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아이돌 출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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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야!! 희수야!!”
누군가의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가 이내 내몸을 붙잡고 흔드는 것 같았다.
“으...응??”
“너 또 밤샜어?”
“.....”
게슴츠레 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분명 낯선 곳이었고 낯선 목소리였다.
푹신한 의자에 내가 앉아 잠이....
“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몸을 더듬어 만져보았다.
“분명 사고...났었는데?”
“무슨 소리야?”
“그 정도면 죽었을······.”
“어이구!! 그래 그렇게 밤새워 게임을 하고도 살아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 신기해!!”
나를 흔들어 깨운 여자는 나를 잘 안다는 듯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누구···. 세요?”
“헛소리 말고 얼른 밥 먹어!! 아유 책상이 이게 뭐냐?”
“여기 어디에요? 그리고... 누구세요?”
“헛소리 그만해라!!”
살기를 띤 목소리의 여자 얼굴을 주목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반말도 모자라 주먹으로 어깨를 내리쳤다.
당황한 나보다 여자는 늘 그랬다는 듯 나를 대했다.
오히려 내 말문이 막혔다.
잠이 덜 깬 것인가 싶어 방안을 둘러봤다.
장식장은 수많은 상패와 트로피그리고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 사진이었다.
‘우주 아이돌??’
대형 사진에는 그렇게 그룹명이 씌여 있었다.
이름은 방송에서 본듯하지만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스치듯 TV에서 본 것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누나 말 안 들려? 씻고 밥 먹으라니까!!”
“여기가···. 어디에요?”
“너 죽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해라”
“.....”
내가 오히려 답답해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장난인 줄만 알던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멈칫했다.
나는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별로였지만 내 나름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 여겼다.
과학과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상황을 먼저 납득하고 싶었다.
“너···. 장난치는 거지?”
“제 이름이... 희수라고요?”
“야.... 장난하지 마!!”
“....”
나의 진지한 자세와표정에 여자도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자는 점점 불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나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장식장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어??”
얼핏 봐도 짧고 대충 생긴 내 얼굴이 아니었다.
일어나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랬더니 꽃미남이 나와 똑같은 몸짓을 하고 있었다.
“너 설마.... 희수야 내 이름이 뭐야?”
“....”
“내 이름 몰라?”
“모르겠네요.”
그때 그녀는 자신의 동생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고 나역시 내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버릇처럼 ‘다음생... 다음생’했는데 다음생이 이렇게 와버린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환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생이 이렇게 왔다고??’
생경한 이 상황이 그렇게는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혼은 영생불멸이라더니 맞는 모양이었다.
내 이름은 정 필겸 그리고 아버지 정원택 어머니 박옥순.... 다 기억난다.
내 과거의 기억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몸만 다른 사람에게 들어온 것이다.
그 여자는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자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울먹였다.
“희수야... 너 그룹 해체된 거 충격이 컸었구나?!”
“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희수라는 남자의 몸에 들어왔다면 희수의 영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컴퓨터 책상엔 에너지 음료와 배달 음식 그리고 과자 봉지와 처방약 봉지까지 보였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내귀에 익숙한 게임 배경음이 흘러 나왔다.
상황이 이런데 반가워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강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해봤다.
‘일단,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는 게 낫겠다.’
상황도 잘 모르면서 섣불리 행동하다간 정신병원에 잡혀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수야 옷 갈아 입어 누나랑 병원에 가보자 응? 어서”
“....”
여자는 옷방에 가더니 갈아입으라며 이상한 옷을 침대에 내려 놓고 나갔다.
절대 입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옷이었다.
취향이 아무리 독특하다지만 남자가 핑크라니······.
그녀는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상황을 설명하다가 울먹이는 듯 했다.
나는 그녀가 준 옷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놀라운 것은 바지 단을 줄이지도 않았는데 맞다는 것이다.
긴다리가 쭉 들어가 딱 맞았다.
