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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談 salon

오늘도 당신의 세계는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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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M
작품등록일 :
2015.03.19 21:28
최근연재일 :
2015.04.14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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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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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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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세계 종말 D-99 (5)

DUMMY

05.


두 사내 사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기(氣)가 내뿜는 아우라였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 무리 없이 섞이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부딪칠세라 날을 세우는. 소리내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챙캉거리는 날카로운 쇳음이 끊임없이 서로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무영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사내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눈치챘다. 자신과 마주섰을 때 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아우라의 소유자였다. 무영은 조금 더, 집요한 시선으로 사내를 훑었다. 그의 구미를 당기는 상대를 만난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우혁군.”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듯한 인사가 서로 오갔다. 예의에 치중한 안부 인사는 지나치게 정갈했다. 틈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정중한 새로 두 사내의 눈빛이 서로를 탐색하듯 오갔다.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두 사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유명 인사들의 첫 만남이란 으레 그러하듯 적당한 예의로 포장되는 법이었다. 서로 가진 칼을 깊숙한 곳에 숨긴 채 무영과 우혁, 둘 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은 채로 서로의 눈을 주시했다.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거다. 암묵적인 룰이 생성됐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늘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아, 회의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응급실은…항상 바빠서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우혁을 바라보며 무영은 그제야 그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구김살은 커녕 소독약 얼룩 하나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흰 가운. 의사였나? 정확히는 의사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정확했다.


태인이 연예인을 자처했듯 우혁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많은 뱀파이어들과 마법사들이 각자의 실체를 숨긴 채 다른 직업과, 이름으로 인간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인간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였군요.”

“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혁은 말끝을 흐리며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우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 간신히 피가 멎은 우주가 언제 그런 참사가 있었냐는 듯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색색 거리는 소녀의 숨이 병실 안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얼마나 평화로웠느냐 하면, 감히 그 잠을 깨우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무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악의 상황만은 모면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뭔가가 그의 맘에 돌부리처럼 걸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흠, 쉽게 말해 ‘개안(開眼)’ 된 겁니다. 각성 같은 거죠.”

“개안?”


무영은 되물었다. 개안이라. 흔히들 영적 능력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귀신을 본다던가 하는. 물론 그런 것들은 대부분 영혼이 형상화 된 것이나 누군가에 의해 소환 된 령(令)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눈을 뜨게 되면 저 소녀는 재밌는 것들을 보게 될 겁니다. 보통 인간이라면 절대 못 볼 것들을 보게 되겠죠. 쉽게 말해 뱀파이어나 마법사의 혼현, 그리고 인어나 수인족의 혼혈들을 보게 될 겁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죠.”


우혁의 설명에 심각한 표정이 된 무영이 가만히 소녀를 내려다봤다. 추측하기로, 소녀는 현재로선 가장 ‘천사의 아이’ 에 가까운 아이. 즉, 신이 직접 빚어 만든 아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그의 반려인 하와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늘 격동과 함께 뒤흔들리던 인간사를 보다 못해 신이 직접 만들어 낸 피조물.


신은 저가 만든 인간들에게 거듭되는 실망을 느꼈고 때로는 벌을 내렸으며 아주 간혹 기적을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신을 충족치 못했다. 그리하여 신은 제 맘에 꼭 들만한 새로운 아이를 만들어냈다. 신의 정수, 그 영혼 한 조각, 한 조각까지 심혈을 기울여 빚었다.


신은 제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이에게 저를 대신해 천 년에 한 번씩. ‘인류 종말’ 의 심판권을 넘겼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과 계산을 반복하던 흐름이 뚝 끊겼다. 멀티태스킹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무영의 뇌는 각각 방이 있어, 각각의 생각들을 따로 분류해 놓을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참 움직이던 뇌의 공장들이 일순간에 멈추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무영은 기계 같은 탁한 회색 눈동자로 우혁을 바라봤다. 날카로운 첫 인상 그대로, 우혁은 필요한 말만, 핵심적으로 골라 했다.


