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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도 아수라장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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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작품등록일 :
2024.03.2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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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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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8화 - 라훌라 (4)

DUMMY

김하운은 시체를 피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까 갈아엎은 화훼단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 농장이 있었는데, 여기 놈들은 약초에 주술성 공정을 가미해 마약을 만드는 흑색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납륜법왕에게 걸렸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던 놈들이 납륜에 찢겨나가고 윤회의 바퀴에 짓이겨지는 광경에 김하운과 장건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


“에혀.”


김하운은 아직도 뜨거운 땅을 밟고 섰다. 아라한인 납륜법왕에게 인간의 법과 질서는 무상하다. 불법을 수호하는 그들에게 인계를 어지럽히는 마구니는 단지 척살의 대상이지 교화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저기선 장건도가 전화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다. 아무리 흑색이라 해도 인간이니 살인사건이다. 그것도 검사의 눈앞에서 벌어진 대형사고. 데굴데굴 구르는 그를 보며 납륜법왕은 뭐라고 재촉하는데 저 꼴을 보니 앞으로 흑색들이 또 얼마나 죽어야 할까싶다.


“하여튼 저것들은 볼 때마다 백색 맞나 싶어. 찢고 죽여, 찢고 죽여. 존나 큰 마구니, 내장도 존나 크겠지.”


김하운의 투덜거림은 분명히 납륜법왕에게 들렸겠지만 그녀는 미동도 않는다. 저기- 살인을 한 백색은 계속 백색이다. 그러나 김하운 자신은 흑색으로 태어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회색이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김하운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애미타불.”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하늘에 뜬 깨달음을 보라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중생들이 몰려들어 이렇게 질문한다.


“님 손가락 쩌는데 좀 빨아봐도 됨?”


그러면 아라한의 손가락이 중생의 귀를 잡아끈다.


“저길 보라고 이 답답한 중생들아!”


이때 귀가 잡힌 중생이 울면서 질문한다.


“그럼 님 꺼는 빨아도 됨?”


결국 아라한의 손가락이 중생의 눈을 찌른다. 그들의 일은 그런 것이다.


“껀도야, 가자니까.”


하지만 저기 투덜대는 아라한의 손가락은 기관포의 방아쇠를 당기니까 골치 아프다. 그런데 통화를 하던 장건도의 상태가 이상하다.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 잰걸음으로 김하운에게도 다가온다.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야, 너 가네사다라고 아냐?”


이번엔 김하운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혹시 그 새끼 부산에 떴답니까?”


“···아니, 아예 떴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려는 김하운의 눈에 장건도의 손가락이 샤삭 움직였다. 먼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고, 다음 집게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엑? 이승을 떴다고요? 그 가네사다가?”


장건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네사다라면 흑색의 거물이다.

작년에 김하운은 가네사다와 죽니사니 구르다가 그 놈이 일본 대사관으로 도망치는 다음에 놓친 적이 있었다. 그때 김하운은 빡이 돌아 대사관을 폭파하려 했는데 박격포가 붙잡고 말리는 바람에 참아야만 했었다. 그정도로 가네사다는 상당한 강자다. 게다가 수법도 음흉하기 그지없어 아무리 김하운이라도 놈을 잡으려면 꽤 세밀하게 설계하고, 치밀하게 작업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 가네사다가 죽었다?


“현장은 얼마나 파괴되었답니까?”


“아니, 깔끔해. 일격에 한 놈씩 보냈다는데.”


“일격에?”


가네사다를 일격에 보내기는 불가능이다. 놈은 흑색의 대가라 불사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난 재생능력에 부활능력까지 있어서 조지려면 각잡고 1박2일은 줄창 갈아야 죽을 놈이다. 그걸 주위에 피해없이 일격에 보냈다면 일단 인간계의 실력은 아니다. 김하운은 그게 가능한 강자를 곁눈질로 보며 질문했다.


“또 다른 오륜법왕이라도 뜬 겁니까?”


“몰라, 잠깐만.”


장건도가 납륜법왕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속닥거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 왔는데?”


그녀는 심심한지 땅바닥에 떨어진 뼛조각을 툭 차서 날려버렸다.


“뭐, 금륜하고 은륜은 천계를 지킨다고 못 움직이고, 동륜 오빠는 중간관리직이라 제일 바빠. 그래서 올 수 있는 건 철륜 언니랑 난데, 이번엔 나 혼자 왔어.”


차라리 철륜법왕이 왔으면 싶다. 그녀는 그나마 말이 통하고, 철륜은 대인 살상에 특화되어 있어 대상의 목만 콩나물 대가리 따듯 날려버리니까 이렇게 피해가 크질 않다.


