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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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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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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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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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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2)

DUMMY

주변에 원이 그려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백연과 선아, 그리고 악예린을 둘러싸고 사람으로 이루어진 진(陣)이 생겼다. 딴에는 의식하지 않는 척 슬쩍슬쩍 바라보는 눈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백연은 쏟아지는 시선들을 일일이 인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그런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예린 소협께서 벌써 도착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흘간 자리를 비워야만 했던터라.”


소협이라는 말을 강조해 붙이자 악예린이 백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는 그녀는 일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 없었다.


‘아니, 조금 달라졌나.’


외양은 그대로였다. 허나 그녀의 기도는 미묘하게 바뀐 부분이 존재했다.


‘연환창식의 사십구식을 완성시킨다 했지.’


그것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창을 쥐는 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는데, 손가락에 힘을 배분하는 방식에서 일전과 바뀐 부분이 존재했다. 새로운 초식을 익힌 영향인지.


‘암천화광창(暗天火光槍)은 어찌 되었으려나 모르겠네.’


오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을터다. 백연은 그녀의 무공에 강한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검룡 유성의 무공도 배울점이 많았지만, 악예린은 또 달랐다. 창법은 흔히 접하기도 어려우며 동시에 검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무공을 엮어내기 때문이었다.


“많이 변했다 들었는데.”


악예린이 백연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실이었군요.”


눈높이가 달라졌다. 악예린의 감상이었다.


환골탈태로 변한 소년의 모습은 미리 언질받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할만도 했다. 용봉지회의 사건 이후 무공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소식은 커녕 가문의 문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지했던 그녀인데, 당소하를 미리 만나지 못했다면 크게 당황했을 듯 했다.


그러나 백연에게서 바뀐것은 겉모습 뿐만이 아니었다. 백청색 장포를 입고 선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 일전의 불꽃과 파도를 품고 있던 감각과도 또 달랐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기파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또 그 사이에 어떤 무공을 익혀낸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간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할 정도에요.”

“별일은 없었습니다.”

“환골탈태를 겪었는데 별일이 없었다라.”


악예린이 고개를 살풋 기울였다.


“백연은 별일의 기준이 상당히 높은가보네요.”


그녀의 말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마주 그린 악예린이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마찬가지입니다.”


백연이 악예린의 손을 맞잡았다. 이윽고 옆으로 시선을 돌린 악예린이 고개를 살풋 숙였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곤륜의 무인분. 악가의 악예린이라고 해요.”

“......곤륜파의 백선아라고 합니다.”


선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예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백연이 악예린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다른 이들은 만나보셨습니까?”

“네. 어제 오후에 도착했던 터라 인사는 마쳤어요. 사실 방금 전까지 모여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악예린이 말하며 인파의 한켠을 응시했다. 사람이 가득한 산문의 앞으로부터 좀 떨어진 안쪽이었는데, 가득한 인파 너머로 모여선 몇몇의 무인들이 눈에 띄었다. 짙은 녹빛 장포를 걸치고 바위 언저리에 걸터앉은 당소하와, 그의 앞에 서 있는 세명의 무인들.


그 중 한명은 백연도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비룡 모위진. 그한테 시비를 걸었던 칠룡의 일익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가 모르는 이들이었는데, 한 청년의 옷차림은 익숙했다. 검은 무복 위로 걸쳐입은 백색 장포. 허리춤에 걸린것은 솔잎이 새겨진 송문고검이다. 무당파의 후기지수였다.


반면 나머지 한 소녀는 출신을 알기 어려웠다. 노을이 막 사그라든 하늘마냥 검푸른 무복이 인상적이었는데, 소매가 짧아 손목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의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임을 자유로이 풀어놓는 것이다. 그 의복에서부터 지극히 실전을 추구한다는 것을 짐작할만 했다.


“백연도 소개시켜줄게요.”

“전부 칠룡입니까?”

“맞아요. 어떻게 알았나요?”

“소하가 저리 대할 사람이 별로 없잖습니까.”

