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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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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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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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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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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

DUMMY

유백연은 고민에 잠겼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이 좀 더 쉬라며 방을 나간 뒤였다.


“몰살이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드넓은 중원 무림에서 분쟁과 다툼은 늘상 있어왔고, 가문 한둘이 몰살 당하는 일은 흔하지는 않아도 있을법한 일이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핏줄이건만.


‘그렇다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장은.

지금의 그는 검 한자루로 마도를 휩쓸고 다니던 검귀가 아니었다.

고개를 저어 불편한 기분을 애써 털어버린 유백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우선은 이것이 먼저였다.


“어디, 어떤 몸인지 볼까.”


몸은 사람마다 다르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같은 무공 구결을 익혀도 사람마다 피워낼 수 있는 공능이 달라진다.

간단한 이치이나, 그 스스로의 몸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원의 대방파가 강맹한 이유였다.

사제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서 고강한 무인들이 배움 받는 이의 신체를 미리 보고 가르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으니.


전생의 검귀는 그 사실을 몰랐다.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깨달아 아쉬워한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법은 없었다.

오늘에 이르기 전까지는.


“후.”


눈을 감은 유백연이 짧게 날숨을 뱉는 순간 방안의 대기가 삽시간에 차분해졌다.

동시에 그의 정신이 수면 아래로 침잠했다.


‘경혈, 세맥, 근골.’


미약한 자연지기를 잡아채 전신 근맥을 훑는다.

운기를 하기 위해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랐다.

또다른 눈으로 스스로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을 마친 유백연이 다시 눈을 뜨려는 순간이었다.


‘음?’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한 기파라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해서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기운.

인식한 순간에도 그 아득한 존재감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니, 아득하단 말로도 부족했다. 홀로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떨어진 듯한 느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눈을 뜬 유백연이 호흡을 들이켰다.


“대체 저게 뭐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백연이 문을 열어젖혔다.

낡은 가옥의 마루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손질하던 노인이 깜짝 놀라 그를 돌아봤다.


“무슨 일인가?”

“어르신, 저쪽 방향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노인이 유백연이 가리킨 방향을 보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에는 아무것도 없네만.”

“아무것도 없다 함은.”

“말 그대로네. 저편에 있는것은 산맥뿐일세. 혹 그 너머에 있는 신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유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가 느낀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자각하고 나자 지금 이 순간조차도 살갗을 지그시 내리누르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거늘.


“하긴, 곤륜에는 기이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 아무것도 없지는 않겠군.”


그때 노인의 중얼거림이 유백연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곤륜?”


귀에 익은 이름에 유백연이 되물었다.


“그럼 이곳은 어디입니까?”

“음? 그러고 보니 내 자네가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구먼.”


노인이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곳은 청해의 곤륜산, 그 바로 밑이라네.”



※※※



“떠나는겐가?”


늦은 오후였다.

깨어난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각.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걸어나온 유백연의 모습에 노인이 물어왔다.


“예.”

“갈 곳은 정해졌고?”


유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몸을 일으켰다.


“알겠네. 그럼 잠시만 기다리게나.”


이윽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온 노인이 유백연에게 건넨 것은 뜻밖의 물건이었다.

흑단목으로 이루어진 검집과, 그 안에 꽂혀있는 한 자루의 검.


검을 건네받은 유백연이 의아한 눈길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무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자네 걸세. 자네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같이 있었으니.”


유백연은 말없이 검을 쥐고 반쯤 뽑아내었다.


자루가 낡은 검이었다.

검의 주인이 수없이 검을 쥐고 휘둘렀다는 흔적.

그럼에도 뽑혀나온 검신은 닳은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좋은 검이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검을 집어넣은 유백연이 노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에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인사는 됐네. 잔재주를 익혔으니 써먹었을 뿐인게지.”

“다시 뵙게 되면 꼭 사례하지요.”


허허 웃은 노인이 수염을 쓸었다.


“그럼 가기 전에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다시 만나면, 자네를 뭐라고 불러야 하겠나?”


유백연은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어찌 된 조화인지 알 수 없지만 검귀 유백연은 분명 죽었다.

그리고 다른 소년의 몸에서 다시 살아났다.

새로 얻은 삶에서 전의 이름을 다시 쓰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에 빠진 유백연은 습관처럼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손끝에 느껴지는 독특한 감촉을 알아챘다. 자루의 아랫부분이었다.

검을 들어올려 살피자 자루 밑동에 희미하게 음각된 자국이 보였다.

오랜 시간동안 손때를 타 문대어져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이름이었다.


“......백연(百緣).”

“음?”

“백연이라고 불러주시지요.”


노인이 미소지었다.


“좋은 이름이로군.”



※※※



곤륜이라 했다.

당연히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강호 무림에 몸담고 있는 이라면 응당 알아야 할 검문, 곤륜파가 자리한 영산.


‘중원의 대방파 중 하나.’


신교와 자주 충돌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신강에 자리잡은 마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정파 세력인 탓이었다.


백연도 전생에 그들과 몇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몇번은 적으로, 몇번은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동맹으로, 그리고 한명은 동료로.


‘청휘.’


속으로 이름을 중얼거린 백연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쳐들었다.

