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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3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1:57
조회
108
추천
1
글자
9쪽

1장 : 바깥(1)

DUMMY

현도는 기지개를 피며 잠에서 깼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에 터져 나오는 하품을 내 뱉는 중년 사내였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이불을 개고 나서 거실로 나온 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일주일 전에 딸이 챙겨줬던 반찬들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이었던가.’


그는 달력을 훑었다. 8월 3일, 오늘은 일주일 전에 속초로 놀러갔던 딸이 돌아오는 날이었다. 아마, 동생 녀석이 새벽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정오까진 집에 데려 오겠지. 현도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아침을 차렸다. 식탁 위에는 간단히 달걀프라이, 밥, 김치만이 올라왔다. 라면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이를 끓일 냄비가 싱크대의 설거지 더미들, 깊은 곳에 감춰져 있었다. 현도는 배를 채운 뒤, 산더미처럼 쌓인 식기들 위에 방금 비운 밥그릇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잔소리 좀 듣겠군.’


그가 씁쓸히 웃는 도중, 갑자기 거실에서 전화가 울려왔다. 이제 곧 도착할 딸의 전화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현도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예상대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목소리 톤이 좀 달랐다. 10대 소녀의 목소리라기보다는 20대 후반쯤 되는 아가씨의 것이었다.


“누구세요?”


현도가 상대방에게 신분을 물어봤지만, 그 여자는 먼저, “이수양의 아버님 되시지요?”라고 되물을 뿐이었다.


“네. 맞습니다만.”


현도는 수화기를 고쳐 잡고 미간을 좁혔다. 잠시 후, 그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교통사고요? 낙석!”


한순간 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격하게 호흡이 거칠어지는 바람에 여자가 말하는 뒷내용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현도는 딸이 이송됐다는 병원의 주소를 겨우 받아 적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와 거리로 향했다.





이수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창을 뚫고 멀리 튕겨졌던 그녀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해서 가슴까지 오는 이불을 덮은 이수의 모습은 그저 잠자고 있는 소녀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삼촌인 상현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의 상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생긴 몇 가지 타박상밖에 없었다.


몇 번인가 간호사들의 안정을 취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상현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모든 상황을 차를 운전했던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심정 때문에 그는 떠날 수 없었다.


-따르르릉.


그때였다. 병원 내에서는 금지품목에 들어가는 물건 하나가 상현의 주머니에서 소리를 냈다. 문득, 주위에 세밀한 주의가 필요한 기계 같은 것이 없음을 확인하고 난 그는 창가로 다가가 휴대폰 케이스를 열었다.


“여보세요?”


“나다.”


짧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뒤 거친 숨결소리가 이어졌지만 상현은 개의치 않았다.


“형이구나.”


“후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지금 이수 상태는 별 문제 없대. 충격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 말고는 몸에 상처도 없고.”


상현의 눈길이 병원 정문을 향했다. 눈에 익은 차림의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사내의 호흡은 안정되는 듯 했다.


“그래. 다행이다. 지금 거의 다 도착했으니......”


“아무튼, 여긴 304호실이야. 병원 내에서는 휴대폰을 쓰면 안 되니까 이만 끊을게.”



상현은 나지막이 들려오는 마지막 대답을 흘려듣고는 휴대폰을 닫았다. 이수가 누워있는 침대의 옆, 보조침대에 앉아서 기다리니 곧 있어 벽 너머 복도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형.”


상현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까칠한 턱수염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수는?”


현도가 자기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있냐는 뜻의 질문이 아닌, 몸 상태의 여부를 묻는 말이었다.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 없어지거나, 곤란해질 때면 항상 나오는 버릇이었다.


“괜찮대.”


그러나 그의 이런 버릇을 십수 년간 계속 봐온 현도는 이를 믿지 않았다.


“몇 시에, 어디서, 어쩌다가...”


현도의 눈가에 투명한 열매가 여물면서 꽉 다문 이가 드러났다.


