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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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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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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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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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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5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2)

DUMMY

일행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당황했다. 느닷없이 터져 나온 번개와 천둥벼락, 찢어지는 그림자와 사방을 울리는 비명. 그것이 잦아들자 그곳엔 사람 형태를 하고 있는 호랑이가 서있는 것이다. 두 발로 선 호랑이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쫓아 물어뜯는다.


-꺄아아-하하아하하-!


호랑이에게 씹히는 그림자가 다시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곧이어 광소가 따라온다.


-불쌍한 것! 재밌는 것! 네 어미는 너를 씨내리로 삼아 무엇을 낳으려 했을까-


미친 듯이 웃는 그림자가 호랑이에게 씹혀 갈기갈기 찢어진다.


-오호오! 과연 마신을 잡아먹는 도구 아닌가, 이 나를, 짐에게 이 정도의-


“안 된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납륜법왕이 나섰다. 그녀는 호랑이로 변한 김하운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안 돼!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이게 들켰다간!”


김하운이 자신의 어미의 피를 바로 이어받았다는 것은 천계에서 그리 비밀은 아니다. 하지만 이어받은 것과 발현은 다른 문제, 만약 김하운이 신화시대의 힘을 각성한 사실이 드러나면 이 땅의 신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곰의 땅, 호랑이가 있어선 안 되는 곳이다. 다급하게 호랑이 팔을 잡은 납륜법왕의 앞으로 어느새 금빛 톱니바퀴가 다가와 핑그르르 돌아갔다.


-호호호, 사려가 몹시도 깊구나. 허나 걱정말거라. 여긴 짐의 그림자 안이니.


김하운에 의해 찢겨져 나가는 그림자가 땅에 떨어지더니 다시금 넓어지고 있었다.


-자아, 날뛰어라. 여기서는 네가 무엇을 하든 하늘도 땅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살라시에라는 보고 싶었다. 이미 인계를 떠난 신화시대의 마지막 후손이, 결코 태어나선 안 되는 천신의 후예가 앞으로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갈지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살라시에라의 가슴을 찢었다.


-아아아---


살라시에라의 비명이 차츰 교성으로 변해간다. 손톱이, 발톱이, 이빨이 가슴을 찢어발겨서 벌리자 거기엔 다른 공간이 일렁인다. 그림자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늘어나는 만큼 살라시에라의 눈과 입도 헤벌어진다. 마침내 호랑이로 변한 김하운이 살라시에라의 가슴에 난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흐흐흐,흐하하,흐하하하 나를, 나를 찾아와 죽이려느냐 하아하하하-


호랑이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자 살라시에라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무너졌고, 곧이어 하늘 위에 뜬 태양에 아래서 그림자 자체가 점차 사라져간다. 바로 앞에서 들리던 살라시에라의 웃음소리 또한 어디서 난 것인지도 모르게 차츰 멀어져 간다.


이렇게 건설중이던 마트 현장에서 라훌라와 잔향이 사라졌다. 그리고 배후라고 자처하던 살라시에라도 사라졌으며 김하운 역시 사라졌다.


*****


“뭐라고요?”


토카레프 보살의 비명소리다. 그녀는 김하운으로부터 의뢰받은 굿을 한 다음 기력을 소진해서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급보가 날아든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통도사의 주지인 원오 스님의 연락이다.


-네, 납륜법왕님의 말씀으로는 아, 글쎄 그 개호주놈이, 갑자기 화를 내고 진신의 힘을 끌어냈다고 합니다.


“어허, 어허어허어.”


토카레프 보살은 안 그래도 힘이 없는데 머리가 핑 돌 지경이다. 그녀는 김하운을 안지 오래되었다. 그는 아비와 어미와 배다른 형제남매로부터 버림받고 굶주리며 살아온 아이다.

배가 주리면 수챗구멍에 끼인 밥알을 주워 먹고, 영이 고프면 동짓날 뿌린 팥물을 찾아 핥았다. 그래도 놈은 문지방을 한 번 핥지 않았다. 솥뚜껑이나 밥솥 또한 단 한 번도 핥지 않았다. 어미가 그렇게 형제남매를 잡아먹으라고 독촉했어도 결코 창귀를 부리지 않은 놈이다.