“아......”


악예린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옅은 웃음을 흘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합당한 추론이었다.


독룡 당소하는 아무나와 쉬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 그 자신이 처해있는 위치와 상황 때문이겠지. 그런 이가 저리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인물이라 하면 몇 없는 것이다.


그 속에 비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추론을 확증시켜주었고.


그때였다.


문득 당소하가 시선을 옮겨 이쪽을 응시했다. 백연을 보고 살풋 미간을 찌푸린 그가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직후 걸음을 내딛은 그의 신형이 표홀히 흩어졌다.


“늦었군. 팽가 놈이랑 그리 열심히 돌아다닐 줄이야.”


화악!


바람결과 함께 당소하가 백연의 앞에 내려앉았다. 녹빛 장포가 보법 여파로 펄럭였다. 선아를 향해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그가 백연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팽악은 어디갔지?”

“팽가주를 보러 간것 같던데.”

“흐음. 일은 다 해결하고 왔나?”

“어느 정도는.”


나머지는 시일이 걸리는 문제들이니 그랬다.


그의 말에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악예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갑작스레 뛰쳐나간게 이놈 때문이었나.”

“당신이 변했다고 그리 이야기 하니 궁금하지 않을수가 있나요.”

“확실히 처음 봤을땐 나도 놀랐지.”


중얼거린 그가 한숨을 뱉었다. 사방을 훑듯이 둘러본 그가 미간을 좁혔다. 날카로운 눈매가 예리하게 주변의 인파를 노려보았다.


“사람이 많다. 불편하게.”

“확실히 많기는 하군요.”

“네놈 때문이잖나. 뇌룡.”


당소하가 혀를 가볍게 찼다.


“여기는 좀 벗어나고 싶군. 곤륜파의 전각에서 마시는 차가 맛있던데.”

“차? 차도 마셨어?”

“청율이라는 분이랑 인사를 나눴다. 다들 친절하더군. 여하간, 그곳으로 가는것도......”

“저는 좋아요!”


당소하의 말에 선아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악예린이 고개를 저었다.


“백연에게 칠룡을 소개시켜준다 했어요.”

“소개시켜줄게 또 뭐가 있나. 날 봤고, 검룡도 봤고, 너도 알고, 팽가놈이랑은 사흘 내내 운현에서 있다 왔는데.”

“나머지 분들도 있으니까요.”

“귀찮게.”


당소하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저편에서 세 사람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인파를 가르고 다가오는 무인들이 눈에 훅 들어왔다.


점창의 비룡, 그리고 그가 추측한 대로라면 무당파의 청운룡(靑雲龍)과 공동파의 현월검룡(玄月劍龍)일 것이다. 무당파의 무복을 입은 청년이 청운룡이고, 저 검푸른 무복의 소녀가 공동파 현월검룡이겠지.


이윽고 인파를 헤치고 그들의 앞에 다다른 남녀가 정중히 포권했다. 모위진만이 한발 물러서서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뇌룡이 갑자기 어딜갔나 했더니, 암화가 돌아왔었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무당파의 청년이었다. 백연과 비슷한 눈높이에 티없이 맑은 기도. 침착한 표정이 악예린을 남성으로 옮겨놓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싶었다. 흑갈색의 머리칼과 더불어 따스한 갈색빛을 띤 눈동자가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용봉지회때 따로 만나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무당파의 무영이라 합니다.”

“곤륜의 백연입니다.”


백연이 마주 인사하자 청년이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입을 연것은 곁에 서 있던 소녀였다.


“만나서 반가워 암화. 나는 공동파의 연화라고 해. 현월검룡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지.”


말하면서 고개를 살풋 기울인다. 붉은 기운이 많이 도는 적갈색 머리칼이 도드라졌는데, 한쪽 눈을 가리고 흘러내리는 것이 눈에 띄는 외양이다.


그녀를 보며 선아는 볼을 부풀렸다.


