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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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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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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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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천살문(2)

DUMMY

※※※



천살문 대주의 암습.


천하일절의 일격이다. 어중간한 무인들은 방어는 커녕 인지하기 이전에 죽는다.


아무리 즉살(卽殺)이 아닌 제압을 노렸고, 이미 그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해도 그렇다. 본래의 칠룡이라면 이리 깔끔하게는 막을 수 없다 보는게 옳았다.


더 강해졌다. 몇달 사이에 뇌룡의 무위가 후기지수를 벗어나 더욱 올랐다는 말. 벽오대주(劈烏隊主)는 생각했다. 이 사실을 즉각 천살문의 정보부에 알려야겠다고.


“그리 생각한다고 달라질건 없을텐데.”


한편 눈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는 이 소년은 더욱 기괴했다. 마치 가면을 쓴것처럼 한순간에 무표정하게 침잠한 얼굴은 살문의 살수보다도 감정을 읽기 어려웠고, 형형하게 빛나는 자색 눈동자는 지독한 귀(鬼)의 것이었다.


그 속에 가라앉은 살의(殺意).


벽오대주 본인이 살수였기에 더욱 잘 알았다. 사람을 죽이고 죽이다 보면, 언제고 살인이 더 이상 살인처럼 느껴지지 않을때가 온다. 사람의 목을 베는것과 길가의 풀을 베는게 다르지 않은 상태.


살문에서는 은어로 추수꾼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볏단을 베는 것처럼 사람의 목을 수확한다고.


때문에, 저것은 살의가 없는 눈이 아니었다. 다만 너무 무심하게 벼려지고 정제된 살의가 그 이상에 이르렀을 뿐.


순간.


노인은 공포를 느꼈다.


“표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리는 없을테고. 당신을 여기서 죽이면 일이 시끄러워지는데, 피차 그것을 원하지는 않지 않나.”

“본문에, 온 이유는?”

“모르고 있나? 그렇다면 더욱 당신과 이야기 할일이 아니다. 안내해라.”


벽오대주는 찰나 눈을 빠르게 굴렸다. 사방에 깔린 천살문 살수들이 이곳을 둘러싸고 암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겹겹이 둘러쳐진 이들의 수는 수십에 달한다. 이 마을의 절반은 천살문의 사람들이었으니.


하지만.


“......물러서라.”


벽오대주는 짤막하게 내뱉었고, 그 즉시 시간이 멈춘듯 얼어붙었던 사람들이 백연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다시금 세상이 원래 풍경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고, 이 자리에서 백연과 벽오대주가 이야기 하는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한 광경.


그에 손아귀에 단창 두자루를 쥐고 빙그르르 돌리던 뇌룡이 자세를 바로하며 중얼거린다.


“여기서 그걸 다시보나 했는데, 아니군요.”

“만천 말입니까?”

“비무제전때 워낙 인상적이었어야 말이죠.”

“이런곳에서 함부로 쓰다가는 무림공적 됩니다. 약속도 했는데......”

“백연이 그런것도 신경썼어요?”


태연히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벽오대주가 마른 기침을 삼켰다.


당가 만천. 암화가 그것을 다룰 줄 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낱 소문으로 치부했건만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무림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력난신이다.


그가 살수들을 물린 이유였다. 직감이 미친듯이 경고를 날리고 있는 까닭에. 그 직감이 정확했던 모양이었다.


암습이 아닌 이런 자리에서는 사람을 수십이 아니라 수백을 쏟아부어도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가 않았다.


“......안내해드리겠소. 따라오시오.”


숨을 가다듬은 벽오대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리고, 백연은 악예린을 힐끗 쳐다보았다.


“일이 잘 풀려 다행이군요.”

“잘 풀린거 맞아요? 그냥 무모하게 쳐들어와서 겁박한거 같은데. 이러면 보통 분쟁이......”

“사도 무림은 철저히 힘과 실리로 움직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은 듯 보여서.”


백연이 답했다.


“보아하니 팔대주도 상황을 모르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소식이 아래서부터 위로 전달되려면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장 문주나 부문주를 만나야 했다. 백연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대주를 찾은 이유였다.


