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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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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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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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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약선객(2)

DUMMY

※※※



이튿날 새벽.


해는 커녕 아직 하늘에 별도 지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언제나처럼 일찌감치 눈을 뜬 운결은 바깥이 소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인고.’


제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련에 임하는 것은 잘 알았으나, 운결은 그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이른 시각에 눈을 뜬다. 곤륜파에서 그보다 부지런한 사람은 아예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은 백연밖에 없다 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어제 저녁에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또 무슨 일을 했구나.’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곤륜파가 들썩이는 것은 십중팔구 백연의 소행이었다. 이 시간부터 소란한 것도 아마 백연이 무언가 일을 한 것이리라.


허허 웃음을 지은 운결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몄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하자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들이 보였다. 헌데 그 모습이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타다닥.


저편에서 옅은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운결의 미진한 안법에는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움직임으로만 보였다. 허나 운결은 오랜 경험으로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소홍의 보신경. 유독 조용하고 기척이 없는 제자다. 그렇기에 평시에는 백연이 아니면 그 누구도 소홍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는데.


“음?”


휘릭.


소홍의 뒤편에 누군가 재빠르게 따라붙는다. 삽시간에 허공을 가르며 달려든 인영의 뒤로 길다란 흑발이 나풀거렸다. 직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불꽃이 일고.


쩌엉! 쩡!


검격이 재빠르게 교환되었다. 일련의 과정이 전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운결의 눈에는 삽시간에 유령 둘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간 듯 했다.


“무슨......?”


운결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어두운 시각이다. 불빛도 하나 밝혀져 있지 않은데. 이런 환경에서 검을 휘두르기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방금전의 공방은 유려하게 이어졌다. 밤눈이 훤히 밝기라도 한듯이.


그때였다.


“어, 장문인?”


어둠 속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직후 그의 앞으로 누군가 황급히 달려왔다.


“이리 일찍 일어나셨군요. 너무 소란했습니까? 아이들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해야......”


어둠을 헤치고 달려온 것은 청율이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직전까지 수련을 하고 있었는지.


허나 운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흐트러진 청율의 행색이 아니었다.


“......청율아. 네 눈이? 그것은 자령안이 아니더냐.”

“이것......아. 맞습니다.”


생긋 웃는 청율의 눈가를 따라 자색 기파가 휘돌고 있었다. 그에 운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법을 배웠느냐? 백연이가 위험하다고 나중으로 미뤘다 알았건만.”

“예. 어제 저녁에 익혔습니다.”

“놀랍구나. 어쩐지 아침부터 소란하더니.”


운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들이 보였다. 찰나지간 허공에서 간간히 튀어오르는 불꽃. 검격이 교환되며 울리는 소리가 짧게 짧게 귀를 파고든다. 어둠을 헤치고 내달리는 그림자들은 제각기 공방을 나누고, 움직이며 다음 상대를 노렸다.


마치 살수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같았고, 검객들이 현란한 검무를 추는 것 같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이 어둠속에서 이어지는데 서로 검을 휘두름에 망설임이 없다. 잘못하면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결 또한 자령안 비급을 읽어보았다. 감각의 무공이라고. 때문에 이 일이 어째서 벌어진 일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감각을 체화하고 있는 것이더냐.”

“맞습니다. 무공을 한번 배웠다고 완전히 습득했다 할 순 없으니까요.”


청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염을 쓸어내린 운결이 입을 열었다.


“기특하구나. 헌데 그래도 괜찮으냐? 잠이 부족할 것인데. 백연이가 너무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수련을 시키는 것은 아닌지......”

“제 탓 아닙니다 장문인.”


그때 그의 앞으로 그림자가 훅 떨어져 내렸다. 어디서 등장했는지 볼을 부풀린 백연이 운결에게 고개를 숙이곤 입을 열었다.


“아니, 저도 오늘은 푹 자려고 했단 말입니다. 안그래도 어제 늦게까지 안법 가르쳐주고 일일이 진기 다루는 법까지 새겨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적잖이 억울한 목소리였다. 그에 운결이 허허 웃었다.