차오르는 독기와 살기를 오직 자신 안에만 품으며 산 놈이다. 그러다가 사람구실 한답시고 어찌어찌 회색이 되어 약자들을 구하고 다니니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김하운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하니 토카레프 보살은 자신의 가슴이 찢어질듯 메여왔다.


“그래서 어찌, 어찌 되었답니까?”


토카레프 보살이 억지로 일어나자 애동제자들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한다.


-일단 출동한 경찰들에겐 마르가리카 수녀님께서 자신의 타이거 마스크를 들어 보이며 태그팀이라고 말씀해주셨고, 납륜법왕님께서도 말을 맞춰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한숨 돌렸다. 코토와 후토는 몰라도 장건도는 정부쪽 인간. 대한민국의 안녕을 해치는 존재는 결코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김도령은요?”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원오스님의 말에 토카레프 보살은 맥이 탁 풀렸다.


“그 천도제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 없다면 당연히 저 제상에 있다. 그러면 원오쯤 되는 고승이라면 여러 가지 제를 통해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올 수 있지만, 하늘의 눈이 문제다. 저 세상의 사람을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오는 제는 하늘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그러다간 하늘에 김하운의 정체를 들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젠 인연이 깊은 자가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오의 말에 토카레프 보살은 일어났다. 하늘의 힘으로 안 된다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주섬주섬 일어나는 그녀를 애동제자들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다.


“내 에르뻬게를 가져오너라.”


토카레프 보살의 말에 애동제자들이 머뭇머뭇하더니 결국 에르뻬게를 가져왔다. 에르뻬게, 키릴문자로는 РПГ이며 그 뜻은 대전차 유탄 발사기다. 흔히들 RPG라 부르는 무기다.

RPG를 어깨에 맨 토카레프 보살이 마당으로 나갔다.


-쉬이이이---


그녀가 숨을 내쉬며 모시는 신을 받았다.


-쁘랄례따리 프쎼흐 스뜨란, 싸예지냐이쩨씨!


걸걸한 신의 목소리와 함께 RPG가 하늘을 향하며 발사되었다. 엄청난 후폭풍이 일며 토카레프 보살의 몸을 덮쳤지만 신이 내린 그녀의 몸엔 상처 하나 없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유탄은 희끄무레해지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폭발도, 떨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아아.”


토카레프 보살이 휘청한다. 점괘를 하늘이 막고 있다. 이 결과는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되는 점괘인 것이다.


“다음!”


토카레프 보살의 외침에 다음 RPG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만국의 노동자여!


그녀는 이젠 바닥을 향해 RPG를 겨눴다.


-단결하라!


방아쇠가 당겨지고, 탄두가 발사되었으며, 폭발이 일었다. 폭염과 폭음이 그녀를 휩쓸고 파편이 튕겨난다. 매캐한 화약냄새가 잦아들자 거기엔 땅을 헤집는 토카레프 보살이 있었다.

신이 떠난 그녀는 손톱이 빠져라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고 돌과, 흙과, 탄두 파편 중에서 신기가 들린 것만 조심스레 골라 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천신들이 안 된다면 지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파편을 살피던 토카레프 보살의 눈에 섬광이 일었다.


“있다!”


실낱같은 희망을 찾은 토카레프 보살이 맨발로 뛰쳐나가는 것을 애동제자들이 간신히 말려서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겨 같이 집을 나섰다.


*****


밀리오네와 미호는 갑자기 들이닥친 토카레프 보살을 보고 놀랬다. 밀리오네야 저번 굿으로 안면이 있고, 미호도 부산에서 사는 술사라서 토카레프 보살이란 이름은 익히 들어봤다.

하지만 지금은 주인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해도 토카레프 보살은 막무가내로 들어왔다. 기세에 밀려 들여오게 했더니 토카레프 보살은 애동제자들로 하여금 주변 단속을 단단히 시켰고, 그런 다음에야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했다.