악예린에 가려 그 빛이 약간 바랬지만, 뭇 호사가들의 입에서 미모가 뛰어나다 평이 나올만한 외양이었다. 어째서 무인들은 이리 선남선녀가 많은지.


그러나 선아가 백연을 힐끗 보자 그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평소같은 태도로 연화와 무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표정이나, 선아는 그게 백연이 피곤하고 관심이 없을때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연이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야.’


생각하던 선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이 맞나?’


한숨을 삼킨 선아가 백연에게 다가갔다. 이름있는 후기지수들이 친목을 나누는 자리. 그 안에 백연이 끼어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나, 그녀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나는 먼저 들어가 있을게. 철야방 일은 허계광 무인께 말을 전하면 되는거지?”

“네가 하려고?”

“응. 악 소저도 오랜만에 보는거라며. 이야기도 좀 나누다 와.”

“나도 피곤......”

“간다? 저녁 먹기 전에는 와. 장문인께서도 기다리실거야.”


백연의 말을 끊은 선아가 생긋 미소지었다. 그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았어. 안늦게 갈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악예린과 당소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선아가 뒤돌아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 당소하가 백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흐음. 재밌군.”

“뭐가?”

“네놈은 눈치가......아니다.”


당소하가 혀를 찼다. 그 사이 모위진이 천천히 다가와 백연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암화.”

“비룡.”

“도룡과 대련때 벌어진 일을 해결하러 갔다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습니까?”

“해결했습니다.”

“대체 누가......”

“자세한건 팽악에게 물어보시지요.”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다지 모위진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애시당초 대외적으론 팽악이 이번 사건에 제일 적극적으로 나섰으니까.


모위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른 칠룡들은 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악예린은 언제나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고, 당소하는 심드렁하게 서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중이었다.


반면 청운룡 무영과 현월검룡 연화는 그를 호기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영은 조금 침착한 눈이었지만, 연화는 그도 알아챌 수 있을만큼 또렷한 눈길이었다.


“다들 여기 계속 서 있을 셈인가? 사람이 몰려들잖나.”


이윽고 당소하가 퉁명스레 말했다.


“자리를 좀 피하지.”

“어디로?”

“아무데나. 애시당초 그다지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도 아니었는데, 이만 각자 흩어지는 것도......”

“잠깐만, 당소하.”


그의 앞에 나선것은 연화였다. 그녀가 백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난 궁금한게 있어. 암화의 무위에 대한 소문을 여러번 들었거든. 금안나찰을 격살했고 풍문에 따르면 여러 공적을 세웠던데. 전부 진실이야?”


눈에 기묘한 열기가 깃들어 있다. 백연은 그 속에서 호승심을 읽었다. 그의 이름이 한번에 드높이 오른 탓일까.


“여러 공적이 어디까지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안나찰 격살은 진실입니다. 다만 검룡과 함께 이뤄낸 성과이니 오롯이 제 공이라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요.”

“그 자존심 강한 머저리가 스스로 너보다 더 약하다고 했던데. 그건?”

“팽악을 말하는겁니까?”


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당소하가 끼어들었다.


“맞다. 내가 들었어. 저기 모위진도 들었을거고.”

“......사실입니다.”


모위진까지 동의하자 연화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믿기 어렵다는 듯이.


이윽고 그녀가 백연을 가늠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암화. 지금 시간 있어?”

“예? 시간이라면......”

“한판 붙자.”


대뜸 튀어나온 말에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호승심이 강한 사람으로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들이박을 줄이야.


평소였다면 맞상대를 해줄만도 했지만, 당장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몸이 꽤나 지쳐있었는데 그것이 전부 회복되지 못했다. 눈앞의 소녀는 칠룡의 일각. 손대중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때문에 정중히 거절의 말을 꺼내려던 그때였다.


“어이, 이놈은 선약이 있다. 줄서라.”


터억.


커다란 손이 백연의 머리를 덮듯이 짓눌렀다. 묵직한 무게감에 백연이 고개를 비틀어 빠져나왔다. 어느새 그의 옆에 나타난 팽악이 연화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아직 나와 약속한 대련도 못했는데.”

