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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도 아수라장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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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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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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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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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5화 - 라훌라 (1)

DUMMY

다음날 김하운은 준비를 마치고 부산경찰청으로 출발했다.


“집 잘 지켜. 또 사고치지 말고.”


“응.”


“머라카노, 우리가 알라가?”


김하운은 밀리오네와 미호에게 집 안에서는 함부로 술법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다음에야 집을 나섰다.


‘나도 공부가 부족해.’


김하운은 둘에게 술법을 가르쳐주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싸우기 위해서만 술법을 이용했을 뿐, 그 이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애초에 사이비로 배웠으니.’


김하운이 제대로 배운 것은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뿐이고, 나머지는 길바닥을 떠돌며 눈동냥에 귀동냥에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다. 그래서 누굴 오지게 패죽일 수는 있어도 친절하게 가르칠 상황은 못 된다.

김하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부산경찰청에 도착했고, 간단한 절차를 마친 다음 박격포에게 도착했다.


“어라?”


그리고 여기서 그는 이번 일이 굉장히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김하운이 안내받은 곳은 다름 아닌 이번 사건을 위해 조직된 수사지휘본부였다. 꽤 큰 회의실에 만들어진 본부에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바쁘게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지휘하는 사람은 경찰이 아니었다.

길게 늘어선 책상 가운데엔 탄탄한 체구에다 사나운 인상을 한 중년의 남자가 쉴 새 없이 자료를 읽으며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는 김하운도 대충 얼굴만큼은 아는 사람, 장건도였다. 대검찰청 마학수사부 부장 장건도가 직접 내려온 것이다. 하긴 통도사의 진신사리 탈취라면 저 정도 급이 내려올 만하다.

그 장건도가 보던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는데, 김하운을 보는 눈은 굉장히 아니꼽고 못 미더운 눈치였다.


“저놈이요?”


“네, 김하운이라고, 부산에선 제법 알아주는 술사입니다.”


옆에 있던 박격포는 장건도를 아주 깍듯하게 대했다. 하긴 급이 급이니 어쩌겠는가.

장건도는 김하운을 한번 힐끔 본 다음 턱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이리 오라는 뜻이다. 오라니 어쩌겠는가, 김하운은 그냥 장건도 옆에 가서 섰다.

장건도는 다시 시선을 서류에 고정한 채 말만 옆으로 던졌다.


“네가 그렇게 실력이 좋다며?”


“그냥저냥 밥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그러자 장건도가 고개를 돌렸다. 김하운이 아니라 박격포 쪽으로.


“이 새끼 쓸 만한 거요?”


“그럼 제가 못쓸 놈을 추천하겠습니까.”


그제야 장건도는 보던 서류철을 닫고 김하운을 보았다.


“그럼 넌 뭘 할 수 있는데?”


하긴 대검찰청의 마학수사부장의 눈에 부산의 회색 해결사가 눈에 차겠는가. 그래서 김하운은 최대한 겸손하게 숙였다.


“그냥저냥 책상머리 백색들이 못하는 것은 할 수 있지요.”


장건도를 비롯한 주변의 눈빛은 ‘이놈 봐라?’ 라고 말하고 있었다. 반면 김하운을 아는 부산쪽의 경찰 인력들은 똥줄이 타고 있다. 김하운은 보통은 굽히며 살지만 수틀리면 냅다 들이받는 스타일이니까.


“믿는 구석은 있나보네?”


장건도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됐다. 너도 따라와.”


장건도가 나서자 주변의 인력들도 우르르 일어났다.


“어딜 갑니까?”


“통도사.”


“현장조사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직접 만나 뵙고 말할 것도 있고.”


장건도는 바닥에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건!’


장건도가 그리는 진이 무언지 알아본 김하운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가 그린 것은 축지법의 진이며 두 위치를 하나로 연결하는 술법이다.


“따라와.”


장건도가 이끄는 일행이 진으로 한걸음 내딛자 주변의 풍경이 일변했다. 그리고 그들은 순식간에 통도사에 도착해 있었다. 방금 진은 통도사로 직통하는 축지법의 진인 것이다.

이렇게 한 위치를 지정해놓고 이동하는 축지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도착지점이 통도사란 점이다. 통도사는 삼보사찰중의 하나이며 백색 중에서도 탑 레벨의 보안을 자랑한다. 때문에 통도사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축지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통도사에서도 인정을 받은 백색의 술사란 뜻이다.