“일단 거기부터 가봅시다.”


김하운의 말에 장건도가 뒤를 돌아본다.


“뭐? 무장돌격대는 어쩌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비슷한 것 끼리 묶어놓고 시간 끕시다.”


방금 김하운이 한 말은 아라한과 흑색의 마두를 동급으로 놓은 것인데, 지금 이들이 선 주변이 갈아엎어진 꼬라지를 보니 장건도도 딱히 반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그래서 장건도와 김하운은 납륜법왕을 끌고 서면으로 달렸다.


*****


서면 번화가에 있는 한 건물. 그 곳 지하에는 오래된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사건 현장이었다. 주변엔 출입금지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바닥엔 터져나간 사람들의 육편이 흩어져 있다. 그걸 일으킨 폭발은 크진 않았지만 가네사다 정도 되는 실력자가 저항도 못하고 죽은 것을 보면 보통 실력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인육이라···.”


출동한 경찰들에게서 보고를 들은 장건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네사다, 이 새끼.”


김하운은 가네사다였던 시체를 한 번 보고 다음은 저쪽에 문이 열린 철창을 보았다. 거기엔 아이들이 갇혀 있다가 구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늦어서 구출하지 못한 아이는 가네사다가 앉았던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으으읍!”


주방에서 현장 감식을 하던 인원 한 명이 뛰어 나오다가 그대로 토했다.


“우웩, 우우엑!”


“아잇 씨팔! 누구니! 저런 새끼 데리고 온 게!”


주방에선 박격포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드워프 경감이 인상을 찌푸리고 나왔다가 장건도를 보고 고개를 꾸벅했다.


“오셨습니까?”


“어때요?”


장건도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가자 박격포가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은···.”


김하운은 일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에게서 잠시 떨어져서 주변의 흔적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보였다. 이곳에 들어와 가네사다를 일격에 죽인 자의 발자국이 저쪽에 있으며, 그 앞에 납륜법왕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납륜법왕은 가만히 그 발자국을 살피더니 심각한 얼굴로 일어났다.


“잘했다, 김하운.”


“네?”


“내가 여기에 내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납륜법왕은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빨리 이 자를 찾아야 한다.”

김하운을 바라보는 납륜법왕은 그녀가 인계로 내려온 이후 가장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찾을 수 있겠느냐.”


사태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한 것을 짐작한 김하운이 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잠깐만요. 당신 진신사리 도난건 때문에 왔다면서요? 그런데 이 범인은 왜요?”


“그러니까. 빨리 찾아라.”


김하운은 이거 뭔가 일이 꼬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보죠.”


김하운은 백팩에서 분필을 꺼내 발자국 위에 룬 문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어, 거기 아저씨. 함부로 손대면 안 돼요.”


“됐어. 걍 하도록 냅둬.”


마학수사대의 감식관 한 명이 기겁해서 뛰어오는 것을 박격포가 말렸다.


곧이어 이야기를 마친 박격포와 장건도가 다가와 김하운 주위에 섰다. 그런데 룬문자를 쓰던 김하운의 손이 멈췄다.


“어이, 이거 도대체 누구요?”


김하운의 질문에 박격포와 장건도의 시선이 납륜법왕에게로 향했다.


“나도 모른다. 그래서 찾고 있는 거지.”


“하아, 이거 인간은 인간인데···. 생사부에 없는 사람인데?”


김하운의 말에 박격포와 장건도가 서로 마주본다. 생사부에 없다면 이건 보통 인물은 아닌 것이다. 그때 김하운의 손에서 분필이 으스러졌다. 그가 부순 게 아니라 분필이 저절로 부숴진 것이다.


“이 사람 추적하기 힘들겠어. 미래가 안 보여. 내 실력으론 과거를 거슬러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고작이에요.”


“그걸로 족하다.”


납륜법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것부터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김하운은 주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모이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돈담배를 꺼냈다. 여기서부터 쓸 술법은 반동과 대가가 좀 심하다.


“에라, 가 보십시다.”


김하운은 돈담배를 피우며 발자국 위에 뭔가 가루를 뿌렸다.


“으엑, 그거 혹시 그때 그 가루 아니니?”


예전에 이 술법을 본 적이 있는 박격포가 질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마학수사대 수사관이 질색하는 광경에 장건도도 호기심이 일어났다.


“야, 그거 무슨 시약이냐.”


“태반.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겁니다.”


“하, 새끼.”


딱 재료만 들어도 좌도의 술수인 게 표가 난다. 하지만 태반 가루를 뿌리던 김하운은 혀를 차며 주머니를 다시 집어넣었다.