“가급적이면 빠르게 해결하고 떠나고 싶군요. 기련산까지 거리도 한참이라.”


백연이 중얼거렸다. 비틀린 비도를 품에 넣으면서였다.


“대체 무슨 일인건지......”


혈교의 근거지 기련산. 신강에서 보았던 혈교의 술법 이후 그들의 동태를 확인하겠다 움직인 화율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리고자 하며, 무엇 때문에 직접 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


‘죽지는 않았겠지.’


불안한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치워둔 소년이 걸음을 옮겼다. 거침없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벽오대주를 따라서였다.



※※※



백연은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첫 소감은 하나였다.


‘평범하다.’


이제는 항시 자색으로 물든 소년의 눈에도 비치는 것이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얼굴은 물론이고, 육신과 흐르는 기도조차 일반 민초의 그것이다. 온통 평범이라는 글자를 몸에 써 붙인것만 같은 사내.


의자에 걸터앉아 손을 매만지는 행동까지도 그러했다. 고강한 무림인을 앞에 둔 민초들이 긴장해 손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앞의 사내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딱 하나였다.


눈빛.


사내의 눈에는 두려움은 커녕 어떤 형태의 동요도 없었다. 차가운 거울처럼 한없이 무감한 형태로 그를 쳐다보는 시선.


그것이 이 사내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천살문 부문주를 맡고 있는 몸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점은 양해해주신다면 좋겠군요.”

“상관없습니다. 부문주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월풍(月風)이라 부르시지요.”

“이름을 밝히지 못하신다면서?”

“오늘 하루 쓰고 말 이름입니다.”


백연은 입매를 비틀었다.


‘구분이 안됐는데.’


방금 월풍이라 뱉는 순간의 호흡에 아무런 망설임도 떨림도 없었다. 자신의 이름마냥 턱 내뱉었는데 그것이 찰나에 지어낸 이름인 것인가.


뛰어난 살수다.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다음번에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누구인지 못 알아볼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눈앞의 저 평범한 얼굴조차 진짜 얼굴인지 알기는 어려운 것이니.


“참월의 표식이군요.”


책상 위에 놓여진 비틀린 비도를 만지작거린 월풍이 중얼거렸다. 생전 처음보는 날붙이인듯 관찰하는 모습이 기묘했다. 백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신강에서 받은 것이지요.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팔대주의 행동은 제각기의 권한입니다. 모든 행동에 일일이 보고를 올릴 필요는 없지요.”

“그렇습니까?”

“당시 참월이 받은 의뢰는 두 사람의 목을 가져오는 것이었고, 그것에 성공했습니다. 그것을 끝이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내의 날카로운 시선이 백연을 응시했다.


“이것을 당신이 받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랍군요.”


백연은 가만히 부문주를 쳐다보았다. 저리 말하는 것은 비도의 가치가 그만한 까닭이다. 천살문은 살문 중 천하제일이라 불릴만한 이들. 이곳의 부문주나 문주를 바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대주가 가진 가장 큰 권한중 하나다. 그것을 타인에게 선사한다는 점 만으로도 비도의 가치를 짐작할만 했다.


때문에 이리 곧바로 백연을 만나러 나온 것이겠지.


이곳까지 안내해준 벽오대주도 비도가 아니었다면 아마 전투에 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백연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대주를 찾아 비도를 사용한 이유기도 했다. 누구와 대화하고 기다리고 할 시간이 없는 탓에.


“그게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을테니 곧바로 묻겠습니다. 천살문에서 하오문에게 보낸 정보. 그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상황이 무엇입니까.”


백연이 물었다.


“혈귀궁에 천살문 대주중 하나가 잠입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맞습니다.”


월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측에서 모종의 이유로 혈귀궁에 대주를 잠입시켰는데, 그곳에서 화율이라는 비구니를 만났습니다.”

“모종의 이유란......”

“그건 설명드리기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화율이라는 사람이 전한 말은 전부 하오문에 전했습니다.”

“......”


