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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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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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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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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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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3)

DUMMY

“되었다. 그래,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들 해보거라.”


뒷짐을 진 능운검절이 주변을 여상히 돌아보았다. 그러다 그 눈길이 백연의 앞에 와서 뚝 멈췄다. 굵은 눈썹이 살풋 꿈틀거리는 것이 백연의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


모든것에 앞서 백연을 인지한다. 칠룡을 눈앞에 두고도 그랬다. 뇌룡을 비롯한 쟁쟁한 후기지수들을 무심히 보아 넘긴 눈이 백연의 앞에 멈춰선다.


경계를 하는 것일까.


‘기분 나쁘게.’


백연이 생각했다.


똑같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받아치면서였다. 이윽고 능운검절이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곤륜의 아해도 있었구나. 일전 대련때도 나섰다 들었는데, 소란의 중심에서 벗어나질 않는고.”

“인기가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생긋 웃어보이자 능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곁에서 악예린이 작게 몸을 떠는 것도 느껴졌다. 속으로 웃음이라도 삼켰는지.


‘그럴 사람은 아닌데.’


감정 변화가 작은 그녀다. 추위라도 조금 탄 모양이었다.


“여전히 혀가 날카롭구나. 조심하거라.”

“새겨듣겠습니다.”

“사숙조......”


듣다못한 무영이 끼어들려 하자 능운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몇걸음 물러나 있던 팽악이 팔짱을 낀채로 미간을 좁혔다.


“능운께서 오셨군.”

“팽가의 소가주. 무엇하는 것인가. 경내에서, 그것도 이리 사람들한테 둘러싸인채로 싸움박질을 하다니. 팽가주께서 지척에 계시지 않나.”


백연에게 말할때와는 달리 은근히 타이르는 음성이다. 그러나 팽악은 코웃음을 치고 답했다.


“싸운적 없소. 당장 연무장으로 걸음할지 말지 논하고 있었을 뿐이오만.”

“칠룡간에 대련이라도 하려고?”

“그런 셈이지.”


팽악이 연화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만만한 기세가 흘러넘친다. 싸움을 피하지 않는 듯 했다. 불같은 성정을 지녔는지. 같은 칠룡의 일좌인 악예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말 나온김에 하자. 좋잖아. 다 불만 있어?”


그녀의 시선이 칠룡들을 한바퀴 돌아 백연에게까지 도착했다. 어느새 허리춤의 검파에 손을 올린 연화가 입을 열었다.


“칠룡과 암화. 비무제전 이전에 서로 대충 실력을 알아놓고 가는것도 좋을 일이야. 어차피 절초는 아낄것이 뻔하지만.”


햇빛을 받아 거의 붉게 보이는 적갈색 머리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 강렬하다.


“내 무공 성취를 가늠하는데 도움은 되겠지. 그간 놀고만 있었던건 아니니까.”

“저는 좋아요.”


곁에서 동의하고 나선 것은 악예린이었다. 가벼운 몸짓에 비스듬히 어깨에 걸쳐있던 흑단목 창이 휙 회전했다. 창술의 기수식을 취할듯 끄트머리를 땅에 향한 그녀가 백연을 돌아보았다.


“천주산 이후 얻어낸 것이 조금 있었거든요. 보여주겠다 약속도 했는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어느새 이쪽을 대놓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무인들 사이에서 칠룡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능운검절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란이 심하구나. 호승심이 넘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과해.”

“문제가 있습니까. 무인간의 대련일 뿐인데.”

“독룡 당소하. 그대만은 그리 경거망동하는 이가 아니라 여겼건만.”


목소리에 불편이 깃들었다. 자연히 흘러나오는 기파가 주변을 덮었다. 능운검절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였다. 평소였다면 이들의 소란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칠룡은 서로간에 대련을 자주 펼치는 이들이다. 승패로 우열을 자주 가리는데, 그 탓에 호사가들 사이에서 더욱 유명해진 것도 있었다.


서로를 발판삼아 하늘을 오르는 용의 무리인 것이다. 때문에 능운은 이들의 대련을 무작정 말릴 생각은 없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암화의 검이 그렇게 강렬하다고 들었단 말이지.”

“현월. 자꾸 이놈을 왜 엮지?”

“그야 당연히 붙어보고 싶으니까. 너희들 무공이야 백날천날 본거고.”