‘그래도 큰 키와 얼굴은 마음에.... 든다’
그렇게 쭈뼛쭈뼛 옷을 다 입고 준비하는데 벨소리가 났다.
누나라는 여자가 문을 열어주자 사내들이 2층의 내 방으로 몰려 들어왔다.
“희수야!!”
“김희수 너 괜찮아?”
“...??”
잘 생긴 사내들은 2층으로 올라와 서로 다그치듯 물었다.
움찔해 있는 나를 보더니 벽에 걸린 잘 생긴 사내들이 다가와 다짜고짜 와락 안았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희수야! 나는 기억하지? 알지?”
“......”
“희수야 내 이름이 뭐야? 응?”
“누구... 세요?”
지금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서로 자길 아느냐 물어보면 날 더러 어쩌란 것인지...
“희수야!! 이새끼!! 제일 괜찮은 척 하더니”
“충격이 컸구나!!”
조금 말라 보이는 남자가 먼저 눈물을 터트렸다.
그러자 사내들이 에워싸며 껴안고 우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공감할 수 없어 멀뚱 했다.
그런 내가 그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아~ 진짜!! 남자들끼리... 뭐냐? 그만 좀 하자’
잠시후 다들 진정되자 누나라는 어린 여자와 그 사내들에 이끌려 함께 병원을 갔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다들 기억 상실증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 그쪽으로 가는 것이 더 편할 듯 싶었다.
“희수 군이 그룹 해체로 정신적인 충격이 컸던 모양이군요. 해리성 기억 상실증으로 보입니다.”
“아.... 네.....”
예상한 대로라는 듯 희수 누나는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사내들이 일어났다.
주변은 이미 휴대전화를 들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겐 익숙한 것인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었던게 맞긴 하나보네.’
원래부터 난 연예계에 크게 관심 없었다.
특히, 잘난 남자들은 더욱 싫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느라 TV 볼 시간도 별로 없었고 일부러 채널을 찾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돌아가고 나와 희수 누나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폭풍같이 하루가 지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주변이 잠잠해졌다.
그날 오후 모르는 사람들이 몇 찾아왔고 누나는 이곳저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오늘 내가 알아낸 것들을 대강 요약해보면, 잘나가던 우주 아이돌의 멤버들은 최근 활동을 접고 해체한 모양이다.
오랜 연예계 활동으로 지친데다 군대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소속사에서도 신인 그룹에 포커스를 맞춰 지원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행사와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줄어 결국 해체 순서를 밟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희수는 어차피 밟는 수순이라며 홀가분한듯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 몇달은 게임에 파묻혀 살았다고 한다.
희수에겐 방송출연 요청이 아직도 있었지만, 휴식기라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희수는 고등학교 중퇴라 중졸 학력에 군은 면제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법이 개정되어 대체 복무를 할 수 있지만, 김희수가 신검을 받을 나이에는 면제 사유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가? 군대 두 번 갈 뻔했네....”
김희수는 만으로 28살이라고 했다.
누나 김희원은 두 살 더 많았다.
부모님은 살아계신다고 한다.
강릉에 살고 계시며 5년 전부터 누나 희원이 희수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함께 산다고 했다.
공식 해체 이후 희수는 잘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줄곧 자기방에 처박혀 게임만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며칠 밤을 새워가며 무리하게 게임하다 과로사나 돌연사가 아닌가 싶었다.
‘히어로 스토리를 밤새워가며 한거야?’
삶과 죽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희원에게는 자주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는 사람들이 날 찾아왔다.
연예 기획사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무덤덤하게 그들을 대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희수야 해체되도 재결합할 수 있는 거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라”
“....”
“아!! 혹시 너 노래랑 안무는 기억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괜찮아 희수 넌 안무익히는 것은 타고났으니까 다시 배우면 될거야.”
"금방 생각날거야"
그들 말을 듣고 있자니 좀 어이가 없었다.
날더러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일을 계속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큰일 날 소리다.
나는 노래와 춤에는 자신이 없었다.
잘난 게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것엔 아예 관심도 없었고 오직 공부나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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