“왜, 아이들이 끌고 나왔더냐?”

“안법을 익혀야겠다면서 어두운 곳에서 전투를 해보고 싶다고 새벽부터 자는 사람을 끌고 나오던데요. 뭐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꼬맹이들도 아니고. 저렇게 재밌다고 신나서......”

“그리 말하는 것 치고는 입꼬리가 안내려 가는구나.”

“아.”


백연이 양손으로 스스로의 입꼬리를 꾹꾹 내리누르다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운결의 말이 맞았다. 새벽부터 알아서 수련을 자처하는 사형들이 더없이 기특한건 사실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래도 피곤합니다.”

“피곤하면 어찌 더 자지않고. 아이들은 수련을 하라고 놔두면 되는 것 아니냐?”

“아, 그건.”


말하던 백연의 손이 휘릭 움직였다. 찰나지간 백연의 소매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허공을 갈랐다. 직후 저편 어둠속 어딘가에서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고마워! 실수할뻔 했네.”


이결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백연이 운결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저러니 안됩니다. 방금 이결 사형 팔 한짝이 날아갈 뻔 했거든요.”

“......허허. 위험하구나.”

“제가 있으면 괜찮긴 합니다. 그게 문제지만요.”


자령안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감각을 활용하는건 좋았다. 하지만 아직 사형들은 자령안 공능을 전부 이끌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인지했다고 해도 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방금 전 연청이 휘두른 검격을 백연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이결의 팔이 다쳤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련은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어.’


위험한 상황만 백연이 막아준다면, 지금 이건 그야말로 실전에 한없이 가까운 전투. 어둠 속에서 싸우는 법을 익혀두는 것과 동시에 자령안의 성취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수련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수면시간이 희생된다는 안타까운 전제가 뒤따르긴 하지만 말이다.


“하아암. 아무튼 저는 괜찮습니다. 헌데 장문인께서야말로 더 주무셔야 하시는 것 아닙니까. 요즘 바쁘시다 들었는데.”


근 며칠간 자주 사방을 오간다는 운결이다. 무당파 경내에서 그리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아무래도 다른 문파들과 친분을 도모하기 위함인 듯 했다.


곤륜파의 입지를 쌓고 있는 것이다. 새로 떠오르는 문파의 장문인 된 사람으로써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봐도 좋았다. 백연은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곤륜이라는 이름을 들었을때 뭇 문파들이 운결의 이름을 한번정도 더 떠올리게 하는 정도면 성공적이다. 후일 어떤 방식으로 인연을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나는 괜찮다. 원래 이맘때 일어나니.”

“건강하셔야 해요.”

“허허. 네가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운결이 수염을 쓸었다. 그 사이 백연은 청율을 쳐다보았다.


“사숙.”


나직한 소년의 음성에 청율이 웃었다.


“알았어요. 지금 가서 수련할게요.”


후욱.


가벼운 걸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흔들렸다. 화신풍의 바람을 휘감은 청율이 그대로 뛰어올랐다. 한순간 그에게 달려드는 그림자가 둘이었는데, 유려하게 몸을 비튼 청율의 검이 원형을 그리며 두자루의 검격을 동시에 쳐냈다.


카각!


뒤이어 내뻗은 반격초에 도현이 나동그라지고, 단휘가 몸을 비틀어 청율의 일격을 간신히 막아낸다.


‘뛰어나.’


사형들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가끔씩 망각하는 사실이지만, 청율의 무공 수위는 꽤나 높았다. 다른 문파의 어지간한 이대 제자들과 견주어도 비슷하거나 앞설 정도로.


일전 섬서행때도 그 실력을 보여주었던 청율이다. 기본적인 무위가 있었는데, 백연을 만난 이후로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무궁각주의 자리에서 백연이 엮어낸 모든 무공을 직접 비급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무공 구결의 이해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필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구결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닳도록 새겼을테니.


지금도 자령안의 적응이 가장 빨랐다. 안법 성취가 남들에 반발짝은 앞서 나간다. 단휘와 도현 둘의 공격을 상대로도 여유로이 반응할만큼.