호승심 넘치는 목소리로 내뱉는 현월검룡. 공동파의 아이가 암화를 상대로 투지를 붙태우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저편에서 말없이 암화를 노려보고 있는 비룡도. 그리고 하다못해 무영조차도.


반면 그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는 암화는 더없이 태연했다. 백청색 무복을 걸친채로 살풋 삐딱한 자세를 하고 서 있는데, 그 기도에서 빈틈을 찾을수가 없었다.


능운 자신조차도.


‘안된다.’


능운의 직감이었다. 분명 당장의 무위는 그가 암화보다 앞설 것이라 생각함에도, 전투에 막상 들어갔을때 저 아이를 상처없이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영이 겪을 상황은 뻔했다. 대련이 벌어진다 하면 필패.


애시당초 곤륜산에서 그의 기척을 알아채고 공격한 다음 자연스레 공방을 주고받던 아이다. 능운은 자존심이 드높았으나, 동시에 상대의 수준을 파악할 눈은 있었다.


‘칠룡끼리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은 상관 없지만, 암화까지 덧붙여져서는 안되는 일이야.’


만일 대련에서 무영이 암화에게 처참하게 패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치고 망신이다. 천하 무당의 이름이 어디 청해 벽지의 이름없는 문파의 꼬맹이한테 밀리다니.


그것이 설령 삼대 제자간의 대련이라 해도 그랬다. 결코 정면으로 맞붙게 놔둘 수 없었다. 적어도 비무제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대련을 시작할 것 같던 칠룡의 사이로 능운이 가볍게 진각을 내리찍은것은.


화아아악!


“그만.”


기파가 주변을 타고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무당파 유운신법(流雲身法)의 기파를 찰나지간 응용해 진각에 실은 것이었다. 삽시간에 소란하던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듯 가라앉았다.


“대련은 분명 좋은 훈련이나 다들 너무 호승심이 앞섰다. 무당의 경내에서 이리 이목을 끌며 소란을 벌이고.”


칠룡의 눈길이 그를 향하는 것을 느끼며 능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고로 대련 대신, 다른 것으로 겨루는게 어떤고?”


능운의 제안에 팽악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연화도 마찬가지로 미간을 좁혔다.


“다른것이 무엇이 있소?”


능운의 시선이 힐끗 뒤를 살폈다. 티없이 맑은 기도의 무영이 침착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직접적으로 검을 겨루지 않아도 서로의 실력을 견줄만한 것이 있지. 간단한 내기를 하는게 어떻겠나?”

“내기?”

“무당산에 수많은 수련용 동혈(洞穴)이 있는데, 개중 하나가 얼마전에 막혀버렸다.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서 입구를 틀어막았건만. 당장은 치우기가 곤란해 놔둔 상태야.”


능운이 천천히 칠룡을 둘러보곤, 마지막으로 백연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바위를 부숴 동혈의 입구를 여는 사람에게, 본 도장의 권한으로 상을 주도록 하지. 나쁘지 않은 제안이 아니더냐.”

“상이라 하면 무엇을?”

“소청단(小淸丹)을 걸도록 하겠다.”


한순간 주변의 시선에 관심이 확 깃들었다. 능운검절이 언급한 상이 생각보다 컸다. 소청단이라 하면 무당파의 영약중 하나.


소림의 대환단(大還丹)이나 화산의 자소단(紫蘇丹)에 버금가는 무당파 최고의 영약인 태청신단(太淸神丹)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소청단도 귀한 물건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리 후기지수들 몇의 내기에 턱 내놓기에는 값어치가 상당한 물건이다. 애초에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건 구미가 당기는군요.”

“사숙조님, 소청단을 내주신다 하면......?”

“괜찮다. 내 소유의 단약을 내놓는 것이니.”


반면 백연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확실히, 능운이 대련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느껴졌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알기 어려웠다. 소청단을 내놓으면서까지 대련을 막아야 하는 일인 것일까.


여하튼 지금의 백연에게는 나쁘지 않은 소리였다.


‘대련은 피하고 싶었는데.’


연화가 막무가내로 요청하면 어쩔 수 없이 상대해줘야 할 판이었다. 그런 일을 아예 피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당장 그의 몸 상태로는 바위를 가르는 것도 쉽지 않아보였지만 상관은 없었다.


‘소청단은 얻어도 먹지도 못할테고.’


얻는다면 사형들에게 주거나 하겠으나, 못 얻어도 괜찮았다.


