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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당신의 세계는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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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M
작품등록일 :
2015.03.19 21:28
최근연재일 :
2015.04.14 21:4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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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69,382

작성
15.03.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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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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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세계 종말 D-99 (2)

DUMMY

02.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말은 퉁명스럽게 내뱉어도 천상 새가슴인 주제에. 태인은 잠시 멈췄던 숨을 풀고 인상부터 찌푸렸다. 16살이라 해도 하나 의심할 구석이 없는 뽀얀 이마에 주름이 팍 구겨졌다. 문 너머에 뭐가 있을 지 나름 기대를 한 모양이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무영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처음 발을 들이는 태인에 비해 그는 벌써 몇 번이고 회의 장소를 드나들었기 때문에 내부 구조에 익숙했다.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복도라기엔 조금 넓은, 차 두 대쯤은 너끈하게 들어갈 만한, 그러나 복도였다.


실망은 오래지 않았다. 태인은 금세 주변 환경에 적응했다. 성정 자체가 얌전하지 못하고 까다롭기 이를 데 없어 그렇지, 그들 일족들 사이에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뛰는 듯 나는 걸음이 복도를 좌우로 오가며 부산을 떠는 동안 무영의 걸음과 지팡이는 소리 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했다.


“여기 걸린 것들은 다 뭐야?”

“것, 이라니. 말조심해. 희생자들이다.”

“헤에, 희생자?”

“천 년 전, 심판의 날. 세계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쓴 전사들의 영정 사진이지.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걸어 둔 거다.”


천 년 전에도 심판의 날은 도래했었다. 인류는 언제나 심판대 위에 올려 져 있었다. 그 사실은 인간을 제외한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스웠다. 그들은 끊임없이 죄를 지으면서도, 동시에 용서를 구하고, 끝끝내 구원을 바라며 구걸한다. 도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들을 하는 건지. 미안하면 미안할 짓을 하지 않는 게 상책 아닌가. 무영은 쓸데없이 든 생각에 제 기분이 언짢아 진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봤자 평소와 늘 똑같은 피곤하고, 수척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도대체 왜 이 귀찮은 짓을 사서 하나 몰라.”


태인의 중얼거림은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이번만은 무영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인간은 무지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만들어진 것이란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 술 더 떠, 그들의 평화가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이룩한 영광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공로는 대부분 그 자신들에게 돌아갔다. 적지 않은 수로 신에 대한 헌정과 찬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긴,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어리석었지만 당연했다.



도대체 저 멍청한 인간들 중에 누가. 영등포 타임 스퀘어 지하 13층에서 인류를 종말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비밀회의가 열리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허리 바로 세워. 자세는 항상 똑바로. 시선은 정면을 봐라. 누가 널 보든 절대 시선을 피하지 마.”

“또, 또 영감 같은 소리 한….”

“카드 끊기 전에.”


마지막 한 마디에 태인의 허리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섰다. 무영은 손잡이를 잡았다. 여전히 지쳐 보이는 얼굴과, 눈가 아래로 내려앉은 그림자가 그를 수척하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 눈빛만은 고고한 맹수처럼 오직 정면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달칵. 이음새가 풀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52년 만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한 열두 명의 대표들은 이미 대부분 자리에 착석한 상태였다.


“오랜만일세. 라일 경.”

“잘 지내셨습니까. 진.”


지금은 무영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무영은 자기소개를 꼭 빼놓지 않았다.


“빈자리가 몇 군데 보이는군요. …설마 지각입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봄세. 우혁이는 오늘 참석하지 못할 예정이라더군.”

