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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談 salon

오늘도 당신의 세계는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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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M
작품등록일 :
2015.03.19 21:28
최근연재일 :
2015.04.14 21:4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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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3
글자수 :
69,382

작성
15.03.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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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세계 종말 D-99 (4)

DUMMY

04.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눈만 깜박거리는 하와에게 거의 빼앗다시피 주소를 건네받은 무영이 회의장을 떠나자마자, 먼저 출발했던 1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다. 그러고선 하와의 멱살을 쥐고 주소를 내놓으라 성화를 부렸다. 뱀파이어, 마법사. 양측 모두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대체 어디인지 찾으러 갈 것 아닌가.


덕분에 죄 없는 천재 프로그래머는 멱살을 잡힌 채 왜 저가 혼나야 하는 지도 모른 채 혼쭐이 났다. 특히 운성은 마법사 원로원이라는 체통도 잊었는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하와를 재촉했다.



그 시각. 무영은 어느 새 받아 든 주소지 앞에 서 있었다.


태인은 중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내일이 컴백이라 오늘 최종 안무를 맞춰봐야 한다며 쏙 사라진 것이다. 수고하셔, 아저씨~. 얄밉게도 손까지 팔랑팔랑 흔들며 사라진 태인을 붙잡진 않았지만 무영은 그런 태도가 썩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간에 그 천방지축이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하고 있다면 꽤 긍정적인 일일 거라 결론 내렸다. 태인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를 지켜봐왔다. 무영의 기억에 의하면 그 어린 뱀파이어가 3개월 이상 싫증 내지 않고 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흠, 여기인 것 같은데.”


서울 관악구 봉천동. 대로에서는 조금 떨어져 안쪽 골목을 거슬러 올라 온 무영은 제 앞에 자리를 잡은 2층짜리 단독 주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모로 보나 평범한 집이었다. 갈색 벽돌로 쌓아올린 담벼락은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은 지 꽤 됐는지 담장 너머로 드리운 거목의 나뭇가지에는 이파리가 우수수 달려 있었다. 제법 무거워 보이는 걸 보니 심고 자란지 꽤 되었을 것이다. 무영은 진녹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발라 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담한 잔디밭과 바닥에 박힌 돌 징검다리를 건너 현관문 앞에 선 무영은 현관문을 슬쩍 당겨보았으나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했던 기대를 버린 채 무영의 손이 가만히 열쇠 구멍 위에 얹어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특별한 기술이나, 마법을 쓰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물쇠는 스스로 몸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철커덕. 문이 열렸다. 쇠가 부딪쳐 돌아가는 소리에 무영은 자연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싸늘했다. 바깥에서 보이는 대로 평범한 가정집을 상상했던 무영의 눈썹 사이가 움푹, 들어갔다. 불빛 하나 켜있지 않은 집은 어두웠고, 사람의 기척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축명여단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좋지 못한 예감과 함께 무영은 차분히 주변을 돌아봤다. 어딘지 모르게 급해 보는 순간의 자취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무슨 일이라도…있었던 건가? 무영은 어질러진 식탁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핏자국. 다시 보니 바닥에는 상당한 양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피? 무슨 일이 있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만큼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무영은 손가락 끝으로 제 코를 슬쩍 막았다.


신선한, 피 냄새. 흘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녀의 피. 당연히 뱀파이어에게는 자극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급 방계였다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샅샅이 핥았을 만큼 맛있는 냄새였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군.”


무영은 핏자국을 따라 거꾸로 올라갔다. 여고생의 방은 2층에 있는 모양이다. 핏자국은 계단을 지나 짧은 복도에도 떨어져 있었다. 무영은 반쯤 닫혀있던 방문을 활짝 젖혔다. 역시. 방문을 열자마자 피에서 나던 냄새와 꼭 같은 냄새가 화악 올라왔다. 아무래도 좋지 못한 예감이 맞아 떨어질 확률이 점점 더 높아졌다.