“그러면 다들 동의한걸로 알겠다.”


능운의 말에 칠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는 미미하게 불만인듯 미간을 좁혔지만, 별말없이 수긍하는 모습이다. 백연 또한 가벼이 동의했다.


“좋구나. 그럼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칠룡이 아닌 다른 무인들도 도전하고 싶다면 따라와도 좋다.”


아예 판을 키우는 능운의 모습. 그에 화답하듯 구경하던 몇몇 무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운이 모여든 무인들을 보며 뒷짐을 졌다. 한숨을 돌린 그가 무인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



그들이 이른 곳은 무당산의 한켠에 자리잡은 절벽이었다. 머리 위로 족히 수십장이 넘게 솟아오른 절벽은 깎아지른듯 날카로웠다. 절벽의 사이 사이로는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구멍들이 몇개 있었는데, 아마도 무당파의 도인들이 수련할때 쓰는 동혈들의 입구인 듯 했다.


‘제운종으로 오르는건가.’


그정도 보신경이 아니고서야 쉬이 도달하기 어려울 듯 했다.


그리고, 그 절벽의 맨 아래. 본래라면 또 하나의 동혈 입구가 있었을 자리에 모여든 무인들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호오.”


당소하가 낮게 감탄을 터트린다. 팽악은 미간을 팍 찌푸렸고, 모위진은 헛웃음을 흘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그 바위다.”


능운이 바위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할 수 있겠는가? 누구든 자유롭게 초식을 내쳐도 되는데.”

“능운검절. 집채만 하다더니.”


팽악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황당함이 섞여있었다.


“집이 많이 크다 보이오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니.”


능운이 수염을 쓸며 웃었다.


“간단한 것이었다면 이미 치웠지 않겠나. 동혈을 망가뜨리지 않고 치우려니 이만저만 고생일게 훤해서 가만 놔뒀지.”


그들의 앞. 동혈 입구를 막아선 것은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이였다. 그러나 그 거대함의 기준이 이상했다. 목을 꺾어 올려다봐야 그 끄트머리가 보인다. 마치 돌로 된 산봉우리의 끄트머리를 툭 잘라 떨궈놓은 양 압도적인 위용이다. 집채만한 크기라 표현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소청단을 건 이유가 있었네.’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이만한 바위를 한번에 치워준다? 소청단 정도는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자, 먼저 하고 싶은 이는 손을 들게.”


그러자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들을 따라온 무인들 중 하나였는데, 능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훤칠한 근골의 무인이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이 언(彦)모가 한번 도전해보겠소!”

“진주언가의 공자인가. 그 권법 위명은 익히 들었지. 마음껏 초식을 펼쳐도 좋네.”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나온 청년이 숨을 그러모았다. 맨손으로 기수식을 준비하며 손을 당기는 모습. 그 사이 백연의 곁으로 다가온 악예린이 입을 열었다.


“백연은 할 수 있겠어요?”

“음......”


백연이 바위를 가늠했다.


자연물을 파괴하거나 베는 것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전투와는 다르다. 살(殺)을 목적으로 하는 싸움은 여러 방법이 있다. 본디 싸움이란 순수한 무공의 파괴력에 의해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속임수나 심리전처럼 수많은 변수가 개입하는 일인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아무리 고강해도 그에 한계가 존재하기에.


지고한 고수라 해도 심장에 검을 찌르면 죽는다. 내공 한점 실리지 않은 철검이라 해도 무방비한 초월자의 목은 자를 수 있다.


허나.


‘저 크기. 제대로 가르려면 막대한 내공이 필요하다. 성질을 바꿔 참격의 힘을 배가시키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부족해. 아예 검격 묘리를 극한으로 연마했다면......’


눈앞의 바위는 다르다. 정말로 순수한 무공의 파괴력으로 부숴야 하는 상대.


그가 태청신공으로 엮어낸 내공은 분명 강력하나, 이건 엄연히 그와 조금 다른 영역이다. 더해 만전도 아닌 상태이다. 명백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예린 소협은요?”

“음.”


악예린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잠시 바위를 응시하며 눈을 데구르르 굴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절초를 전력으로 전개한다 해도 잘 모르겠네요.”

“검룡은 될련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이 자리에 없는 검룡 유성을 입에 담았다. 무슨일로 바쁜지, 무당파 경내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본래라면 그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비췄을 법도 하건만.


