이 됐다.


‘비밀번호가 4자리야 6자리야? 보통 도어락은 6자리이던데..’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려는 줄 알고 길을 비켜주려 벽에 붙었다.


“저기요.”


“예?”


“어떻게 되세요?”


“예?”


“아니. 이 집이랑 어떻게 되시냐구요.”


“저희 집인데요?”


“하... 근데 왜 자꾸 비밀번호를 틀리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 계속해서 삐삐삐 소리 때문에 집에서 TV도 못 보겠거든요?”



“예.”


“아니 예.라고 하시지 말고 무슨 말씀을 해보세요. 진짜 집 주인 맞으세요? 비밀번호 한두 번 틀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지금 몇 번을 틀리세요? 몇 십번은 치신 것 같은데.”


-달칵


이번엔 앞집 문이 열렸다.


“아니 그냥 열쇠 집 부르시라니까.”


“이 분 이 집에서 사시는 분은 맞아요?”


“맞아요. 오다가다 몇 번 봤어.”


“근데 왜 비밀번호를..”


“갑자기 기억이 안 난다네.”


“아니 그런다고.. 집 비밀번호를 몇 십번을.. 매일 같이 치고 다녔을 번혼데..”


“그냥 열쇠 집 부르시라니까. 이상한 고집 있으시네. 그거 계속 누를거에요? 지금은 낮이라 사람 별로 없는데 밤까지 계속 누를거에요 진짜?”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날듯 말듯해서.”


“하.. 그럼 적당히 해보시고 안 되면 이분 말대로 열쇠 집을 부르시던가. 아니면 확실히 기억나시면 치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 사람은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아줌마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삐삐삐삐삐


“하”


-탕


또다시 틀려서 삐삐 소리가 나자 올라가던 사람은 한 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문을 세게 닫았다.


-삐삐삐삐삐

계속 삐삐 소리가 적막한 빌라 안을 메웠다.


“아빠!”


“어?! 아빠?”




어떤 꼬마애가 외쳤다.



“설마 날 부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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