“사고가... 난거냐?”


상현이 현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 끝내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굳게 닫힌 입 사이로 짓이겨진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 * *



이수는 평소에 일어나던 것처럼 잠에서 깨어났다. 손에 익지 않은, 처음 만져보는 이불을 걷어낸 후,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칠흑처럼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맡에 있음직한 시계의 바늘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으음.”


그녀는 눈을 비볐다. 어쩜 이리 어두울까. 서너 번 눈을 깜박였지만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다. 문득, 아침에 있었던 사고가 생각났다. 도중에 기억이 끊겨서 모르겠지만 어떤 검은... 누군가 차와 부딪힌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죽었을까. 삼촌은 어떻게 됐을까.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잠에서 막 깨어난 이수의 머리를 눌렀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허리를 숙여 이리저리 손을 더듬었다. 침대 끝 부분에서 차가운 금속성이 만져졌다. 아무래도 우리 집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오늘 아침에 삼촌하고 같이 산을 넘던 중, 그녀는 분명히 그것을 보았다. 어두웠던 형체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보았던 것은 있다. 그건 바로......


이수는 소름이 돋았다. 자신만의 느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의 눈길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공포는 계속됐다. 한번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자 그 눈길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지금에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겁이 난 그녀는 몸을 웅크린 뒤 이불을 덮었고 눈을 질끈 감고는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눈을 감은지 얼마 안 되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살짝 떴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차게 이불을 걷으며 일어났다.


“누, 누구세요?”


이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발자국 소리도 멈췄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가 발소리의 주인이 말을 했다.


“이수야?”


“어어?”


이수는 그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그녀에겐 지금 상황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목소리였다.


“아빠! 으아앙-.”


그녀의 아버지, 현도가 낸 발소리였다. 긴장이 풀린 그녀는 끝내 울기 시작했고 현도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등과 머리를 감싸 안았다.


“괜찮지? 어디 아픈데 없지? 이수야. 응?”


우는 그녀를 안고서는 달래보려던 현도 또한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병실 안에서 한 부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빠.”


물기에 절어 버린, 이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음?”


까칠한 턱수염을 눈물로 적신 현도가 대답했다.


“있잖아. 지금 몇 신지 알아?”


“이제 저녁 8시쯤 될 거다.”


“그럼 불 좀 켜줘. 왜 이리 어두운거야?”


“응? 어둡다니?”


현도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머리 위에서는 형광등이 계속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창문 너머에서 비치는 달빛도 그리 어두운 게 아니었다. 그는 이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맛.”


그녀는 갑작스레 이마로 다가온 따뜻한 온기에 놀라 고개를 젖혔다. 어둠 속에서 식별이 불가능 하다보니 그녀는 호의도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현도는 딸의 이상한 반응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수야. 혹시..."


"으응?"


"앞이 보이지...... 않는 거니?"


그는 딸에게 상처가 될 말을 직접적으로 꺼냈다. 이수는 그의 말에 당황했다.


"무, 무슨 소리야. 불이나... 켜 달라니까."


"이게 몇 개로 보여?"


현도는 그녀의 눈 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수가 짜증을 냈다. 마음 한켠에서부터 무언가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그리고 팔을 들어올리며 현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아빠도 맞춰 봐. 이거 몇 개게?"


이수의 손가락은 세 개였다. 현도는 눈 앞에서 떨고 있는 손가락 세 개를 볼 수 있었지만 답할 순 없었다. 그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떨리는 두 손으로, 떨고 있는 이수의 손을 붙 잡았다.


그리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수는 엄습했던 두려움의 실체가 마음 속에서 확고해 졌을 때 그녀는 이제 무시할 수 없었다. 크게 흐느끼는 아빠의 목소리를 찾아 고개를 숙인 뒤 그녀도 울고 말았다.


이수는, 시력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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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장 : 안(2) 15.05.08 25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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