‘이거 뭐, 거물이시군.’


김하운은 장건도를 따라가며 혀를 내둘렀다. 부산경찰청의 마학수사대가 그저 일반인 경찰들이 모여 술법 범죄를 수사하는 팀이라면, 검찰청의 마학수사부는 실제로 술사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통도사로 연결되는 축지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실력과 인성 모두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김하운은 통도사 경내에 서서 당시의 참극을 떠올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붙은 출입금지 테이프에 바닥에 붙은 증거태그들. 그리고 잘 보면 김하운이 내지른 쌍절톱의 흔적도 보여 잠깐 찔끔했다.


“난 주지스님 뵙고 올 테니 니들은 주변을 한 번이라도 더 살펴봐.”


장건도는 그렇게 말하고 주지스님을 만나러 갔고, 나머지 검사들과 검찰 수사관들은 통도사 내부로 흩어져 혹시 또 무언가 있는지 샅샅이 살폈다.

김하운도 가만히 있기는 뭐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다못해 수사하려는 시늉이라도 내려는 것이다.


“쳇, 박쥐새끼가.”


그때 뒤에서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김하운은 무시했다. 백색으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당장 이 통도사만 해도 어릴 적에 잘못 들어왔다가 그대로 저세상으로 발사될 뻔 했던 적이 있다. 게다가 검사들이나 경찰들은 김하운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 해도 수단이 흑색이면 그냥 회색 취급이다. 뒷담화를 무시하고 조사를 하던 김하운은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여기 이거, 이 흔적은 표시 안 해요?”


그의 말에 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시선이 모였다.


“표시? 뭐를?”


김하운 또래의 검찰 수사관이 김하운이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엔 아무것도 안보이고,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는 그냥 여기 왔다가 자리만 채우다 가. 괜히 일벌이지 말고.”


딱 봐도 무시하는 말투다.


“댁들 안 보는 거야, 못 보는 거야?”


김하운은 바닥에 룬문자를 그렸다. 그러자 거기에 반응해 허공에 마력의 흔적이 일렁이고 이를 본 수사관들이 두런두런 떠들어댄다.


“이, 이건?”


“뭐야, 백색의 힘이잖아. 통도사니까 이상할 것 없···. 어라?”


“잘 봐, 이건 서양쪽의, 그것도 아브라함 계통의 술법인데 이게 왜 통도사에 있는 거지?”


사람들은 허공에 나타난 루시퍼의 흔적을 보고 집중해서 매달렸다.


“아니, 이거 루시퍼의 흔적인데 몰라요?”


김하운의 말에 수사관들이 그를 돌아보았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루시퍼? 그자는 타천사잖아?”


“타천사가 이런 선명한 백색을 낼 수 있을 리 없어. 하여튼 지방 촌놈들은···.”


김하운은 고정관념에 갇혀 자신의 조언을 무시하는 수사관들을 보며 조용히 혀를 찼다.

그는 루시퍼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 회색의 타천사.

김하운이 흑색에서 태어나 백색을 갈구하는 회색이라면, 놈은 백색에서 태어나 흑색을 탐구하는 회색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김하운 자신의 본색이 흑색이듯, 루시퍼 또한 무슨 짓을 해도 본색은 백색이다.

결정적으로 다른 타천사들과는 달리 루시퍼는 최후 시간에 야훼의 곁에 서기로 예정된 존재라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된 자만 알아야 하는 비밀이라 함부로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혀, 박경감한테 부탁받은 것도 있고, 또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어쩌냐.’


김하운은 보통 이정도 대접을 받으면 그냥 자리를 뒤엎는다. 상대가 경찰이든 검찰이든 쌩까고 갈아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은 엄연히 공식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중간에 박경감이 있어서 김하운은 그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다.


‘뭐, 계속 무시하면 무시하라지. 난 일 안하고 돈 안 받으면 되니까.’


김하운은 수사관들이 뭐라고 하건 주변을 조사했다. 그때는 그냥 놈들과 싸웠지만, 이렇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조사를 하니 당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이새끼 봐라?’


이런 단서들이 하나 둘 모이며 김하운은 루시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곤란한데···.’


