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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도 아수라장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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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작품등록일 :
2024.03.2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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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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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화 - 오덕 엘프 (3)

DUMMY

“그러니까, 인간이 같은 인간인 가수나 배우를 좋아하는 거 하고, 마찬가지로 같은 인간인 석가모니를 따르는 거 하고 무슨 차이가 있냐는 것이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엘프의 관점에서다.

반쯤은 영적 존재인 이들은 천사나 악마 같은 영적 존재를 바로 알아본다.

같은 이유로 이들은 자신보다 영적으로 확실히 높다고 생각되는 신적 존재를 섬기지 같은 급의 존재를 섬기진 않는다.


그러니 이들 엘프의 눈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들이 그저 ‘아이돌 빠순이’급으로 보일 수밖에.

물론 석가모니가 그냥 인간은 절대 아니긴 하지만, 생전에 본인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주장했던 데다 일단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 맞긴 하다.


“잠깐만, 밀리오네. 그 고타마 싯타르타가 수행 시절에 천마하고 다이다이 떠서 이긴 적이 있는데, 커흠흠!”


조금 부연 설명을 하려던 김하운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때 저기서 문제의 ‘아이돌 빠순이’들이 우르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 씨발.”


김하운이 바짝 쫄아서 자신의 몸을 기울여 밀리오네를 가렸다.

여기서 그녀가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화약 냄새로 아로마테라피 당첨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아쉽게도 이들은 김하운 근처에 자리 잡았다.


“자, 모두 자리에 차례차례~.”


“네에-.”


시커먼 전신에 눈만 시뻘건 장갑복의 말에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카페 여기저기에 앉았다.

연식이 조금된 독일산 케르베로스 장갑복을 입은 스님들이 템플 스테이하고 있던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간식을 먹으러 온 모양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아이스크림에 과자, 떡을 시켜서 조잘조잘 떠들어 댄다.


“스님! 스님! 범어사에는 핵미사일 있다던데 통도사에는 없나요?”


나왔다, 어디서나 나오는 VS놀이에 심취한 아이.


“하하하, 아니에요. 범어사도 통도사도 도수운반 가능한 중성자 탄두가 있지 미사일은 없어요.”


“아, 그렇구나아.”


이거 어째 커트라인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그때 아이들과 놀던 케르베로스 장갑복 하나가 쭈뼛쭈뼛하더니 이리로 다가왔다.


“저어···. 실례지만.”


아직 앳된 청년의 말에 김하운이 먼저 나섰다.


‘처음부터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짜증내는 속과 달리 겉은 부드러웠다. 저런 장갑복 앞에 서면 누구나 부드러워진다.


“아 예, 스님. 무슨 일이십니까?”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김하운의 앞에서 케르베로스 장갑복이 보호 마스크를 벗자 그 안엔 젊은 스님이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엘프 분께서 절에 오시니 신기해서 말이죠.”


“예, 예에.”


젊은 스님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김하운의 뒤에서 질색을 하는 밀리오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웩. 씹덕냄새. 우엑.”


‘조땠다. 죽는다.’


김하운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 그래도 자신을 잡아 족치고 싶어 하는 승려들이 주변에 빼곡한데 밀리오네가 이딴 식으로 씨부려놨으니 납탄이 아주 커플세트로 거하게 들어올 것이다.


“야야, 밀리오네, 말 조시임!”


김하운이 서둘러 밀리오네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말은 튀어나오고 있다.


“씹덕이 왜 문제이지?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저렇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이돌 덕질하는 거 하고 뭐가 틀리는 것이지?”


이제 김하운의 가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그런데 이 폭언을 들은 젊은 스님은 어쩐지 빙긋이 웃고, 저쪽에선 장갑복이 껄껄 웃는다.


“암, 그렇지. 저렇게 봐야지. 야들아, 저 엘프 누나가 하는 말 잘 들었제? 부처님은 신이 아이데이. 법당 위에 불상하나 올리놓고 그거를 신처럼 섬기고 절을 해쌌고 에잉, 원래는 그라믄 안되는 기라.”