그 모습을 보며 운결이 뒷짐을 졌다.


“수련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만, 이만 가봐야겠다.”

“일이 많으신가 봅니다.”

“헛허. 종남파의 무인 한 사람이 인사를 건네더구나. 홍유각이라고 아느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입니다.”


섬서 수라궁의 사건때 만난 종남파의 무인이다. 화산파의 매화검수 천월과 맞먹는 고수였는데, 이번 비무제전에 걸음한 모양이었다.


“인사를 받았으니 돌려줘야지. 종남파에 잠시 얼굴을 비추러 가야겠다.”

“종남의 장문인도 도착했습니까?”

“그렇다고 들었다만. 오늘 가보면 알겠지. 그리고 네게 전해줄 말이 있다.”

“제게 말입니까?”

“그래. 남궁세가의 가주를 보았다. 네게 꼭 보고 싶다고 말을 전해달라 하던데. 어린 연배에도 그리 영민하게 세가를 이끄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남궁세가의 현 가주라면 남궁유진이다. 천주산에서 만났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떠올린 백연이 미소를 지었다.


‘검왕이 간간히 기별을 보내주라 했는데.’


문득 생각난 기억에 백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간 너무 바쁘게 지내온 탓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곧바로 찾아가서 인사라도 해야 할듯 싶었다.


하지만 바로 당장은 안된다.


“찾아가보겠습니다. 헌데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어딜 말이냐?”


운결의 물음에 백연이 답했다. 자연스레 비도를 던져 연비가 놓친 검격을 막아주면서였다.


“오늘 곧바로 제갈세가에 가볼 생각입니다. 약선객 제갈명을 만나러.”



※※※



그를 향하는 눈길이 많았다.


개중 절반은 호기심과 호의가 뒤섞인 눈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경계와 의문이 섞인 눈빛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명백히 후자쪽인 듯 했다.


제갈세가의 가솔. 가전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방계인 듯 보였으나 그 무위가 낮지 않았다.


“......어째서 오셨다고?”

“제갈의 가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연은 저 시선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감히 천한것이 제갈의 가주를 입에 담다니, 무엄하다. 이런 의미와 분노가 담긴 눈빛이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그렇게 말을 꺼내지는 못한다. 어지간한 머저리가 아니라면.


“감히 미천한 입에 그런......”


어지간한 머저리가 맞았던 모양이다. 그때 남자의 옆에 있던 여인이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마찬가지로 제갈세가의 가솔로 보였는데 남자보다는 비교적 호의적인 기색이었다.


“그, 곤륜파의 암화가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독룡과 도룡과 어울려 다닌다는......”


언급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백연은 가만히 여인을 응시했다.


당가와 팽가의 소가주.


그 두 사람이 이름이 지니는 힘을 백연은 잘 알았다. 남의 위세를 등에 업고 설치는 것을 선호하진 않았으나 필요할때 안 쓸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 강호 무림에서 암화라는 별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를 문전박대 하긴 어렵다. 단지 두 세가의 소가주 뿐만 아니라 검룡과 뇌룡을 비롯한 무인들과도 어울리는 사람이니.


‘재밌네.’


우습기는 했다. 한순간에 남자가 입을 딱 다무는 모습이 그랬다. 미천하니 어쩌니 하더니 그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무서운가보지.


‘검끝이 아니라 등 뒤의 이름을 보는 이들.’


당장은 편리하게 써먹어서 좋았다. 제갈세가와 같은 거대세가에 대화를 요청하려면 이것이 가장 빠르다. 약선객 제갈명의 이름을 바로 언급하기에는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으니.


‘가문에서 겉돈다고 했지.’


실제로 그는 다른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이미 스치듯 보거나 이름을 들었으나, 제갈명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제갈세가를 언급하는 대화 어디에도 없었다. 가문에서 거의 배제된 존재.


괜스레 입에 담았다가 반발심만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 그의 행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을 바로 만나 이야기 하는게 좋다.