설마 납치라도 당한 건가? 그렇다면 역시…축명여단? 내기가 무색해지는 것은 물론 가장 최악의 결론이었다. 무영은 가만히 서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바로 몸을 틀었다.




“……누구세요?”


몸을 돌리자 처음 보는 꼬맹이가 자신을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무영은 순간 당황했지만 눈으로 빠르게 꼬맹이를 스캔했다. 나이는 8살 전후. 그렇다면 초등학생인가? 아가 배라기엔 툭 튀어나온 뱃살과 두둑두둑 붙은 살집. 사탕을 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래에 당뇨병과 기타 합병증이 의심 됨.


“…음, 누나의 담임 선생님이란다.”

“아…! 누나 아야 해서 왔구나!”


왜 누나의 담임 선생님이 아무도 없다시피 한 빈집에 몰래 들어와 있는지가 가장 큰 의문점이 되어야 할 테지만 꼬맹이의 입장에선 썩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 이란 한 마디에 단번에 낯선 방문객의 정체를 납득해 버렸으니 굳이 최면을 걸 필요도 없었다. 무영은 꼬맹이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누나 지금 병원 갔는데!”


병원? 무영의 시선이 재차 꼬맹이에게로 향했다.


“누나, 눈에서, 코에서, 막, 피 났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병원! 갔어요!”


피가 났다고? 가뜩이나 좋지 못한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꼬맹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올려다봤기 때문이다. 무영은 미간을 꾹 짚었다. 일단은 ‘여고생’ 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병원은 어디인지 알고 있니?”

“아, 음…. 음…. 성룽? 릉?”


꼬맹이의 발음은 부정확했고, 당연히 알아듣기 어려웠으며 서울 시내에 병원이 몇 개고 또 무슨 병원이 있는 지 무영이 다 알고 있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꼬맹이가 뒤돌았을 때, 무영은 이미 거기 없었다.








피가 나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였다.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 우주가 세수를 하다가 세면대 위에 후두둑 떨어진 코피를 발견한 것이다. 태인의 컴백 소식에 요즘 새벽 내리 컴퓨터를 붙잡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다. 내가 덕질을 하다가 코피까지 나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우주는 손등으로 코를 슥 문질렀다. 확실히 대부분의 여자애들에 비해 무디다면 무딘 성격이었다.


그러나 피는 멈추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게 싫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혔다가, 혈액이 역류해서 코 안에서 막힐 위험이 있다는 말이 떠올라 다시 아래로 숙이곤 코를 막았다. 우주만큼이나 무딘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3이 공부하다가 코피 좀 쏟을 수도 있지. 오히려 문제라면 그녀의 딸은 공부보다 아이돌에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주야, 아직도 코피가 안 멈춰?”

“어…. 이상하네. 나 피곤 한가….”

“계집애. 그러니까 엄마가 한약 해 준다 할 때 그냥 먹지!”


그 한약 먹고 어떻게 새벽 내내 (내 오빠 보느라) 컴퓨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양심 상 찔려서라도 안 될 일이었다.


“됐어. 금방 그치겠지 뭐.”


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코뿐만 아니라 눈에서도 피가 흐를 때였다. 시야가 벌겋게 차오르더니 눈물처럼 눈에서 핏물이 주욱 흘렀다. 그걸 발견한 것은 물론 그녀의 엄마였다.“우, 우주야!”

“……어라?”


코, 눈. 그뿐만 아니라 온 몸의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마치 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우주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핏자국이 얼기설기 묻기 시작했다. 차마 비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 우주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1, 19! 어머나, 세상에! 우주야! 우주야!”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했다. 온 세상이 피범벅이었다. 울컥. 한 움큼의 핏덩이가 토해졌다.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구급차를 불러야 했고, 우주는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선, 선생님!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19살의 소녀를 앞에 두고 아무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지혈조차 되지 않았다. 상황은 속수무책. 이런 증상은 처음 본다며 의사와 간호사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발 좀, 살려, 달라고! 우주는 애원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애원조차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왈칵 내뱉어진 핏덩이에 막혀 사라졌다.