저쪽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의 목소리로 웃는 케르베로스 장갑복의 어깨에는 마구니 격추마크가 장갑복의 도색을 지울 정도로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스님, 그래서 통도사에는 부처님 동상이 없나요?”


아이스크림으로 입 주변을 칠갑한 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야 이노마야. 불상이라 캐라. 험, 여기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다 아이가. 그래서 불상이 없는 기라.”


“근데요오 스님말씀대로라면 불상 놓으면 안 되는데 왜 법당 안에 불상을 갖다 놓아요?”


“에헤이. 그게 중생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 아이가. 봐라, 아무한테서나 가서 부처님 믿으소, 하면 믿겠나? 그러니까 일단은 알기 쉽구로 요래 살살 어프로치를 해가꼬, 그다음에 화악! 하고 불법을 설파하는기지.”


다 좋은데 저 화악, 하는 부분에서 대검이 연꽃 아이스크림을 반으로 갈랐다.

김하운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찔끔했지만 다행히 애들 나눠주려고 그런 것 같았다. 또 이분들의 마인드가 열려서인지 일이 크게 번지지는 않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잘라주던 케르베로스 장갑복까지 이쪽으로 걸어와 말을 걸었다.


“여기 엘프 보살님, 불법을 잘 모르시지예?”


“네, 근데 이 사람은 얼굴을 보이는데, 왜 너는 얼굴 안 까요?”


밀리오네의 지적에 장갑복 안에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쿠, 미안합니데이. 제가 얼굴이 좀 이래가.”


가면을 벗고 드러난 얼굴은 한쪽 눈을 잃고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한 노승의 얼굴이었다. 김하운은 그 흉터가 어떤 흉터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육체만이 아닌 영혼에도 남기는 상처. 바로 악마, 마구니에게 당한 상처다.

그러고 보면 현재 대한민국 불교의 주력인 크샤트리아 장갑복과 달리 저 케르베로스 장갑복은 애초에 지옥으로 가서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장갑복이기도 했다.

밀리오네는 노승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요? 잘생겼는데요? 그거 훈장 아닌가요?”


“아이쿠, 감사합니데이.”


노승은 싱글벙글 웃고 있지만, 김하운은 어째 웃을 수 없었다.


“사실인데요, 뭘. 그리고 저 불교 모르긴 한데, 그건 왜 물어요?”


“그라믄 일로 함 와 보이소. 제가 알기 쉽구로 설명해드리께예.”


그렇게 노승이 밀리오네를 자신의 자리로 데려가 아이들 사이에 앉히고는 아이들과 함께 듣도록 설명해 주었다.

졸지에 김하운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김하운은 엉덩이가 따가웠다. 옆에 있던 젋은 스님이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뭐라고 사과하는 거 같은데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템플 스테이로 온 아이들까지 신이 나서 찻집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통에 김하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김하운이 자기 앞의 아이스크림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간식거리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켜버렸고, 두 스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갔다.


뭐라고 인사를 하긴 했는데, 십년 감수한 김하운은 살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야, 밀리오네. 너 함부로 입 놀리지마. 아니, 입으로 업 쌓지마라.”


그런데 밀리오네의 표정이 뭔가 항가항가하게 바뀌어 버렸다. 노승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이렇게 된것 같았다.


“밀리오네?”


김하운이 다시 한번 부르자 밀리오네가 야릇한 미소와 함께 그를 돌아보았다.


“하악, 붓다쨔응. 이제부터 내 오시라능.”


김하운이 앉은 자리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졌다.


“어어, 하지마라.”


불교도들 보고 아이돌 빠순이니 뭐니 하던 밀리오네가 되레 자신이 포교되어 빠순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밀리오네는 고타마 싯타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가 될 때까지의 과정에 홀딱 빠진 모양인데.


“이, 이거 주세요! 이거도요!”


갑자기 필이 꽂혀서 찻집에 있는 불교용품들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야야, 너 경매한다면서. 돈 좀 아껴!”


김하운은 그녀를 간신히 뜯어말리고 같이 성보 박물관으로 갔다. 슬슬 경매가 시작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앞으로 가자 여기서는 방문한 손님들을 상대로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卍)자 바로 알리기 운동-


이런 현수막이 입구에 떡 붙어있었다. 그리고 젊은 스님들과 청년 신도들이 관람객들에게 이런 저런 팜플렛을 나눠주고 있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켄크로이츠가 아닙니다.”