“흠…….”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빈자리는 총 세 군데. 오지 못한다는 ‘우혁’ 을 제외하면 남은 자리는 누구? 무영은 제 자리를 자연스럽게 찾아 앉으며 옆 자리를 가만히 두드렸다. 또 다시 긴장한 태인이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짓을 신호 삼아 냉큼 그 옆에 앉았다. 무영이 도착하자마자 회의실에는 유례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적막에 가까운 회의실의 침묵은 꽉 막힌 듯 답답했다. 허나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긴장 때문에? 아니, 견제였다. 그들 사이에선 당연하게 통용되는 탐색전이었다. 12인의 좌석을 정확히 반으로 가로 질러 나눠놓은 좌석의 반은 마법사. 그리고 반은 뱀파이어의 자리였다.


“우선, 윈드 워치의 12명의 기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WIND WATCH (윈드 워치)는 천 년 전에 있었던 심판의 날 이후로,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 뱀파이어와 마법사들의 연합, 즉 동맹이었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것이 이 두 종족이란 도무지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종족이었다. 윈드 워치가 정식 체결을 맺기 전 두 종족은 서로만 보면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뱀파이어에게 인간의 피, 그 중에서도 마법사의 피는 가장 훌륭한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는 ‘흡혈’ 을 통해 살아가는 생물이었다. 특히 흡혈 시 상대의 힘을 함께 흡수하는 그들의 섭식적 특성 상 마법사는 가장 좋은 먹잇감 중 하나였고, 실제로 수많은 마법사들이 뱀파이어에게 희생당했다. 이에 마법사들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가장 훌륭한 양식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뱀파이어 헌터였다. 마법사들의 손에 죽어나간 뱀파이어의 숫자도 만만찮았다. 이런 실정이니 서로만 보면 으르렁 거리는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결국 빈자리를 남겨둔 채 회의가 시작했다. 우혁을 제외한 남은 자리는…. 무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만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법사들은 원로원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대개 50대 이상의 장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 지닌 마법사로서의 소질 외에도 수련과 경험 치에 따라 레벨이 극명하게 차이나는 저들 종족의 특성 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곧 윈드 워치의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각 종족에서 가장 우수한, 그리고 뛰어난 이들만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혁은 대단한 마법사였다. 무영 역시 마법사들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법사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여타의 동족들과는 달랐다. 하나의 커다란 대의를 위해서라면 마법사들과도 얼마든지 손잡을 수 있었다. 그를 포함해 여기 앉아있는 뱀파이어들 역시 다 같은 생각이었다.


별개로, 무영은 우혁에게 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일단 저 원로회 중에서 유일하게 젊은 마법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은 마법사 원로원들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태어나기를 타고났거나 죽을 만큼 노력했거나. 둘 중에 하나란 소리였다. 보지 못해 아쉽군. 무영은 껄끄러운 입술 표면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텅 비어있는 우혁의 자리에서 시선을 거뒀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모두들 ‘메시지’ 를 받으셨을 겁니다.”

“…소식은 들었네만 난 받지 못했네.”

“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메시지는 ‘전자 기기’ 를 통해 전송 됐습니다.”


마법사들의 대부분은 그런 기기들을 지니고 다니기에는 너무 늙어 있었다.


“스마트폰, PC, 태블릿 PC, 휴대 전자기기 등…. 아마 인터넷 망을 통해 전해 진 메시지라고 추측됩니다. 메시지가 확인되자마자 진위 파악을 위해 역 추적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진 별 다른 소식이 없군요.”

“하지만 올해가 천 년째 되는, 그러니까 ‘심판의 날’ 의 해인 것만은 사실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대비해야지요. 게다가… 메시지에 적힌대로 ‘천사의 아이’ 가 깨어났다면. 정말로 서둘러야 할 겁니다. 그래서 회의를 소집해 여러분들을 모신 거고요.”