백연이 월풍을 응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그것이 저를 부른 것입니까?”

“예. 정확히 곤륜파의 암화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가 있으니 기련산으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 뒤의 소식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월풍이 답했다.


“딱 한번의 연락 이후로 모든 소식이 끊겼습니다.”

“당신들의 대주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한번의 기회를 소모해 전달한 소식입니다. 따라서 완전히 갇혀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보는게 옳겠지요.”


한번의 기회.


저들이 언급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혈교주의 무공을 뚫고 소식을 전달했으니.


하지만.


‘그렇게 전달한 소식이 나를 부른 것이라고?’


그게 문제였다. 한번밖에 없는 기회를 굳이 백연 자신을 기련산으로 부르는 것에 소모했댜. 한순간 소년의 머릿속에는 두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그곳에서 그들이 목도한 것이 그만큼 백연과 연관된 중요한 일이거나 아니면.


‘함정?’


미미한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곧 백연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백연 자신이 뭐라고.


굳이 함정을 파야 했다면 다른 이를 불러들였을 일이다. 정도 무림의 거산들이 몇명이거늘.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만, 그 대주가 자의가 아니게 기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월풍의 말까지 들으니 더 확실했다. 함정의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그만큼 반대급부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


잠시 고민하던 백연이 되물었다.


“그 대주가 누구입니까?”

“참월입니다.”


툭 튀어나오는 대답. 익숙한 울림에 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필 참월인가.


다시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다. 처음 참월이 신강에 온것도 그렇고, 혈교와 관련된 일에 애초부터 그를 개입시키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는 말은 역시 천살문도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걸 캐내긴 어렵겠지.’


이들은 꼭 전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정보만 전달한다. 살문이니만큼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아는 탓이다. 화율이 정확히 그를 지목해 보낸 내용만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함구했겠지. 그마저도 전체가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백연은 고민하듯 책상을 톡톡 두들겼고, 이내 입을 열었다.


“기련산의 소식.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닌걸 압니다.”

“......”

“허나 그걸 다 이야기 해줄리는 없겠지요. 때문에 하나를 확인하고 싶은데.”

“말해보십시오.”

“이 비도, 본래라면 천살문에 의뢰가 가능케 만드는 물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서와 절차를 무시하고.”


그의 말에 사내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주의 권한이니.”

“허면 의뢰 하나를 하고 싶습니다. 되겠습니까?”

“들어보고 판단하지요. 저희도 모든 의뢰를 전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니.”

“기련산으로 가는길. 월풍 당신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의뢰 내용은 기련산에서 화율과 참월의 구출, 또는 두 사람의 생사여부를 확실히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기련산에서 발견한 내용에 대한 확인까지.”


사내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간다. 그가 백연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답했다.


“살문은 임무에 나선 살수를 구출하지 않습니다. 아실텐데요.”

“그래서 제 의뢰입니다.”

“......지독히 위험한 의뢰군요. 저희가 받아들일 이유가 있습니까? 당신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주의 일은 들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백연이 사내를 보며 말했다. 동시에 여태껏 평범한 민초의 얼굴을 하고 있던 월풍의 얼굴에 처음으로 이채가 돌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듯이.


“수라궁주를 벤 검(劍). 한번 당신들의 의뢰에 빌려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잠시 적막이 감돌고.


“하......하핫.”


처음으로 월풍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무감하던 시선에 새겨진 것은 짙은 즐거움이었다.


“오만하고 대담하군요. 무슨 일을 시킬줄 알고?”

“받을지 아닌지만 말씀하시지요.”

“......좋습니다. 단.”


미소를 지은 월풍이 덧붙였다.


“단지 구출 임무로 받기에는 조금 큰 대가인 듯 하군요. 특히 이 표식까지 사용했으니 그에 맞는 값을 하나 더 치르겠습니다.”

“값을......?”

“과거 당신에게 걸린 살행 의뢰가 한번 있었습니다. 그 의뢰를 내건 사람은 만금장의 괴물 중 하나. 결백(潔白)이라는 인물입니다.”


작가의말

지각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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