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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2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2:02
조회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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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2장 : 안(5)

DUMMY

칼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살을 파고들었다.


푹-.


짧은 의성어. 거창했던 위기의식의 과정 끝에 도출된 결말은 초라했다. 나는 내 옷에 튄 핏방울들을 내려보았다.


“큭, 하하, 쿨럭, 크륵, 하하하하······.”


안내자는 웃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칼이 폐에 꽂힌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신음소리처럼 말이다. 날이 접혀 들어가는 장난감 칼이었다면 나도 따라 웃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근거가 너무나도 부실했다.


내 옷에 튀어버린 피는 따끈따끈했고, 칼날은 확실히 그의 배속으로 절반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조형처럼 굳어버린 미소와 신음소리로부터 우러나오는 고통.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던 사념의 행동이 안내자와 겹치면서 일체가 되고 있었다.


철컥-.


머릿속에서 무언가 풀려버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깜박이자, 시야는 잠깐 붉게 물들었다 사라졌다.


“말도 안돼.”


그리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놀랍게도, 안내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건만 발 부근을 연결점으로 하여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야? 갑자기 나타난 이 놈은······.


-씨익.


녀석은 웃고 있었다. 사람인가? 사념? 어째서? 언제부터 있었지?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그런 뒤, 녀석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던 거지만, 내 시야에서 맴돌던 할복영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넌 누구냐.”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닌,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경계였다.


“······.”


녀석은 대답 없이 옆에 쓰러져 있는 안내자를 내려다보았다. 그에 따라 나도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차! 안내자는 출혈이 많았지만 아직은 숨이 붙어 있었다. 제길, 우선은 사람 목숨이 먼저다. 부디 살아나주시길······. 그러고나서 사과 한마디만 하라구요.


나는 사념의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생성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모습을 보인 순간부터 계속 가만히 있었다. 그래, 나는 많은 사념들을 해소해 왔던 능력자다. 제 아무리 귀신이라도 물리력 같은 법칙이 어긋난 짓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응급조치법을 찾아 머릿속 실타래를 헤집으며 안내자에게 다가가려했다.


-죽어라.


"······"


뭐라고? 방금 너, 뭐라 그랬어?


-배를 갈라라.


덜컹. 갑자기, 안내자를 똑바로 눕히려던 손은 급제동 걸렸다. 그리고 마치 온 몸이, 말라가는 석고처럼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사념의 짓이라는 걸 느끼고는 크게 놀랐다.


-기쁘게 죽어라.


그게 무슨 헛소리냐! 라고 외치고 싶어도 입조차 뻥긋하지 못했다. 극도로 활발히 움직이는 건 뇌와 심장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느릿느릿하게 안내자에게 꽂혀있던 칼을 뽑았다. 그건 절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안돼······. 이러지 마.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칼을 쥔 손은 감각이 없었다. 말도 안돼. 거꾸로 쥐어진 칼은 천천히 내 복부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급격히 뛰었다. 부디 높아진 혈압이 온몸의 막힌 곳을 풀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칼끝은 멈추지 않고 복부에 닿았다. 무서웠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공포였던가.


다시 한번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뇌를 갉는 듯 했다. 죽음 직전의 사람이 그동안의 모든 추억들을 떠올리듯이, 가물가물한 어떤 기억이 눈 앞을 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아련한 데자뷰······.


*******


단순한 동반자살로 판명 났지만 절대로 자살이 아닌 슬픈 사건.


아무 원한관계도,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 중년부부.


그리고 남겨진 이의, 애절한 오열.


*******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결국, 영준이의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찾지 못했다. 범인은 영준이의 부모님께 손끝 하나 대지 않았던 탓에, 얼굴은 커녕, 단서 하나도 못 찾았었다. 나는 어째서 그때일과 이번 일이 연관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가.


이유없이 자살을 한 사람들······. 안내자까지 포함하여 이 마을 사람들과,영준이의 부모님의 차이점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념의 존재 자체가 그때의 사건과 관계 있을 것이다.


몸이 천천히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몸에 대해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할복자살에 대해선 3년 전의 기억이 있었다. 그래, 이건 처음 겪는 현상이 아냐. 어떤 강제력이라 해도 나보다 더 내 몸에 대해 간섭할 순 없었다.


칼끝은 옷을 뚫기 직전에 멈춰있었다. 복부에 따끔한 고통이 이는 것을 시작으로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들고 있던 칼을 아무데나 휙 던졌다. 휘두른 팔이 저린 것으로 보아 아직도 사념의 여파가 몸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사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곁눈질로 쓰러져있는 안내자를 보았다. 슬프게도 안내자는 죽음에 이른듯 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사념은 가만히 나를 봤다. 마치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에 버그가 걸린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 내게는 죽으라는 살인적 용어가 들려오지 않았다.