“하아, 이 술법은 인간이 왔던 곳을 되돌아 거슬러 가게 만드는 술법인데···. 뭐야, 이거 사람 배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추적이 아예 안 돼.”


김하운의 말에 장건도의 눈매도 날카로워 졌다.


“사람 배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네, 호문클루스나 골렘, 또는 오토마톤일 수도 있죠.”


그때 갑자기 납륜법왕이 끼어들었다.


“이마나 겨드랑이, 혹은 옆구리에서 태어난 존재는?”


그녀의 질문에 김하운은 납륜법왕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마나 겨드랑이 같이 자궁이 아닌 곳으로 태어난 존재는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비유법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신화시대의 존재를 일컫기도 한다.


“으음, 그래도 일단은 어미의 배에 있었으니 추적은 되죠, 되는데···.”


그때 김하운은 머릿속에서 떠돌던 정보들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정답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진신사리.


“시발.”


칼라리파야트에 맞아죽은 가네사다.


“시발.”


자궁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난 존재.


“아 이런 시발.”


다가오는 정답에 대면하기가 무서워진 김하운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새끼가 갑자기 먼 시발시발 하고 있니. 뭐가 뭐 어떤데? 말해봐.”


답답한 박격포가 재촉을 했지만 김하운은 서둘러 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토카레프 보살님! 나 좀 살려주소. 장소, 장소만 하나 알려주세요오. 복채, 복채 얼마요? 닥치고 복채 가져가시라니까아아!”


*****


해운대 백사장에선 때 아닌 달집 태우기가 벌어졌다. 대낮에, 게다가 정월 대보름도 아닌데 인부들이 모여 달집을 짓는 광경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모였다.


“뭐지? 오늘 뭐 행사하나?”


“그러게, 어? 저건 뭐지?”


구경꾼들이 보는 앞으로 양복을 입은 사내가 큰 박스 하나를 들고 달집으로 걸어가더니 박스를 뒤집어 내용물을 좌르륵 부었다. 그 노란색 뭉치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소리쳤다.


“돈! 돈이다!”


“어어? 기름, 기름 붓는다.”


지금 돈을 부은 양복 입은 사내는 근처 은행의 지점장이며, 김하운과의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김하운의 보관고에 들어있던 현금 십억. 그것이 달집 앞에 놓이고 그 위로 가솔린이 뿌려진 다음, 불이 붙었다.


-화르륵-


달집과 함께 돈이 탄다.


“워어어! 돈이 탄다. 저런 미친.”


“바보야, 저게 뭐 진짜 돈이냐, 무당이 쓰는 거겠지. 무당이 쓰는 돈은 원래 따로 있어.”


“오호, 그런가?”


지점장은 구경꾼들의 그 말을 들으며 쓰게 웃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현찰 오만원권 십억이 그냥 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계약. 이걸 어겼다간 김하운과 토카레프 보살을 등지게 되고, 그러면 부산에서는 장사 접어야 한다. 지점장은 달집이 타는 광경을 보며 전화를 걸었다.


“아유, 보살님. 네네. 아유, 당연하죠. 네, 그럼 종종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지점장은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뒤로하며 백사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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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화 - 마법 소녀. 소오녀어? (2) +1 24.05.13 140 12 13쪽
48 48화 - 마법 소녀. 소오녀어? (1) 24.05.11 143 11 12쪽
47 47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4) +2 24.05.10 140 11 12쪽
46 46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3) +1 24.05.09 134 13 12쪽
45 45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2) +1 24.05.08 138 12 12쪽
44 44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1) +3 24.05.07 140 12 12쪽
43 43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4) 24.05.05 153 10 12쪽
42 42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3) +1 24.05.04 145 12 12쪽
41 41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2) +1 24.05.03 154 13 12쪽
40 40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1) +2 24.05.02 173 10 12쪽
39 39화 – 라훌라 (5) 24.05.01 173 14 13쪽
» 38화 - 라훌라 (4) 24.04.30 161 12 12쪽
37 37화 - 라훌라 (3) +1 24.04.29 174 14 13쪽
36 36화 - 라훌라 (2) +2 24.04.28 172 12 13쪽
35 35화 - 라훌라 (1) +2 24.04.27 178 10 12쪽
34 34화 - 퍼져나가는 음모 (5) +2 24.04.26 168 9 12쪽
33 33화 - 퍼져나가는 음모 (4) +1 24.04.25 177 11 13쪽
32 32화 - 퍼져나가는 음모 (3) +2 24.04.24 173 11 13쪽
31 31화 - 퍼져나가는 음모 (2) +2 24.04.23 179 10 13쪽
30 30화 - 퍼져나가는 음모 (1) +1 24.04.22 194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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