바위에 걸터앉은 그의 앞으로 끝을 알 수 없이 까마득한 산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봉우리는 어둠과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중원의 벽이라 불리는 곤륜다웠다.


“곤륜산 바로 밑이라더니 밑은 개뿔.”


산맥을 올려다보던 백연이 표정을 구겼다.

노인의 말에 무작정 곤륜산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었건만, 도무지 거대한 산맥이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해가 아직 하늘에 걸려 있을때 내딛은 걸음은 달이 중천에 떠오르고 나서야 멈춰설 수 있었다.


“다리 아파 죽겠네.”


백연이 투덜거렸다.

아직 어린 그의 몸은 긴 걸음에 익숙치 않았다.

내공 한줌도 없는 몸이니 더욱 그러했다.

몸 내부를 살폈을때 본 바로는, 근골이 단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어디까지나 어린 소년의 그것일 뿐이었다.


“내공도 없이 저 무식한 산맥을 오르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백연은 당장 심법을 익힐 생각은 없었다.

새로이 살아났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생각한 것이 있었다.

본디 검귀의 무학은 잡다한 무공들 위에 쌓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잣거리 떠돌이였던 그가 배울 수 있는 무공은 한정되어 있었다.

삼재(三才), 육합(六合), 그리고 온갖 잡다한 무공들.

오직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창안된 삼류 인생의 검법들.

그러한 무공들을 익히고, 분해하고, 또 엮어내면서 탄생한 것이 검귀였다.


그가 호사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들은 절대자들의 검을 상상하며 재현하려 노력했다 하나, 근본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한계는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르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대방파의 무공을 익힌다.’


정종 무학의 깊이는 오랜 세월이 쌓아온 것이었다.

그 근본을 한번만이라도 배운다면 자신만의 검을 완성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리가 없었다.


검귀의 이름을 버리기로 했으니, 그 무학 또한 변할 것이다.

그것이 곤륜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곳으로 향하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또한 그가 느꼈던 거대한 기운.


‘가까이 와서 보니 더욱 확실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곤륜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자연지기였다.

영산이 지닌 자연지기가 극히 강대해 대방파들은 주로 산에 자리를 잡는단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 정도였을 줄이야.

오히려 자연지기가 지나치게 강해 함부로 심법을 운용했다가는 기운에 잡아먹히기 딱 좋아 보였다.


“좋아. 그런데......”


백연이 눈앞의 산을 올려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어떻게 올라간담?”


허공에 던진 물음에 돌아오는 것은 풀벌레 소리 뿐이었다.

대답해줄 이가 있을리 없었다.

사실, 속으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걷자. 해 뜨기 전까진 올라갈 수 있겠지.”


아직도 욱신거리는 다리를 툭툭 두들긴 백연이 바위에서 일어났다.


“곤륜파를 찾는건 그 다음 문제니까.”


심지어 그는 곤륜파의 정확한 위치도 알지 못했다.

그저 곤륜산의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일단 올라가서 찾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사실, 백연은 그리 계획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되는대로 움직이며 살아갔을 뿐.

다만 검귀는 그렇게 해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강했고, 백연은 아니었다.


그래서 백연은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곤륜산의 위를 향해.


“......두번 죽겠다 진짜.”



※※※



“끄으으으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끌어올린 백연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숨을 들이킬때마다 목구멍에선 비릿한 맛이 올라왔다.


“이거, 신교랑, 싸울때보다, 더한데?”


말 한마디마다 숨을 거칠게 들이쉰 백연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서서히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적이었다.

이 몸뚱아리로 그 절벽을 올라온 것은.


“진짜, 진짜로 두번 뒈질뻔 했다......”


힘없이 중얼거린 백연이 비척이며 일어나 앉았다.

그의 눈앞으론 방금 그가 기어올라온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곤륜의 산세는 험했다. 험하다 못해 악랄했다.

자연의 악의가 존재한다면 이런 곳일까.


“내가 무공을 익히기 전까지 다시 여길 내려가면 사람이 아니다.”


피투성이가 된 손을 대충 문질러 닦은 백연이 절벽 아래로 침을 퉤 뱉곤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려 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대강 이 근처일 듯 싶은데.’


산을 오르는 동안 이곳저곳에 남겨진 인위적인 흔적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살만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으니, 필히 곤륜의 도사들이 남긴 흔적일터.

그것들이 하필 이 절벽 위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어찌 되었던 살아서 올라왔으니 괜찮을 일이었다.


“이쪽인가.”


산등성이를 따라 풀이 자라지 않은 길을 발견한 백연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은 어느새 손에 들려 지팡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게와 길이가 적당한 것이 딱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하아, 하.”


해가 머리 위에 떠오를 무렵, 마침내 걸음이 멈춰섰다.


“......찾았다.”


미약한 흔적을 따라 오르내리길 수십번이었다.

마침내 시야 저편에 보이기 시작한 전각들을 보며 백연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찾았다!”


헌데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일까, 순간 시야가 핑글 돌았다.

삽시간에 어두워지는 시야에 백연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망할 몸뚱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목소리.


“이리 어린 아이가 어찌 이곳까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백연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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