어쩔 셈이지? 이대로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테냐?


새벽의 적막 속에서 그렇게 나와 녀석은 시선을 마주했다. 녀석의 정체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한, 긴장을 놓아선 안됐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가 식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부우웅-. 잠깐 긴장이 풀린 동안에 사념은 고개를 나에게서 돌렸다. 그리고 찰나의 차이로 시선이 향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움직이는 사념을 멍하니 보다가 아차 싶었다. 버그가 걸려 진행이 멈춘 프로그램은 캔슬하면 그만이다. 녀석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그 프로그램의 대상은 제일 가까운 범위 내에 있는 인간, 바로 차를 운전하던 사람일 테고 말이다.


이대로 녀석이 공기 중의 바이러스처럼 퍼지기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할복으로 죽는 피해자가 엄청나게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사념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혈압변화에 빈혈기가 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더 이상의 피해는 막자. 또 다시 영준이처럼 남겨지는 사람을 볼 순 없었다.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폐는 따끔거렸다. 사념의 기운만을 읽고 일직선으로 달려온 탓에, 온 몸에 잔가지에 긁힌 상처가 생겼다.


“헉, 헉, 허헉, 헉······.”


나는 산소가 부족한 뇌로 계속 생각했다. 3년 전 영준이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사건. 그 때 이해했던 사념의 내용은 허무했다. 경찰들에게 범인은 초능력자라고 말했다가 쫓겨나기만 했던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번 일도 초능력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내게 연락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일에 대한 것이 인간으로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정신없이 달리던 중, 저 앞에서 새벽빛이 보였다. 나는 캄캄한 동굴을 헤매다 출구를 발견한 기분으로 빛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콰차차창!


크윽. 갑자기 고막을 세게 두들기는 유리창 폭파소리가 들려왔다.


- 끼이이익!


뒤이어 타이어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불안한 예감을 안고 비틀거리며 동굴입구를 빠져나왔다. 사고의 근원으로 보이는 자동차가 저 아래에 있었다. 뒤 유리창은 산산조각 나있었고 어떤 여자애가 그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보이는 차는 도로에 바퀴 흔적을 남긴 채 시동이 꺼져 있었다. 다행히도 소녀에게서는 피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기에 기절한 정도로 끝난 것 같았다.


이런 제길, 벌써 사고 친 거냐?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차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이 없게도, 사념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여기에서 끊겨져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사념은 어떻게 물리력을 행사한 거지? 어째서 그 힘으로 날 죽이지 않았던 거야?


의문은 도중에 끊겼다. 사고현장에 누군가가 온다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어쩌지? 이 현장을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남겨두면 안됐다.


혹시라도 매스컴에 귀신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난무한다면, 일부 사람들의 불안에 의해 그 사념이 더욱 날뛰게 될지도 몰랐다. 녀석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법이라면 존재자체를 부정하여 믿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던 중에 낙석주의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곧바로 결심했다. 낙석사고로 은폐한다면, 단순 재해로써 금방 잊혀지겠지. 그리고 곧바로 내 주변을 살폈다. 무겁겠지만 굴릴 수 있을만한 돌덩이들이 몇 개 있었다.


"후우. 미안하다. 내 잘못이야."


나는 흩날린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진 소녀를 보면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나중에 꼭 찾아가서 이상이 없는지 알아봐 줄게. 절대 잊지 않을 테니 꼭 나중에 만나자.


그리고 힘껏 돌덩이들을 밀었다. 무섭게 굴러간 돌덩이들은 무사히 차 주변에 떨어졌다. 나는 돌덩이중 하나가 소녀의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현장의 알리바이는 끝이었지만 아무래도 끊겨버린 사념의 흔적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너무도 피곤했다. 복잡함의 극치. 머릿속은 풀지 못할 매듭으로 잔뜩 묶인 실타래 같았다.


나는 가까운 나무 아래에 걸터앉고는 긴장을 풀었다. 크게 숨을 쉰 뒤, 밀려오는 피로 때문에 가볍게 눈을 감고 말았다. 아아, 자면 안돼. 집에 돌아가야 할 텐데······.


"흐읏."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억지로 일어섰다. 지친 다리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가늘게 떴다. 가볍게라도 감았다간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어느새 저 아래에서는 사고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한 어떤 남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그렇게 현장을 뒤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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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장 : 바깥(4) 15.05.08 205 1 10쪽
4 1장 : 바깥(3) 15.05.08 26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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