요근래 루시퍼는 두억시니의 빙의 사건으로 김하운과 엮여 실패했고, 진신사리 사건에선 아예 사천왕들에게 붙잡혀 갔다. 즉 두 번 다 실패한 셈인데, 놈과 직접 싸웠던 김하운은 결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루시퍼는 기원전부터 암약해온 타천사라 그 음모의 설계는 인간의 사고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닿아있다. 그런 루시퍼가 인간을 상대로 실패했다? 말이 안 된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기만이다. 혹은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취한 방법일 것이다.


김하운 또한 자신은 단지 눈앞의 싸움에서만 놈을 물리쳤을 뿐,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에선 이미 루시퍼의 음모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일단 진신사리는 놈이 들고 갔으니 무장돌격대들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루시퍼의 목적은 무엇일까.’


놈은 부산성당에서 띠그레 우라칸과 김하운에게 울고불고 대차게 발렸다.

통도사에서도 크툴루를 보고 기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루시퍼의 화신체에 불과하다. 놈은 화신으로서의 사명에 따라 움직일 뿐, 본신의 속내는 알지 못한다.


‘그 망할 놈의 음모는 도대체 뭘까.’


그러나 인간인 김하운이 놈의 음모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놈이 어디에 어떻게 불을 지를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단지 놈이 불을 내면 뒤늦게 달려가 불을 끄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래도 김하운은 통도사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조사를 했고, 곧 장건도가 돌아왔다.


“어이, 김하운이.”


장건도의 퉁명스런 부름에 김하운이 다가갔다.


“너 이 새끼, 왜 처음부터 말 안했어?”


“뭐를요?”


“너 그날 여기서 통도사를 지켰다면서.”


장건도의 그 말에 주변 수사관들의 시선이 매섭게 김하운으로 꽂혔다.


“그거 아직까지 몰랐어요?”


능청스런 김하운의 반응에 수사관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새끼···. 따라와.”


장건도는 김하운만 지목해서 데려갔다. 목적지는 진신사리가 있었던 금강계단이다. 주변이 조용한 것을 안 장건도가 입을 열었다.


“너, 이 사건의 배후를 아나?”


“루시퍼 말입니까?”


김하운의 대답에 장건도의 발이 멈추고 돌아본다.


“뭐야, 이 새끼 눈이 왜 이렇게 좋아?”


“제가 좋은 게 아니라 다른 분들 눈이 너무 안 좋던데요?”


그 말에 장건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알 놈이면 여기서 안 이러고 있지.”


“아는 분이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신답니까?”


“하, 이 새끼 이거 한 마디를 안지네.”


“아니, 물어봐서 대답했는데 어쩌라고요!”


장건도는 금강계단 근처에 앉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 김하운에게 담배 한 뭉치를 꺼냈다. 돈담배다.


“주지스님이 너 주라더라.”


김하운은 고맙게 받아서 챙겼다. 아니, 돈담배를 받았지만 장건도가 놓지를 않는다.


“너 무슨 저주같은 거 있냐? 왜 돈을 태워?”


“저주야 있죠. 통도사의 주지스님도 못 푸는 저주가.”


장건도는 혀를 차며 손을 놨고, 담배는 김하운의 품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잘됐어. 루시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놈이 부산에 있었다니, 박경감 일 잘하네.”


장건도는 담배를 빠는 것도 잊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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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 - 마법 소녀. 소오녀어? (1) 24.05.11 15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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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3) +1 24.05.09 140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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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화 - 윈윈, 기브 앤드 테이크 (1) +3 24.05.07 146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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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2) +1 24.05.03 158 13 12쪽
40 40화 - 짭은 짭이요, 찐은 찐이로다. (1) +3 24.05.02 175 10 12쪽
39 39화 – 라훌라 (5) 24.05.01 175 14 13쪽
38 38화 - 라훌라 (4) 24.04.30 163 12 12쪽
37 37화 - 라훌라 (3) +1 24.04.29 179 14 13쪽
36 36화 - 라훌라 (2) +2 24.04.28 176 12 13쪽
» 35화 - 라훌라 (1) +2 24.04.27 182 10 12쪽
34 34화 - 퍼져나가는 음모 (5) +2 24.04.26 172 9 12쪽
33 33화 - 퍼져나가는 음모 (4) +1 24.04.25 181 11 13쪽
32 32화 - 퍼져나가는 음모 (3) +2 24.04.24 177 11 13쪽
31 31화 - 퍼져나가는 음모 (2) +2 24.04.23 184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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