“흐읍!”


그때였다.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언가 청년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파공음이 울리며 주먹이 거력을 품고 바위의 표면을 타격했다.


퍼억-!


두 주먹이 일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일권(一拳)에 담긴 묘리가 상당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언가의 무인이 꽤 좋은 실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본래 여러 초식으로 이루어졌을 권법을 전부 생략하고 한번에 힘을 전부 실어낸 모양.


화아아악!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주먹과 바위가 맞부딪히고, 한순간 일어났던 권풍(拳風)이 잠잠해졌음에도 바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주먹을 회수한 언가의 청년이 멋쩍은 웃음을 뱉었다.


“안되는구려. 쉽지 않소이다.”

“헛허. 제대로 펼쳐지는 언가권(彦家拳)을 쉬이 보긴 어려운 일인데, 나쁘지 않았네. 다음은......?”

“복건(福建)의 묘가(苗家)입니다. 한번 검을 대봐도 되겠습니까.”

“마음껏 도전하도록.”


희미한 미소를 지은 여인이 검을 들고 나선다.


“칠룡들께서 나서기 전에는 힘들듯 보이지만, 그래도 전력을 펼쳐보이겠습니다.”


검이 허공을 가른다. 복잡한 형태의 검로가 겹쳐지며 바위를 갈랐다. 허나 표면에 옅은 자국이 남은 것 외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나는 어림도 없겠군.”


당소하의 말에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만천(滿天)으론 안되는건가?”

“되겠나?”

“하핫. 아니면 만독(萬毒)으로 녹이던가.”

“녹이는 독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정도가 있지. 그리고 그런걸 꺼냈다간 몇명 죽이고 만다.”


그 사이 사람들이 하나씩 바위에 덤벼들었고, 빠르게 물러났다. 호기롭게 나서는 이들도, 아니면 그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려 나오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부분은 한번 전력으로 무공을 펼친 뒤, 그럭저럭 만족한 듯 물러나는 모습이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지원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도무지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위를 부수거나 베기는 커녕, 그 표면에 자국을 남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


지금까지 가장 큰 흔적을 남긴 것이 종남파의 한 무인이 내친 일검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바위를 파고 들어간 것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단단하기도 쇳덩이 수준이군.”


팽악이 말했다. 백연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평범한 돌이 아니군요. 약한 바윗덩이 중에는 금세 부서지는 것도 있는데.”


소년들이 대담을 나누는 사이였다. 더 이상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자 능운이 천천히 주변을 슥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다른 이가 더 없나? 그렇다면......”

“슬슬 제 차례인가 보네요.”


저벅.


검푸른 무복이 펄럭였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연화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바위 앞에 섰다. 적갈색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는데, 가볍게 손으로 쓸어넘긴 그녀가 능운을 쳐다보았다.


“초식을 마음껏 펼쳐도 된다 했죠?”

“그렇지.”

“너희들. 내가 먼저 하는거에 불만 있어?”


이번에는 칠룡을 돌아보며 묻는다. 팔짱을 낀 팽악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왜, 네 차례에서 끝날것 같나?”

“모르는 일이잖아. 그간 연습한게 있는데.”

“꿈이 크군.”

“너, 너. 시끄러워.”


팽악의 말을 적당히 씹어넘긴 연화가 검파를 쥐었다.


스릉-


쇳덩이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연화의 검이 허공에 풀려나왔다. 푸르스름한 빛이 비스듬하게 일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여상한 태도로 검을 늘어뜨린 그녀가 바위를 쳐다보았다.


“그럼 다들 불만 없는걸로 알고. 시작해도 되겠죠?”

“그렇다.”


능운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연화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호흡 한번에 공기가 움직였는데, 단순한 호흡이 아니었다. 그 숨결에 깃든 무공 묘리.


마치 크게 노호성을 지르기 전 숨을 들이쉬는 것과도 같은 모양새다. 한순간 백연은 허공에 스치는 기운의 흐름이 그녀에게 살풋 휘어드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야?’


직후였다. 숨을 들이쉰 연화가 반 호흡 정도를 내뱉었다. 놀랍게도 그 숨결에는 색(色)이 존재했다. 마치 물에 먹을 톡 뿌려낸 듯한 검은 호흡.


“복마(伏魔). 현(玄).”


나직한 음성이 울리고.


그녀의 기도가 일변(一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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