“정말 문제는 그들의 눈에도, 저 소녀가 보일 거라는 점입니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법사나 뱀파이어들의 눈에도 이제 저 소녀가 눈에 띌 거란 소립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그야말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져 있겠죠.”

“……….”

“소녀는 멸망을 바라는 자들의 ‘표적’ 이 될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무영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눈이 열렸다. 천사의 아이는 곧 신의 아이. 신이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종족을 구분해내는 것은 당연했다. 심판의 날이 오면, 선한 종족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고, 악한 종족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세계 종말의 전형적인 순서였다. 그 옛날 노아의 방주가 그랬던 것처럼 오로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대 재앙 속에서 살아남을 것은 내정된 결과였다. 천사의 아이는 신의 대행자로서 그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다.


원래대로라면 천사의 아이는 결코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종말의 날이 올 때까지,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가 그날이 오면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것이 절차였다. 적어도 1,000년 전에는 분명 그랬다. 무영은 떠오르는 옛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었다.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됐다.



“누군가, 저 소녀를 ‘억지로’ 깨운 겁니다.”



억지로. 강제로. 그리고 ‘의도’ 적으로. 너무 일찍 깨어나 버린 천사의 아이가 이제 적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들의 눈에 소녀는 빨간 페인트로 X자를 발라놓은 목표물 같을 것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어도 떡 하니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운이 나쁘면 냄새를 뿌리고 다닐 가능성도 있었다. 천사의 아이는 종말의 날이 오기 전 까진 어떻게든 살아있어야만 했다. 그 전에 아이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세계는 신의 저주를 모면치 못하리라.


“억지로, 천사의 아이를 ‘각성’ 시켜. 종말을 앞당기려는 소행이겠죠.”

“…….”

“세계에 어지간히도 악심이 있는 모양입니다.”

“눈을 뜨고 나서부터는 바로, 시작되는 겁니까?”

“네. 지금은 제 봉인이 걸려 있어 안전합니다만….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겁니다. 아이가 가진 영력은 저랑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강하니까요. 그나마 잠들어 있으니까 망정이지 깨어 있었더라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봉인을 뚫고 힘이 뿜어져 나왔을 걸요.”


우혁은 딱딱한 얼굴로 소녀를 내려 보다가 다시 무영과 시선을 맞추었다. 일이 수틀렸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무영의 얼굴은 빠른 속도로 굳었지만 특별히 다르거나 모난 구석은 없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피곤해 보였으므로 늘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속 알맹이만큼은 평탄할 수 없었다. 천사의 아이, 개안, 축명여단…. 온갖 단어들이 각각의 방에서 꺼내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떻게 상대편이 그녀에게 접근했는지, 현재로선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각성했어요. 이거만큼은 확실합니다.”

“하와가 그러더군요. ‘축명여단’ 의 소행인 것 같다고.”

“아…….”


탄성 같은 소리는 비음으로 꿀꺽 삼켜졌다. 축명여단은 여러모로 금기의 단어였다. 최소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그 이름을 올리는 것을 삼감 것이다. 무영의 앞에서라면 더더욱. 무영은 입 안이 깔깔했다. 왜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지도 않고선 여태 뇌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 밤은 살육의 밤이었다. 만월이 차올랐던 그날 밤. 무영의 손에 의해 죽어나간 마법사들만 해도 반 백명이 훨씬 웃돌았다.


“일단 아이를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요?”


되묻는 우혁의 목소리엔 마뜩찮은 불만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소녀는 절대안정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무영은 막무가내였다. 무영은 소녀를 안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를 막은 것은 물론 우혁이었다. 하얀 손이 무영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쥐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한 시간 급한 일입니다.”

“이제 막 잠들었어요. 각성하는 과정 중에 전신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체내에 혈액 중 30% 이상이 손실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인간은, 피가 모자라면 죽습니다.”