“제, 제발 좀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선, 선생님…!”


아…. 차라리 자고 싶다. 우주는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우주는 시트를 꽉 부여잡았다. 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지? 그녀를 비롯한 누구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아니냐고 떠드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따로 격리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저 치들의 입을 모조리 막아버리고 싶었다.


뭘 잘못 먹었나? 아니, 애초에 식중독으로 전신의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가능한가? 정말로, 바이러스에 걸린 건 아닌가? 어쩌면 연가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득, 우주의 머릿속에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기이한 일이 떠올랐다.

[김 우주님, ‘2015 세계 종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뭐든 좋아. 나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이제는 마음속으로나마 소리 칠 기운도 없었다. 온 몸의 피가 줄줄 흐리고 있으니 의식은 순차적으로 흐려졌다. 철분이 부족해진 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우주의 숨이 파들파들 떨렸다.


엄마의 대성통곡이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죽는다. 이렇게 죽는 거구나. 이렇게 쉽게 죽는 거였어. 우주는 눈을 감으며, 그녀의 오빠를 떠올렸다. 아…. 내일이 컴백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태인 오빠…….




“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 보세요.”





……오빠?


모든 것을 포기할 즈음, 그녀의 앞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뱀파이어의 속도는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 빨랐다. 물론 소위 말하는 ‘급’ 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이 원한다면 때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은 힘과 속도가 비례했다. 엄청난 힘, 그리고 속도. 후각과 미각을 잃어버린 대신, 신의 저주가 함께 선물한 괴물 같은 축복이었다.


무영은 빠르게 인간과 차, 그리고 건물 사이를 오갔다. 동체 시력은 속도에 맞춰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에는 모든 정황이 정확하게 보였다. 무표정한 눈가 아래로 진 다크 써클은 그의 시력과는 조금도 연관이 없었다. 그는 지금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선’ 자가 들어가는 병원. 그리고 뒤에는 ‘ㄹ’ 자가 붙는. 그가 병원에 도착하고, 병원 내부를 훑으며 ‘김 우주’ 라는 환자가 있는 지 확인하는 일에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무영은 그렇게 병원 하나, 하나를 다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미련할뿐더러 피곤하기까지 한 방법이었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라면 마법사들에게 추격당할 수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들의 마법은 때때로 뱀파이어의 속도를 앞서나가곤 했으니까.


“…드디어 찾았군.”


‘선린 병원’. 무영은 방금 들어 온 응급 환자의 이름이 ‘김 우주’ 라는 것을 확인하곤 빠르게 병실로 향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그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실 앞에서야 속도를 멈춘 무영은 네크라인부터 떨어지는 코트의 깃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측정조차 불가능한 속도로 날아 온 사람, 아니 뱀파이어라곤 조금도 볼 수 없는 정갈한 움직임이었다. 딱 그만큼, 무영은 정중한 손짓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예상과 달리 병실 안은 평화로웠다.


하얀 침대 위에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아직 미비하게 남아있는 피 냄새로 그 소녀가 ‘김 우주’ 라는 것을 확신한 무영은 속으로 탄성 같은 한숨을 터뜨렸다. 적어도 납치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만은 면한 셈이다. 게다가 자신의 눈앞에 있지 않은가. 도착한 사람 또한 저 뿐이었다. 천사의 아이를 찾았고, 내기에서도 이길 예정이었다. 모든 것은 평화로웠다.




“조금, 늦으셨군요. 라일 경.”


자신의 본명을 부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무영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커튼을 열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첫 인상. 뿔테 안경이 그의 얼굴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사내는 씨익 웃었다.






“아니, 지금은 ‘무영’ 이시죠.”


오늘 회의에 불참했던 젊은 마법사, 우혁이었다.


작가의말

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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