“선약? 대련에 무슨 선약이 있어?”


연화가 황당한 듯 외쳤지만 팽악은 코웃음으로 흘려넘겼다.


“불만이면 나흘 전에 왔어야지.”

“그럼 네가 먼저하고 내가 하면 되겠네. 자, 대련하자.”

“싫다. 지쳤어.”


팽악의 말에 연화가 입을 벌렸다 닫았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러나 팽악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백연을 힐끗 내려다보는 모습.


“백선아는?”

“무당파에 말을 전하러 갔습니다. 근데 당신은 생각보다 엄청 빨리 돌아왔군요.”

“도망쳐나왔다. 가주가 바빠서.”


흘려넘기는 태도가 가벼웠다. 그러나 백연은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배려해주는건가? 이자가?’


지금 그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선아와 팽악 둘뿐이었다. 되도않는 핑계로 연화의 대련 신청을 막아주는 것이 묘했다.


어쩌면 그냥 말한 그대로 자신의 선약을 지키고 싶었을수도 있지만.


그렇게 백연이 고민에 빠진 사이 팽악과 연화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두 무인의 사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암화랑 네놈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내 대련 신청을 막아?”

“예법의 문제다. 도문 제자라는 놈이 다짜고짜 초면의 상대에게 들이박는군.”

“뭐? 다른놈이면 몰라도 네놈이 그딴 소리를 해? 어처구니가......”

“현월. 혓바닥이 길어.”


팽악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위압적인 그림자가 소녀의 앞에 드리웠다.


“불만이면 검을 뽑아라. 오랜만에 한판 붙을까.”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네. 비룡하고 이미 한판 했다지? 내가 그 정도로 보이나봐?”

“비슷하지. 전에도 말했지만 칠룡의 서열 정리가 한번 필요하겠어. 안그래?”


후욱.


바람이 일어났다. 자연적이지 않았다. 두 무인이 끌어올린 진기 파동이 맞부딪혀 일어난 바람. 주변을 가벼이 휩쓸고 지나가는 기세가 강렬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인들이 반사적으로 한걸음 물러설 만큼.


그러나 다른 칠룡들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외려 당소하마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용봉지회에서 승부를 아무도 못 겨뤘지.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그 말에 동의하듯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겨뤄본게 좀 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기억하기로도 그렇다.”

“제가 검룡에게 패배한 날이었던가요. 나름의 추억이네요.”


담담히 말하는 악예린마저 팽악과 연화를 말리지 않는다. 보아하니 그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일인 듯 했다.


“야, 도 뽑아. 연무장 어디야?”

“비무제전에 참가도 못하게 만들면 공동파 사람들이 좋아죽겠군. 가자.”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도검을 뽑아 맞붙을 것 같이 기세를 내뿜던 연화와 팽악 사이.


백연은 문득 흐릿한 기파를 느꼈다.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의 물기가 묻어있는 기파. 운무(雲霧)처럼 부드럽고 옅은 기운이 찰나지간 허공을 물들이고.


“그만들 하거라.”


음성이 울렸다. 허공에서 한 인영이 두 사람의 가운데로 뚝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였다. 자연스레 양손을 뻗어 내치는데, 손바닥에 맺혀 회전하는 기운이 익숙했다.


파악!


공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연화와 팽악이 옅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한발짝씩 물러났다. 허공을 채우고 있던 두 무인의 기파가 산산조각나 흩어지는 것이 순식간이었다.


“연무장이 아닌 경내에서 이리 함부로 기파를 내뿜다니.”


무당파의 무복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수염과 굵은 눈썹, 완고한 눈매. 백연이 그 얼굴을 알아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영. 너는 말리지 않고 무엇하는게냐.”

“죄송합니다. 사숙조.”


무당파 일대제자 능운검절. 곤륜파에 비무제전의 소식을 전하러 왔던 안하무인의 고수가 칠룡의 사이에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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