“죄송합니다. 가주께선 잠시 선극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혹 하실 말씀이 있으면 소가주께 남겨 주셔도......”

“소가주는 있습니까? 그렇다면 소가주를 뵙고 싶군요.”

“흠, 흠. 암화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이리 갑작스레 요청하시면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혹 어째서 뵈려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대면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음. 한번 여쭤봐야겠군요.”


여인이 남자에게 눈치를 주자 표정을 잔뜩 구긴 그가 전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사라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백연은 그 사이 머릿속으로 어제의 검격을 복기하고 있었다.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여인의 눈길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가주께서 들어와도 좋다 하셨소.”


남자가 돌아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생긋 웃어보인 백연은 안내를 따라 전각 안으로 걸음했다.


곤륜파에 주어진 것보다 확연히 크고 화려한 건물을 가로질러 안에 들어가자, 사방에 미미하게 깔린 기파가 느껴졌다. 지나치는 인물들 모두에게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제갈세가 특유의 기운인 모양.


근간을 이루는 심법이 소천성공(小天星功)이라 했다. 기초를 중시하여 누구라도 쉬이 배울 수 있으며 몸을 닦기에 좋은 무공이라고.


확실히 수준이 높았다. 명문세가의 위엄일까.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 어느 문 앞에 이르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소가주께 반드시 예를 차리도록.”


백연이 가만히 웃자 남자가 미간을 좁히고는 문을 향해 말했다.


“소가주님, 암화가 왔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남자의 목소리에 옅은 미성(美聲)이 화답했다. 맑은 기도가 묻어나는 음성이었는데, 그 속에 무심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백연이 생각하는 사이 문이 열렸다.


안은 햇살이 깃드는 넓은 방이었다. 죽 펼쳐진 안쪽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책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앞에 한 청년이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모습이다.


순백의 새하얀 의복. 커다란 소매와 길게 뻗은 손가락이 도드라진다. 붓을 쥔 손끝에 옅은 먹물이 들어있는 것이 확연한 문사풍의 사내였다.


길다란 머리칼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눈매는 마냥 유순하지만은 않았다. 외려 냉철하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모양새. 그러나 그 모습속에서 백연은 무언가 다른것을 보았다.


저 무심한 표정 위로 삐딱한 웃음과 더없이 오만한 자신감을 덧칠한다면, 그 얼굴은 분명 과거 검귀의 동료였던 제갈소백과 한없이 닮아있었다. 과연 한 핏줄이라는 것일까.


미묘한 감상이 일었다. 그러나 이윽고 백연은 그것을 마음 한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기울어진 시선이 백연을 눈에 담았다.


“이리 보는것은 처음이군요. 소가주 제갈천이라 합니다.”

“곤륜파의 백연입니다.”

“암화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눈부신 무위를 자랑한다고. 일전 모위진과 팽악의 대련에서 그 실력의 편린을 보았는데, 소문이 거짓되지 않더군요.”


칭찬을 입에 담았으나 그 눈에 묘한 경계심이 어려있다는 것을 알아챈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어째서지. 그가 아직까지 제갈세가와 얽힐 일은 딱히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적어도 이번 생에는 그랬다.


의아한 심정을 품은채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엇을 들으셨는지 모르겠군요. 풍문은 과장되기 마련인데.”

“제가 보기에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허나 이런 말이나 나누러 온 것은 아니겠지요. 그대가 나를 보고자 했던 이유를 들어볼까요.”


곧바로 본론을 입에 담는다. 백연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뱉었다.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소가주가 그 행방을 알고 있을듯 해서 물어보고자 왔습니다. 혹 약선객(藥仙客) 제갈명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제갈천이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얼굴은 직전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살풋 경계하는 듯 하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옅은 경계심은 사라진 상태였다. 허나 그 눈에 서린것은 이전보다 몇배는 짙은 감정이었다.


“그대가 제갈명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제쳐두지요. 하지만.”


명백히 적대적인 음성이 깔렸다.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일어났다.


“그를 찾는 합당한 이유를 듣고 싶군요. 지금 당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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