오가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태인은 지루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정 바로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에 반해 삐딱한 자세로 책상에 턱을 괴고 있던 태인은 지루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무영조차 회의에 집중 하느라 그가 뭘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평소라면 지긋지긋한 잔소리에서 해방 됐다며 신났을 태인이었지만 낯모르는 사람들 투성인데다가, 생전 처음 와 보는 장소에서 무영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해 묘하게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


도무지 참을 줄 모르는 성미는 결국 회의의 흐름을 깨뜨렸다. 무례한 아이의 난입에 원로원 중 몇 명은 언짢은 미간을 숨기지 않았다. 같은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으레 있는 일인 양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려는 듯 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무영이, 그 결례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입 다물어.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왜? 결국 뭐 할지 정하려고 만난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왜 나설 자리가 아니야? 나도 엄연히 초대 받고 온 손님 중 하나라고.”


태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확실히 태인 역시 초대 받은 12명 중 하나였다. 햇수로는 200살 조금 넘게 살았을 어린 뱀파이어인데다가 피를 마시는 건 보기에 썩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동족은 물론이거니와 타 종족의 목덜미에는 이빨 한 번 들이댄 적 없는 취향의 소유자였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강했다.


특히 독심술과 마인드 컨트롤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태인이 취미 삼아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놀음 역시 그가 가진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별개로 남의 시선이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특유의 성격도 한 몫 했겠지만.


“천사의 아이가 깨어나면 왜 안 되는데? 어차피 심판의 날에는 싫어도 깨어나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이가 깨어나는 순간 동시에, 종말을 원하는 자들에게 그 존재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사의 아이는 심판의 날까지 살아있어야만 해. 그 전에 아이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 경우 세계는 신의 재앙을 피치 못할 테니까.”


이 멍청한 녀석아. 결국 무영은 주변엔 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은 목소리로 태인을 나무랐다. 분명 어젯밤에도 전부 다 설명해 주지 않았나?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과 함께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무리였다. 아마도 태인은 오늘 회의가 끝난 뒤 입고 있는 스키니 진이 넝마 조각이 되던가. 아니면 영생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블랙 카드가 끊기던가. 둘 중 하나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큼, 흠…. 라일 경, 아니 무영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원래 천사의 아이는 심판의 날이 오기 까지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변이 생겼고, 이 때문에 저희가 모인 것이죠. 천사의 아이가 깨어나는 바람에 모든 순서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아이를 찾아서 종말의 날까지 안전하게 지켜냄과 동시에….”


천사의 아이가 대체 뭔데? 또 다시 회의 진행을 방해하려던 태인의 입을 그대로 틀어막은 것 역시 무영이었다. 그는 더 이상의 훼방을 허락할 수 없었고, 따라서 무력으로 그를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악마의 아이’ 를 찾아야 합니다.”


입이 완전히 막힌 태인은 짜증스런 시선으로 무영을 노려봤다. 그러나 무영은 그를 돌아보기는커녕 길고 마른 손가락을 이용해 태인의 입술들을 꾹, 눌렀다가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별 의미 없는 손길처럼 보였겠지만 그 안에 포함된 진정한 의미는 ‘한 번만 더 건방지게 굴면 오늘 밤 가만 두지 않겠어.’ 라는 뜻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것이 누구인지는 확인 된 겁니까?”

“아, 안 그래도 지금 하와가….”


진행자는 마법사들 좌석 중 비어있는 자리를 흘끗 거렸다. ‘하와’. 그의 자리 역시 비어있었다. 무영의 시선이 빈자리로 향했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너무 오래 살아서일까. 우혁과 비슷한 연배의 젊은 마법사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차, 찾,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매우 부산스러우며, 침착하지 못하고, 산만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우당탕 거리는 소음과 함께 한 손엔 노트북을 쥔 젊은 마법사가 헥헥거리며 뛰어들었다.


“메시지의 발신지는…!”


마지막으로, 그가 ‘위저드 네트워크’ 를 통틀어 가장 손꼽히는 천재 프로그래머라는 것 까지도.






“……‘축명여단’ (築冥旅團) 입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그가 전해 온 소식에 무영의 입안에서 드물게 욕지거리가 씹혔다.


작가의말

엉금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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