당신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혁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소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무영은 그제야 고분고분 움직임을 멈췄다. 아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세요.”

“그렇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미 천사의 아이는 적에게 노출 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환자를 어디로 옮긴단 말입니까?”


무영과 우혁의 경계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동안 오가는 시선이 퍽 버겁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누구 하나 먼저 피하는 법도 없었다. 무영은 이번만은 한 수 무르기로 했다. 우혁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기 때문이다. 뭣보다도, 그는 의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윈드 워치의 나머지들을 경호대로 배치하겠습니다.”

“그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리고 내일 아이가 눈뜨자마자, 본부로 데려가야 할 겁니다.”

“그 역시,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우혁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높낮이가 없었다. 무영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돌부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렸다. 동류(同流)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철두철미한 우혁의 모습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건 뭐랄까, 반갑다기 보다는 언짢은 기분이었다. 존재는 누구나 자신과 흡사한 존재를 만났을 때 친숙하거나, 거부감이 들거나. 필연적으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마 서로는 후자였다.


“저 아이가, 결정하겠지요.”


그러나 무영은 결코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소녀에게는 이미 선택권이 없었다. 그것이 천사의 아이로 태어난 운명이었다. 그녀는 심판의 날 까지 털오라기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안전해야만 했고, 신을 대신해 심판을 집행할 의무가 있었다. 거기에 자율은 없었다. 의지도 없었다. 소녀는 보호받아 마땅했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종말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셈하며 그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선택할 겁니다.”



그런 무영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 마냥 우혁이 다시 한 번 강조하듯 입을 열었다. 인간이 선택한다라…. 무영은 자칫 코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여 저지른 일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았는가. 멍청한 인간들의 실수로 세계는 위험에 빠지고 그들의 터전은 오염되었으며 신에 대한 절망이 간절해지는 한편, 불신 또한 판을 쳤다.


그러나 무영은 구태여 ‘아니’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뭐라고 하려던 철나, 벌컥 문이 열렸다.




“내, 내가 먼저 도착…!”

“아니야! 나라고 이 멍청아!”


뒤늦게 도착한 뱀파이어와 마법사 무리들이었다. 오면서도 얼마나 투닥거렸는지 병실 문을 열어제낀 그들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먼저 들이밀기 위해 좁은 입구에 꽉 낀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멍청하고, 천박하군. 무영은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혈통을 중시 여기는 순혈의 뱀파이어들이 저런 꼴로 엉겨 붙어 있다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다들 비켜! 좀!”

“너나 비키시지!”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었다.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도 새카맣게 잊었는지 서로를 향한 질타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양보 없이 전진하려는 몸짓은 기어코 땅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무영은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나잇살을 잡술 만큼 잡수셨다는 양반들이 하는 짓이라기엔 심히 천박했다.


“제기랄! 이래서 마법사들이란! 융통성이 없어!”

“뭐라고? 이 흡혈귀 새끼가! 너 말 다했냐?”

“다 했다. 이 늙은 영감아!”


상황은 점입가경. 실제로 마법사들과 뱀파이어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속도에서 비등비등 했으니 이제 물리력으로 결판을 내면 된다는 둥. 힘으로는 밀리지 않는다는 둥. 참 수준 낮은 대화가 오갔다. 결국 참지 못한 남자가 한 마디, 훈수를 뒀다.


“그만.”


공교롭게도 훈수는 두 사람의 것이었다. 동시에 터져나온 목소리. 무영과 우혁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환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환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과연, 두 사람은 닮아있음에 틀림없었다.


작가의말

원래 닮은 사람은 괜히 싫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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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종말 D-99 (5) 15.03.28 5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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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 종말 D-99 (3) 15.03.23 77 1 14쪽
3 세계 종말 D-99 (2) 15.03.21 58 1 13쪽
2 세계 종말 D-99 (1) +1 15.03.20 83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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