“아니, 스와스티카는 하켄크로이츠가 맞지만 나치만의 상징은 아니라고요.”


“아이고, 아돌 스님,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만자 바로 알리기 운동은 요 근래 불교계에서 시동 거는 캠페인이라고 들었다.

애초에 좌만자(卍)나 우만자(卐)나 그냥 인도계통 종교의 상징이었는데, 어딘가의 콧수염 미대낙제생이 삘 받아서 엄하게 쓰는 바람에 이미지가 확 나빠진 탓이다.


‘어라? 저 사람은?’


김하운은 그중에서 팜플렛을 나눠주고 있는 청년을 보았다.가죽 자켓에 청바지, 그리고 장발. 저번에 토카레프 보살의 굿에서 악사로 나왔던 청년이다.

그때 이로 가야금을 뜯는 연주가 아주 일품이었다.


김하운은 그 날 통성명도 못하고 지나갔기에 오늘은 아는 체라도 할까 하며 다가갔는데, 그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악사를 했던 장발 청년의 오른 팔에는 변형된 만자(卐)문신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만자가 알페벳 S자 둘로 나뉜 다음 번개 마냥 겹쳐져 있다.


‘팔에 SS···. 범어사 SS?’


범어사 SS(Shooting Stars)라면 원래 범어사 청년 축구회에서 시작했다가 너무 과격해지는 바람에 지금은 반쯤 밖으로 내놓은 청년단체인데, 경찰하고 조금 사이가 안 좋은 무장 세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불교가 무력 사용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첫째, 대한민국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경우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둘째, 인계 외의 존재가 인계를 침범해 인간을 괴롭힐 경우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

그런데 범어사 SS는 흑색의 인간들을 응징하러 싸돌아다니기 때문에 경찰에서 지랄개지랄을 한다.


아무리 흑색이라 해도 인간이 벌인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모토기 때문에, 종교단체의 무장세력인 범어사 SS가 백주대낮에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을 좋게 볼 리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불교는 엄연히 백색이라서 경찰은 범어사측에 몇 번이나 항의를 했었고, 가끔씩은 이 범어사 SS를 잡아서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범어사 SS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흑색들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자들이기 때문이다.


-일격왕생(一擊往生).


이것이 범어사 SS의 구호다.

말뜻은 단 한방으로 흑색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겠다는 좋은 취지인데, 이 새로운 삶을 주는 중간과정이 꽤나 극단적이다.


불교는 기본 옵션이 불살생이라서 사바사바 자연사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방치하지만, 얘들은 그런 거 없다.

그냥 대가리 전후좌우에 시원하게 바람구멍을 놔준다. 새 삶을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어사 SS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얘네들이 꼴아박았던 흑색들은 대부분 꽤 거물들이었는데, 이런 놈들은 법적으로나 인간이지 실제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범어사쪽 변호인단이 나서서 수리수리마수리 좋은 게 좋은 거지요, 하는 식으로 무마해왔었다고 한다.


‘그것도 한계라던가.’


하지만 이제는 범어사측도 SS를 해체할 생각이라고 해서 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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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 - 마법 소녀. 소오녀어? (1) 24.05.11 142 11 12쪽
47 47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4) +2 24.05.10 139 11 12쪽
46 46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3) +1 24.05.09 134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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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1) +3 24.05.07 140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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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2) +1 24.05.03 153 13 12쪽
40 40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1) +2 24.05.02 172 10 12쪽
39 39화 – 라훌라 (5) 24.05.01 172 14 13쪽
38 38화 - 라훌라 (4) 24.04.30 159 12 12쪽
37 37화 - 라훌라 (3) +1 24.04.29 171 14 13쪽
36 36화 - 라훌라 (2) +2 24.04.28 171 12 13쪽
35 35화 - 라훌라 (1) +2 24.04.27 17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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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 퍼져나가는 음모 (4) +1 24.04.25 176 11 13쪽
32 32화 - 퍼져나가는 음모 (3) +2 24.04.24 172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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