진신사리의 도난과 무장돌격대의 실험, 그리고 배후에 있는 루시퍼와 엘프 여왕의 음모. 이야기를 다 들은 밀리오네와 미호의 표정은 굳었다. 사건이 이만저만 대사건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밀리오네는 더했다. 살라시에라는 그녀의 생물학적 어머니이자 대죄인이기 때문이다. 행여 이번 일로 또 무슨 덤터기를 쓸까 걱정하던 차에 이어진 토카레프 보살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김하운을 구할 자는 댁들 두 명 뿐이야.”


살라시에라에 휘말려 김하운이 저세상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하니 밀리오네와 미호는 펄쩍 뛰었다. 나름 은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하니 당연하다.


“저, 우리가 김하운씨를, 하운이를 구할 수 있다고요?”


밀리오네의 질문에 토카레프 보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이제 하늘의 힘을 쓸 수 없는 일이야. 오직 사람과 사람의 인연만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그러면 납득이 간다. 밀리오네는 진신사리부터 해서 김하운과 이래저래 많이 엮였기 때문이다.


“그라믄 지는예?”


미호가 조심조심 손을 들었다. 그녀도 김하운을 돕고는 싶었지만 자신에게 과연 그만한 인연이 있나 싶은 것이다. 토카레프 보살은 미호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는 그의 스승이 너를 직접 가호했느니라.”


“예에에?”


미호는 예전에 축지법으로 김하운을 백두산으로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엄청난 기운이 자신을 살펴봐서 기겁했는데 그게 김하운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분도 보통 산신령은 아니시지. 그분도 제자를 구하고 싶지만 나서지는 못하신다. 그러니 네가 나서야 하는 게야.”


“알겠심더. 그, 그라믄 인자 우짭니꺼?”


미호의 질문에 토카레프 보살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밀리오네와 미호의 앞으로 와락 다가앉았다.


“손!”


“네?”


미호와 밀리오네가 못 알아듣자 토카레프 보살이 닦달한다.


“손금을 보자고!”


서슬이 퍼런 토카레프 보살의 말에 미호와 밀리오네는 잽싸게 손을 내밀었다. 두 여인의 손금을 보던 토카레프 보살이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 숨을 내쉬었다.


“연, 아직 안 맺었지?”


“예?”


“김 도력하고 섹스 아직 안했지?”


토카레프 보살의 직설적인 질문에 두 사람을 펄쩍 뛰었다.


“아니, 아니오. 그것은 어째서. 갑자기···”


밀리오네는 귀까지 빨개져서 말을 더듬는다.


“어데예, 아직 안했십니더. 그라고 한다꼬 캐도 그건 좀 친해지야 하지예.”


미호도 치마 밑으로 꼬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아아.”


믿었던 수까지 무너져 내리자 토카레프 보살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리되면 한 분만이 답이다.”


그때부터 토카레프 보살의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해야 할 의식에 자신은 절대 관여할 수 없다는 것.


“내가 하면 그분이 노하실 게야.”


한다면 그나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밀리오네와 미호 두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의식을 제대로 해야 김하운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고 신신당부를 한 다음에야 토카레프 보살은 돌아갔다.


“김 도령을 부탁하네.”


돌아갈 때 고개를 숙이는 토카레프 보살의 모습에서 숙연함이 느껴졌다. 자신은 돕고 싶으나 도울 수 없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전해진다.


“네, 저희가 해봅니다.”


“맡겨주이소. 구하면 연락 드릴께예.”


토카레프 보살이 돌아가고 나자 밀리오네와 미호는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밥은 내가 하께.”


미호가 팔을 둥둥 걷어붙이며 손바닥을 짝 하고 부딪혔다. 반면 밀리오네는 의욕은 앞섰지만 실력은 그러지 못했다.


“···미역국은 어떻게 끓이지? 편의점 밀키트는 안될까?”


“하이고 야야, 니 같으믄 밀키트로 끼린 거 묵겠나?”


“맛있는 거 아는데? 내가 한 맛 없는 거 보다는 차라리 맛있는 거 올려야 하지 않을까?”


“치아라, 그 상에는 참기름 드가믄 안된다카이.”


미호와 밀리오네는 즉시 김하운의 구출을 위한 의식 준비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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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3) +3 24.05.09 186 18 12쪽
» 45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2) +2 24.05.08 191 15 12쪽
44 44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1) +3 24.05.07 194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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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2) +1 24.05.03 20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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